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4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4화(844/863)
제844화. 오라비의 선물
스테이크를 반듯하게 썰던 이안이 멈칫거렸다. 그는 조금 의외라는 듯 마법사를 돌아봤다.
“타오마?”
“예, 그렇습니다. 이안 님.”
타오마라 하면 버고스에서 만났던 상단주이자 화랑의 주인이다. 술 내기에서 진 탓에 실라스크를 싼값에 매입해 오기로 계약한 적 있다.
이안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마법사가 건넨 서신을 받았다.
“외교부에서 폐하께 올린 서신 전문입니다. 대회의에서 공유되었다고 합니다.”
“대회의라. 아코렐라는 잘 했고?”
“뭐, 예, 흐음…….”
마법사는 할 말이 많지만 참겠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황제와 함께 있을 때는 그나마 정신 줄 붙들고 있는 것 같은데, 윗사람만 없다 하면 고삐 풀린 망나니가 따로 없다. 마법사는 한숨만 푹 내쉬며 덧붙였다.
“트웰러 장관님 귀국 일정도 조율되었습니다.”
“그렇군.”
이안은 그리 대답하며 서신을 펼쳤다.
-안녕하십니까, 타오마 인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프로엘카 왕궁에서 이 서신을 작성 중입니다. 이것은 왕궁의 배려로 가장 빠른 전서구를 통하여 제국에 전달될 것입니다…….
“프로엘카 왕궁이 서신을 검열한다는 말이로군.”
이안의 중얼거림에 마법사가 맞은편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엘카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정세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타오마의 서신이 사실상 전부라고 보는 게 맞지요.”
-프로엘카의 위대한 지도자 엘카 왕께서는 제국의 거래 제안을 상당히 흥미로워 하십니다. 실라스크는 귀한 꽃이지만, 제국의 요청에 따라 얼마든지 거래를 할 수 있노라고요.
“흠.”
이안이 미간을 살짝 눌렀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다. 바리엘과 프로엘카는 어떠한 교류도 없는 상황. 한데 그런 상대에게 ‘귀한’ 꽃을 요청에 따라 얼마든지 줄 수 있다?
“타오마의 거래 수완이 좋거나, 아니면 가격을 비싸게 받으려는 수작이군.”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전자라면 타오마가 분명히 서신에 자신의 활약을 기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래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해냈다면 이를 숨길 필요가 전혀 없었다. 특히 타오마처럼 태생이 상인인 자라면 더더욱.
-엘카 왕께서는 실라스크 한 뿌리에 금화 1,000닢이 적당하다는 의견입니다.
“미친 거 아닙니까?”
“그러게. 제정신 아니군.”
이안이 혀를 끌끌 찼다. 상식 밖의 비싼 값이다. 사실상 대사막에서 사용하는 것 외, 바리엘에서는 어떠한 값어치도 없는 것인데.
‘지하신의 봉인과 러더포드의 처형 이후로 실라스크는 사실상 쓸모를 다했다.’
어디까지나 바리엘의 입장에서 말이다.
‘로엘.’
문득 이안은 대사막으로 떠난 로엘이 떠올라 작게 한숨 쉬었다. 바리엘과 달리, 아이에게는 꼭 필요하지 않나.
‘로엘이 대사막을 재건하고 오랫동안 무탈히 지도자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실라스크가 필수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아이는 언젠가 윈첸처럼 죽음을 맞이하고 말겠지.’
필리아의 몸에서 난 피붙이라고는 그 아이 하나다. 사실상 이안의 전생과 현생 모두를 통틀어 남아 있는 유일한 가족이라 보는 게 맞을 게다. 진은… 조금 의미가 다르고.
현재 천려는 멸족의 위기까지 갔고, 재건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이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라비가 선물 하나는 해 주고 가는 게 맞지.”
이안은 식사를 마쳤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서랍을 뒤적여 펜과 종이를 꺼냈다.
