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3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3화(843/863)
제843화. 먼 곳에서 온
귀족들을 조사 중인 건물은 곳곳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중앙 가문이 죄다 끌려온 것도 모자라, 가문마다 데려온 참고인들이 한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실의 작은 배려로 감옥이 아닌 응접실에 갇혔다는 점뿐. 샬롯 백작과 부인은 초췌한 낯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보,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언제까지 여기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보내 주지 않을 것이오. 다른 것도 아니고 반역 혐의니까. 괜히 황궁 밖으로 풀어 줬다가 무슨 변고가 있을 줄 알고.”
“우리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어찌 증명할 방법이 없을까요? 마법부가 정상화되었다고 하니 실담물약 같은 걸 써서요.”
“폐하께서 허락하실까?”
“예?”
폐하께서는 목줄을 팽팽히 잡아당겨 어느 선까지 자를까 재고 있을 것이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상차림이 아닌가? 이미 황궁에 갇힌 이상 방도가 없다. 없던 죄도 인정해야 할 판이니.
백작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놈들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차라리 도박이나 하고 다니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찌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 먹었나 모르겠습니다.”
“하루아침…….”
그래. 하루아침.
미심쩍은 정황이 너무도 많았다. 이안 히엘로의 마법을 믿고 나섰다고는 하나, 결성부터 행동까지의 간격이 너무 좁지 않나. 황궁 내에서 실제로 무력 충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함정인 것 같은데.”
백작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안 히엘로, 그 작자다.
“폐하께서 이안 히엘로까지 같이 묶어서 작업하신 것일 수도…. 황궁과 마법부의 갈등이 극에 치닫고 있었으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
“작업이든 뭐든, 어쨌거나 반역을 모의하여 행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황궁에서 원하는 대로 사업을 정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모직과 보석 세공 사업권을 황궁으로 넘기고, 저택 인근 부지도 헐값에 파시지요.”
“기다려 보시게. 거래에서 먼저 제시하는 것만큼이나 손해 보는 것이 없어.”
백작은 부인의 머리칼을 매만지더니, 천천히 귀 쪽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톡, 선홍빛 귀걸이 한 짝을 떼어 문 쪽으로 걸어갔다.
똑똑.
“밖에 누구 있는가?”
“무슨 일이십니까.”
응접실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백작은 헛기침을 큼큼 해 대더니, 조심스레 그를 안으로 불렀다. 그러고는 백작의 귀걸이를 내어주며 속삭였다.
“이안 히엘로가 갇혀 있는 곳으로 가서 내 이름과 함께 말 좀 전달해 주게. 아무리 생각해도 현 상황에 대한 억울한 점이 있는 것 같으니, 이안 경께서도 무언가 할 말이 있다면 전달하시라고. 일을 잘 해내면 다른 한쪽 귀걸이도 내어주지.”
경비병은 제 손에 들린 보석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 중의 귀족, 중앙 가문의 안주인이 사용하던 장신구다. 적어도 한 해 치 봉급과 맞먹는 값이겠지? 경비병은 그것을 주머니에 챙긴 다음, 누가 볼세라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
“여어, 교대 시간이지?”
“그래. 수고하게.”
마침 얼마 안 가 교대 시간이었다. 세상사 다 이렇다니까! 교대가 조금만 일찍이었어도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 아닌가?
경비병은 초소로 돌아가는 척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스윽.
이안 히엘로가 있다는 지하 감옥은 본궁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건물로 들어선 경비병은 이내 평소보다 조용하다는 걸 알아챘다.
‘이상하네.’
귀족들이 있는 건물은 시장 바닥과 다를 바 없이 시끌시끌한데, 여기는 오가는 관료도 몇 없다. 대낮이었음에도 스산하게 느껴질 정도다.
경비병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이안 히엘로가 어디 있는지 살폈다. 담당 구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은근슬쩍 물어라도 볼 건데.
“음?”
그러다 다다른 복도 끝 감방. 설마 여기는 아니겠지, 싶어서 고개를 들이미는 순간-
“뭐 합니까?”
“아이고, 놀래라!”
마법사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다급한 발걸음과 달리 목소리는 조용히 낮춘 채.
