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7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72화(872/935)
제872화. 고집불통 다섯 살?
와그작! 와그작!
로만드로는 굴라볶음을 연신 우물거리며 저택 분위기를 살폈다. 지방 영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저택이건만, 줄초상 탓일까, 알게 모르게 음침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다.
그때, 저 멀리 관 매장을 마친 이안과 크로니 일행 그리고 시종들이 저택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아아. 정말 황홀했지.’
로만드로는 턱을 괴고서 이안을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아름다운 빛이 선명히 떠올랐다.
살면서 본 광경 중 제일이다. 아마 마법부 사람들도 이를 봤다면 난리가 났으리라.
‘정말 미래가 기대돼.’
그가 헤벌쭉 웃음을 흘리려는 순간이었다.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음?’
크로니가 이안에게 다가가자, 시종들이 어물쩍 자리를 피하는 것 아닌가? 동작들이 어색한 게 분위기가 수상했다.
로만드로는 남은 굴라를 입에 털어 넣고서 광경을 세심히 살폈다. 멀어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이안 숙부. 잠시 대화 좀 하시겠습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크로니는 자세를 낮춰 이안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관을 매장하면서 눈물을 펑펑 흘린지라, 눈가가 살짝 부어 있었다.
“숙부. 황궁으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정말 걱정스럽다는 듯, 한껏 안타까운 투였다.
“황궁은 정말 무서운 곳입니다. 숙부처럼 어린아이가 가서 견딜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지금껏 귀족 출신 마법사가 없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황궁의 마법사 모두 평민 출신이라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못 배운 걸 넘어 부랑아나 다름없는 거친 작자들이 넘쳐나는 곳이지요. 그뿐입니까. 권력에 눈멀어 온갖 간계를 펼치는 곳이 황궁입니다. 그래도 꼭 들어가시겠다면… 조금 더 장성하신 후에 입궁하심이 안전합니다.”
“안전…….”
“황궁에서 일해 보았기에 아는 것이고, 숙부와는 피를 섞은 가족이기에 이리 만류하는 것입니다.”
크로니가 이안의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내 말을 들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큰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라는 경고의 눈초리였다.
이안은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안전? 제 부모를 죽인 자와 함께하는 것보다 위험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안은 그리 대꾸하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크로니 경. 걱정해 주시는 마음 잘 알겠습니다.”
“그래요. 영리한 분이시니 제 뜻을 잘-”
“하지만 황궁에서 이미 손님이 오셨고, 절차라는 것도 남아 있으니 그에 따르겠습니다.”
황궁이 무섭지 않다고, 안전할 것 같다고 말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안은 황궁을 본 적 없고, 크로니는 그곳에서 일하는 자였으니까. 그랬다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치부로 여겨 무슨 짓을 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일단 로만드로를 앞세워 그자를 따라갔다가 그다음 결정하겠노라 보류하는 쪽이 나을 터다.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크로니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안 숙부. 제 말을 이해 못 하신 것 같군요.”
“아니요. 이해했습니다. 저를 걱정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이안은 보란 듯이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짜증이 울컥 치솟았다. 크로니가 아이의 팔을 단단히 붙잡으며 무어라 소리치려는 순간이었다.
“실례합니다. 일은 다 끝나셨는지요?”
어느새 내려온 로만드로가 다가와 물었다.
그의 등장에 크로니는 어색한 동작으로 뒤돌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덕분에 무사히.”
“별일 없이 마무리되어 다행입니다.”
“저기, 로만드로?”
크로니는 생각을 바꿨다. 아이가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으니 차라리 마법부 쪽을 손보는 게 낫겠다고. 그는 이안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며 걱정스레 전했다.
“이안 숙부가 마법사의 자질을 지녔음은 진실로 놀라운 일이네만, 막 부모님을 여의어 정신이 없으신 터라…. 이리 바로 황궁으로 가시는 게 걱정이 되오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상속 절차도 있고, 또 워낙에 어리시니 황궁 내 예법이나 문화에 익숙지 않아 실수를 범하실까 우려가 돼서 말이오. 시간을 잠시 두고 충분한 교육 후에 입궁하시는 게 어떨까 싶소만.”
