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48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48화(848/863)
제848화. 출궁
대회의장은 분위기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살기 위해 뭉친 장관들이 대외적인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황궁 내의 대화는 모두 마법부를 통해 황제에게 흘러들어 간다는 걸 안 이상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확실하답니까?”
“예. 마법부로 시신 하나가 들어갔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거 증거가 명백하군요.”
“그리고 다음은…….”
퀸타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관료들이 왜 저리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 황궁의 중책들로,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여겼는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기울더니, 이제는 품위 따위 개나 줘 버리고 저런 작태를 보이고 있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바깥에서 들려온 안내에 장관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와 함께 들어오는 마법부 장관 아코렐라. 그녀 역시 불편한 심기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늘 회의는 격렬하겠구나, 퀸타나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 숙였다.
“앉으시게.”
다들 착석하자 적막이 깃들었다. 황제가 의례적인 인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레이번과 그 일당은 눈치를 살살 보더니, 이내 먼저 발언했다.
“폐하, 송구하오나 일전에 말씀드렸던 건을 주제로 다시금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논의라.”
“마법부가 이안 히엘로를 전관예우하여 조사 과정에서 불필요한 편의 등을 제공하고, 나아가 그에 대한 처벌에도 간계를 부린다는 의혹입니다.”
“간계라니. 듣자 하니 선 넘으십니다.”
아코렐라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불쾌함을 보였다. 하지만 레이번은 준비한 문서를 진과 아코렐라에게 내밀며 물었다.
“마법부가 중앙의 병원과 감옥소에서 소년의 시신을 찾았다는 증언입니다. 문의를 받은 곳 중 하나는 이미 시신을 마법부로 넘겼다고 하던데요.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셨습니까?”
“실험에 쓰려고 했습니다. 마법 연구인데, 말씀드린다고 알아먹을 것 같지도 않고. 마법부에 드나드는 재료가 산더미인데, 그걸 다 설명해야 합니까? 그것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타 부서에게? 마법부를-”
‘X으로 압니까?’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아코렐라는 훌륭하게 참아 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개밥으로 아시나 봅니다.”
“아코렐라 장관! 자중하시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진은 팔짱을 끼고서 레이번 측이 내미는 것들을 살폈다. 전해 듣긴 했지만, 확실히 목숨줄이 걸려 있어서 그런가, 발악이 맹렬했다.
“이는 저잣거리에서 나돌고 있는 신문입니다. 제국민 대다수가 이안 히엘로의 반역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중앙 귀족은 크고 다양한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그 말인즉, 그들로 인해 생업을 유지하는 자가 많다는 뜻. 사실 그 주인이 황제로 바뀌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갑작스러운 날벼락으로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의문이라 하면, 어떤?”
“과정과 의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황제 폐하의 명성에도 옳지 않은 일이니 서둘러 다잡으심이 좋겠습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신문사 것을 가져와서는…. 진은 아코렐라와 시선을 나누며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래. 바로잡을 것이 있다면 그리하는 것이 좋겠지. 레이번 장관이 발언하고 있으니 계속 말씀해 보시오.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진이 자못 짜증 난다는 듯 이르자, 레이번이 이때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히엘로에 대한 조사 과정을 공개로 전환하시거나, 혹은 서둘러 처형을 집행하심이 옳겠습니다. 또한 처형 시 마법부의 개입을 축소하여,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정한 개입이 없다는 걸 증명해 주십시오.”
“음.”
진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척했다. 그의 대답이 늦어질수록 레이번과 장관들은 되었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겠나?”
“예, 폐하. 이안 히엘로의 죄목은 반역입니다.”
망설이는 태도로 보아 레이번의 추측이 적중했다. 저들은 이안 히엘로의 반역에 대하여 어떠한 원망도 없어 보였다. 이안의 신병만 확보하면 언제든 재기를 엿볼 수 있다 여기는…….
“그러지, 뭐.”
“예?”
