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6화(846/863)
제846화. 마법부의 밤
레이번 장관은 허둥지둥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본궁 계단을 올랐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이것도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황제의 의중을 정확히 확인하게 된다면 그들의 계획은 더더욱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터.
레이번이 들어서자 시종장이 가볍게 눈인사했다.
“아뢸까요?”
“그럽시다.”
크흠! 레이번이 정복 깃을 탁탁 쳐 대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폐하, 외교부의 레이번 장관 들었습니다.”
“들라.”
끼이익.
레이번이 집무실로 내딛는 순간.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진과 아코렐라를 보고서 주춤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뭔가 서늘했다.
레이번은 아무렇지 않게 헛기침을 해 대며 진에게 인사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안 그래도-”
“닥치시게.”
“예?”
닥, 뭐? 닥치라고? 레이번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띠용 커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입을 합 다물고 자세를 한껏 낮췄다. 황제의 심기가 좋지 않아 보일 때는 이것이 최선이다.
‘선빵 좋고.’
한편, 이를 지켜보던 아코렐라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환호했다. 황제가 닥치라는데 암, 당연히 입 다물고 듣는 수밖에 없지. 누가 먼저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가가 관건인 사안, 황제를 이길 자 없으리라.
“레이번 장관. 지금 황궁 내에 아주 불경한 소문이 돌고 있다.”
“예?”
레이번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자, 진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입 다물고 있으라 하였을 건데?
“그대가 반역자 이안 히엘로의 죄를 감형하고자 한다는 소문이지.”
“마, 말도-!”
말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레이번은 그러지 못했다. 입 다물라는 황제의 명 이전에 사실이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감형이 아니라 이안의 반역과 황제 사이에 숨겨진 모종의 거래 같은 것을 밝혀내는 게 목적이긴 했다만, 사실상 겉에서 봤을 때는 그게 그거였다.
“출입을 엄금한 이안 히엘로의 지하 감옥에 명을 어기고 접근한 자들이 있다던데. 레이번, 그대는 알 것이라 하더군.”
휘이. 아코렐라는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 저것은 황제가 레이번에게 던진 모순의 공격이다.
만약에 아니라고 한다면?
‘레이번은 본 적도 없고 다른 자들 역시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는 즉시, 황궁과 이안 님 간 유착 혐의는 정말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걸 시인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하여 수긍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랬다가는 명령을 어긴 것도 모자라, 폐하께서 말씀하셨듯 정신조작으로 몰고 가면 게임 끝이니까.
레이번은 잠시 침묵하며 상황을 헤아렸다.
‘…진짜인가 본데?’
레이번은 확신했다. 황제와 마법부가 어찌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면 사실을 기반하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것 아니겠나? 황제의 몰아붙임이 매섭고 당황스럽긴 하다만, 뜻밖의 수확이다.
“…지하 감옥에 출입한 자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니라 담당자인 아코렐라 대장에게 여쭤보심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아코렐라가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지르더니, 빠르게 덧붙였다.
“제가 파악한 바가 그렇습니다. 레이번 장관님은 알고 계실 거라고요.”
나부랭이의 정보로는 레이번 저자가 직접 건물에 들어섰다 하였다. 혹 아니라면 그놈의 거지 같은 가면을 죄 찢어 놓아야지.
아코렐라의 대답에 레이번 장관이 의문을 던졌다.
“외람되지만, 정보 출처가 어디입니까? 누구이기에 제가 알고 있을 거라 억측하는 건지, 원.”
어디서 말이 새어 나갔는지를 파악하려는 게다.
레이번의 물음에 아코렐라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나부랭이를 밝힐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 마법부의 정보원이었지만, 그림자를 드나든다는 특성상 좀 알려져도 무방하지 않나? 그래, 확 다 까발리고-!
“레이번.”
하지만 진이 막아섰다. 그는 좀 어이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질문을 허락한 적은 없는데.”
묻는 말에 대답이나 재깍재깍할 것이지, 어디서 감히 머리를 굴리냐는 경고다. 외교관 출신 아니랄까 봐 대화의 주도권을 흔드는 건 꽤 쓸 만했다.
