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6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67화(867/935)
제867화. 알아채다
크로니는 일행과 이안이 토론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아이다. 아아. 원래 아이라는 것이 그렇긴 하다만.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생글거리며 천진난만하게 굴던 것이, 이제는 또 자신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하지 않나.
“-그래서 저는 그 전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퇴각로를 차단하는 것은 훌륭했으나, 항복한 병사들에게 너무 무자비한 처사였습니다. 실제로 그로 인해 전쟁 지원금을 책임지던 아카디 백작께서도 지원금을 철회하셨고요.”
“하지만 당시로는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어떤 입장에서 말씀이시지요?”
아이는 쉬지 않고 쫑알쫑알 떠들어 대며 세상의 온갖 것을 알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이런 게 천재라는 거겠지? 크로니는 턱을 살짝 올리며 고민했다.
‘어째서 몰랐지? 다섯 살에 이 정도면 그 전부터 징조가 있었을 것인데…. 중앙과 떨어져 있다지만 그리 먼 곳도 아니잖아. 영주와 안주인이 의도적으로 숨겼나?’
귀족 대부분은 제 자식이 멍청하고 아둔할지언정 어떻게 해서든 ‘수재’의 범위에 포함시켜 트로피처럼 과시하고는 했다. 아마 다른 귀족이었다면 이안은 벌써 중앙 곳곳, 아니, 바리엘 곳곳으로 소문이 퍼져 모두가 그 명성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황실의 핏줄 때문이군.’
하지만 하델은 단순한 귀족가가 아니다. 황실의 방계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권력의 경계 대상이 될지 모른다.
비록 현 황제가 하델 영주처럼 몸져누워 있긴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신변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지 않나. 괜히 헛된 소문이라도 났다가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숨긴 것이다.
‘아직 많이 어리기도 하고.’
흐음. 저것을 어찌 구워삶아 먹을까? 어차피 피후견인으로서 들일 것이니, 멍청한 것보다는 저게 나으려나?
‘아니지. 그러기엔 너무 위험해.’
크로니는 변덕스러운 속내를 감추며 찻잔만 홀짝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지 입맛대로 잘라 먹을 수 있다.
“크로니 경?”
“아아.”
“제국방위부의 입장은 어떠신지요?”
일행의 질문에 크로니가 정신을 번뜩 차렸다. 이안이 무덤덤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벽안이다. 크로니는 턱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아카디 백작께서 지원금을 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군사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백작 개인의 문제라서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역시 현직에 있는 사람은 다르구나.
“대외적으로는 해당 사안에 반대하여 그리하신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크로니는 설핏 웃으며 아이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흥미로워 보이니 말해 줄까? 어쨌거나 우리, 앞으로 좋든 싫든 친하게 지내야 할 거니까.
“백작 가문 내에서 갈등이 있었거든요.”
“갈등이라 하시면…….”
“누군가 아카디 백작님을 시해하려 했답니다.”
“……!”
이안의 눈이 커졌다. 크로니는 그 반응이 꽤 재밌다는 듯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셨지만, 흩어진 가산과 사람들을 결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깥 나랏일이 중요한가요? 당장 집안이 개판인데.”
치익. 그는 궐련을 꺼내 물더니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미간을 문질러 댔다.
“어찌 되었습니까? 범인은 잡았습니까?”
“모릅니다.”
크로니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말을 알고 있는 일행들은 겸연쩍은 헛기침만 해 대며 시선을 피했다.
“아카디 백작께서는 강골이시거든요. 자신이 죽으면 이득을 보는 사람을 줄지어 죄다 죽였습니다. 그러니 누가 시도했는지는 몰라도, 죽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안은 이 충격이 무엇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가문 일원을 모조리 죽였다는 것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일이 어디선가 일어났다는 것? 그것도 아니면…….
“이런, 놀라셨군요.”
“크로니 경. 도련님은 아직 어리십니다.”
“하하. 미안합니다. 워낙에 영특하시니 내 가감 없이 말하고 말았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요.”
“네?”
이안은 넋이 반쯤 빠진 시선으로 크로니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조용히 중얼거리는 말.
“그렇네요. 줄 세워 보면 되겠군요.”
아버지가 죽으면 이득인 사람들을 말이다.
일단 어머니를 제외하면, 바로 자신이다. 하나 자신은 음모를 꾸미지 않았으니 제외, 그다음은-
‘나를 통하여 이득을 얻게 되는 사람.’