“어찌할까요, 이안 님. 폐하께서는 이안 님이 원하신다면 금화를 지급하겠노라 전하셨습니다. 히엘로령 관련 대금도 있고, 이안 님께서 세우신 전공에 대한 포상금 명목이라 하시던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안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단박에 거절했다. 아무리 이안이 원하는 것이라지만, 어찌 황궁의 재산을 그리 사사로이 쓴단 말인가?
게다가 꽃 한 뿌리에 1,000닢? 역사서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이안은 생각도 말라는 뜻으로 펜대를 휙휙 내둘렀다.
“절대 안 된다고 아뢰어라. 폐하께서는 실라스크 매매에 대한 관심을 끊으시어, 없었던 일이라 여기시라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의지로 행하는 일이니, 황궁이 개입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황궁이 개입하면 가격은 더욱 올라가면 올라갔지, 절대 내려가지 않을 터였다. 제국이 상대인 걸 알면서도 1,000닢을 부르는 작자들 아닌가.
이안은 뭔가를 고민하고 다시 찍찍 긋기를 반복하면서 신중히 답신을 적어 내렸다. 그릇을 치우던 한 마법사가 그 모습을 보고는 잠시 멈칫거렸다.
“저기, 이안 님.”
“음?”
답신을 적는 이안은 꽤 즐거워 보였다. 마법사는 의아해하며 대뜸 물었다.
“한데 말입니다. 그 신탁이요.”
비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때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기억을 되찾고 나서는 모두가 그것이 이안에게 내려진 신탁임을 알았다.
“무슨 뜻일까요?”
골똘히 생각하던 이안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는 분명 답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글쎄다.”
“이안 님은 참 신기합니다. 거짓말에 능통하신 것 같으면서도 소질이 영 없으시니.”
“그럼 없는 것이겠지.”
이안이 능청스럽게 대꾸하며 답신을 계속 작성해 갔다.
마법사는 마저 그릇을 치우다가 문득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창살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봤지만,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안 님, 혼자 계실 때 이상한 인기척 같은 거 못 느끼셨습니까?”
“인기척?”
혼자 있을 때라.
이안은 난감하게 입을 다물었다. 계속 자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하는 것도 특별히 없는데 몸에 피로가 누적되어 하루 종일 먹고 자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다. 이안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못 느꼈다.”
“흐음. 알겠습니다.”
“여기, 답신.”
“예, 폐하께 전달하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트웰러 장관님 귀국 때문에 다들 포탈 술식 세운다고 난리입니다. 나중에 이안 님, 마법부로 모실 수도 있습니다. 토올룬까지 단번에 가는 포탈은 이안 님 외에 계산 불가하지 않습니까.”
“슬슬 스스로 할 때도 되었는데. 술식을 외우는 건 어떤가?”
“무슨 자전거 타는 법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아마 다들 영원히 못 할 겁니다. 이안 님 없으면.”
마법사는 코를 훌쩍였다. 이안이 없는 미래가 갑자기 훅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안은 또 시작이라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녀오게. 난 쉬고 있을게.”
“예, 케이크는요?”
“이제 안 먹어.”
시도 때도 없이 먹다 보니 이제는 질렸다. 이안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거절하자, 마법사가 꾸벅 인사하고 지하를 나섰다.
끼이익.
한편, 마법사가 감옥을 나서는 걸 확인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레이번 장관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진짜 이안 히엘로가 감옥 내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있다고? 설마. 아무리 마법부 출신이라 해도 반역자인데.’
경비병이 샬롯 백작에게, 샬롯 백작이 그들의 구심점인 고관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이안의 처벌은 곧 그들의 목숨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으니, 이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건 아주 중요했다.
타앗.
레이번은 숨죽이며 건물 곳곳을 살폈고, 이내 복도 끝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곳에, 이안 히엘로가 있으려나?
“아차. 이안 님!”
그때, 밖으로 나갔던 마법사가 되돌아와 소리쳤다. 레이번은 구석으로 몸을 숨긴 채 입을 틀어막았다. 마법사는 자연스럽게 철창에 기대어 물었다.
“그럼 케이크 말고 뭐 드실래요?”
“괜찮다.”
“아, 거참. 조금씩 먹는 양이 줄어드시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마법사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다시 나갔고, 레이번은 한참 후에나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새근새근, 이안의 숨결 소리만 조용히 울리는 감옥이었다.
