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5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52화(852/863)
제852화. 꽃 무덤
화르륵-!
진은 턱을 괸 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지켜봤다. 그의 옆으로 산처럼 쌓여 있는 종이 더미. 모두 이안의 행적이 기록된 황궁 문서였다.
원래라면 담당관이 이를 행했겠지만, 진은 자신이 손수 태우겠노라 이르며 모두를 물렸다. 불길이 작아질 때면 한 장,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한 장. 진은 이안이 새겨진 역사를 조금씩 지워 갔다.
“이안 히엘로, 전 마법부 장관인 웨슬리에 대항하여 황실과 관료를 보호하다…. 그래. 이런 일도 있었지.”
잊고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게, 진정 기록말살형이 맞나 싶다.
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글자를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이안은 모를 것이다. 자신을 비롯하여 친우들이 기억하는 한, 그대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으리란 걸.
이안이 원하고, 또 그것이 마땅하다 여겨져 이리 종이를 태우지만, 진은 사실 이것에 큰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울부짖는 백성도 있다 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반역죄인에게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지.”
“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폐하.”
“제지하지 않으면 들에 난 불처럼 끝없이 번질 것입니다.”
신하들의 걱정 어린 간언에 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끝까지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진은 문득, 제 손에 들린 것이 버고스에서의 기록임을 알아챘다.
“이안 히엘로는 이안 베로시온이다. 그는 황실의 피를 이었으며, 바리엘을 구하기 위해 신께서 보내신 선물이다. 우리는 그를 따라 나아갈 것이다.”
팔랑. 진이 종이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속삭였다.
‘그를 따라 나아간다…….’
진은 턱을 꽉 깨물었다. 이것이 작성되던 시점에서는 자신이 이안을 따라가는 게 맞았지만, 이제는 아니었으므로.
이제는 이안이 자신을 따라올 차례다. 자신이 잘 다져 놓은 바리엘의 대로를 걸으며.
‘이안 경. 어디를 가고 계시오. 너무 어둡거나 춥지는 않소?’
부디 그대의 마지막은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면 좋겠는데. 진은 종이 끄트머리에 불씨를 붙이고서 가만 들여다봤다. 연기가 날아드는 곳에 이안이 있을까?
그가 잠시 사색에 잠겨 있는 사이, 시아오시가 인기척을 냈다. 급한 마음이 역력히 묻어났다.
“폐하.”
아니나 다를까, 조금 난감해 보이는 시아오시의 낯빛. 진이 덩달아 눈빛을 굳혔다.
“법무부 장관의 아들 셰인이 사병을 숨겨 두고 있었습니다. 체포하러 간 병사들을 죽이고 중앙 밖으로 도주 중입니다.”
“아아.”
난 또 뭐라고. 진은 공연히 놀랐다는 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 경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어온 줄 알았다.
진은 남은 것들을 불길에 밀어 넣었다.
“…추격은?”
“황궁친위대가 붙었습니다.”
“감히 황제가 보낸 병사를 죽이다니. 이는 나에 대한 모독, 내가 직접 놈의 목을 치겠다. 본보기를 보일 수 있게 갈가리 찢어 그자의 혈족에게 보내리라.”
자신의 바리엘을 위해, 그리고 이안의 바리엘을 위해 처단해야 할 자가 또 있을까? 진은 수없이 떠오르는 이름들을 헤아리며, 검을 집어 들었다.
“가지.”
목을 베러.
시아오시가 길을 내어주자 진은 앞장서 걸었다. 그를 따라 긴 로브가 흩날렸고, 그 자취를 시종들이 쫓았다. 궁에서 마주한 자들은 백 보 밖에서 납작 엎드려 황제에게 예를 보였다.
진은 오로지 정면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저 끝에 희미하게 터 오는 여명이 자신의 목적지라는 듯.
타앗!
“괜히 일거리 만들고 있어.”
“네, 네 이노옴!”
“혀 잘리고 싶냐?”
한편, 도망자를 잡아들여 환궁하던 베릭이 중앙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매달린 금발의 시신 한 구. 그 아래에는 각기의 화사한 꽃이 쌓여 있었다. 밤새 기도한 것인지, 아니면 일찍 기도하러 나온 건지 모를 제국민들도 몇몇 보였다.
