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0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0화(840/863)
제840화. 낯선 곳으로
“아이고, 고되다.”
“목청 다 나가겠네.”
“이안 님. 입맛에 맞으십니까?”
한참이나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마법사들이 지친다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디어 경비병들의 교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듣는 자가 없다면 괜히 힘써 가며 난리 칠 이유가 없었다.
이안은 홍차를 조르륵 따라 마시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조금.”
“음…….”
그런 것치고는 싹싹 비우셨는데요? 휘핑크림까지 깔끔하게. 마법사들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릇을 치웠다. 이안은 연신 무표정이었지만, 은근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자아, 그럼 진짜 조사를 해 볼까요, 이안 님.”
“지금껏 한 것은?”
“생지랄이었습니다.”
“객관화가 훌륭하군.”
마법사들은 의자를 끌고 와 가까이 다가왔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코렐라 대장의 말로는 비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안도 궁금한 게 많았다. 대체 뒤에서 일이 어찌 돌아갔기에 다들 모여서 자신을 맞이한 것인지 말이다. 대충은 짐작 가능했다만.
“전쟁 당시, 나는 모두에게 바리엘이 승리할 거라는 확신을 심어 주는 존재였다. 믿음을 기반으로 한 지하신에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치명적인지라, 아예 나에 대한 흔적을 지워 버린 것이지.”
“…그럼 역시 비가 맞았군요. 진짜 무섭습니다. 인지도 못 하는 사이에 그리되다니.”
“바누사는 아직 기억하고 있을 게다. 물을 다루는 술사인지라, 지하신의 빗물을 거를 수 있었거든.”
“아! 그래서!”
우물에서부터 시작된 괴소문의 정체가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마법사들은 팔짱을 낀 채 연신 기억을 다듬었다. 도려졌다가 다시 붙었으니, 이제는 그 틈새를 잘 메꿔야 하지 않겠나.
“아무튼 이안 님, 이번에는 진짜 너무하셨습니다. 기억 잃었으면 잃었다고 좀 알려 주셨어야죠, 예?”
“맞습니다! 같이 해결할 생각을 하셔야지, 이러기 있습니까? 덕분에 다들 고생 많이 했습니다.”
“미안하네. 하지만 방도가 없었어.”
마법부가 이번 일에 휘말리지 않게 하는 것도 이안의 바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마법사들이 눈썹을 한껏 치켜들고서 이안을 노려보다가 픽 하고 힘을 풀었다.
“손 주십시오.”
마력을 나눠 주기 위함이었다. 이안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그의 시간을 벌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안은 소용없을 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로 어찌될 문제가 아니다.”
“괜찮습니다.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글쎄다. 아무래도-”
“손! 주십시오.”
“…….”
“손!”
마법사들이 단호하게 이안의 말을 자르며 재촉했다.
이거, 원. 이안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었고, 마법사들이 건네주는 마력을 받았다. 끝도 없이 들어오는 게 조금 불안했다.
“알고 있겠지만, 본인이 사용할 힘은 남겨 두어야 한다. 폐하께서 중앙 귀족을 정리하고 계실 터, 혹 궁지에 몰린 자들이 무력을 쓰기라도 하면 마법부가 나서야 하니까.”
“거참, 쫑알쫑알. 말 많으시네.”
마법사들이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지막 말은 자신들이 한 게 아니었으므로. 그럼 누구지?
그들은 동시에 뒤를 돌아봤고, 어느새 들어온 베릭과 마주했다. 베릭은 은 쟁반을 한 손으로 받친 채 고개를 까딱거렸다.
“거 주면 주는 대로 좀 받아라. 이제는 마법부 장관도 아니면서. 업무에는 신경 끄고.”
“베릭.”
“밥?”
“이미 먹었는데.”
베릭은 초코 크림이 묻어 있는 접시를 살펴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마법사들을 쳐다봤다. 누가 펜대 굴리는 놈들 아니랄까 봐 식사 꼬라지 하고는.
“미쳤냐? 이것들아, 밥을 먹여야 할 것 아냐!”
“이안 님이 드시고 싶다는데 어떡하라고!”
“케이크는 후식이야, 후식! 아이, 무식한 새끼들. 뭘 좀 먹어 봤어야 알지.”
베릭과 마법사들이 투덕대며 싸우는 동안, 이안은 슬쩍 은 쟁반을 열어봤다. 잘 구워진 고기와 밥이 소복이 담겨 있었다.
