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3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37화(837/863)
제837화. 패배
마법사들은 둘러앉아 아코렐라가 건네준 물약을 남김없이 마셨다. 마치 죽음의 늪에서 생명수를 만난 사람처럼 말이다.
곧 그들은 각기의 방식으로 이안 베로시온을 떠올렸고, 다시금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아, 미친.”
“이안 님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왜! 왜에에에!”
“진정해, 인마. 여기 황제 폐하의 처소다.”
“아니, 근데 대체 어쩌다가 기억을 잃은 거지? 짐작 갈 만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토올룬에서 제국까지 범위가 넓어.”
타악.
아코렐라는 다들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빈 병을 내려놓았다.
“비.”
“예? 비요?”
“그래, 비다. 당시 토올룬과 바리엘에 있었던 공통된 이상 현상은 비밖에 없어. 내가 봤을 때 지하신 그 새끼가 거기에 뭔 짓을 한 게 틀림없다.”
“하 씨. 꺼지는 와중에 그 발악을 했다고?”
“알겠습니다. 일단은 알겠는데요. 그럼 지금 일이 어찌 돌아가는 것입니까?”
마법사들은 출궁한 날부터 지금까지 이안의 명을 충실히 따랐다. 저택에 콕 박혀서 눈과 귀를 막고 있었으니, 바깥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아직 파악이 덜 된 것이다.
아마 로만드로가 집마다 두드리며 도와달라 외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었을 터다. 이안이 자신들을 불러 주기만을.
로만드로가 진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 크흠. 그러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파악한 이안은 말이지, 그게-”
“반역을 꾀하는 듯하다.”
진이 로만드로의 말을 잘라 내자, 마법사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뭐라고요? 반역이요?
로만드로는 샬롯 저택 상황을 두 눈으로 본 터라 차마 뭐라 변명할 수가 없었다.
“이안 경이 내게 선물을 준다고 하였거든.”
그게 이런 건 줄은 몰랐지.
친애하여 곁을 내준 자에게도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결단력과,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을 단호함. 그리고 나아가, 반역에 가담한 귀족들의 목줄을 건네줌으로써 황권을 강화할 기회까지. 진이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로만드로는 재차 이안을 변호했다.
“사실 이안이가 몸이 많이 안 좋습니다. 폐하.”
“알고 있다.”
“예? 어찌 아셨습니까?”
“이안 경이 아코렐라에게, 아코렐라가 나에게.”
죽음을 직감한 상태였으니, 희미하게 꺼져 가는 그 생명을 어떡해서든 의미 있게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어차피 죽어 없어질 목숨…이라고 생각했겠지.
“게다가 반역죄로 몰리면 제국법에 따라 기록말살형에 처해진다. 이안 경에게는 더없는 선택인 셈이지.”
“그래도! 그래도 너무합니다!”
“아니. 이안 경에게는 아닐 것이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훗날 이안의 바리엘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진은 잠시 고민했다. 모두가 기억을 되찾은 건 다행이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다.
“이안 경이 반란을 꾀하고 있음을 로만드로가 알아챘듯, 우리 황궁 역시 눈치챘다. 아까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필시 반역이 일어날 것이라 짐작하는 듯했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가서 말리면-”
“이안 경이 귀족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 있나?”
귀족과 만나서 하하 호호 시답잖은 대화나 떠들었을 리 없다. 이안은 분명히 반역을 입에 담았을 것이고, 그 자리의 중앙 귀족들은 이를 똑똑히 들었을 터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 않나. 특히나 이처럼 무겁고 중대한 발언이라면.
“이안 경을 설득하여 무마한다고 쳐도 귀족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반란을 거론한 이안 경을 처단하자고 주장하여 마법부의 위세를 단단히 꺾어 두려 하겠지. 황궁 외 세력에게 마법부가 견제당하면, 이는 곧 황궁의 위기가 된다.”
“모두에게 진실을 알리면 되지 않습니까? 이안 님이 사실은 베로시온이고, 모두 폐하를 위한 일이었다고요.”
“불가능하다.”
