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2화(842/863)
제842화. 밤 산책
“음. 순찰 이상 없음.”
야심한 시각.
경비병이 조를 이루어 황궁 곳곳을 순찰 중이었다. 지하 감옥 인근을 살피던 경비병이 돌아가려고 하자, 동료가 복도 끝을 가리키며 물었다.
“안쪽까지 안 하나?”
“저긴 이안 히엘로가 있어.”
“그래서?”
“가까이 접근하면 위험하다는 거지. 반역을 일으킨 ‘마법사’이지 않은가. 게다가 좀 똑똑해? 여타 마법사와는 다른 자라서 꾀도 엄청날 거고. 봉인석을 차고 있다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라 마법사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네. 우리는 대충 여기 선에서 돌아가면 돼.”
“흐음. 그래도 살펴보는 것이…….”
“마법사들이랑 다 얘기가 된 것이네. 가지.”
할당된 구역이었지만, 경비병들은 몸을 돌렸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지하 감옥에 고급 탁자와 소파 그리고 침대가 놓여 있다는 것을.
한편-
“크허어얽.”
이안은 제 침대에 누워 자는 마법사를 힐끗거렸다. 자신보고 편히 있으라며 가져온 것이면서, 어찌 본인들이 더 유용하게 쓰는 듯하다.
사각.
이안은 펜대를 갈며 아코렐라가 작성한 보고서를 살폈다. 대장직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다만…….
‘한동안 어지럽겠군.’
이안은 장관실 풍경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여 살포시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인수인계도 없이 이 정도면 괜찮다. 옆에 로만드로도 있을 터고.
‘떠나기 전까지만 인수인계하면 되니까.’
이안은 펜으로 아코렐라의 보고서에 선을 찍찍 그어 가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수정했다.
그때, 복도 끝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경비병이 올 일은 없는 터라 마법사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안 경.”
모습을 보인 것은 진이었다.
그는 고개를 기울여 창살 안쪽을 살폈다. 퍽 그럴듯하게 꾸며 놓은 것이 흥미롭다는 눈치다. 이안이 마법사를 깨우려고 하자, 진이 저지했다.
“두시게. 지금은 모두가 잘 시간이니까. 깨어 있는 자가 이상한 것이오.”
“그렇습니까.”
“답답하지는 않고? 산책이나 하심이 어떤가?”
“밖에 돌아다녔다가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곤란해지십니다.”
“걱정 마시게. 인근에 사람을 모두 물렸으니. 정원 정도는 거닐 수 있을 것이네.”
끼이익.
진은 그렇게 말하며 손수 감옥 문을 열었다. 잠금장치가 걸려 있긴 했지만, 보여 주기 위한 것인지라 열쇠가 필요 없다.
이안은 서류를 가지런히 정리하고서 일어났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누구 덕분에.”
“베릭이 사고뭉치기는 하지요.”
진이 황당하다는 듯 뒤를 돌아봤다. ‘그 누구’가 베릭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입 꾹 다물고 일 저지른 이안 경을 이르는 것이지.
그에 이안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시치미를 떼다가 살포시 웃음을 터트렸다.
“송구합니다, 폐하.”
“…베릭보다 그대가 더하다.”
“예, 알고 있습니다.”
정원은 조용했다. 하늘에는 별이 촘촘했고, 싱그러운 녹색 이파리들은 단잠에 빠진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이안은 오랜만에 맞는 신선한 바람을 느끼며 잠시 눈 감았다.
“이상한 말입니다만, 폐하. 요즘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로워진 것 같다 느낍니다.”
어릴 때는 크로니의 저택에 갇혀 있었고, 입궁 후에는 책임지고 감당할 것이 산더미였다. 이곳에 온 이후로도 너무 많은 일이 있지 않았던가.
모든 걸 털어 내고 마지막을 기다리는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행복한 것 같기도 했다.
진은 벤치에 앉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대를 안다.”
이제는, 그대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상할 것 없지. 그럴 만도 해.”
“그리 말씀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이 헛된 게 아닌 것 같아서. 폐하께서도 힘드시면 가끔 벗어나십시오. 이거, 은근히 괜찮습니다.”
