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69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69화(869/935)
제869화. 어머니의 당부
벌컥!
“오, 부인. 오셨습니까?”
“아무리 일이 바쁘셔도 그렇지, 어찌 이 시간까지…….”
부인이 저택에 도착했을 때, 영주는 죽어 있었다. 그가 토한 피만으로 이불 서너 채를 적실 정도로 온 사방이 피였다.
창문이란 창문을 죄다 열어 두었음에도 쉬이 빠지지 않는 피비린내. 캘리 박사가 면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고개 숙였고, 시종들이 다가와 울먹였다.
“마, 마님.”
“흐윽, 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부인의 눈동자는 곧 깨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안 그래도 흰 피부는 더욱 창백해졌고, 입술은 생기를 잃었다. 그녀는 상황을 단번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인, 상심이 크시겠지만 우선 장례 준비를-”
크로니가 다가가 위로를 전하려는 순간이었다.
타앗!
이안이 달려들어 그녀의 몸을 껴안았다. 그러고는 크로니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경계하는 투가 형형한 터라, 크로니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두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숙부께서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어머니께 다가오지 마십시오.”
“저는 위로를 전하려 한 것인데요.”
“그 위로, 내가 하겠습니다.”
크게 휘청인 부인이 제 아들의 어깨를 붙잡으며 단단히 섰다. 크로니와 일행들은 빠르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잠시, 잠시 저희끼리만 있게 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부인. 마지막 인사를 하시지요.”
“다들 나가자고.”
크로니의 손짓에 일행이 침실 밖으로 나갔고, 시종들 역시 천천히 자리를 비워 주었다.
둘만 남은 방 안, 모자(母子)는 동시에 침대 위를 돌아봤다. 부인은 잠시 모서리에 기대었다가, 결국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 제 얘기 좀 들어 보셔요. 저택에 배신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아버지의 죽음은 이상해요. 다음은 어머니를 노릴 것입니다. 서둘러 안전한-”
“이안.”
쉬이이. 부인이 아들의 팔을 붙잡고서 속삭였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듯이. 이안은 자신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이안. 잘 들으려무나.”
“어, 어머니.”
“가문의 인장은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네가 영지를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말고, 맡겨서도 안 돼. 그것이 없어도 영지 자체가 운영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잊지 말려무나.”
부인은 오랫동안 생각해 둔 걸 이르는 것 같았다.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단호한 음성이었다.
“왜,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리고 하이만 은행에 가문의 이름으로 된 계좌가 있다. 금화 500닢 정도 들어 있는데, 혹 황궁에서 세금을 납부하라 하면 그 돈을 사용해. 네 이름으로 된 건 오로지 네 생활에만 사용하고.”
“무섭습니다. 그만하십시오.”
“자크 백작은 어미의 스승이시다. 믿을 만한 분이니 혹 어려움이 있다면 그분께 도움을 청하되, 역시나 인장을 달라 한다면 바로 뒤돌아 나오거라.”
“어머니!”
“들어!”
이안이 그만하라며 소리치자, 부인이 아들을 꽉 껴안았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저택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영주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그때가 오기 전에 그녀는 아들에게 알려 줄 게 많았다.
“동관 지하 창고에 보면 금박 장식이 된 상자가 있다. 그곳에 너를 위한 여러 가지를 담아 두었으니 잊지 말고 꼭 사용해라, 아들아.”
부인의 말끝이 조금씩 떨려 왔다.
“혹시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이 있어도 침묵해라. 섣불리 나섰다가는 도리어 화를 입는 법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홀로 남은 고작 다섯 살 난 아이가 영주 시해를 주장한다 한들, 누가 들어나 주겠는가? 오히려 싹을 잘라 내고자 꼬투리를 잡으려 들 것이다. 영주를 죽였는데 코흘리개 아이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저 살아남아.”
“어, 언제까지요?”
“너를 지켜 줄 사람들이 생길 때까지.”
너무도 모호한 말이었다. 아이가 어려워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부인이 아이의 눈가를 닦아 줬다. 혼란스럽겠지만 괜찮을 게다. 너는 내 아들이니까. 너무도 영특한 아이니까.
“마지막으로-”
아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죽어 버린 아비의 고개가 그들을 향해 치우쳐져 있었다. 눈은 감겨 있지만, 마치 뜻을 함께한다는 듯.
“너는 자랑스러운 하델의 적자이자, 황실의 핏줄이다. 그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해. 알겠니?”
“…….”
“대답해.”
“예, 어머니.”
“네가 누구라고?”
“이안 하델입니다. 저는 황실의 핏줄입니다.”
“그래. 명심해라. 이안, 너는 귀한 아이다.”
사랑한다고, 어미가 미처 저택의 변절자를 솎아 내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그리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녀 역시 눈물을 흘릴 것 같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인이 반듯이 허리를 세우며 일어났다.
“이제 그만-”
화악!
하지만 이안이 어머니에게 확 안겨들었다. 뜻밖의 행동에 놀란 부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안은 울면서 품에 파고들었고, 부인 역시 망설이다 아이를 안았다.
“죽지 마십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머니, 죽으면 안 됩니다.”
부인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이안의 이마에 입 맞췄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 이안을 안고서 침실 밖으로 나갔다.
“시종장!”
“예, 마님.”
“이안을 침실로 올려라.”
“어머니!”
“그리고 크로니 경.”