아코렐라의 물약은 이미 대외적으로 거부감이 심했다. 앞서 음용했던 두 관료가 보인 반응만 봐도 눈에 훤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안 님이 원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헤일의 의견이었다. 사실이었다. 이곳에서의 흔적을 지우고자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는데…. 마법사들이 끄응, 앓으며 머리를 굴렸다.
“맞습니다. 그리고 혹 이안 님의 제안에 혹한 귀족이 있다면요? 그럼 더더욱 문제 아니겠습니까?”
“무조건 있다고 보아야겠지. 황궁에 밀고하는 자가 없는 이상. 시간이 몇 시지? 로만드로 님, 이안 님이 귀족과 만난 게 언제입니까?”
“음. 아까 낮이니까… 좀 되었어.”
“밀고자는 없군요. 이건 이거대로 놀랍습니다.”
“아무튼, 상황을 참작한다 해도 이안 님만 빠져나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반란에 동조한 자들도 그리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요. 과정이 어찌 되었든, 불순한 마음 먹은 자들을 처단하는 건 필수입니다.”
혹, 모든 걸 없었던 일로 하게 되면?
“메, 멜라니아 영애가 그랬던 것처럼요! 이게 다 황궁의 의도였다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말이 되나? 다른 것도 아니고 반역인데.”
“멜라니아 영애 사건과는 결이 달라. 그건 결국 지하신 토벌이라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이번 사태엔 귀족의 몰락을 이용한 황권 강화의 목적밖에 없어. 반발할 세력이 존재한다는 거지.”
귀족들을 시험하고, 이안 개인이 반역이라는 중죄를 사사로이 이용했다는 게 알려지면 황궁의 위엄이 산산이 무너질 것이다. 한번 시작한 이상 끝을 제대로 봐야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생각 말고, 치울 생각이나 하죠.”
따악!
아코렐라가 손끝을 튕기며 제안했다.
“좋게 생각해 보자고요. 폐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안 님의 선물 제대로 받으시지요.”
지하신을 무찌른 대마법사 이안을 단번에 제압하고,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을 일시에 처단, 중앙 귀족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 이를 발판 삼아 절대 황권을 이룩한 철혈의 황제가 되는 것.
“이안 님이 진짜로 황제 폐하를 해칠 리도 없고, 대충 시늉만 하며 빌미만 제공할 것 아닙니까.”
“그렇겠지.”
“최대한 소란 피우지 않고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안 경을 빼돌리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멜라니아 영애처럼 면죄를 받지는 못하겠지만, 살아갈 수는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반역의 선 안으로 들어간 이안을 구해 낼 방도가 없었다.
그저 이안의 뜻대로 기록을 지워 내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가 미래로 갈 때까지 함께하는 것. 그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더 나은 생각 있는 사람?”
아코렐라가 질문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반역 주동자는 쏙 빼고 가담자들만 처단하는 방법? 글쎄다. 그런 게 있으려나.
“아, 그런데요.”
스윽. 나키나가 손을 들며 물었다.
“병력의 움직임은 없습니까?”
“아직 보고된 바는 없다.”
“그러면 이거 좀 걱정됩니다. 귀족 놈들이 아무리 대가리 꽃밭이어도 어찌 병력도 없이 황궁을 전복시키려 하겠습니까. 이안 님이 분명 자신의 힘으로 거사를 행하겠노라 미끼를 던지셨을 것 같은데요.”
그럼 좋은 거 아닌가? 귀족들만 깔끔하게 쓸어 담을 수 있으니까. 그게 왜 걱정? 마법사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아무리 이안 님이 큰 결심을 하셨다 하더라도 다 책임지고서 처형대에 오르시려는 계획은 아닐 거잖아요.”
“그, 그러시겠지. 아무리 그래도 베로시온이신데 그런 최후는-”
“그럼 답 나온 거 아닌가?”
마법사들의 눈이 동시에 도르르 굴러갔다. 그들은 이내 기함하며 벌떡 일어났다.
“설마!”
이안의 진짜 목적-
반란 과정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
“이안 님, 지금 마력 조금이라도 썼다간 큰일 나!”
“저번에 죽다 살아나셨는데, 절대 안 돼!”
