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5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56화(856/863)
제856화. 내기
“다시.”
진의 서늘한 명령에도, 은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되레 흡족스럽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였다.
진과 마법부원 모두가 그녀의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충격에 휩싸인 듯한 낯빛들. 하지만 은랑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쐐기를 박았다.
“이안 히엘로, 안 죽었잖아.”
진은 천천히 몸을 돌려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다리를 꼬았는데, 아코렐라는 그의 심기가 어지럽다는 걸 알아챘다.
“반역자 이안 히엘로가 안 죽었다?”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은랑이 아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 그녀의 생과 사가 결정될 터이니. 단순히 이안이 황궁을 나갔다는 것만 알고 있는지, 아니면 그 이상을 넘어 현재의 상태까지 알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래. 이안 히엘로의 시체가 밖으로 나가는 걸 보았지. 하나 나는 그게 거짓 촌극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마법으로 꾸몄던 가짜 시신을 말하는 거군. 진은 계속해 보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헛소리도 가지가지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치자. 네놈의 말을 누가 믿어 줄 것 같은가? 한낱 동방의 부역자 주제에.”
직접 이안을 데리고 오는 게 아닌 이상, 은랑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것이다. 어때? 증명할 수 있겠나?
진의 눈빛에 아코렐라가 속으로 빌었다.
‘제발 증명할 수 있다고 해. 시발.’
그러면 자신들도 이안 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까.
은랑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황제와 마법사들을 살폈다. 대답이 늦어질수록 진과 아코렐라의 속이 타들어 갔다. 은랑은 어쩔 수 없이 더듬더듬 질러 댔다.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게 변하지는 않아.”
“시간 낭비군.”
진이 벌떡 일어나 아코렐라에게 지시했다.
“결박하여 자안이 황궁을 떠날 때 바로 데려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
“예, 폐하.”
“주술!”
자안을 언급하자, 은랑이 버럭 소리쳤다. 돌아가려던 진이 고개를 틀었고, 이내 이어진 은랑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내가, 이, 일전에 저주의 주술을 걸었다. 이안 히엘로가 죽었다면 분명히 내가 알았을 것인데, 전혀 그런 게 없다고! 아아악!”
아코렐라가 그녀의 머리채를 확 잡아 틀며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고통스러워하는 은랑을 도와주기 위해 호흔이 몸을 비틀었지만 무용지물, 마법사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너, 뭐라 했어? 저주?”
“살(煞)을 보내는-”
“이게 처돌았나, 감히 누구한테 뭐를 보내?!”
“아아아악!”
“은랑!”
아코렐라가 은랑의 머리채를 흔들며 그녀의 볼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속절없이 쳐 맞던 은랑이 그녀의 옷단을 붙잡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아코렐라는 금안까지 개방하며 중얼거렸다.
“폐하. 자안에게는 호흔만 넘기고 은랑은 우리가 직접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가만히 듣자니 이 건방지고 간악한 것을 도저히 살려 보낼 수가 없겠네요.”
“인정, 인정하는 거지? 이안 히엘로가 살아 있다고?!”
“이게 끝까지-!”
“꺄아악!”
“아코렐라.”
아코렐라의 번쩍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진이 그녀를 말린 것이었다. 헉헉 숨을 내쉬던 아코렐라가 천천히 은랑의 머리채를 놓았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잇새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이안 히엘로에게 저주를 걸었다?”
진은 다시금 무릎을 꿇어 은랑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지금 그자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나?”
은랑은 손등으로 터진 입가를 닦아내며 침묵했다. 이안 히엘로의 소재를 왜 자신에게 묻는가? 황궁에서 빼돌렸으니 당연지사 황궁이 알 것이거늘. 그녀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알고 있으면?”
“자안에게 보내지 않으마.”
“……!”
하지만 모른다면? 진은 은랑의 턱을 가볍게 잡고서 입술을 살짝 벌렸다.
“아니면 혀를 잘라 보내는 수밖에.”
비밀을 아는 자는 영원히 침묵하라.
너무도 담담히 이르는 진의 중얼거림에 은랑은 멈칫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간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진실인가?”
“진실, 진실로…….”
도망치려면 딱 한 번의 기회밖에 없겠구나. 은랑은 기지를 발휘하여 덧붙였다.
