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1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1화(841/863)
제841화. 친구의 친구의 친구
“수상님. 폐하께서 무어라 하시던가요?”
행정부로 돌아온 수상이 겉옷을 벗으며 잠시 침묵했다. 보좌관이 의아해하며 그를 주시했고, 수상은 잠시 모두에게 모여 보라는 듯 손짓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뭐, 사실 반란이 일어난 시점부터 난리긴 했다만.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있을 것이다.”
수상의 발언에 다들 멈칫거렸다. 몇몇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다. 부서에 술렁거림이 크게 일었지만, 수상은 저지하지 않았다.
“각 부서에 이를 알리고 인사 추천서를 받겠노라 전달하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퀸타나 장관을 내 집무실로 부르고.”
다들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 이는 이번 업무를 마지막으로 수상 역시 퇴임한다는 뜻이었다. 그 자리를 이을 자로는 현 행정부 장관, 퀸타나가 유력했다.
관료들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자, 수상은 의자에 앉으며 작게 한숨 쉬었다.
‘뭔가 이상하군.’
이런 시간이 올 줄은 알고 있었으나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안 히엘로의 반란? 경계하여 날을 세우고 있었다지만 그자가 진짜 그런 선택을 하고 이런 최후를 맞이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건 뭐랄까. 단단하고 굳건해 보이던 나무가 보잘것없는 미풍에 쓰러진 것 같달까. 아무리 마법부 전체가 막아섰다 하지만 이토록 쉽게…….
‘이안 히엘로는 분명히 그럴 위인이 아닌데.’
한번 마음 먹으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자. 반란을 일으켜 황궁까지 들어온 마당에 어떠한 무력 충돌 없이 제압되었다는 게 영 미심쩍었다.
아무리 건강이 안 좋다고는 하나, 그는 이안 히엘로가 아닌가. 냉정히 말하자면 그가 제대로 마음먹었을 시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 설령 그것이 황위 찬탈이라 하여도.
‘게다가 무엇보다 수상쩍은 것은 폐하의 반응.’
그래도 한때 마음을 주었던 자이거늘 이안에 대한 원망이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수상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보게.”
“예, 수상님.”
“지금 조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어디지?”
“반역자들 말씀이시면, 황궁친위대와 마법부입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흠. 특이 사항은 없는가?”
“예. 아직까지는요.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닐세.”
수상이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나 머릿속에서는 계속 말도 안 되는 가설이 떠올랐다. 예컨대, 이안 히엘로가 황제를 위해서 일부러 이런 일을 벌였다는…….
‘말도 안 되지.’
창창한 열일곱의 소년이, 대체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까지?
수상은 생각을 자르고서 서류를 펼쳤다. 지금 그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 필요하다면 의문을 제기할 때가 오겠지.
수상은 그리 덮어 두며 업무에 집중했다. 황궁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황궁에서의 오랜 여정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바리엘만큼이나 소중했다.
* * *
“바르사베! 들었어?”
“놀래라. 뭐가?”
마지막 중앙 귀족의 저택을 수색하고서 복귀하는 길. 바르사베가 피곤하다는 듯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대원들은 뭔가 들뜬 기색이었다. 저 새끼들, 일 안 하고 놀았나? 왜 저리 신나 보여?
“드디어! 드디어 인사 개편이래!”
“어?”
“황제 폐하께서 선언하셨다. 수상직을 포함한 주요 관직을 모두 새로이 임명하실 거라고. 황궁친위대도 거기 포함이지. 드디어 베릭 1대장 체제에서 벗어나는군! 으하하하!”
대원들은 신나게 주먹을 휘두르며 환호했다. 그간 대장직에 앉아 독재하던 베릭 탓에 얼마나 개고생이었던가? 누구든 나란히 대장직에 오르기만 하면 그 더러운 꼴은 더 이상 안 봐도 되었다! 그들은 필사의 각오로 대장직에 오르겠노라 결심했다.
“오늘부터 특훈이드아아!”
“특훈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할 일이 태산인데 뭔 개소리들이여. 꼭 어중간한 것들이 더 지랄이지.”
투욱.
베릭이었다. 그는 서류철로 대원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내려치며 이만 흩어져라 눈짓했다.
“바르사베, 압수수색한 것들 바로 보냈어?”
“어. 마무리하고 들어오는 길이거든.”
“고생했네.”
베릭은 선 채로 보고서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가끔 거꾸로 든 것도 있었지만, 베릭은 기특하게도 곧장 제대로 돌려 읽었다.