다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수선을 떨어 댔다. 어떻게 해서든 이안이 마력을 못 쓰게 막아야 했다. 어찌 보면 반란을 걱정할 게 아니라, 이안의 몸 상태를 걱정해야 할지도.
“아코렐라.”
“예, 폐하.”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 황궁을 정리하는 건 나중의 일이다. 일단은 이안을 무사히 구해 내는 것이 먼저겠지.
“본궁의 경비들에게는 따로 지시를 내려놓겠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금언 마법을 준비하고 있도록. 반란 사태를 목격한 자들의 입막음이 필요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폐하.”
“밖에 누구 없는가!”
진의 부름에 시종장이 인기척을 내며 다가왔다. 그는 여전히 어찌 된 상황인지 몰라 복잡한 얼굴이었다. 아코렐라 대장을 풀어 준 것도 모자라서, 저리도 많은 마법사를 본궁에 들이다니. 저러다 정말 큰일이라도 나면 누가 수습이나 할 수 있겠는가? 시종장은 이것을 수상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명하십시오, 폐하.”
“지금 현 시각부로 마법부에 내려졌던 업무 정지 명령을 철회한다. 마법부는 이전과 같이 정상적으로 업무에 임하라.”
“아, 하오나 폐하.”
시종장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마법사들이 빤히 보고 있는 터라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황제께 무슨 짓을 한 건가?’
황실의 축복이 비호하니 정신조작일 리는 없고. 대체, 갑자기 왜? 설마, 아코렐라의 물약이?
“헛된 생각은 물려라.”
진은 시종장의 속내를 알아채고는 나지막이 일렀다.
“마법부의 장관은 아코렐라다. 그녀와 마법사들은 황궁에 충성하기로 재차 맹세하였고, 이안 장관의 반란을 밀고하여 그를 증명했다. 그러니 더는 마법부를 배척할 수 없음이다.”
“아…….”
시종장뿐만이 아니다. 황궁 내의 많은 이들이 진실을 믿지 않으려 할 것이고, 이는 이안 역시 원치 않은 일.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예, 폐하. 그리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황궁과 마법부의 다툼은 끝났노라고 말이다.
시종장이 물러나자, 진이 로만드로에게 지시했다.
“이안 경이 거처로 삼을 수 있는 저택을 마련해 보도록 하지. 로만드로. 가능하면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좋겠어. 이안 경을 알아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먼 곳으로.”
결국 헤어짐은 어쩔 수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만 난다면 언제든지 이안을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
로만드로는 걱정하지 말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주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준비하지. 이안 경이라면 황궁에 도착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게다. 베릭, 나가서 귀족들의 움직임을 재차 보고받도록.”
베릭은 기억을 되찾고 나서도 꽤 조용한 반응이었다. 다만, ‘이안. 이 멍청이.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투의 이글거리는 눈빛만은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저희도요!”
“준비하겠습니다!”
그런 베릭의 뒤를 따라 마법사들도 우당탕탕 달려 나갔다. 실로 오랜만에, 마법부에 불이 들어왔다.
* * *
“이안, 이 미친놈아!”
“이안!”
“이안 님!”
타앗!
이안은 자신을 향해 내달리는 베릭과 로만드로, 그리고 마법사들을 보며 멈칫거렸다.
그들은 있는 힘껏 이안에게 달려들었고, 이내 다 같이 엉켜서는 뒤로 넘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은 이안을 꼭 붙들었다. 그가 절대로 마법을 쓰지 못하게끔.
“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서서히 넘어지는 와중 진과 눈이 마주쳤다. 형언할 수 없이 복잡한 표정.
‘폐하의 바리엘은 이렇군요.’
아무리 강한 자가 반심을 품어도 무너질 수밖에 없고, 마음을 나눈 자들이 함께 힘을 이루어, 끝내는 소중한 것을 지켜 내는 바리엘. 이렇듯 진의 바리엘은 자신의 바리엘과 다르다는 걸 어찌 몰랐을까.
털썩.
이안은 마법사들에게 안긴 채 누워서 황궁의 천장을 바라봤다. 이런 식으로 위를 올려다본 건 처음인데. 낯설면서도 새롭다.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달은 기분.
‘아아-’
그렇구나.
그래. 그런 거였어.
이안은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제가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