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7화(847/863)
제847화. 신의 말씀
레이번 장관의 급서를 받은 관료들이 외곽 저택에 모였다. 가능한 황궁과 떨어진 곳에서 모이자는 당부 때문이었다.
황제를 만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무언가 잘못된 것일까? 관료들은 걱정스러운 낯으로 레이번을 기다렸다.
끼이익.
“레이번 장관.”
“다들 모이셨군요.”
“무슨 일입니까?”
“쉬잇.”
레이번은 잠시 기다려 달라는 듯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관료들은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고, 레이번은 제 몸을 샅샅이 더듬으며 무언가 이상한 점이 없는지를 살폈다. 다들 의아했지만, 곧 그의 행동이 무얼 뜻하는지 알아챘다.
‘도청?’
이를 깨달은 관료들도 제 몸을 가볍게 수색하듯 더듬었다. 한참이나 그 짓을 하던 레이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말이 샜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마법부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간의 대화를 알고 있었어요. 이안 히엘로를 이용해서 사면받으려 한다는 걸 말이지요.”
관료들이 경악스럽게 입을 벌렸다.
사실 이전 장관 웨슬리 시대 때는 종종 있는 일이긴 했다. 하여 황궁 내에서는 단어 선택 하나도 조심스러웠고, 어지간한 회동은 황궁 밖에서 이루어졌다.
한데 지난 10년간 마법부 장관직이 비어 있었던 데다, 마법사들이 죄다 전쟁 탓이 밖에 나가 있어 방심하고 말았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자라는 걸.
“이거, 어, 어찌-”
“큰일이군요. 방심했습니다.”
“레이번 장관. 폐하께서 무어라 하시더이까?”
레이번은 냉수로 목을 축인 다음 덧붙였다.
“다행히 크게 문제 삼지는 않으셨소. 자중하라는 경고 아닌 경고를 받긴 했습니다만, 하나 수확은 있지요.”
“수확이라 하면?”
“확실합니다. 이안 히엘로의 반역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어요. 그리고 폐하와 마법부 역시 이를 알고 묵인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반응이 그리 나올 리가 없지요.”
절망 속에서 찾아낸 한 줄기 희망이다. 하나 관료들의 안색이 밝아지는 것도 잠시.
‘그럼 뭐 하나? 이미 황제 측에서 우리의 의중을 눈치챈 것 아닌가?’
더는 어찌할 방도가 없을 것 같다. 이안 히엘로에 대한 의문 제기를 해 봤자 황제와 마법부 측에서 모두 막아 낼 것이리라.
“방법이 딱 하나 더 남긴 했습니다.”
“무엇이지요?”
“이안 히엘로가 썼던 방법입니다.”
“…메일리데일리?”
“예. 꼭 거기가 아니어도 됩니다. 사실 거기는 황실이나 이안 히엘로 쪽과 인연이 깊어서 적당한 선택지도 아니지요.”
바로 여론을 이용하는 것.
이안 히엘로가 메일리데일리를 통하여 황궁을 공격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황궁에 의문을 제기하여 반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면 된다.
직접 나서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효과 또한 없으나, 제국민을 등에 업는 데 성공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황실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에 대해 해명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저기, 그런데 말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누군가가 슬쩍 물었다.
“그러다 진짜 이안 히엘로가 처형이라도 당하면 어찌합니까? 그때 되면 종지부가 찍혀서 돌이킬 수 없을 건데요.”
“맞습니다. 차라리 계속 시간이라도 끄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조사가 지지부진해지면 기회는 또 올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으나, 레이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신이 있었던 게다.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황제와 아코렐라의 반응!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들은 절대 이안 히엘로를 처형대에 올리지 못할 것이다.
“저를 믿으십시오. 분명히, 제 모든 걸 걸고 확신합니다. 일이 틀어지면 저를 죽여도 좋습니다. 아니지, 제 가족까지 모두 걸겠습니다.”
레이번이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주장하자, 잠시 머뭇거렸던 관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다음 처형대는 그들의 자리였다. 무엇이든지 해 보는 게 맞았다.
