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5화(845/863)
제845화. 선빵
진과 로만드로 그리고 마법사들이 심각한 얼굴로 둘러앉았다. 그들을 천천히 올려다보는 나부. 아무래도 뭔가 일이 터져도 크게 터진 듯싶다.
마법사들이 깍지를 끼고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큰일이군요. 눈치챈 놈들이 있다니.”
“얼마 전에 건물로 들어섰던 병사 한 놈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서 보내 줬는데, 실수했네요. 그때 죽여 버릴걸.”
“샬롯 측에서 보낸 첩자였다는 거지?”
“예. 나부 말로는 그걸 심증 삼아 레이번 장관이 직접 확인한 것 같다고 합니다.”
채앵! 마법사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레이번 저택을 날릴 때 그놈의 목도 같이 날릴걸 그랬다. 아니면 재건조차 못 하게 대지를 확 갈아서 엎어 버리든가. 쯧! 마법사들이 아쉬움에 잠겨 혀를 찼다.
“저기…….”
나부가 손을 슬쩍 들었다. 가면 아래로 삐질삐질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안 님이 가, 감옥에 계셔서 그런 거라면, 보호막을 치거나 아니면… 제 그림자 속에서 생활하시는 건 어떤가요?”
“장난 까냐?”
마법사들이 잘 정돈하고 꾸민 지하에서도 이안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한데 잠깐 머물기도 힘들 만큼 열악한 그림자 속에 이안 님을 모시자고? 저게 돌았나. 마법사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듯 눈을 부라렸다.
히익! 나부가 몸을 달달 떨자, 로만드로가 다들 그만하라며 손을 내저었다. 저러다 서서 오줌 싸겠어!
“임시방편으로 보호막 세울 수는 있는데, 토올룬을 비롯해서 이곳저곳에 마력 쓸 곳이 많은지라 유지가 어렵네. 아예 소문을 더 크게 내서 접근 자체를 막아 둘걸 그랬어. 다가오기만 해도 정신이 나가 버린다거나, 뭐 그런 거.”
“이미 늦었습니다. 지난 일 복기해서 뭐 합니까? 먹지도 못할 거. 지금 세울 대책은-”
아코렐라가 코를 스윽 닦으며 잠시 뜸 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아 짜증 난다는 듯이.
“관료와 귀족들이 이안 님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알게 되면 그간 했던 모든 일이 의미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다 잡은 귀족들은 쏙 빠져나가되, 대외적으로 낙인찍힌 이안 님의 명성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정치판의 특성상, 상대를 잡지 못하면 배 이상으로 후공을 받게 된다. 반역이라는 명목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만큼 황제의 위엄과 마법부의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될 터.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이안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했는데?
“우선 조사 중인 귀족들의 연락망부터 잘라 내는 게 좋겠습니다. 경비병이 건물로 들어왔었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어떤 식으로 유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단하면 그만. 마법부가 귀족들을 담당하겠습니다, 폐하. 귀족을 감시하는 경비병을 최소화하고, 그 빈자리를 마법사가 대체하도록 하지요.”
일감 늘어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마법사들은 할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이 턱을 괴고서 생각에 잠겼다.
“관료들은 내가 맡으면 되겠군.”
“폐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는 정리가 되었다는 듯 자세를 바로 했다.
“상대측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제기할지가 관건이다. 예상으로는 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저도 동의합니다. 그게 제일 편하고 확실해서요.”
반역자 이안 히엘로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거나, 혹은 마법부나 황궁에서 그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돌고 있으니, 이를 조사하여 기강을 바로잡으라는 등의 주장을 할 것이다. 눈에 훤했다.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진 못하겠지요.”
“하면 우리는 고맙지. 반역자 이안 히엘로에게 괜히 접근하여 정신조작당했다고 몰아 쫓아 버리면 되니까. 퇴직금 줄 필요도 없고 좋겠군.”
그런 면에서 소문이란 참 편의적이고 무책임하면서도 파멸적인 무기였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에게 허락된 공격 수단이기도 했고.
진이 미간을 가볍게 누르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칠까.”
“그것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퇴직을 앞둔 레이번 장관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이안 히엘로의 사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도?”