“근데 베릭, 왜 왔어?”
설마 이거 전해 주려고 온 건 아닐 거고.
“왜 오긴? 친위대장으로서 네놈 조사 잘 받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왔다.”
베릭은 다들 앉아 보라며 손짓한 다음 손수 고기를 잘라 주며 덧붙였다. 양이 좀 많다 싶었는데 마법사들 것까지 같이 가져왔나 보다.
“지금 중앙에 네 반역 소식 쫙 퍼졌거든. 친위대 애들은 중앙 귀족들 저택으로 가서 압수수색 중이고, 자백 증거 모두 충분하니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어. 근데 연루된 귀족들이 계속해서 부정하고 있어서 처분까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
오래오래, 최대한 길게 끌 생각이었다. 황제도, 베릭도, 마법부도.
“그래?”
“좋냐?”
“그냥. 시원섭섭하군.”
처분이라 하면, 기록말살형과 교수형을 뜻하는 것이다. 덤덤한 이안의 반응에 베릭이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안에게 포크를 쥐여 주는 손길은 퍽 다정했다.
“그래서 시체를 찾고 있어.”
“시체?”
“너 대신 처형대에 올릴 시체.”
이안이 그리 물으며 고기를 집어 들자, 마법사들도 하나둘 제 몫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다들 황당해하며 이안에게 되물었다.
“그럼 설마 우리가 진짜 이안 님을 처형대 위에 올릴 줄 아셨어요?”
“이안 님, 생각보다 잔인하시네.”
“일단 고기 드세요. 식는다.”
체격이 비슷한 남성 시신 한 구가 필요했다. 하여 베릭과 마법부는 병원 및 감옥들을 돌며 알맞은 자가 있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마법으로 외형을 바꾸어 올릴 겁니다. 교수형으로 할지, 다른 방식을 채택할지는 논의 중이고요. 화형이 제일 쉽긴 해요. 증거 인멸도 편하고.”
“시신을 움직여야 하는 문제는 카티마코 님께 부탁드려 해결할 겁니다. 인형술이 이렇게 쓰일 줄은 또 몰랐네요.”
중앙 곳곳에 이안의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 말인즉, 결국 이안은 중앙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화형이 낫지. 타 버리면 마법이 풀려도 상관없으니까.”
으으. 지독한 사람. 마법사들은 못 말린다는 듯 눈매를 가늘게 떴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십니까?”
“은거할 곳을 말하는 건가?”
“예, 히엘로로 가셔도 좋습니다만, 거긴 지내시기에 많이 불편하실 겁니다.”
히엘로는 다른 영지와 다르게 이안을 아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저택에만 숨어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 함께 쉬쉬한다 한들 한계가 있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역시 안 될 것 같다는 듯 웃었다.
“아예 낯선 곳으로 가는 게 낫겠어.”
“예,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적응에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안 님을 편하게 할 겁니다. 그럼 이 부분은 저희가 따로 정해서 말씀드리지요. 로만드로 님이 폐하의 명으로 저택과 사용인을 구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들은 쫑알쫑알 계획을 전하더니, 돌연 입을 다물었다. 이어 눈가가 붉어지고 촉촉해지는 것이, 이안이 없는 마법부를 실감한 듯했다. 그들이 소매로 눈물을 닦아 내자, 이안이 웃었다.
“누가 보면 그대들이 조사받은 줄 알겠다.”
“자주 보러 가겠습니다. 휴가 때마다 놀러 갈게요.”
“말은 고맙지만 그럴 것 없다. 가끔 떠올리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 이젠 그대들도 각자의 삶을 돌보아야지.”
“싫은데요? 놀러 갈 건데요? 이제 이안 님은 장관도 아니니까 우리 마음대로 할 겁니다.”
“예, 꼬우면 다시 장관 하십시오.”
이런. 이안은 무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기에.
“아 참, 그리고 아코렐라에게 집무실 책상 안쪽에 있는 서류를 좀 가져다 달라고 전해 주겠나?”
“예? 설마 일하시게요?”
“마무리 못 한 것이 있어. 내가 직접 결재하는 게 아코렐라에게도 편할 터.”
예를 들면, 사업 비용 확정 같은 건 말이다. 황궁 및 타 부서에서 딴지를 걸어도 ‘이전 마법부 장관이 처리한 건이다’라고 주장하면 훨씬 수월하게 일을 풀어 갈 수 있을 테니.