* * *
콰아앙!
“사실이었습니다! 사실이었어요!”
레이번이 격앙된 채 달려 들어왔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관료들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이번 가까이 다가와 재촉했다.
“진짜 이안 히엘로가 감옥 내에서 대우를 받고 있었단 말이오?”
“그렇다니까요! 샬롯 백작의 말이 맞았습니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온 참입니다.”
“아니, 이런 무슨…….”
관료들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처음 전해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된다 여겼는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황궁 내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던 게다.
“애초에 마법부와 이안 히엘로 간의 유대가 상당하였으니, 그로 인한 우대가 아니겠습니까?”
“우대요? 반역죄로 수감된 자에게 그런 우대를 한다 함은, 여전히 이안 히엘로를 지지한다는 뜻과 무엇 다릅니까? 마법부 내에서 철저히 경계해도 모자랄 판에요!”
“며칠 사이 아코렐라 대장과 폐하의 뜻이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안 장관을 대우하는 것 또한 폐하의 뜻처럼 보입니다만.”
“마법부가 폐하의 동의 없이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폐하께서는 현재 반란을 빌미로 귀족과 고관의 목숨줄을 단단히 잡고 흔드는 중이다. 귀족들이 정리되면, 그다음은 자신들의 차례임이 자명했다.
이것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반란 자체가 의미 없음’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증명의 근거로는…….
“폐하와 마법부가 이안 경을 대하는 태도가 되겠지요. 사람을 모읍시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불꽃이오.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인 중앙 귀족들도 필시 뜻을 함께할 것이니, 목소리는 키울 수 있습니다.”
이안 히엘로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불필요한 대우와 조치가 있었는지에 대해 걸고넘어질 것이다. 황궁에 소문이 돈다고 하면 되겠지.
하나 이를 가지고 마법부에 공식으로 항의하면 그들은 필시 부정할 터. 물론 그에 대한 돌파구 또한 있었다.
“부정하면 담당을 이관하거나, 저희가 공동으로 참관한다고 합시다. 그리하면 마법부와 폐하의 반응으로 더 자세한 내막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아예 이안 히엘로를 저희 쪽으로 데려오는 것도 좋고요. 사실, 모든 일의 원흉이 그자 아닙니까? 구슬리다 보면 돌파구가 생길 것입니다.”
“구슬린다고 구슬려질 작자가 아니긴 하지만, 뭐.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요. 가 봅시다!”
“예, 이대로 해임당하면 우리 진짜 다 죽습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할 건 하고 죽어야지요.”
관료들이 결의를 다지며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바깥은 어둑했고 걸음 또한 서두른 탓에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레이번 장관의 그림자가 그 자리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걸.
텅 빈 회의실. 얼룩처럼 남아 있던 그림자가 꾸물꾸물 움직였다.
사아아악.
그것은 은밀히 마법부 쪽으로 이동했고, 이내 장관실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똑똑.
“들어오지 마!”
“나부입니다…….”
“나부, 뭐? 나부랭이?”
“나부실라타쿠라니투…….”
아코렐라는 저게 뭔 말인가 싶어서 문을 제 손으로 휙 열어젖혔다. 그러자 꼬질꼬질한 가면을 쓴 나부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아아. 가방이네.”
“너무하십니다…….”
“왜? 무슨 일 있어? 마석은 다 옮겼고?”
나부는 마법부, 정확히 마력석관리부의 밑에서 마석을 담당했다. 그림자를 활용해 물건을 수납하는 그의 능력은,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며 상당한 양의 마석들을 옮기고 보관하는 데 효과적이었으므로.
“아니면, 뭐, 전해 들은 거라도 있나?”
그리고 그에게 내려진 두 번째 특명. 그것은 바로 황궁 곳곳을 누비며 관료들의 비밀을 엿듣는 것이었다.
“예, 있습니다.”
“뭔데?”
두 눈을 반짝이는 아코렐라에게, 나부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전언했다.
“이안 님, 지하 감옥에서 케이크 먹은 거 들킨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