“근데 그건 소문이 아니라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더 강력하지.”
이안 히엘로의 사면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건 반역죄를 흐리겠다는 뜻이었고, 나아가 그 자체로 반역이라 볼 수 있다. 아코렐라 역시 수를 헤아리고서는 얼추 되었다는 듯 정리했다.
“선빵 필승.”
“예?”
“먼저 후려치는 쪽이 유리하다는 거지.”
아니, 무슨 장관이 황제 앞에서 저런 말을 해? 마법사들이 황당하다며 아코렐라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이해가 안 돼?”
빡대가리들이니? 하고 눈빛으로 묻고 있었으니.
마법사들은 아니라며 시선을 돌렸다. 난리를 쳐도 폐하가 없는 곳에서 치는 게 맞았다.
“그리고 하나 더.”
가만히 듣고 있던 로만드로가 손을 살짝 들며 발언했다.
“아주 중요한 게 남아 있네.”
“중요한 거요? 뭐죠?”
“이안이가 알면 안 돼.”
“아.”
맞네. 로만드로의 주장에 다들 공감한다며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귀족과 관료들이 이안을 두고서 반격을 시도 중이라는 걸 알게 되면, 필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서둘러서 처형식을 진행합시다-라고 할 게 분명해.”
“아오, 음성이 선명합니다그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로 그게 제일 깔끔한 방법이라는 게 너무 싫어.”
아코렐라가 덧붙였다. 현 상황에 대해서 이리저리 계책을 부리지 않고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안을 처형하고, 존재를 지우는 것.
그리되면 귀족이나 관료들도 애먼 의문 따위 입에 올릴 수 없을 것이고, 황궁에 힘을 죄다 빼앗길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안 님이 살아 있다는 걸 들켜도 사실상 문제가 되지 않아.’
이빨 빠진 것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저기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이안 히엘로가 살아 있다 한들, 누가 들어 주기나 하겠는가? 이안을 다시 중앙 저잣거리에 데려다 놓아도 아무 문제 없을 게다.
아무튼, 아코렐라는 이 시기만 적절히 넘기면 될 것이라 여겼다.
“다들 입단속 잘 하고, 이안 님 눈치 빠르니까.”
“아, 눈치 정도가 아닌데. 독심술이라서.”
“어떻게 해서든 숨겨.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시신은 찾았습니까? 체격만 맞으면 되는데요, 로만드로 님.”
로만드로는 서류를 뒤적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안이가 은근히 비율도 좋단 말이지.”
“무슨 그런 팔불출 같은 발언을.”
“아니, 근데 진짜로. 키랑 체중이 똑같아도 그 느낌이 안 살아. 그나마 비슷한 시신을 받아 두기는 했는데, 내일 중으로 황궁 뒷문 통해 들어올 걸세. 동결 마법 걸어 뒀다가 시기적절하게 사용하지. 아스타나 쪽 연락은?”
이번에는 반대편에 앉아 있던 마법사가 잠시 기다려 달라며 종이를 뒤적거렸다.
“연락은 닿았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오신다 하네요. 근데 하샤 왕께서 굉장히 놀라신 것 같았습니다.”
“아아. 이안과 친우니까.”
“카티마코 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상황 설명이 필요해서 대략 전언은 했지만 역시 믿기 어려워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해서 카티마코 님이 바리엘에 오면 그편으로 회상물약 전달할까 합니다.”
“좋아. 허겁지겁하는 것보다 미리 준비하는 게 맞겠지. 카티마코 님 모시는 것에 힘 좀 쓰자고. 포탈 가능하겠어?”
“…해 봐야죠.”
마법사들이 작게 침음했다. 공식적으로 토올룬 쪽으로 포탈을 열고, 뒤에서는 아스타나 쪽에도 하나 열어야 한다니. 게다가 귀족 조사를 전담하게 될 경우 불어날 업무량까지. 그들은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난감해했지만, 안 된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다들 고생 좀 하자고.”
“예, 폐하.”