시간을 벌 목적이다. 이안이 마법부로 들어가기 전, 유산 상속 문제부터 해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일을 이렇게까지 벌였는데? 하델가의 재산이 사용되어야 할 곳이 너무도 많았다. 여기서 판이 엎어지면 정말 곤란했다.
“흐음.”
로만드로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는 소리를 내자, 이안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니라고, 황궁에 가고 싶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자신을 살벌하게 노려보는 크로니의 시선에 가로막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글쎄요. 이안 도련님이 어리시긴 하지만 딱 보아도 흠잡을 구석이 없습니다. 예의나 격식같이 기본적인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마법적 재능이 엄청나십니다. 아, 오해는 마십시오. 이 정도면 저기, 까막눈 바보라 해도 두 발 벗고 나서서 모셔 갈 수준입니다.”
로만드로가 이안을 보며 씨익 웃자, 이안 역시 얼굴이 조금씩 환해졌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로만드로. 내 말이 어려웠나?”
“예?”
크로니의 날 선 대꾸에 로만드로가 멈칫했다.
“유산 상속 문제 등 처리할 것이 산더미일세. 황궁의 대의도 중요하지만, 가문 내의 혼란한 상황 수습이 먼저라는 뜻이오. 하델 영주 내외께서 돌아가신 지 이제 겨우 일주일째인 것을 간과하신 것 같은데.”
“아아.”
로만드로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안의 표정을 살피고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 문제가 있으셨군요. 하긴, 크로니 경께서도 본인의 일이 있으실 터인데, 어린 숙부를 대신하여 뒷수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으시겠어요.”
짜악! 로만드로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 쳤다.
“그럼 마법부에서 돕겠습니다.”
“…뭐라고?”
“크로니 경께서는 돌아가시어 본인 일을 보십시오. 이안 도련님의 상속 문제는 마법부에서 대신 처리하도록 하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게.”
“하! 이것 보시게-”
“에헤이.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마법사분들의 편의를 봐드리는 게 제 일이기도 해서요. 상속세만 납부하면 뭐, 번거로운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이안 도련님, 괜찮으시지요?”
크로니를 대신해서 아이를 도와, 마법부 자체적으로 하델가의 가산을 정리하는 것.
이안은 고개를 필사적으로 끄덕였다. 그 누가 맡는다 한들 며칠 전에 처음 본, 제 부모를 죽인 자보다 더하겠는가? 이안이 수긍하자, 크로니가 버럭 소리쳤다.
“무슨 말을! 외부인에게 가문의 상속 절차를 맡기라는 것인가?”
“외부인이 아니지요. 제가 아니라 마법부에서 하는 것이니까요. 혹 크로니 경께서는 마법부를 신뢰하지 않으십니까?”
로만드로의 물음에 크로니가 멈칫거렸다. 마법부는 황궁의 중추 부서 중 하나. 중앙 권력의 핵심이기도 한지라,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곧 황제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마력운용자로 판명된 순간부터 이안 도련님은 마법부의 재원입니다. 도련님의 일이 곧 마법부의 일이나 마찬가지니,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는 게 맞지요. 최고의 전문가를 고용하여 상속에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니 크로니 경께서는 걱정 거두시고, 예, 바쁘신 일이 있으시다면 먼저 올라가셔도 좋습니다.”
와아. 이안의 눈이 반짝거렸다. 폭력 하나 없이, 그저 말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 무엇인지 목격한 참이다. 실로 놀랍다. 제 부모를 죽이고 목숨줄까지 움켜쥔 상대를 이리 가만히 서서 쳐 내다니.
크로니는 자충수를 두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이안 도련님?”
“예, 로만드로.”
“일정이 다 끝나셨다면 저랑 잠시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크로니 경이 말씀하신 대로 황궁에 관한 이야기도 좀 나누고요.”
중앙까지 마차로 고작 네다섯 시간 걸리는 거리다. 아마 내일 오후쯤이면 마법부에서 답신이 올 것인데, 그 전에 주의 사항을 미리 전달하면 좋을 것 같다.