“마법으로 시체를 바꿔치기할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조사부터 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대중의 눈을 속이려면 어느 정도 이안 히엘로와 비슷한 시신을 쓰겠지요?”
“세인트중앙병원장이 제 사촌입니다. 중앙의 모든 병원과 협력관계지요. 혹 황궁이나 마법부에서 시신 인도와 같은 요청이 없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교도소 쪽은 제가 맡지요.”
“예, 당연합니다. 법무부 장관님 아니면 적임자가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처형대에 마법을 훼방하는 장치를 설치하자고 건의해 보겠습니다. 이안 히엘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명분으로요.”
“그런 식으로 압박을 하면서 마법부의 반응을 자세히 봅시다. 뭔가 속이려는 게 있으면 티가 날 것입니다. 마법사들, 은근히 순진해서.”
“언론 쪽은 제가 접촉해 보지요. 가문의 후원 사업 중 정기적으로 연 맺은 신문사가 있습니다. 작은 곳이긴 하지만, 어차피 제국에 글자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까.”
“좋습니다. 구금된 중앙 귀족들의 설득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라 걱정이 많을 것이니까요. 귀족들까지 힘을 단단히 합치는 게 중요합니다.”
관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계획을 세웠다. 동이 터올 때까지, 한참이나.
레이번은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자신의 그림자가 유독 길게 늘어져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 * *
“시신은?”
“준비되었습니다. 곧 황궁으로 들어옵니다.”
이안의 물음에 아코렐라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에 이안은 말없이 찻물만 홀짝이며 침묵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코렐라는 너무도 잘 알았다. 하여 그녀는 이안을 안심시키기 위해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짜 여차했다가는 바로 뎅강 해서 의심 잠재우면 되니까요.”
“그래, 걱정하지는 않는다.”
“지금 걱정하셔서 이렇게 물으시는 거 아닙니까?”
“글쎄. 걱정이라기보다…….”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아쉬움.’
하지만 이안은 말을 돌리며 당부했다.
“아코렐라.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부탁할지는 잘 알고 있으리라 믿어.”
“예. 물론입니다. 황제 폐하를 잘 보필하여 마법부를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아코렐라는 창문 밖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별채 건설 현장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덧붙였다.
“별채 건설 말씀이지요.”
“나움이 그랬거든. 금기의 마법을 쓰던 당시 신께서 분명 마법부 별채로 가라 하셨다고. 한데 정작 나는 이곳에 와서 그 벽돌 하나 제대로 못 보았으니, 의아하지?”
이안 브라츠의 몸으로 처음 마법부에 왔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별채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그 자리엔 나무들만이 빼곡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게일을 처음 만났고.
“흐음.”
아코렐라는 턱을 문지르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이안 님.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요.”
“응?”
“이안 베로시온일 때 전달받은 거 아닙니까?”
“…그랬지?”
당시 이안은 크로니에 의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으니까.
갑자기 아코렐라가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럼 이안 베로시온일 때의 별채로 가 보십시오. 그때는 신께서 의미하시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뭔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직감이 들었기에.
…나움이 지하 감옥에서 제 손을 잡으며 무어라 말했더라?
“이안 님. 그쪽으로 가십시오. 가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답이 오기를, 그쪽으로 오면 기회를 열어 준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나움의 자의적 해석을 거친 말이었다.
그렇다면, 신께서는 나움에게 정확히 무어라 하셨을까?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러십니까?”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심연의 어둠 속에서.”
“무엇을요?”
“나움이 금기의 마법을 사용했던 순간, 신께서 하신 말씀. …기억이 혼재되어 있다. 나와 나움의 어둠이 한데 섞여 있었기 때문이겠지.”
이안은 연신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려 봤지만, 결국 기억을 떠올리진 못했다.
아코렐라가 슬쩍 물약을 꺼내며 물었다.
“회상물약이라도 드릴까요?”
“아니. 되었어.”
“이거 진짜 효과 좋은데.”