바로, 자신의 후견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한 후견인에게 이득이 돌아가지는 않을 터. 이 말인즉, 어머니 또한 위험하다는 뜻과 같다.
‘어머니 또한 죽이려 할 거야.’
그러면, 그러고 나면-
“이안 도련님?”
…자신을 데려가겠지.
이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시해 단서부터 찾아낸 다음 곧장 어머니에게 알리려고 했으나, 아니다. 한 시라도 빠르게 전하는 게 좋겠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곁을 지키고 있는 탓에 저리 오랫동안 공들여 죽일 수밖에 없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아니다.
‘곁을 지킬 이도, 의문을 제기할 자도 없으니, 일순간이다.’
어머니는 단숨에 죽게 되리라.
이안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자, 일행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똑똑한 아이라도 역시 아이는 아이구나.
“이런, 도련님. 그러시다 부인께 한마디 듣겠습니다.”
“예, 그러게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냐고 하시겠군요. 이안 님, 너무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중앙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답니다.”
“크로니 경. 경도 무어라 말씀해 보십시오. 도련님이 겁을 먹으셨습니다.”
크로니는 궐련 연기를 후- 뱉으며 아이의 안색을 살폈다. 글쎄다. 겁을 먹긴 먹었는데, 과연 아카디 백작 사건 때문에 그런 것일까?
“이안 숙부.”
그는 다정하게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델가는 평화롭지 않습니까? 재산을 나눠 가지려고 싸우는 형제자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안은 혼자다. 거대한 저택과 영지 그리고 가산을 상속받는 유일한 아이.
“영주님을 노리는 불손한 세력도 없답니다. 영주님이 저리 편찮으신 것은 그저 건강상의 문제이지 않습니까?”
크로니가 질문하며 아이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찰나의 흔들림. 설핏 스쳐 지나가는 두려움.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눈빛. 대답을 주저하는 입술…. 반응이 투명했다.
이안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쿠웅.
위층에서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다들 동시에 천장을 올려다봤다. 자신들이 묵는 방 아니던가? 무슨 일이지?
“아, 저-”
이안은 뒷걸음질을 치더니 아무렇지 않게 서재 문을 잡았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습니다.”
“예, 도련님. 그리하십시오.”
“혼자 가실 수 있지요?”
일행들이 무례한 말과 함께 낄낄댔으나 이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 방을 박차고 나가 버렸으니.
이를 본 일행은 몸을 풀며 느지막이 일어났다.
“이만하면 되었지요? 조그만 게 질문이 꽤 날카롭습니다. 곤란해서 죽는 줄 알았네요.”
“그러게요. 영민한 것이 보통이 아닙니다.”
“저런 게 천재지요. 롤프 부인이 직접 봐야 할 겁니다. 덜떨어진 제 자식을 갖다가 자꾸 천재라 우겨 대는 꼴이…….”
“다들 잠깐.”
크로니가 궐련 재를 툭툭 털며 말을 끊었다. 떠들던 일행이 뚝 말을 멈추고는 그를 돌아봤다.
“일정을 수정합시다.”
“예? 어떻게 말씀입니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반문하는 자는 없다. 크로니가 저리 생각한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오늘, 영주님의 잠자리를 봐 드려야겠습니다.”
“오, 오늘이요?”
오늘 숨을 끊어 버리자는 뜻.
일행이 당황하자, 크로니는 궐련으로 이안이 앉았던 자리를 가리켰다.
“못 보셨습니까? 아이는 거짓말이 능숙하지 못하거든요.”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아이는 아이. 찰나의 표정이 너무도 적나라하여 귀여울 정도였다.
“이안은 지금 암살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이 혼자 그리 여긴 것일 수도 있지만, 글쎄요. 아무리 영특하여도 거기까지는 아닐 가능성이 더 크겠지요? 그럼 어디서 흘려들었겠습니까?”
바로 제 어미다. 어미가 의심을 하고 있으니 그 아들 역시 저리 반응한 것이다.
그 말에 일행들의 안색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인이 의심하여 조사를 시작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군요.”
“그게 사실이면 서두르는 게 맞습니다.”
“바로 시행하시지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크로니의 제안에 수긍했다. 그러곤 바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택 곳곳에 심어 둔 사용인들에게 명령을 전달해야 하므로.
크로니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역할을 분배했다.