바르사베는 그 모습을 빤히 지켜봤다. 건성으로 쥔 펜으로 서명을 휘갈기던 베릭이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치켜들었다.
“왜?”
“뭐 있지?”
“뭐가?”
“내가 널 몰라? 이번 반역 사건. 뭐 있지?”
베릭이 둘둘 만 서류로 바르사베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억측은 거기까지 하라는 경고였다.
바르사베 역시 자신이 지나쳤음을 인정하곤 미안하다 사과했다.
“그럼 너부터 알려 줘. 너, 왜 그렇게 멀쩡한 건데?”
“참 나. 멀쩡해도 난리네.”
“걱정돼서 그런다. 진짜 갑자기 처형식 직전에 이안 경 빼돌려서 도망이라도 갈까 봐.”
“흠.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근데 이안이가 안 따라오지.”
저저, 봐 봐! 그럴 줄 알았지! 바르사베가 무어라 쏘아붙이려고 하자, 베릭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말해 주면, 믿고 따라올래?”
“뭐?”
“이안이 얘기 들어 보니까 너도 알긴 알아야겠다고 생각은 들더라. 마지막에 대화 나눈 게 너라며? 그러니까, 이안이에 대한 기억을 마지막으로 잃은 거 말이야.”
뭔 소리래? 바르사베가 의아한 표정으로 멈칫거렸다. 저놈, 혹시 미쳤나? 이안 경과의 일로 인해 너무 상심한 나머지 미쳐 버리고 말았나? 바르사베의 눈빛에 의심을 넘어 측은지심이 깃들었다.
베릭은 그 감정을 알아채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라고? 진짜 미친 게 아니라고?”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건 폐하도 알고 계신 내용이다. 이안이를 맨 마지막으로 잊은 사람이라는 이유 말고도, 넌 나랑 같이 갈 동료니까. 알아 뒀으면 좋겠어.”
“왜, 왜 그래? 정말.”
“대장직 안 할 거야? 너 아니면 쓸 만한 놈 없는데.”
베릭의 인정을 받아 내심 기쁜 것도 잠시, 바르사베는 이어진 말에 기함했다.
“이안이는 100년 후의 바리엘에서 온 황제다. 다들 그렇게 떠들어 대던 그 이안 베로시온이 맞아.”
“야! 베릭!”
“진짜야. 폐하랑 마법부 애들 다 알아. 그래서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거지. 등신 머저리 같은 귀족들, 이안이의 연극, 안정되어 가는 황실, 싹 다 물갈이될 관료들…….”
뭐 이런 거 저런 거, 기타 등등.
바르사베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하기에는 뭔가 그럴듯하지 않나? 실제로 안팎에서 이안의 반역에 대해 말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따라와.”
베릭은 직접 눈으로 보여 주겠다며 바르사베를 데리고 나갔다. 어디로 가는 걸까? 지하 감옥? 이안 경과 마주 보게 하려고?
하지만 그들이 다다른 곳은 마법부.
“베릭. 어쩐 일이래?”
“아코렐라는?”
“장관실에.”
“적응 안 되네.”
“우리도 그래.”
킥킥대며 웃는 마법사들이 바르사베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며 지나쳐 갔다. 가족처럼 따르던 이안 경이 감옥에 갇힌 현 상황에서 보일 만한 태도가 아니었다.
똑똑, 베릭은 노크와 동시에 장관실 문을 활짝 열어 버렸다.
“들어오지 마!”
“여- 아코렐라.”
“들어오지 말라니까!”
아코렐라는 머리를 쥐어 싼 채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과 씨름 중이었다. 평생을 연구실에서 마석 갈고 섞고 끓이며 살았는데, 갑자기 종이 뭉치를 처리하려니 힘든가 보다.
“대장! 아니지, 장관! 거기 말고 여기 도장을 찍으라고요!”
“장관님이라고 불러, 시발!”
“아니, 왜 자꾸 마력석 관련 서류에만 똑바로 찍는 건데요? 어어? 그거 고치지 마세요! 마력석은 이미 충분합니다!”
“모자라! 내가 더 잘 알아!”
“알긴 뭘 알아요? 거기 말고 여기에 찍으라니까?”
“으아아아악!”
콰앙! 쾅!
촤아아악!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마법사들과 아코렐라는 서로 서류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며 찢어 먹었고, 도장은 이리 날아갔다가 저리 날아들기를 반복했다.
바르사베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정녕 마법부가 맞는지 의심했다. 뒷골목 시장때기도 이것보다는 질서가 있을 게다.
“로만드로 님은 어딜 가고?”
“잠깐 저택 들르신다고 해서, 아! 진짜! 대장!”