“다만, 이 마력봉인석을 풀어야 합니다. 지금껏 그자의 생명을 느꼈음에도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던 건, 이것 때문입니다.”
“안 됩니다, 폐하!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것만 풀어 주시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닥쳐, 씨발! 마법부 장관으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진은 아코렐라에게 진정하라는 듯이 손짓했다.
“언성을 높이지 말게나, 장관.”
“하오나-”
“흥분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법.”
진은 뒤에 서 있는 마법사들에게 고갯짓으로 지시했다.
“실담물약을 가져와라. 대제국 바리엘 앞에 거짓은 용납하지 않겠다.”
* * *
“오호?”
자안은 흥미롭다는 듯 턱을 문질렀다.
술잔에 술을 그득하게 따르던 베릭이 눈썹을 휙 치켜들며 물었다.
“왜 그러쇼, 영감?”
“서역은 참으로 신기하단 말이지. 동방에서는 생각조차 못 한 것들이 즐비하니까.”
“포도주 처음 보나?”
“쯧! 호랑말코 같은 놈. 네가 무얼 알겠냐.”
자안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기분 좋게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내가 할 말은 아닌데, 할배 진짜 한량 같네.”
“흐이, 천자보다 팔자 좋은 상팔자지. 그래서, 내기는 무엇으로 하겠느냐? 네놈의 소원권 따위 내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술자리에서 들어온 노름을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베릭은 잠깐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
“뭐든 좋다. 마작, 꽃놀이패, 은전 가르기, 동전 뒤집기… 에, 또 뭐가 있더라?”
“할배, 나이가 몇인데?”
“갑자기?”
“나는 이제 겨우 서른 줄이거든? 내가 인생 대부분을 술과 고기, 도박으로 미쳐 살았는데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내가 불리하잖아. 다른 거 하게.”
자안은 베릭이 조금씩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귀찮고 거추장스럽게 격식 차리지 않고 날것 그대로 떠들어 대는 꼴이 특히나 더더욱.
“내가 너보다 딱 열 배 더 먹었다.”
“구라 치시네.”
“믿지 말든가?”
열 배면 몇 살이라는 거야? 베릭이 의심스럽게 눈을 가늘게 떴으나, 자안은 정말이라는 듯 술만 홀짝였다.
“마법사는 원래 그래?”
“뭐가?”
“술만 처먹어도 그렇게 오래 사냐고.”
“그럴 리가.”
“그럼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산 건데?”
“아무에게나 알려 줄 수 없는 비기다, 이놈아. 궁금하면 이겨서 소원권 써라.”
오래오래 살면, 나중에 100년 후의 바리엘을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안이도 거기 있을 거고.
베릭의 머릿속에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고개를 털어 버렸다. 소원권의 사용처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안에게 걸린 견합 마법을 풀어내는 거로.
자안은 입을 쩝쩝 다시더니, 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제안하는 종목 하나, 네놈이 제안하는 종목 하나.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 놈이 제안하는 거로.”
“보기보다 공평하네.”
“노름은 오로지 실력과 운으로만! 그게 내 지론이다, 이 말씀.”
“그래서 뭐, 동전 던지기 하자고?”
“싫으냐?”
“아니, 뭐. 그건 아니고.”
베릭이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자안이 히죽 웃었다.
“공평하게 던지는 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뭐.”
“다른 사람 누구?”
“저기 오네.”
자안이 굳게 닫힌 문을 가리켰고, 베릭은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없는데?
하지만 곧이어 들리는 인기척.
똑똑.
“실례합니다.”
바르사베였다.
베릭이 자안을 만나러 갔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되어 찾아온 것이었다. 지금 본궁 회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려 줄 겸.
그녀는 엉망이 된 술상과 불콰하게 취한 자안, 그리고 맞은편의 베릭을 보고서 ‘지금 여기서 뭐 하냐’는 눈빛을 보냈다.
“오호! 새로운 손님이로군!”
“송구합니다, 베릭 대장. 급히 회장으로 이동하십시오.”
“왜? 은랑이가 무어라 하더냐?”
“……!”
바르사베가 놀라서 흠칫하자, 베릭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안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킬킬거렸다.
“고것이 어릴 때부터 그랬어. 조끄마한 것이 까랑까랑하고, 영 못돼 먹었지. 거짓말도 밥 처먹듯이 하고.”