베릭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뒤를 돌아봤다.
“베릭?”
“어, 바르사베.”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던 바르사베와 마주한 것이다.
“찾았어?”
베릭이 물었다. 아침 해를 받아 환하게 빛나는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진짜 이안이 같아.
“아니. 미안하다.”
“됐어.”
그 많은 사람들이 숲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못 찾았다면, 이안의 의지로 보아야 마땅했다. 그래도 뭐, 찾는 걸 그만두지는 않을 거지만.
“가자.”
베릭은 황궁으로 돌아가자며 고갯짓했다. 때마침 사아악, 부는 바람. 바르사베는 왠지 그를 따라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땡- 땡- 땡-
중앙 광장에 아침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시신은 이미 내려갔지만, 꽃 무덤은 여전히 그 자리에 피었다. 막 중앙에 도착한 자들의 때늦은 추모, 그저 꽃이 모여 있어서 의미도 모른 채 던지는 자들의 헌화.
그쯤 되니, 사람들은 중앙 광장 한자리에는 당연히 꽃이 쌓여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믿음이 1년 하고도 5개월 동안 이어져 어느덧 일상에 녹아든, 어느 평범한 날이 되었다.
* * *
“야이, 씨! 빡대가리 새끼야아아!”
아침부터 활기찬 마법부. 아코렐라는 장관실을 박차고 나가며 보고서를 대차게 흔들어 댔다.
또 시작이구나. 지나가던 마법사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고, 보고서의 주인은 기함하며 벌떡 일어났다.
“누가, 어디서, 이딴 식으로 보고서를 써-!”
“자, 자, 잠깐만요, 아코렐라 님. 진정하십시오.”
“진정하게 생겼어?! 당장 대회의에 올릴 내용인데, 누구 모가지 날아가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아아, 알겠다. 너 이 새끼, 첩자네. 타 부서에서 나 암살하려고 보낸 첩자였어. 누구야! 누가 보냈어!”
“장관, 제발요. 저희 같이 일한 지 10년째입니다.”
아코렐라가 마법사를 들들 볶든 말든, 로만드로는 익숙하게 마법부로 도착한 서신들을 분류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쌓이는 것들이다. 대부분 귀족들이 보낸 것이었지만-
“응?”
가끔은 오늘처럼 낯선 곳에서 오는 것도 있었다.
로만드로는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은 엽서를 휙휙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멋들어진 폭포 전경의 그림만 그려져 있을 뿐, 다른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로만드로 님! 장관님 좀 말려 주십시오. 저러다 죽겠습니다. 아니, 요즘 들어 더 지랄 맞아지셨어요.”
“이것 봐. 발신자도 없는 엽서가 끼어 있네. 황궁으로 들어온 것이니 누가 실수로 보낸 것일 리는 없고. 돈까지 다 냈다는 뜻이니까.”
“별 이상한 놈들이 한두 놈입니까? 저기 어디더라? 얼마 전에 행정부도 난리 났잖아요. 비리 신고가 직통으로 와서.”
“아찔했지. 진짜.”
로만드로는 질색하며 어깨를 털어 댔다. 어찌 황궁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별별 일이 다 터지는지 모르겠다. 수명이 반으로 주는 느낌인데, 전 수상께서는 무슨 수로 그 나이 잡수실 때까지 황궁 일을 하셨나 몰라.
“글 모르는 시골 사람들이 응원차 보낸 거 아닙니까? 아니, 근데 그 전에 장관님 좀 말려 달라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일단 보관해 두지.”
“저기요? 제 말 들리십니까?”
로만드로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책상 위에 놓인 종을 땅땅땅 내리쳤다.
그에 마법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던 아코렐라가 멈칫거리며 그를 돌아봤다. 꼭 종소리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짐승 같다.
“아코렐라 장관님. 이제 나갈 시간입니다만.”
“벌써요?”
“예. 늦으면 더 크게 혼납니다.”
“아…….”
아코렐라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법사를 놓아주고서 보고서를 허리에 끼었다.
“다들 집합.”