복도 한쪽에서 궐련을 태우던 크로니와 일행이 몸을 틀어 쳐다봤다. 권태가 묻어나는 눈빛들. 부인은 이를 악물고는 모두에게 잠시 보자는 듯 고갯짓했다.
“잠시 응접실로 올라가시지요. 나눌 얘기가 있습니다.”
“장례식 절차에 관한 것인가요?”
“…여러 가지입니다.”
이안은 시종장에 안겨 가면서 끝까지 어미를 눈에 담았다. 드레스를 입고 고고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전사와 같았다.
그러다 돌연, 이안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말을 남겼는지 알아챈 것이다.
‘아.’
어머니는 증거를 잡았구나. 저택의 배신자에 대해서도 알아챘고, 그것이 누구와 관련 있는지도 알아냈어. 그래서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단하려 하는 거구나.
이안이 울며 발버둥 치자, 시종장이 커다란 손으로 두 눈을 가리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끼이익.
그녀는 이안을 침실에 밀어 넣으며 당부했다.
“도련님! 제발 오늘만큼은 조용히 계셔요. 저택이 어수선하지 않습니까?”
“이봐, 있잖아-”
“마님께서 오셨으니 다 괜찮을 겁니다. 내일 아침 일찍 깨워 드릴게요. 오늘은 이만 주무세요. 해나 이것은 대체 어딜, 아! 해나! 이 망할 것!”
시종장은 단단히 화가 났는 지 멀리서 달려오는 해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너, 어딜 갔다 이제 와? 도련님 모시지 않고! 저택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기는 해?”
“죄, 죄송합니다!”
“나중에 회초리질 각오해라. 이안 님 재워 드리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 알겠어?”
“예, 아,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럼 주무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
시종장은 그리 이른 다음 후다닥 다시 본관으로 달려갔다. 영주가 죽었으니 그 뒤처리가 산더미만큼 쌓였으리라.
해나는 시종장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 이안에게 무릎 꿇었다.
“도, 도련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두 손을 싹싹 빌어 댔다. 제때 나올 수만 있었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게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이안이 물었다.
“손님방 안에 있었어?”
“예. 크로니 그분이 나가질 않으시니 꼼짝없이 침대 밑에 숨어 있었습니다. 집사가 몰래 들어온 뒤로 경계를 강화한 건지, 방에 계속 한두 명씩 남아 있지 뭡니까.”
“누구? 집사?”
“도련님. 영주님을 저리 만든 것, 다 저놈들 짓입니다.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이 귀로 모두 들었습니다. 경비병 앞에서 증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지 일부분도 베껴 왔다며 구겨진 종이를 건넸다.
이안은 그걸 받아 들고서 숨을 골랐다. 울음이 쏟아진 탓에 머리가 아파 왔다.
“이안 님?”
“해나, 지금 어머니가 크로니 일행과 만나고 계셔.”
“예? 어째서요?”
“어머니도 알아채신 것 같아. 증거를 찾으셨는지 그들을 고발하실 기세였어.”
“그럼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기다려.”
해나가 달려가려 하자, 이안이 해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어머니는 확신 없이 상대를 고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증거가 있겠지.
“어머니의 의사를 물어봐야 해. 어떤 식으로 카드를 사용하실지 모르니까.”
“아, 그렇겠네요. 저놈들이 마님의 증거를 모두 부정하고 뻔뻔하게 나오면, 그때 제가 확! 다 불어버리겠습니다. 어찌하지도 못하게요!”
해나가 주먹을 꽉 쥐며 결심을 다졌고,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시금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것이 극도의 긴장 상태 때문인지, 아니면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불길한 감각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안이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이안 님!”
“아, 아파…….”
“왜, 왜 그러세요? 잠시만요.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
이안은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정신을 붙잡고자 애썼다…….
-…이안아아아.
-이안……!
…기억이 드문드문 잘려 나갔다. 캘리 박사가 와서 무어라 말하는 모습과 필리아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오가고,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의 변화가 종이 구겨지듯 뚝뚝 끊어졌다.
-이안 님…….
-…이안 경.
머릿속에서 웅웅 울리는 낯선 음성들. 각기의 호칭으로 이안을 깨워 댔다. 분명히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어찌 이리 반가울까……?
이안은 그 소리를 따라 걷다가, 문득 정신을 번쩍 차렸다.
“……?”
아이는 땀을 흠뻑 흘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곁에는 필리아와 해나가 웅크려 잠들어 있다. 밤새워 간호하다 까무룩 잠든 것 같다.
이안은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와 본관으로 향했다.
스윽.
새벽 동이 막 터오는 시간. 모두 잠든 터라 저택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이안은 조심스레 어머니를 찾아 침실로 올라갔고, 이내 문을 두드렸다.
똑똑.
“어머니. 저 이안입니다.”
주무십니까? 어제 대화는 어찌 되었습니까?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이안은 손잡이를 돌려 열린 문틈으로 안쪽을 살폈다.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
이상하지 않나? 어머니는 언제나 촛불 두어 개를 켜 두고 주무시는데. 설마, 밤사이 못 주무신 것일까? 하긴, 그럴 수도…….
툭.
두어 걸음 걷자, 발치에 무언가 치였다. 순간 이안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점차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집사?”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은 집사였다.
이안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그는 집사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이내 믿을 수 없는 광경과 마주했다.
“……!”
천장 샹들리에에 목을 맨 어머니. 그녀의 빛바랜 눈동자가 아이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레스 자락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꿈인가?’
아직 꿈을 꾸고 있나? 현실 감각이 하나도 없다. 이안은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