“뭐 하냐고 물었습니다. 여기는 순찰 금지 구역이라고 사전에 전달했습니다만. 마법사가 수감된 곳인 걸 모르십니까?”
“아아, 그게 아니라요. 제가 근무 선 지 얼마 안 돼서 실수했습니다. 길을 묻고 싶어도 워낙에 오가는 사람이 없는지라….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름과 소속이?”
“케, 케핌입니다. 6구역 소속이고요.”
마법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수상한 점을 찾으려는 듯이. 그는 경비병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한참이나 노려봤고, 이내 고갯짓했다.
“얼른 가십시오. 나가서 왼쪽입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 낮추시고. 여기에 들어온 것 자체를 잊으십시오. 다 그쪽을 위해서입니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꽁지가 빠져라 후다닥 사라지는 경비병. 그를 바라보던 마법사는 팔짱을 낀 채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이안 님 불편하실까 봐 건물 자체를 비웠는데. 이럴 줄은 몰랐네. 깨신 건 아니겠지?’
감방 안, 다행히 이안은 침대에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밤 산책이 고단했는지 영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뭐, 그간 몸고생, 마음고생하셨으니까. 푹 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지하 감옥의 몇 안 되는 좋은 점 중 하나는, 해가 들지 않는다는 거다. 질 좋은 침대와 이불만 있으면 수면의 질이 상당히 좋다는 뜻. 자신이 겪어 봐서 아는 사실이다.
“흠.”
마법사는 감방 문을 열고 들어가 이안의 이마에 손을 가볍게 댔다. 미열이 조금 느껴졌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는 폐하의 당부가 사실이었다. 그는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얼른 쾌차하십시오, 이안 님.”
한편-
타닥타닥!
건물 밖으로 나간 경비병은 거친 숨을 토하며 뒤를 돌아봤다. 혹여 마법사가 쫓아오나 싶어서.
다행히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안도하며 주머니에 든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참으로 의아하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고급 탁자와 소파 그리고 침대까지. 감옥에서는 영 보기 힘든 것들이 감방 안에 놓여 있었다.
이안 히엘로는 반역자인데 그게 가당키나 한가? 마법부 장관이자 전쟁 영웅이라 대접해 주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참 나. 기가 막히네!’
경비병은 툴툴거리며 초소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혹여 마법사가 쫓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이안 히엘로와 접선하지는 못했지만, 일단은 다음 교대 시간에 백작에게 해당 정보를 전달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 더 받기는커녕 반납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 * *
“트웰러 장관을 입궁시키심이 낫지 않겠습니까?”
시아오시가 보고서를 내밀며 물었다.
진 역시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방위부 장관직을 새로이 임명하기 위해서는, 트웰러 장관의 퇴임이 먼저였으므로.
하나 그의 퇴임엔 적절한 예우와 명예로운 퇴임식이 필요했다. 이는 오랜 관례이기도 하나, 트웰러의 경우엔 최근 전쟁에서의 공이 컸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회의 때 논의해 보지. 다들 모였다 하는가?”
“예, 폐하.”
대회의가 시작될 시각이었다. 반란이 일어난 이후 첫 회의인지라, 여러모로 말이 많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진은 시아오시와 함께 대회의장으로 출발했고, 이내 시끌벅적한 마법부를 발견했다.
“아코렐라 대… 장관님!”
“대장관님은 또 뭐야.”
“아니, 왜 보고서가 바뀌어 있습니까? 제가 분명히 수정해서 올렸는데요.”
“숫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원복했다. 꼬우면 뭐다? 네가 장관 해라.”
“예, 제가 장관 하겠습니다. 내려오십시오.”
“취임식도 안 했는데?”
“취임식도 안 하고 내려온 첫 번째 장관이 되시는 겁니다. 축하합니다.”
“팍 씨! 까불어?”
아코렐라와 마법사들이 제각기 옆구리에 서류 뭉치를 끼운 채 투덕대며 계단을 올랐다.
저 모습을 보니, 이안 경이 진짜 물러났다는 게 실감 났다. 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잠깐의 시간을 두고 대회의장에 들었다.
