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59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59화(859/863)
제859화. 이안의 여정
“하이고, 이거, 원.”
자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동방이고 서역이고 간에 천자는 천자인가 보다. 몇백 년 산 자신보다 능글능글하여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저리 꾀를 부려 대니, 정말로 술에 취했다가는 간이고 쓸개고 죄다 쓸어갈지도 모르겠다.
자안은 곰방대를 테이블에 세우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 드센 망아지 놈은 온몸으로 덤벼들었는데, 우리 천자께서는 앉은 자리에서 곰방대를 부러트리려고 하십니다그려.”
“뭐든지 깔끔하게 하는 것이 좋지. 동방의 대마법사가 술수를 부려 바리엘을 농락하고 있다 하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서.”
“농락을 했다 칩시다. 어쩌시렵니까?”
네놈들이 나를 막을 수나 있겠는가? 다분히 공격적이고 건방진 가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위협적이기도 했다.
아코렐라는 미간을 확 찌푸리며 무어라 덧붙이려 했지만, 진이 손을 들어 가볍게 저지했다.
“어쩌긴? 내 도박을 즐기진 않지만, 이쪽에는 이쪽만의 규칙이 있다고 들었다.”
“하하하! 가능하시겠소이까?”
“가능하고말고.”
진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자안을 쳐다봤다.
“자안, 그대가 대단한 동방의 마법사라곤 하지만 그래도 한낱 인간, 여기서 소란을 피운다면 바리엘 전역을 넘어서 가이아의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그것은 곧 가이아와 동방의 충돌로 이어지지.”
지금 동방은 괴이의 출몰로 어지러운 형국이라며? 그런데 거기에 가이아의 침공을 더하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진은 괜한 허세 그만 떨라며 웃었다.
“혼자서 가이아의 모두를 이겨 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그만큼 대단하지는 않잖아? 그랬다면 진작 괴이를 정리하고 동방에 평화를 가져왔겠지. 우리는 지하신을 처치했지만, 그대는 그러지 못했어.”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래. 누가 더 강한 세력인가? 진의 물음에 자안이 황당하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천자께서는 대담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알 수가 없구려.”
“둘 다 아니다. 나는 그저 상황을 짐작하는 것이지.”
“가이아와의 전쟁이 부담스럽다 칩시다. 예, 맞는 말이지요. 하나 진실로 그리되면 천자께서도 사지 한복판을 거닐게 될 터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듣자 듣자 하니까! 이거 완전히 미친 영감 아니야?!”
아코렐라가 대접을 번쩍 집어 들었다. 그대로 자안의 머리통을 깨 버리려는 듯 말이다.
그러자 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라 붙들었고, 자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에헤이? 그저 질문에 불과하거늘?”
“의도가 다분히 보이잖아! 그럼 나도 묻자! 이걸로 대가리를 깨면 아플까, 안 아플까?”
진은 아코렐라의 소란을 뒤로하고 덧붙였다.
“나는 죽지 않는다. 고로 자안, 그대의 가정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말하지. 그대가 술수를 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줬으면 하는데.”
“어찌 그리 자신하십니까? 죽음이란 그림자와 같아서 언제고 삶의 발치에 서 있는 것인데요.”
“이안 경이 그리 말해 주었기에.”
“또 그놈의 이안이군요.”
자안은 끄응 앓는 투로 중얼거렸다. 근거는 다소 황당하긴 하다만, 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방자하게 굴되 선을 넘지 않은 것은 가이아 전역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대로 정말 괴이의 왕을 격퇴한 것이라면, 오히려 동방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달라 애원해도 모자랄 판이다.
“더 깊은 내용은 극비 사항이라 알려 줄 수 없지만,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다면 또 달라지겠지.”
“여인 여럿 울린 것처럼 꾀는 것이 참으로 능숙하십니다.”
“저울이 있다면 자명할 것이네. 그대들이 결코 손해 보는 제안이 아니라는 걸. 자네의 제자들을 내어줌과 동시에 마물의 왕, 그러니까 지하신의 정보에, 나아가 일반인도 마물과 맞설 수 있는 무기까지 지원해 주도록 하지.”
“마물과 맞서는 무기라니요?”