“그럼 일어나지. 나는 바로 레이번 장관 측을 소환하겠다. 아코렐라 장관은 진행 상황을 보고로 올릴 것.”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먼저 입 밖으로 꺼내는 자가 이긴다. ‘이안 히엘로에 대한 유착 조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 ‘고관과 귀족들이 이안 히엘로를 사면시키고자 움직인다’의 격돌.
하나 사실상 승기를 쥐고 있는 쪽은 진이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다.
“자자! 우리도 움직이자!”
“예, 대장!”
빠악!
아코렐라가 마법사의 이마 중앙에 꿀밤을 쥐어 깠다. 장관 업무 보느라 스트레스 잔뜩인데, 이것들이? 그녀가 눈을 희번덕거리자, 로만드로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자자, 장관이 먼저 움직이자고!”
“나 이제 말로 안 해.”
“어서! 우리 장관님 모셔라, 얘들아.”
“예, 예예!”
아코렐라가 로브를 휙 휘날리며 걸어가자, 로만드로와 마법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다시 홀로 남은 나부. 그는 사람들이 멀어지는 걸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스멀스멀 그림자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황궁의 잡다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 * *
한편, 그 시각.
이안은 눈을 반짝 떴다. 낮인지 아니면 밤인지 알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이다. 밖에서 조용히 들리는 인기척. 이안은 마법사의 말이 떠올랐다.
“이안 님, 혼자 계실 때 이상한 인기척 같은 거 못 느끼셨습니까?”
건물로 낯선 접근이 계속되나 보다. 반역죄인인 자신을 굳이 찾아올 정도면 어지간한 볼일은 아닐 터. 중앙 가문이 보냈거나, 아니면 인사 교체를 앞둔 고관들일 것이다. 이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자들이 아니긴 하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대는데, 그 고고한 작자들이 목 내밀고 모든 건 순순히 인정할 리 없었다.
이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안을 찾아왔다는 건, 이안의 반역에 다른 의도가 있음을 알아챘다는 게다.
‘하여간에-’
이안이 인상을 작게 찌푸렸다. 그들이 이안을 파고드는 건, 이안보고 어서 황궁을 떠나라 하는 것과 같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은데 말이다.
스윽.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이안이 경계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엥?”
베릭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이안이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꽤나 놀란 눈치다.
“베릭?”
“안 잤어? 잘 시간이라던데?”
“여긴 어쩐 일인가?”
“뭐 일이 있어야 오나. 그냥 왔다.”
베릭은 그렇게 말하며 옆구리에 낀 책 한 권과 과자 봉지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안이 심심할까 봐 소일거리와 주전부리를 가져온 것이다. 베릭은 마침 잘 되었다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일어난 거면 나가자. 계속 갇혀 있으면 몸에 안 좋아. 밤공기 시원하고 좋더라.”
“지금이 밤이었나?”
“밤낮 구분도 안 되나 보네.”
이안은 베릭이 내민 큼지막한 손을 가만 쳐다봤다. 그가 손끝을 까딱거리며 재촉하자, 조금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밖으로 나가는 건 좀 그렇다.”
“왜?”
“누가 보면 진짜 큰일 나니까.”
“여기 인근 통제된 거 몰라?”
“그래도, 황궁은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는 법.”
“그거 내가 다 찔러 버리지, 뭐. 눈 있으면 멀게 하고, 귀 있으면 먹게 하고.”
어때? 괜찮지? 베릭이 눈썹을 까딱거리며 다시금 재촉하자, 이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안은 못 이기는 척 조심스레 베릭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떼었다.
“베릭. 얼마 전에 타오마에게서 서신이 왔다.”
“들었어. 실라스크 가격, 돌았던데?”
“하지만 내게는 필요하지. 아무튼 로엘을 생각하다 보니 대사막 역시 떠올랐어. 브라츠에서 대사막으로 함께 갔었던, 그때 그 여정 말이다.”
베릭은 느린 이안의 걸음을 맞춰 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참 재밌었어.”
“재밌었냐? 난 더워 뒤지는 줄 알았다.”
“그래. 심하게 덥기도 했지.”
하하. 이안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베릭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거기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좋았었나 봐, 그때.”
“가면 되지, 뭐. 너 이제 백수잖아.”
베릭이 아무렇지 않게 이르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사막에서 보았던 그 밤하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