레이번이 다시금 고개를 조아리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가 레이번 장관에게 묻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그대가 이안 히엘로의 사면에 관심이 있는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제국 바리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그 누가 되든 마땅한 죗값을 치를 것입니다. 다만-”
“다만?”
레이번이 조심스레 발언했다. 어차피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죽는 것은 똑같으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보고자 하는 눈치다.
“어떤 괴소문인지는 몰라도 이것 참 억울합니다. 제가 대체 어떤 목적으로 반란자인 이안 히엘로를 돕는단 말입니까? 이것은 제 명예를 실추하는 것으로, 제가 현 사안에 대해 조사하여 명명백백히 밝힐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것 봐라? 진이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소문의 중심인 이안 히엘로 역시 조사 대상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안에 대한 조사 권한을 가져가겠다?
“원하신다면 해당 사건 가담자들을 속히 처형하심도 적극 지지합니다. 폐하, 이 모든 건 이안 히엘로와 귀족들 간 주장의 간극을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니, 그 분란의 싹을 치워 버리심이 어떠십니까?”
진과 아코렐라가 동시에 눈치챘다. 이 새끼, 지금 그들을 떠보고 있는 것이다. 이안 히엘로를 처형하는 게 정말로 진심인지.
아코렐라가 무어라 반박하려 했으나, 진이 먼저 막아섰다.
“물론이다. 그러면 내가 중앙 귀족들에게 전하지.”
레이번이 처형식을 서두르자고 건의했노라 말이다.
관료들에게 있어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인사 개편이지만, 중앙 귀족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목숨, 아니 멸문을 걸고 싸우는 중이다.
한데 처형식을 진행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반란에 대한 종지부다. 중앙 귀족들은 변론하거나 재기할 새 없이 끝나게 되는 거다. 황궁에 헌납하여 명줄을 늘리던 행위 자체도 의미가 없어지게 되겠지.
“괜찮겠나?”
중앙 귀족이랑 레이번 당신, 한패 아니었나? 떠보기 위해 내지른 말이 너무도 날카로워 적과 아군 구분하지 못하고 찌를 것 같은데?
사실상 진과 마법부는 이안을 대신할 시신을 찾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는 사안이었다. 아쉬운 건 이안을 조금 이르게 출궁시켜야 한다는 점. 하지만.
‘그걸로 중앙 귀족과 관료 사이의 유착을 깰 수 있다면, 기꺼이.’
진은 이안이 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코렐라가 슬쩍 황제를 돌아봤지만, 그녀 역시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쉴 뿐. 레이번 역시 말문이 막혔는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 * *
마차에서 내린 아코렐라가 주머니를 뒤적거려 궐련을 찾았다. 그녀가 마른 개비를 입에 물자, 마법사가 손끝에 불씨를 피웠다.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쳐다봤다.
“마력 아껴, 인마.”
“어찌되었습니까?”
“일단락은 일단락인데…….”
아코렐라는 말끝을 흐리며 마법부 건물로 들어섰다.
레이번 측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대면은 마무리되었다. 그 어리시던 황제께서 어찌 저리 장성하셨는지. 이안 님만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데, 폐하만 보면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들 목숨줄 달린 일이다 보니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네. 우리 쪽도 조치를-”
그때, 뒤뜰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아코렐라가 ‘엥?’ 하고 고개를 돌렸다. 밤중이건만 저것들이 미쳤나? 그녀는 마법사와 함께 뒤뜰로 나갔고, 이내 웃으며 궐련을 태웠다.
“이안 님, 와 씨! 죽입니다! 계산이 이렇게 쉽게 나옵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저는 이거 사흘 동안 고민했습니다.”
“쉽게 생각해서 윗줄과 아랫줄을 따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해하였는가?”
“예, 그러니까 이 부분이 문제였다는 말씀이지요?”
“…이해를 하나도 못 했군.”
“등신아, 거기가 아니라 여기!”
“…자네도 여기 와서 앉아.”
토올룬과 연결할 포탈 마법진을 이안이 손봐 주고 있었던 게다. 마력 사용이 아닌, 술식 확인과 계산 검증뿐인지라 아무 무리 없어 보였다.