“예,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새 마법부 장관 아코렐라입니다. 다들 얼굴 아시죠? 예예, 반갑습니당.”
“아코렐라 장관.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어이고, 친절도 하셔라. 레이번 장관님. 예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역시 갈 때가 되니까 달라지는 게 사람인가 봅니다?”
“어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갈 때라니요!”
“무례한 언사입니다! 아코렐라 대장, 아니, 장관!”
“뭘 또 그렇게 예민하게 받으세요? 대대적인 인사 개편 말씀드리는 건데? 마법부 대장장관이 인사 겸 올린 말로 너무 열 올리신다.”
“대, 대장장관?”
“본인이 그러셨잖아요. 데, 데장좡과완-”
문틈으로 들려오는 아코렐라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막 시종이 황제의 행차를 알리려는 차, 진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아코렐라가 장관으로서 처음 대회의에 들어 인사하는 자리였다. 인사…인지 아닌지는 조금 모호했으나, 어쨌거나 시간을 주는 게 맞을 게다.
‘이안 경과 대화할 때만 해도 걱정 하나 없었거늘.’
바리엘 제국, 자신의 곁에는 훌륭한 인재가 많으니 문제없을 거라던 이안 경. 같이 보았으면 말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소.
진은 아코렐라가 살벌하게 쏘아 대는 것을 잠시 듣고 있다가, 이제 되었다는 듯 신호했다. 시종이 목청을 가다듬더니 안쪽에 알렸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그러니까 제발 닥치시오들! 꼭 그렇게 이르는 것만 같아 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진이 안으로 들어서자, 아코렐라에게 모욕당한 장관들이 난색을 보이며 헛기침해 댔다. 그러나 정작 그 당사자인 아코렐라는?
“오셨습니까, 폐하!”
초롱초롱, 순진무구하게 두 눈을 반짝이며 충심 깊은 시선을 보내왔다.
그 모습에 장관들이 질색하며 입을 살짝 벌렸다. 미친 자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진정 다채롭게 미친 자가 아닌가? 반면 마법사들은 이미 해탈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좋은 아침이오.”
“좋은 아침입니다!”
씩씩한 아코렐라 외, 다른 자들의 인사는 다소 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란과 인사 개편이라는 사건이 그들의 목을 단단히 죄고 있었으니.
진은 회의를 시작한다는 뜻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착석하시오.”
“예, 폐하.”
“오늘은 심히 중요한 안건을 다룰 것임을 알고 있을 터. 소란스러운 황궁 수습을 위한 첫걸음이나 마찬가지이니, 모두들 신중히 임하길 바라오. 먼저 마법부의 아코렐라 대장부터 시작하지.”
“준비되었습니다!”
콰앙!
자신 있게 박차고 일어난 나머지 의자가 뒤로 휙 넘어갔다. 마법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의자를 잡아 제자리에 세웠다.
“먼저 보고 순서부터 말씀드립니다. 이안 히엘로 전 장관의 반란 혐의와 그 과정, 그리고 진압 결과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제국방위부 트웰러 장관의 복귀를 위한 포탈 개방 건이고요, 이어서…….”
시종들은 괜히 귀를 쫑긋거리며 안쪽 분위기에 집중했다. 그저 미친 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회의가 시작되니 제 역할은 제대로 하네.
타닥타닥!
“실례합니다, 폐하께서는요?”
그때, 한 관료가 허둥지둥 달려와 황제를 찾았다. 시종들이 회의장 쪽으로 고갯짓했다.
“회의에 막 드셨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외교부에서 왔습니다. 하아. 조금 늦었네요. 폐하께 직접 올려야 할 전언입니다.”
“현재는 마법부의 순서이니 기다렸다가 외교부 차례 때 안내드리겠습니다. 한데,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요-”
관료가 손에 든 종이를 들어 보여 주자, 시종들이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프로엘카? 여기가 어딥니까?”
처음 듣는 나라에서 온 서신이었다. 관료 역시 낯선 국명인지라 한차례 찾아본 기색이다. 그는 예사롭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남국이랍니다! 바리엘과 교류가 없어서 존재로만 알고 있던 곳인데, 세상에… 놀랍지 않습니까? 아. 보낸 자는 ‘타오마’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