황제의 고독과 고뇌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위로였다. 그러자 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이안 경만큼 힘들지 않을 걸세.”
진은 반란을 겪지도 않을 것이고, 신의하는 자가 자신을 위해 죽는 것도 보지 않을 것이다.
신의 안배로 먼 시간선을 넘어 국경 언저리를 전전하지도 않을 것이고,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지하신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지도 않을 터다.
“이안 경 덕분에.”
이안이 있었던 덕분에. 그가 행한 발자국 하나하나가 자신의 바리엘을 위했기 때문에-
진은 이안만큼 힘들지 않을 것이며, 그처럼 무거운 짐을 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벗어나고 싶을 만큼 힘들지도 않겠지.
“고맙네.”
“아닙니다. 폐하의 바리엘이 곧 저의 바리엘인걸요.”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원망은 원망이지. 안 그런가?”
진이 인상을 가볍게 찌푸리며 덧붙이자, 이안은 웃기만 했다. 진은 차마 쏘아붙이지 못하고 한껏 수그러진 투로 중얼거렸다.
“미안한 것도 미안한 것이고.”
“그러실 것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미안합니다.”
사과를 주고받은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깃들었다. 이전처럼 불편하거나 날 선 것이 아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공백.
“선물은 잘 받았네.”
그것을 메운 것은 진이었다.
“중앙 귀족에 대한 고삐를 단단히 붙잡았어. 이로써 황실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며, 그대가 원하는 대로 절대적인 권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일세. 내각도 새로이 세우려고 준비 중이고.”
“폐하의 바리엘에는 훌륭한 자들이 많습니다. 필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겠지요.”
“나는 무엇을 주면 좋을까?”
진이 이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대가 내게 선물을 주었듯이 나도 그대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솨아아아. 바람이 시원하게 몰아치며 이안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안은 기분 좋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여 바람을 느꼈다.
“폐하께서는 그저 바리엘을 훌륭히 다스려 주시면 됩니다. 그리해 주시면, 언젠가 만날 저의 바리엘은 더욱 빛나겠지요.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폐하나 저나, 결국에는 그것을 위해 사는 이들이니까요.”
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확실히, 이안을 기쁘게 할 만한 선물이라면 그것뿐이리라.
다시금 적막. 이번엔 조금 어색한 공백이 둘 사이에 생겨났다. 한참이나 말을 고르던 진이 물었다.
“…안 가면 안 될까?”
자신과 함께 늙어 가며 이곳에서 오랫동안 있다가 그대의 바리엘로 돌아가면 안 될까? 중앙이 아니라도 좋으니, 어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평온히 지내 살면 안 될까? 일정이 빌 때마다 마주하여 그간 있었던 일을 나누고, 바리엘이 변해 가는 걸 함께 지켜보면 안 될까? 아니면…….
진이 속상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이안이 찡그리며 웃었다.
“신께서 허락을 안 해 주실 것 같습니다.”
“망할.”
“신성모독입니다, 폐하.”
“듣고 계신다면 내 소원을 들어주시겠지. 아니라면 못 듣고 계신 것이니 뒷말 좀 하면 어떠한가?”
이안은 우스운 농담이라며 웃었지만, 진은 웃지 않았다. 진심이었기에.
“얼마나 남은 것 같은가?”
“글쎄요. 마력을 안 쓰니 몸에 무리는 없습니다.”
“이제 쓸 일도 없는데 봉인해 두시게. 그대가 지금 즐기는 평온함을 마음껏 누리란 말일세. 미래로 돌아가면 이마저도 그리울 것이니.”
미래로 돌아가면 그리울 것이다-
그 말이 이안을 멈칫하게 했다. 그럴 수 있을까. 미래에서 나는 이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문득 가슴 한쪽이 아파졌다. 이곳의 사람들은 이제 자신을 기억하는데, 앞으로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겠구나 싶어서.
하지만 별수 없는지라, 이안은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고개만 끄덕일 뿐.
“그리고 하나 더.”
“예, 폐하.”
“에이린은?”
“아.”