“경은 집사를 만나서 전달하시고-”
“예, 알겠습니다.”
첫 조력자, 집사.
그로 인해 저택 곳곳의 사용인들과 연결된다.
“저는 잠시 위층을 다녀오겠습니다.”
“위층이요?”
“쿵 소리가 났지 않습니까?”
확인해 봐야지요. 혹 압니까? 쥐새끼가 숨어들었을지. 모두가 방을 나서자 서재는 조용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책상 서랍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마력석 브로치, 이안이 수업 복기를 위해 녹음기로 사용하는 그것이 모든 걸 듣고 있었음을.
정작 그것의 주인인 이안도 그 존재를 잊은 것 같지만, 어쨌거나 브로치는 어둠 속에서 계속 빛나고 있었다.
* * *
철컥. 철컥.
머리핀으로 문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리던 해나가 복도 좌우를 살폈다. 혹 누가 오지는 않는지 살피는 눈치였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아니면 긴장해서 그런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철컥.
‘아, 열렸다.’
몇 번의 고전 끝에 침실 문이 열렸다. 해나는 머리핀을 다시 뒤통수에 꽂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는 것까지 잊지 않고 완벽했다.
‘어디 보자.’
그녀는 우선 눈대중으로 대충 주위를 둘러보다가, 망설임 없이 트렁크 가방들 쪽으로 돌진했다. 가방이 많았다. 대략 열댓 개 정도.
“아이고, 뭐가 많네.”
아예 처음부터 며칠 묵을 생각으로 온 게 분명했다. 옷가지부터 시작해서 책 등의 잡동사니가 가득했으니.
해나는 착착착 물건을 흩트리지 않고 짐을 뒤적거렸다.
‘…독 같은 건 없는데.’
의심스러운 물건은 없어 보였다. 하긴, 애초에 범인이라면 직접 일을 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해나는 빠르게 여기저기를 뒤지다 가방 밑에서 웬 편지 뭉치를 찾아냈다.
“이거다!”
짜잔! 해나가 월척을 건진 것처럼 편지 뭉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 순간 깨닫게 된 사실.
“아. 맞다. 나 글 못 읽지?”
이런 멍청이! 해나는 이마를 퍽퍽 쳐 대며 자책했다. 하나하나 외워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져가자니 분명 잠입 흔적을 들킬 것이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인장’ 위주로 기억하기로 했다. 저들이 누구와 연락을 주고받는지 정도만 알아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메모지!’
해나는 침대 옆에 마련된 메모지를 가져와 글자를 베껴 썼다. 사실상 그린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였지만, 이안이라면 잘 알아볼 수 있을 게다.
‘조금이라도 베끼면…….’
납작 엎드려 꼼지락거리던 해나의 손가락이 일순간 한 편지에서 멈추었다.
‘어? 이거 하델에서 나간 건가?’
하델 우편국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한평생 살았던 동네 직인은 알아보지!
해나는 봉투를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하델에서 보낸 건데, 저택 인장은 없다. 저택에서 공식으로 발송한 게 아니라는 뜻.
‘아.’
직감적으로 이들이 하델 영지에서 내통하는 자라는 걸 알아챘다.
해나는 다른 건 다 뒤로하고 그 편지를 중심으로 베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필체, 어디서 많이 봤는데…….
‘까만 건 글이고 흰 건 종이라 하지만… 왠지 굉장히 익숙하단 말이지. 왼쪽으로 기울고 날렵한 글씨체가…….’
해나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이었다.
철컥.
누군가 침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소스라치게 놀란 해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바깥의 상대 역시 문을 열고자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철컥, 철컥.
끼이익.
‘히익!’
해나는 종이를 품에 그러안고서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내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조용히 방 안을 서성이더니, 탁자에 놓인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뭐지? 뭐지?’
해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연신 눈알만 굴려 댔다. 그러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발이 갑자기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바로 코앞에서 멈추는 구두.
해나는 눈앞의 구두가 상당히 익숙하다는 걸 알아챘다. 어디서 봤더라……?
“어이. 여기서 뭐 하나?”
그때, 뒤따라 들어오는 한 남자. 크로니의 지시를 받아 침실을 살피러 온 일행이었다.
“……!”
해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구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더불어 방금 전 편지에서 보았던 익숙한 글씨체의 주인 또한.
“잘 됐군. 마침 할 얘기가 있었거든,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