마법사들은 진짜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대신?”
“밥 다 드시면 가져다 드리지요.”
“…케이크 먹어서 배부른데.”
이안의 중얼거림에 베릭이 이것 좀 보라며 마법사들에게 삿대질을 시전했다.
“봐 봐, 애가 단걸 먼저 먹으니까 밥을 안 먹잖아! 하여간에, 입맛 다 버렸지.”
“아니, 근데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기로 보인다! 나 대장이야!”
“난, 난, 마법사다!”
“어쩌라고! 말단!”
“마, 말단?!”
베릭과 마법사들 간에 2차전이 벌어졌다.
이안은 가만히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고기를 우물거렸다. 서로 와다다 쏘아 대는 와중에도 웃고 있다는 걸, 저들은 알까? 그간 황궁과 마법부 간의 경직된 관계 탓에 자연스레 멀어졌던 거리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덜그럭.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교대를 마친 경비병들이 돌아온 것이다. 베릭과 마법사가 동시에 멈칫거리고서 한소리를 내었다.
“어, 어어-”
“이안 히엘로! 당신은!”
“죄, 죄를 인정해, 안 해? 어?!”
콰앙! 쾅!
쿠웅!
…또 시작이로군.
이안은 도저히 못 들어 주겠다는 듯 쿠션에 몸을 기댔다. 흐음, 진이 귀족들을 정리하고 처형식을 거행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안이 고기를 깨작거리며 가늠하는 동안, 밖에 서 있던 경비병들은 긴장한 채 창대를 단단히 쥐었다.
“역시, 친위대는 박력이 다르네.”
“그러게. 그래도 이전에 친했다고 하던데.”
“반역 앞에서 별수 있어? 반대쪽 귀족들 심문하는 곳도 살벌하더라.”
“그래? 어떻길래?”
경비병은 다시금 그 풍경을 떠올리고서 공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댔다.
“한마디 하면 끊고. 다시 한마디 하면 끊고.”
“기선제압 한번 대단하군.”
“진짜 꼼꼼하게 조사하려나 봐. 내가 봤을 때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차들 죄다 돌아가야 해. 귀족들 조사 끝나려면 한평생 걸려.”
콰앙!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경비병들은 다시금 움찔거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황궁은 정말이지 무서운 곳이다.
* * *
“폐하.”
수상이 진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들어섰다. 반역, 그것도 가장 가깝다 여기던 자의 반역이라 심기가 잔뜩 불편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나 걱정과 달리, 책상 앞에 앉아 공무를 보는 진은 여느 때처럼 평온해 보였다.
“오셨는가.”
“평안하신지요, 폐하.”
“그 말도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소. 앉으시오.”
진은 수상에게 소파를 권하며 연신 서류를 넘겨 댔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진은 일을 마쳤다는 듯 종이를 덮었다.
“이안 경이 귀족들을 꾀어 반역을 도모한 것은 사실이오. 그리고 실제로 황궁에 출입하여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지.”
“참으로 천지가 노할 일입니다!”
“옳소. 아무튼, 반역은 결국 실패했고 마법부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이안 경과 인연을 끊었으니, 마법부에 대한 황실의 걱정도 잦아들 것이오.”
수상은 고개를 숙이며 동의한다는 뜻을 보였다.
“한데-”
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현재 황궁의 관료 중 불손한 귀족들과 연루된 이들의 수가 만만치 않으니, 이참에 본격적인 인사 개편을 할까 싶은데. 신년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기가 적절치 않은 듯하여.”
제국방위부 장관직은 공석이고, 마법부 장관직은 새로운 자를 임명하는 데까지 소란이 많았다.
게다가 이전에 레이번 장관처럼 각종 의혹에 연루된 고위 관계자들의 처분도 이루어지지 않은 바-
비로소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이제는 그들의 차례.
“옳으신 판단입니다. 폐하.”
“하면, 수상 그대께서 추천인 목록을 작성해 보시오. 내 새로운 인재를 가리는 데 참고하리다.”
“그리하겠습니다. 하면 어느 직급까지 새로이 인선하시려는지 그 범위를 알려 주시면-”
“내 아래로 전부.”
진이 단호하게 이르자, 수상의 손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
황제 아래로 전부라 하면, 수상인 자신도 포함이었다. 즉, 이만 물러나 후임에게 자리를 넘기라는 의미.
“말하지 않았소. 이참에 내각을 새로이 세우려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