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락했다. 한껏 날을 세우고 있던 장관들이 당황스럽게 되물었으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장관들의 뜻이 그러하니 내 그리하겠네. 이안 히엘로에 대한 처형 날짜를 잡도록 하지. 본인이 모두 시인하고 인정한바, 재판은 따로 필요 없을 것이라 여겨지네.”
연루된 중앙 귀족들은?
“귀족들에 대한 조사는 계속 진행하고, 우선 이안 히엘로만 정리하면 될 것 아닌가? 제국민의 의구심을 먼저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폐, 폐하, 처형장에 마법을 제한하도록 하십시오.”
마법사가 이안 히엘로를 다른 몸뚱이로 바꿔치기하려는 걸 막으려는 속셈이다. 그리되면 정말 이안을 죽일 수밖에 없는데? 이래도 진행하겠다는 건가?
“그러지.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아코렐라 대장. 들었는가?”
“예, 폐하. 들었습니다.”
“이안 히엘로는 어차피 마력봉인석 족쇄를 차고 있는지라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처형 과정에는 마법부의 개입을 일절 금하고, 그 시신을 대중에게 공개하겠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지? 레이번이 넋 나간 듯 가만히 보고만 있자, 다른 장관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숙덕거렸다.
“서두르는 게 좋겠어. 이안 히엘로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이거든. 전쟁 여파나, 여러모로.”
“……!”
은근히 던지는 말에 레이번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재판이 필요 없는 처형. 그리고 이안 히엘로의 건강이 좋지 않다?
‘감옥에서 죽었다고 할 속셈이로구나!’
겉으로 그리 공표하면 그들이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시신은 이미 준비된 것 같으니, 그것에 마법을 걸어 황궁 밖에 전시하면 끝날 일이다.
진은 만족스럽냐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의 담담한 시선이 레이번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은가?”
“레이번 장관.”
“뭐라 말 좀 해 보십시오.”
“경들이 바리엘과 나를 이토록 위하고 걱정하는지 몰랐다. 그대들이 없으면 아쉬워서 어쩌나 몰라.”
진이 미간을 작게 찡그리며 웃었다.
그에 레이번이 벌떡 일어나자, 아코렐라가 물었다.
“어디를 가려고 하십니까? 회의 중인데.”
“이-!”
“아, 혹시 이안 히엘로의 상태를 보려고 하시는 건가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코렐라가 뒤에 서 있는 마법사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부하들이 24시간으로 밀착 감시 중이라서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올 겁니다.”
레이번 혹은 그 누구든지 이안 히엘로에게 접근하거나 상태를 확인하려는 순간, 그의 죽음을 전달받게 된다는 경고였다. 그 즉시 이안을 출궁시켜 숨길 것이니.
완벽한 외통수. 사실상 진과 마법부가 겨눈 칼날이 그들의 목을 베고 지나간 것과 다름없었다.
“레이번 장관! 뭐 합니까?”
“이게, 잠시만요! 잠시만요, 폐하!”
자신만만했던 레이번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장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무어라 재촉했다. 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무던하게 선언했다.
“…다들 그리 알고, 처형식은 서둘러서 하지. 뭐,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 * *
“그러면 아스타나로 열려던 포탈은 취소하겠습니다.”
“시신도 정돈하고, 예. 준비하면 되겠어요.”
마법사들은 아코렐라에게 전달받은 내용을 받아 적으며 중얼거렸다. 하나같이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진짜 이안이 떠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로만드로는 연신 손뼉을 짝짝 쳐 대며 분위기를 돋웠다.
“그러지 말고, 다들 마무리 잘 하자고. 이안이 가는 곳 그리 멀지 않아. 마차로 사나흘이면 가는걸?”
이안이 머물 저택은 바리엘 서쪽에 있는 시골 영지였다. 주인이 따로 있는 곳이 아닌지라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사건·사고가 적은 평화로운 시골로 알려져 있다.