자꾸 말도 안 되는 별천지 세상 얘기를 하네? 자안의 눈썹이 크게 휘자, 진은 미소를 머금었다. 베릭이 ‘까앙’이라고 부르는 은 망치. 데라족이 만든 무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마법이 없어도 마물을 쉽게 잡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네. 이것도 이안 경이 없었더라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물건이지. 여독이 좀 풀리면 대장간을 구경시켜 주지. 황궁에서 그리 멀지 않거든.”
“흐음. 이거 믿어도 될는지. 눈 뜨고 속는 느낌이라 영 불안합니다?”
“황제의 약조는 지엄하다. 바리엘도 그만한 대가를 받을 것이니 의심은 거두시게. 그리고 이제 그만 그 곰방대를 부러트리고 견합 마법 부작용을 풀어 주게. 자네의 제자인 은랑이 걸었다는 저주 해제와 더하여, 이안 히엘로의 행방도.”
까딱까딱. 자안은 곰방대를 흔들어 대며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원권은 견합 마법 해제에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
“베릭 저놈이 일어나서 딴소리하면 어찌합니까?”
“내가 베릭의 주인이니 그럴 일 없어.”
“좋습니다.”
자안은 곰방대 양쪽을 가볍게 잡더니, 이내 큰 힘 들이지 않고 톡- 부러트렸다. 나뭇가지 부러지듯 와그작! 곰방대가 박살 났다.
“고맙군.”
진이 악수를 청하자, 자안은 소매를 걷으며 맞잡았다. 그러고서 뿔난 아코렐라를 보며 고갯짓했다.
“자아, 그럼 지금부터 내가 이르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하거라. 가이아 전역의 지도와 귀물 속에서 네놈들이 보았던 한지, 먹과 붓, 금실이 좋은 암수 닭 한 쌍, 그리고 방금 부러트린 곰방대, 에, 또-”
로만드로와 마법사들은 자안이 이르는 걸 기록하며 한 명씩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황궁에서는 구할 수 없으니 중앙 내 상단들을 뒤지는 수밖에 없다.
“아주아주 맑은 청주.”
“술? 또? 작작 드시지?”
“에끼, 이놈아.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은방울과 금방울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주의 사항 빈칸에 적혀 있던 그것. 자안은 품에서 보옥(寶玉)을 꺼내 들었다. 연보랏빛 영롱한 구체인 그것의 안쪽은 마치 살아 있는 안개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코렐라는 처음 보는 마력석에 눈을 번뜩였다.
“뭐, 뭐야. 그거?”
“눈독 들이지 마라. 이게 바로 내 영생의 비기다. 베릭 저놈이 궁금해하는 것 같던데 저리 자빠져 누워 있으니, 이를 어쩔꼬? 크큭.”
자산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보석이 두둥실 떠오르며 허공을 돌기 시작했다.
“귀물의 부작용이 영혼의 풍화라 하였지? 그 말인즉, 영혼을 바탕으로 마법진이 세워진다는 뜻이다. 귀물을 사용하고자 하는 ‘우리’는 다음 생을 포기하고 이번 생에 혼을 꾹꾹 눌러 담아 영혼의 순도를 정화했다.”
저게 무슨 말인지? 진이 이해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아코렐라가 설명했다.
“귀물에 영혼을 바치기 위해 남들 두 번 살고 세 번 사는 동안 영감은 죽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지요.”
“한데, 그걸 사용하면 자네는 어찌 되는 건가?”
“귀물을 새로 만들 때까지 또 시일이 걸리겠지만, 괜찮습니다. 300년 살았는데 그깟 몇십 년 더 못 기다리겠습니까? 가이아에서 괴이 때려잡는 무기를 내어준다 하였으니, 그걸 동방 곳곳 돌아다니며 보급하면 시간 금방 가외다.”
견합 부작용을 거두기 위한 방법은 원래의 귀물을 완전히 파괴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뿐.
하지만 자안은 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동방의 정보와 그 신이한 무기만 있다면 괴이로 인한 민간의 피해를 확 줄일 수 있으니까.
“의식 같은 걸 하려는 겁니까? 이안 님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아코렐라의 물음에 자안은 식은 안주를 낼름 주워 먹었다.
“딱히. 데려와야 하는 건 아닐세. 근데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며?”
그의 물음에 아코렐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이아 전도(全圖)를 이고 들어온 로만드로. 바닥에 확 펼치니 대형 카펫만큼 널찍하게 깔렸다.