마법사들은 오랜만에 이안과 마법부에서 만나 즐거워 보였다.
“여, 아코렐라!”
베릭이 아코렐라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마법사들과 이안 역시 뒤돌았고, 그녀는 팔짱을 낀 채 턱을 까딱거렸다.
“오냐.”
“어디서 놀다 지금 기어들어 오냐?”
“놀긴 누가 놀아. 네가 지금 처놀고 있구만.”
이안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이렇게 보니까 저 두 사람을 데리고 국정을 운영해 나갈 진이 대단하게 느껴진 것이라. 둘 다 개성이 흐릿하진 않으니까.
“밤늦게 고생했군.”
“아닙니다. 이안 님, 밤공기는 괜찮으십니까?”
“응. 춥지도 않고, 딱 시원하니 좋아. 잠시 장관실로 들어갈까?”
이안이 아코렐라에게 다가서자, 마법사들이 옷자락을 붙잡으며 늘어졌다.
“이안 님! 조금만, 조금만 더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거의 다 되었는데 여기서 멈추면… 저 슬픕니다!”
“허어, 자기 일은 자기가 스스로!”
“베릭, 너는 진짜 그딴 말 하지 마라.”
“내가 왜? 나, 맡은 일은 해. 잘하질 못해서 그렇지.”
“이안 님, 아직 저 안 봐주셨는데요! 제가 제일 빡센 부분 담당입니다. 정말로요.”
아코렐라가 손날을 들어 올리며 ‘쓰읍’ 경고하자, 마법사들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포기할 기색이 없으니 이안이 다독였다.
“잠시 아코렐라를 보고 올 터이니 기다리고 있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래. 약속.”
이안은 아코렐라에게 앞장서 달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제 장관실의 주인은 이안이 아니라 아코렐라였으니까.
그녀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이안을 안내했고, 어색하게 문을 열어 환영했다.
끼이익.
“들어오십시오. 뭔가 느낌이 이상하네요.”
“그런가? 아주 잘 어울리는데.”
이안은 소파에 앉아 잠깐 주위를 둘러봤다. 밤중이라 사건이 터지지만 않으면 타 부서 직원이 들를 일은 없을 것이다. 바깥에서 마법사들이 한 차례 막아주기도 할 것이고.
하지만 그런데도, 이안은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뭐랄까, 그냥 내 자리가 아님을 인지해서겠지.
“일은 할 만하고?”
“아니요?”
빈말이라도 할 만하다 할 줄 알았는데, 역시 아코렐라였다. 그녀는 단박에 부정하며 죽을 것 같다는 듯 몸을 축 늘어트렸다.
“이안 님은 대체 일을 어찌해 오신 겁니까? 진짜 존경합니다. 제가 어지간해서는 이런 말 안 하는데, 이안 님은 인정입니다. 황제 경력 무시 못 하네요.”
“그대도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보고서 첨삭한 것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반성 오지게 했습니다.”
“훌륭하군.”
“차라도 드릴까요?”
“그럴까?”
평소라면 거절했겠지만, 이안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로만드로가 이안의 취향에 맞춰 줄 세운 티 세트가 아직 그대로였다.
“하실 말씀 있으시지요?”
달그락. 아코렐라가 차를 타며 작게 물었다. 그러고는 꿀꺽, 뭔가 불안하다는 듯 침을 삼켰다.
이안은 다리를 꼬고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투로 툭 던졌다.
“황궁 상황이 궁금해서.”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폐하께서 전달하셨을 터인데요? 모든 게 문제없다고.”
“그래? 관료나 귀족들이 의심을 품지는 않던가?”
“전혀요? 다들 뒈질까 봐 꼬리 싹 내리고 눈치만 살살 보는 중입니다.”
아코렐라가 찻잔 두 개를 들고 돌아서자, 이안과 눈이 딱 하고 마주쳤다. 이안은 흐음, 하고 나른한 미소를 지었고 아코렐라에게 다가와 찻잔을 받았다.
이안이 웃으며 속삭였다.
“그대도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