이안은 몰락한 귀족 가문의 영식으로 둔갑하여 그곳에서 평화롭게 지내면 된다. 맛있는 거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황궁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겠지. 건강도 좋아질 수 있다!
“이안의 저택에서 일할 자들도 구했고, 다 완벽하네. 문제없어.”
“예, 이안 님을 위한 거라면 그게 좋겠지요.”
“맞습니다. 지하 감옥은 곰팡이가 너무 많아서…….”
아코렐라는 마법사들에게 관련 서류를 내어주며 당부했다.
“시신에다 걸 마법을 신중히 해. 레이번 작당 놈들 진짜 끈질기더라. 아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안 님이 아니라는 걸 밝히려고 할 거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예, 알겠습니다.”
“이안 님 타고 나갈 마차는?”
“준비되었습니다.”
“짐만 챙기면 되겠네.”
아코렐라가 중얼거렸다. 뭐, 챙겨 갈 게 있겠냐마는.
“로만드로 님. 이안 님 모셔서 나오세요.”
“응. 알겠네.”
“나머지는 나 따라와.”
마법사들이 아코렐라를 쫓아 마법부 뒤뜰로 나갔고, 로만드로는 이안이 있는 지하 감옥으로 달려갔다. 어두운 밤이었다. 경비병들의 횃불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주위를 밝히지 않았다.
타닥타닥!
“이안, 깨어 있는가?”
로만드로가 조심히 부르자, 책을 읽고 있던 이안이 고개 돌렸다. 그는 때가 되었음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어 있습니다, 로만드로 님.”
“그, 그게 말일세.”
로만드로가 주저하며 말하기 어려워하자, 이안은 괜찮다며 웃었다. 아이는 읽고 있던 책만 든 채 스스로 감옥 문을 열고 나왔다. 아코렐라의 예상대로 챙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면 될까요?”
“마차가 준비되었네.”
“그렇군요.”
“이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로만드로는 말문이 막힌 것처럼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변명했다.
“황궁의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요.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이안, 저기…….”
이안은 천천히 로만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로만드로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안을 껴안았고, 어깨에 서로의 고개를 파묻었다.
“고마웠습니다. 제 바리엘에도 로만드로 님 같은 분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내가 더 고마웠네. 꼭 건강 챙기게. 보러 갈 것이니,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이런 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이안 자네는… 내 아들 같았어.”
이안이 환하게 웃었다. 자신도 사실 그랬다고,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감사하군요. 이리 인사할 수 있음에.”
“크흑, 나 정말 아쉬워서, 원.”
“부인과 비비에게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이안은 이제 가자며 로만드로의 손을 잡아끌었다. 역시나 인기척이 없었다. 그들은 마차에 올라타 마법부로 향했고, 이안은 어둠 속에 잠긴 황궁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잘 있어라.’
그리고 미래에서 다시 보자. 부디 변함이 없기를. 그래서 자신이 이들에 대한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기를.
이안이 창문에 이마를 대고 황궁에서의 마지막을 음미하는 동안, 로만드로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댔다.
“황궁 뒷문에서 마차를 갈아탈 것이네. 마부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자니까 참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여비랑 저택에서 사용할 자금은 짐칸에 있네.”
로만드로는 이안의 여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이안은 그저 듣기만 했다.
마법부를 지나자 황궁 후문이 보였다. 이안이 갈아탈 마차가…….
“아.”
작은 마차 주위에 서 있는 마법사들. 그리고 베릭, 바르사베, 시아오시까지. 모두 정복을 입고서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서 있던 진이 이안 쪽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히이잉!
마차가 멈추자, 진을 시작으로 모두가 가슴팍에 주먹을 올리며 황궁식 예를 갖췄다.
달빛이 조용히 내려앉는 밤. 이안은 머뭇거리며 마차 문을 열었고, 이내 내려 그들과 마주했다.
처억.
이안도 가슴에 주먹을 올렸다.
그러자 모두가 고개를 숙여 자세를 낮췄다. 이안 베로시온을 맞이하여 영광이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