“그런 애를 왜 제자로 받았대?”
“재능은 천부적이라. 백날 착해 봐라. 재능 없으면 말짱 황이다. 차라리 못되고 잘난 놈 데려와 성질머리 뜯어고치는 게 싸게 먹히는 법이지.”
“그럼 생각 잘못하셨네.”
“모르지, 뭐. 죽기 전까지는 인생 어찌 될지?”
히죽거리는 자안. 그에 바르사베가 다시금 베릭에게 눈짓으로 신호했다.
“베릭.”
어서 가자고. 은랑에게 이안 히엘로의 행방 단서가 있다고.
하지만 자안이 막아섰다.
“안 되지. 안 돼. 흥을 깨 버리면 나 정말 섭하다고?”
“자안 어르신. 송구하오나-”
“금방 끝날 것이다.”
티잉!
느닷없이 날아든 동전. 자안이 바르사베에게 던진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잡아챈 바르사베가 영문 몰라 하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동방 문자가 적힌 쪽이 있고, 숫자가 적힌 쪽이 있다. 어느 쪽에 걸 테냐?”
“베릭, 너 뭐 해?”
“문자랑 숫자라. 둘 다 나랑 안 맞는데.”
“베릭?!”
바르사베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하나 그는 기다려 보라는 듯 한 손을 들었다.
“영감이랑 내기했어. 삼세판, 소원 들어주기.”
“소원이라니? 너 미쳤어?”
저 작자가 무슨 소원을 걸 줄 알고? 더는 안 되겠다 판단한 바르사베가 베릭에게 속삭였다.
“은랑이 이안 님이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행방은 모르지만.”
“…행방은 모른다?”
“그래. 그러니까 서둘러서-”
“그럼 더더욱 영감한테 매달려야지.”
“뭐?”
자안은 턱을 괸 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멀리 일어난 일도 들을 정도니, 눈앞에서 속삭이는 말쯤은 귓가에 대고 소리친 것처럼 잘 들릴 것이다.
“영감. 동방에 보낸 서신을 보고 온 게 아니라고 했잖아.”
“옳지. 귀물에서 날아든 종이 덕분에 알았다. 그 흔적을 쫓아왔지.”
“그럼 알겠네.”
귀물을 사용한 이안이의 흔적도.
바르사베는 미치겠다는 듯 이마를 쥐었고, 자안은 손끝에서 긴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내가 먼저 고르마. 나는 문자.”
“싫어. 내가 문자 할래.”
“그래라. 변덕스러운 오리 궁둥이 같은 놈아.”
“베릭!”
바르사베의 만류에도 베릭과 자안은 물러남이 없었다. 자안이 곰방대로 바르사베의 손등을 툭툭 쳐 댔다.
“펼쳐 보시오, 처자.”
정말? 이래도 돼?
베릭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재촉하자, 바르사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전 쥔 손을 펼쳤다. 자안이 연기를 뻐끔거리며 고개를 쭉 내뺐다.
“으하! 으하하핫!”
숫자였다. 자안은 정말 기쁘다는 듯 바닥을 데구루루 굴러 황궁 악단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연신 소매를 펄럭이며 뛰어다녔다.
바르사베는 제 손에 들린 동전과 베릭을 번갈아 보면서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이고, 꼬시다, 이놈아! 그러니까 내가 문자 한다고 했을 때 그러려니 하지!”
“베릭, 지금이라도 관두고 일단 물러나자. 응?”
베릭은 술잔을 단숨에 들이켜더니, 바르사베를 째려봤다.
“잘 좀 하지.”
“이게 미쳤나.”
“됐고! 영감, 다음에는 내가 종목 고를 차례지?”
“그래그래, 뭐든지 골라 봐라! 이번에는 이길 만한 걸 고르는 게 좋을 게다. 네놈에게는 마지막 기회니까!”
타악! 베릭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다음은 숨바꼭질이다.”
“숨바꼭질?”
자안이 데굴데굴 구르던 것을 멈추곤 홱 돌아봤다. 어허? 이것 봐라?
“그래. 견합 걸린 이안 히엘로. 자안, 네가 찾아서 데려오기. 나는 못 데려온다에 걸게.”
바르사베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게임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였으므로.
“어때, 할 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