자안은 베릭의 얼굴에 낙서하던 펜을 쥐고서 그 위에 올랐다.
“정확히 어디 있다, 이것까지는 내 모르고-”
“말이 조금씩 달라지십니다?”
“어허, 끝까지 들어 봐. 뭐 그리 급할꼬? 귀물의 움직임을 그려 줄 수는 있으니, 경로를 파악하여 추정하는 건 그대들이 하라.”
휘익!
그러고는 자안은 망설임 없이 펜을 긋기 시작했다. 바리엘 중앙에서 시작한 선이 서쪽으로 올라가더니 북쪽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바리엘을 벗어났다.
진은 턱을 굳히며 그의 손짓을 유심히 지켜봤다.
‘바리엘 밖에 있었구나.’
그러니 찾을 수가 없었지.
그래도 저리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이안이 무사한 듯 싶어 다행이었다.
“엥? 이거 맞아요?”
“허어, 쉿! 집중하고 있는데 쫑알쫑알.”
아코렐라의 물음에 자안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대꾸했다.
아스타나 쪽으로 갔던 펜이 남하하더니 바리엘 남단 경계선을 따라 클리포포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남국. 이어서 일직선으로 올라와 대사막 한가운데 멈추니-
자안은 펜을 휙 던져 버렸다.
“여기까지.”
“…영감, 취한 거 아니지?”
“어허, 나를 뭐로 보고?”
“아니, 그럼 이안 님이 아스타나 들렀다가 남국 갔다가 대사막까지 갔다는 말을 믿으라고?”
“믿기 싫으면 말아라? 웃기는 놈일세?”
자안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충 대답했다. 자신은 그저 귀물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을 지도에 표시했을 뿐, 이안이라는 자가 어떤 상태인지는 알 바 아니다.
아코렐라는 지도 위에 올라서서 한참이나 황당하게 그 흔적을 눈으로 살폈다.
“대사막 한가운데면 역시…….”
“거기겠군.”
대사막의 부족, 천려. 이안은 로엘과 함께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리고 동시에 연락 하나 주지 않는 단호함이 원망스러웠다.
자안은 아코렐라가 가져온 술을 들더니, 덧붙였다.
“견합을 파괴하는 의식은 달이 밝을 때 시작할 것이다. 그때까지 요구한 것을 정갈한 마음으로 잘 준비하고-”
“아!”
그러고는 의심 없이 홀라당 털어먹어 버리는 것 아닌가? 아코렐라가 말릴 틈도 없었다.
자안은 입이 좀 쓰다는 듯 쩝쩝거리더니, 눈을 끔뻑거렸다.
“견합이 파괴되면… 이안 히엘로 그자도 알게 될 것인데, 그때… 아이고, 시부레, 왜 이리 졸리누?”
“영감! 잠깐만! 눈 좀 떠 봐!”
“자세한 동방과의 교류는…….”
“영감? 영감!”
“커어어억!”
아니, 그걸 의심도 없이 마시네? 아코렐라가 자안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지만, 그는 흰자를 보이며 그대로 쓰러졌다.
베릭과 머리를 맞댄 채 골골 잠든 자안. 진은 제 손에 들린 술잔을 앞으로 밀어내며 명령했다.
“우선 자안이 말한 것을 모두 준비하자. 오늘은 날이 좋으니 그가 원하는 달이 뜨려는지 모르겠다.”
“예, 폐하.”
“정리하지.”
진은 대사막에 표시된 동그라미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나갔다.
조용해진 회장에는 베릭과 자안의 드르렁대는 코골이 소리만이 가득했다.
* * *
햇빛이 작열하는 금빛 모래밭. 야자수 나무 아래, 짙게 드리운 그늘 안에 널찍한 해먹이 걸려 있다.
주인 모를 그곳으로 천려족 전사 하나가 모래를 헤치며 다가갔다.
“이안 님.”
머리칼을 대충 틀어 올린 채 잠들어 있는 이안. 읽던 책이 그의 두 눈과 양 볼을 가리고 있었다.
전사는 정신을 못 차리는 이안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주무십시오. 비가 올 것 같습니다.”
“…비?”
사막에 비라니. 우스운 말이다. 이안은 눈가를 가볍게 쓸어내리고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하지만 전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사막땅굴개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많은 비가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