“장관님이라고 이것들아아!”
“안 되겠다. 이거, 장관을 갈아 끼우든지 해야지.”
“베릭, 넌 왜 거기 서 있어? 정신 사납게?”
“내가 여기 서 있어서 정신 사나운 거겠냐? 네들 꼬라지를 봐라. 됐고, 그 회상물약 남은 거 있지?”
회상물약을 언급하자 날뛰던 마법사들이 동시에 우뚝 멈췄다. 아코렐라 역시 비뚜름한 안경을 고쳐 쓰며 두 눈을 반짝였다. 꼭 보석을 발견한 광부처럼.
“있지이? 왜에?”
“하나 줘 봐. 바르사베 좀 주게.”
“어어,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셔!”
“아, 저기, 잠깐만. 저는-”
“사양할 것 없고, 이쪽으로.”
바르사베가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려 했지만, 마법사들의 등쌀이 만만치 않았다. 아코렐라는 엉망이 된 머리칼을 대충 정리하며 서랍장을 뒤적였다.
“그치. 바르사베 대원도 알 건 알아야지. 앞으로 천년만년 폐하를 보필하려면.”
“폐, 폐하께서도 이걸 마셨단 말씀입니까?”
“왜요? 안 믿겨요? 아니면 내가 또 미친 물약을 만들어서 폐하와 마법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나? 응?”
아코렐라가 손가락 틈에 물약을 끼우고서 음흉하게 웃었다.
영 볼품없어 보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인지라, 바르사베는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저런 이에게 폐하께서 굴복하셨다니… 이건 곧 자신의 부덕이다.
“뭔가 눈빛이 마음에 안 드는데.”
아코렐라가 코를 훌쩍이며 바르사베에게 물약을 던져 줬다.
이를 반사적으로 잡아챈 바르사베. 그녀는 베릭과 마법사들을 번갈아 보며 난감해했다.
“마시고 안 마시고는 네 뜻인데, 그냥. 진실은 따로 있다는 것만 알아 두라고.”
베릭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똑똑.
“들어오지 마세요!”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아코렐라는 역시나 방문을 거절했다. 하지만 마찬가지 아랑곳하지 않고 열리는 문. 아코렐라는 미치겠다는 듯 눈을 뒤집어 깠다.
“응? 사람이 많네?”
이번 방문자는 로만드로였다. 그는 뒤에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서둘러 오라 재촉했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오.”
비비안나와 비비였다.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으며 로만드로의 등 뒤에 숨었다.
“어쩐 일이세요?”
“저기, 아코렐라. 회상물약, 남는 거 있지?”
“예?”
또? 다들 눈을 황당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자 로만드로가 사정했다.
“우리 아내랑 딸아이도 알았으면 싶어서. 이안에 대한 마음이 깊잖아. 무엇보다 비비가 전부 자신이 쓴 소설 때문이라며 걱정을 많이 해서 말이지. 괜찮다면 좀 마시게 하고 싶은데.”
“아아. 그렇군요. 비비 양은 특히 더 그렇겠네요. 잠깐만요. 남은 게 더 있을 겁니다.”
아코렐라가 찬장을 뒤적이는 동안, 마법사들은 그녀가 멋대로 결재한 보고서를 고치느라 정신없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바르사베는 제 손에 든 물약을 만지작거렸다. 참 희한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다시 인기척이 들려왔으므로.
똑똑.
“하아.”
아코렐라는 이제 다 포기했다는 듯이 소리쳤다.
“들어오세요!”
이번에는 누구? 다들 궁금하다는 듯 돌아봤다.
“아. 손님이 많으시군요.”
시아오시다. 그는 분주해 보이는 광경에 당황스럽다는 듯 멈칫거렸다.
이번에는 회상물약 건이 아닌가? 다들 혹시나 해서 조용히 입단속했다. 아코렐라의 물약을 음용했다는 게 밖으로 새어 나가면,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시아오시는 담담하게 문의했다.
“폐하께서 아코렐라 대장에게 가 뭐 좀 먹고 오라고 하시던데요.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가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시아오시가 그리 중얼거리자, 아코렐라가 씩 웃었다. 음! 역시! 그녀는 손끝을 탁 튕기며 남은 의자를 가리켰다.
“자자, 줄 서세요. 지금 주문이 좀 밀려 있거등요.”
시아오시는 상황 파악을 하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고는 천천히 비비의 옆에 가 앉았다.
비비 가족과 시아오시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바르사베는 여전히 제 손에 들린 물약을 꽉 쥐었다. 이거, 진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