잠깐 잊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클리포포드에 도착했겠지? 이안은 걱정하지 마시라 답하려다,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곧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모호한 대답.
이안의 심술이었다. 마력봉인석 의무 착용 카드로 곤욕을 준 것에 대한 작은 심술. 그래도 연인이라고 소중히 대하는 마음은 보기 좋다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런 속내도 모르고, 진은 별생각 없이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말 놀랐네. 에이린이 사라졌다고 하여 더더욱.”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 이안 경이 그럴 리-”
진이 살짝 안심된다는 듯 이르자,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황명으로 인근의 사람들은 모두 물렸다고 하니, 경비병이나 사용인은 아닐 것이고.
타닥타닥!
“이안 니이이임! 흐윽! 이안 님!”
침대에 누워 자던 마법사 하나가 깨어난 게다.
그는 연신 울먹거리며 건물 곳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이안이 없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코빼기도 안 보이니, 뭔 일이 일어났다 오인할 만했다.
“돌아갈 시간인가 봅니다.”
“또 오지.”
“업무가 과중하실 것인데, 무엇 하러 그러십니까.”
“그대에게 바람을 쐬어 주기 위해.”
이안은 잠깐 멈칫거리더니 무언가를 생각했다. 진도 그렇고 마법부도 그렇고, 처형까지 일정을 최대한 미루고자 애쓰는 것 같았다.
사실 이안도 그것이 좋았다. 황궁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이 눈치채기 전에 저를 처형하심이 맞겠습니다.”
이안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알려지면, 그들은 곧바로 반발하여 해당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나아가 이안에 대한 처벌이 늦어지는 걸 빌미로, 그들에 대한 처벌 역시 완화해 달라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안은 어디까지나 죽어 마땅한 대역죄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진은 단번에 대꾸했다.
“내가 알아서 하겠네.”
그러고는 이안의 볼을 가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그대는 장관도 아니잖은가?”
문득 베릭이 이안의 볼을 잡아당겼던 때가 생각났기에.
“그러니 더더욱 자유를 즐기란 말일세. 이제 모든 건 우리에게 맡기고.”
이거, 원. 작위나 직책 없는 것이 이리도 서러운 일이었나. 이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멀리서 지나가는 마법사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울며불며 정면만 바라보고 뛰던 마법사가 용케 이안의 신호를 알아채고서 멈췄다.
“이안 님-!”
뿌에엥.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오던 그는 진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코를 훌쩍 들이켰다.
진에게 짤막이 인사를 남긴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어찌 그리 울어?”
“무, 문이 열려 있는데 이안 님은 안 계시고 그래서요. 어디 가신 줄 알았습니다.”
“내가 가긴 어딜 가나.”
“그거 버릇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 하는 거요.”
“진짜인데? 내 거처는 그대들이 정해 줄 것이잖아.”
“다음부터는 메모라도 남겨 두십시오.”
“미안하군. 쓸 만한 종이가 없었어. 그렇다고 아코렐라의 보고서에다 낙서할 순 없잖나.”
“그냥 거기다 쓰십시오! 어차피 엉터리인 거, 그 김에 다시 쓰면 좋지. 뭘 그리 아끼십니까.”
마법사는 쫑알쫑알 잔소리를 쏟아내며 이안의 뒤를 따랐다.
진 역시 그들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시아오시가 보였다.
“오셨습니까.”
“그대는 다음에 가게. 밤 산책을 연달아 하기에는 몸이 안 좋아 보였어.”
이안은 몸 상태가 괜찮다고 하였지만, 진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조금 창백한 안색도 그렇고, 묘하게 힘이 없는 웃음과 몸짓도.
시아오시가 작게 고개 숙였다. 마법부에 들러 아코렐라의 물약을 마신 직후이니, 시아오시 역시 마음 쓰이는 것이 많으리라.
“돌아가지.”
“예, 폐하.”
이안이 마음 놓고 쉬게 하려면 자신이 확실한 모습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었다.
진은 마차 창문에 턱을 괴고서 가까워지는 본궁 건물을 바라보았다. 유난히도 별빛이 반짝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