이안은 조심스레 크로니를 돌아보고는 이내 로만드로를 따라 쫑쫑 걸었다. 크로니의 눈총이 등을 마구 찔러 댔지만 상관없다. 더 이상 따갑게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이안은 저택에 대고 소리쳤다.
“들어가요, 해나!”
“해나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요?”
“아.”
맞다. 마력석 갖고 온 이후로 갑자기 사라졌지? 이안은 의아한 낯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른 시종에게 찻잔을 준비하라 일렀다.
“…….”
크로니는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일이 꼬여도 한참 꼬였다.
“…제기랄.”
“로만드로 저놈, 주제도 모르고…….”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크로니 경.”
“마력운용자로 판명된 이상 빼돌릴 수는 없습니다. 마법사 자체가 중요 재원인 데다, 여차했다가는 마법부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참 나, 무슨…. 날벼락이 따로 없습니다그려.”
크로니는 궐련을 꺼내 물고서 휘황찬란한 저택을 눈에 담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지. 이안 하델을 이용할 수 없다면, 아이는 아무 가치가 없다. 되레 걸림돌이나 마찬가지지.
차라리-
“정리하지.”
아이도 정리해 버리고, 다음 상속인이 될 자에게 미리 수를 써 두는 것이 낫겠다.
여유가 많지 않았다. 아이가 황궁으로 들어가 마법사로서의 자아를 각성하면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므로, 그 전에 처리해야 한다.
“황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도적 떼를 가장한 암살자를 보낼 것이다. 마법부 소속 관료들이 있긴 하나, 그들은 모두 일반인. 조금만 힘을 쓰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게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젠장, 일이 복잡해졌어요.”
“서두르자고!”
“예, 가시죠.”
일행들은 신호를 주고받으며 저택 밖으로 달려갔다. 크로니는 한참이나 서서 궐련을 태우다가, 이안과 로만드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 *
한편, 황궁.
로만드로의 소식을 전해 들은 마법부는 소란스러웠다. 마법부 장관 아레나를 중심으로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회의 중이었는데, 그들은 로만드로의 보고서를 보며 말도 안 된다는 듯 미간을 꾹꾹 눌러 댔다.
“이안 하델? 하델 가문이면 황가의 방계이지 않습니까? 거기 영주 내외가 이번에 죽었다고요?”
“그렇다고 하더군. 영주는 오래된 지병으로, 부인은 영주가 죽은 다음 날 목매어 자결했대.”
“헐. 미친.”
“뭐, 들리는 소문으로는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아니고. 드디어 처음으로 ‘마력운용자 특별보호법’ 사례가 나왔구만. 이안 하델, 다섯 살.”
“다섯 살이요? 와, 너무 어리다.”
“마냥 좋아할 일은 아냐. 다른 마법사들이랑 똑같은 방식으로 입부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거든.”
입부도 입부지만, 그 후가 더 문제다. 업무? 웃기는 소리. 숫자나 제대로 세려나 모르겠다.
다른 마법사들 역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씩 덧붙였다.
“많다마다요. 일 보기도 바쁜데 애까지 봐야 합니까?”
“게다가 귀족이라면서요? 쬐끄만 게 얼마나 고집불통일지… 눈에 훤합니다.”
“미리 말하지만 전 못 해요.”
“나도 안 합니다. 보모는 다른 데 가서 구하세요.”
“일단 마력운용자인 것만 확인해 두고 시간 좀 지나면 데리고 오죠? 부모는 없어도 보호자는 있을 거 아닙니까.”
“뭐, 그렇긴 한데…….”
장관은 서류를 팔랑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법대로 하자면 해당 아이는 성인까지 마법부에서 보육하게 되어 있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그녀는 혀를 끌끌 차며 일단 보고서를 한쪽으로 치웠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일단 중앙으로 올라오긴 할 거니까, 애 보고 결정해. 나도 고집불통 어린애 비위 맞추면서 일할 생각은 없거든.”
“예, 알겠습니다.”
귀족 태생, 다섯 살짜리 아이.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아이가 어떤 성정일지 눈에 훤했다.
마법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