아코렐라가 재차 권하자, 이안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효과?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다.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내 기억이 아니라 나움의 기억이니까. 그리고 아코렐라, 자네의 추측이 맞는 것 같거든.”
이안 히엘로가 아닌, 이안 베로시온일 때 별채에서 찾을 수 있는 무언가.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미래로 갔을 때 이 지침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다.
“걱정 마십시오.”
아코렐라는 그런 이안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가볍게 위로했다.
“신의 말씀은 영혼에 각인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대들은?”
“뭐. 잊으실 수도 있지요. 그래도 봐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이안 님을 한 번 잊었으니까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며 웃었다.
“대신 이안 님도 언젠가는 다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이안은 찻잔을 탁자에 올려놓고서 아코렐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제 손을 웃옷에 슥슥 닦더니 이안의 손을 다잡았다. 부서질 듯이, 꽉.
“고마웠네, 아코렐라. 너무도 많이.”
“…제가 더요.”
“러더포드와 심연으로 갈 때, 나를 믿어 주어서 고마웠다. 다시 볼 수 있다는 그 말이, 참으로 뭐랄까… 위로되더군.”
아코렐라는 덥석, 이안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서로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조심스럽고 다정했다.
“지금도 그리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만 있으면 또 본다고요. 그러니까, 중앙을 떠나더라도 살아 계십시오. 애들이랑 얼굴 보러 가겠습니다.”
“그래. 전임이 사고 거하게 치고 가서 고생 좀 하겠어. 수고하게.”
“예, 뭐가 빠져라 열심히 해서 마법부를 단단히 만들겠습니다.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요. 두고 보십시오. 놀라실 겁니다.”
이안이 소리 내어 웃음 터트렸다. 그때, 바깥에서 몰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우당탕탕!
콰앙!
그새를 못 참고, 마법사들이 달려온 것이다.
“이안 님! 베릭 새끼 좀 보십쇼. 완전 또라이 아닙니까?”
“술식 죄다 밟아서 몽땅 지워졌습니다! 이거 정식으로 친위대에 이의 제기해도 되는 거죠?”
“미안하다니까? 거 참 나, 다시 슥슥 그리면 되는 걸 가지고 되게 뭐라 하네, 쪼잔하게.”
“뭐? 슥슥? 슥스윽?! 나 그것 때문에 사흘 동안 잠을 못 잤어, 이 양반아!”
“엄살은. 이안이는 몇 분 만에 그리더만.”
“비교를 할 거면 제대로 해, 이 빡대가리야!”
베릭과 마법사들이 멱살과 머리채를 부여잡고 싸워 대자, 이안은 한숨 쉬며 그들을 지나쳐 뒤뜰로 향했다. 해가 뜨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서 다시 그려야 할 것 같다.
“그만하고, 다들 이리로.”
“봐 봐, 이안이가 해 준다잖아.”
“베릭. 너는 좀 떨어져. 또 사고 칠라.”
“베에- 들었지? 넌 꺼지라신다!”
“아니, 그게 어떻게 꺼지라는 말이 되지?”
점점 멀어지는 마법사들과 이안의 뒷모습. 그 정겨운 소란에 아코렐라는 미소 지었다.
그러다 문득-
“…….”
놀라우리만치 동요 없는 제 감정을 깨닫고는 조금 놀랐다. …아직 실감하지 못한 탓이겠지. 그녀는 아쉬운 한숨과 함께 로만드로를 돌아봤다.
“같이 가십시오, 로만드로 님.”
“응? 나도? 괜찮겠나?”
“예, 남은 건 뭐, 서류 정리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업무 시간 지난 지 한참입니다.”
아코렐라가 괜찮다며 고개를 까딱거리자, 로만드로가 주춤주춤 뒷걸음질했다. 그리고 이내 이안과 베릭을 쫓아 타다닥 달려갔다.
“이아아안! 베릭!”
“로만드로 님, 조심! 조심! 밑에!”
“아이코!”
뜰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아코렐라는 다시금 미소 지으며 이안의 찻잔을 치웠다.
그녀는 직감했다. 이안이 황궁 일을 눈치챈 이상, 그의 출궁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