“그냥 평범하게 출발하자고 하십시오.”
“진격.”
“…예예, 갑니다아.”
마법사들도 꾸물꾸물 일어나 회의 참석을 위해 움직였다.
하늘이 유독 푸르고 높은 날이었다. 회의장으로 들어선 아코렐라가 가볍게 손날을 세우며 경례했다.
“여어, 안녕하쇼.”
“좋은 아침입니다, 아코렐라 장관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제가요? 그럴 리가요. 본인이 기분 좋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요? 시아오시 장관님?”
시아오시는 잘 모르겠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속속들이 도착하는 각 부처의 장관들. 1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대부분 신임이다. 퀸타나 수상이 마지막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장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끼이익.
정복을 잘 갖춰 입은 진이 위엄 있게 들어섰다.
시간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눈매. 쉬지 않고 일에 몰두하느라 그의 분위기는 언제나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진이 대충 고갯짓하자, 장관들이 동시에 착석했다.
“좋은 아침이군. 시작하지.”
진의 명령에 장관들이 돌아가며 안건을 내밀었다. 그는 가만히 듣다가 의문스러운 점을 질문하거나, 허락 혹은 기각만을 이르며 회의를 이끌었다.
아코렐라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동방과 관련한 사안입니다.”
“그쪽으로 전언을 보낸 지 꽤 되었지?”
“예. 그렇습니다. 한데 도착을 제대로 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으니, 이번에는 마법부에서 사람을 직접 보내 볼까 합니다. 은랑과 호흔을 언제까지고 마법부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요. 밥값 아까워 죽겠습니다.”
“흐음.”
“마법사는 둘에서 셋, 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정식 사절단을 구성하고자 합니다. 예산이 필요한데 장기 임무인지라 행정부 내에서 확인을-”
그때였다. 아코렐라가 문득 말을 멈추고는 굳어 버렸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로만드로를 제외한, 마법사 모두가 그녀처럼 멈칫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고개.
“아코렐라 장관?”
“어…….”
아코렐라의 눈이 커지고, 이어서 마법사들 역시 뭔가 기척을 느꼈다는 듯 입을 벌렸다.
무슨 일이냐고, 퀸타나가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
“……!”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황궁이 크게 흔들렸다.
시아오시는 바로 일어나 진을 등 뒤로 감추었고, 뒤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던 베릭 역시 검을 빼 들었다.
“으, 으아아아!”
“이게,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다들 계십시오! 움직이지 마세요!”
“아코렐라 장관!”
“마법부는 모두 따라 나와!”
아코렐라의 지시에 마법사들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황궁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에는 투명하게 감춰져 있던 반원의 보호막이 무지갯빛을 띠며 진동하고 있었다. 무언가 굉장한 힘에 의해 충격받은 게다.
지이잉, 지잉-
“자, 장관님. 이거…….”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 마법사들은 잠시 주춤거렸다. 이만한 깊이는 이안 님 외에 본 적이 없었다.
두우웅. 두웅.
황궁 관료들도 날벼락 같은 폭음에 잔뜩 몸을 낮춘 채 굳어 있었다. 다들 긴장하여 숨조차 제대로 못 쉬는 듯 보였다.
마법사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진동하는 보호막을 지켜봤다. 어느 부분을 강타당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저기다.”
헤일이 서측 부근에 미세한 균열이 인 것을 찾아냈다. 그의 신호에 나키나와 토미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와 씨.”
가까워질수록 중력처럼 그들을 짓누르는 힘. 나키나는 범상치 않음을 알아채곤 긴장했다. 뭐지? 지하신은 이미 돌아갔는데? 대체 황궁을 위협하는 이 중압감은-
“오호. 참으로 신이한 구성의 결계군.”
사악!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한 사내가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보호막을 퉁퉁 두드렸다. 낯선 복식, 하지만 이미 은랑과 호흔 탓에 눈에 익은 그것.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네. 막 면벽 수련을 마친 터라 아직 감각이 둔하여서. 나도 모르게 그만.”
두웅. 두우웅.
동방의 대마법사, 자안(慈眼).
그가 금안을 빛내며 웃었다.
“내 아둔한 제자들을 데리러 왔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