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7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75화(875/935)
제875화. 마법부 특제
“워워워.”
경비병의 신호에 말이 투레질하며 천천히 멈춰 섰다. 이안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마을을 둘러봤고, 곧 자그마한 팻말을 발견했다.
‘온리홀 마을.’
중앙을 통해 흐르는 강 중 하나인 온리홀 인근에 자리한 작은 마을. 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듯, 곳곳에 여관 전단과 각종 홍보지가 붙어 있었다.
경비병은 로만드로에게 길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여관으로 가십시오. 마을에서 제일 큰 곳입니다. 짐부터 대충 정리하시고, 에… 조사하고 싶다 하셨지요?”
“그렇네.”
“네 시쯤 오시면 됩니다. 그때까지 애들 준비해 놓겠습니다.”
“고마워잉.”
로만드로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경비병의 옆구리를 연신 콕콕 찔러 댔다. 그 넉살 좋은 행동에 경비병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필리아를 비롯한 의사들이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옮기고, 로만드로는 여관으로 짐을 이동했다.
“도련님. 정리될 때까지 여기서 저랑 같이 있어요.”
“해나, 너는 치료 안 받아도 돼?”
“손바닥 살짝 까진 게 다인데요, 뭘. 이 정도는 침 바르면 낫습니다.”
해나의 무릎에 앉은 이안이 한가로이 햇살을 쬐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도적 떼가 달려들어 죽네, 사네 난리였건만, 모두 꿈이었다는 듯 평화롭기 그지없다.
해나 역시 긴장이 풀렸는지 눈을 감고 가만히 따스함을 음미했다.
“많이 놀라셨지요?”
“조금. 하지만 괜찮아.”
살아남았으니까.
이안은 발끝을 동동거리며 네르사른을 돌아봤다. 그는 사람들을 도와 마차의 짐을 여관 안으로 나르고 있었다.
‘정말 신기해.’
대사막이라는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이 마침 딱 운 좋게 주변에 있어 자신을 도와주다니 말이야. 네르사른은 부족장의 유언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자신을 구해 준 이상 그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터였다.
해나가 손수건으로 이안의 볼에 붙은 피를 톡톡 닦아 주려던 때였다.
타닥타닥!
히이잉!
마을 입구 쪽에서 들리는 또 다른 인기척. 경비병인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내밀었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럇!”
크로니와 그의 일행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이끌고 급하게 마을로 들어서더니, 이안을 발견하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숙부!”
타앗!
크로니가 단숨에 말에서 내려 이안에게 달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듣고서 안타깝다는 미소를 지었다. 내막이 어찌 된 것인지도 모르고.
“숙부. 소식 들었습니다. 도적을 만났다고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예, 크로니 경. 모두가 구해 준 덕분에 저는 무사합니다. 그것 때문에 이리 오셨습니까?”
“그것 때문이라니요. 당연히 와야지요! 지금 숙부의 유일한 보호자는 저 아니겠습니까?”
마법부에 입부하기 전이니 틀린 말은 아닌지라 이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크로니는 이것 보라며 아이의 손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렸지요. 영지 밖은 위험하다고요. 중앙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숙부를 노리는 음험한 자들이 득실거릴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다시 하델 영지로 돌아갈까요? 가만히 저택에 숨어 지낸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에는 저 또한 포함되고 말이지요. 보십시오. 숙부의 작은 욕심 때문에 몇 명이나 죽었습니까? 사실상 마지막 기회입니다-
크로니는 그리 이르는 것 같았다.
“숙부는 너무 어리시고 가진 것은 많으시며, 동시에 안위를 지킬 사람이 주변에 없지 않습니까.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중앙에 올라가도 될 것입니다. 마법부에는 제가 말씀을 따로 드릴게요. 그리해도 됩니다. 이안 숙부.”
해나가 차마 끼어들 수 없을 만큼, 크로니의 설득은 치밀하고 차분했다. 이안은 그를 가만히 올려보더니 웃었다.
“걱정은 감사합니다. 크로니 경.”
웃어? 이것 보아? 크로니는 예상치 못한 이안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미 황궁에 가겠노라 연락을 했으니, 번복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요. 도적 사건은 ‘우연한’ 일 이잖아요. 마음에 두지 않으려 합니다.”
“…우연이 아니라 계시였다면요?”
“크로니 경께서는 앞으로 내게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그리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이안은 마법부를 어려워하는 크로니의 반응을 보고서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 냈다.
‘여기서 도적들이 나를 노린 것이라 하면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나는 로만드로의 말마따나 어려서 도적과의 연관성을 잇기 힘드니까.’
하지만 자신이 아니라, 마법부가 목적이었던 것 같다고 흘리면?
로만드로와 마법부 직원들을 해치려는 의도가 있었노라 살짝만 틀어 준다면, 조사관들도 쉬이 넘기지 못할 것이었다. 마법부 역시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마법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면밀히 살펴볼 게 분명하다.’
이안은 크로니에게 꾸벅 인사한 다음 여관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곁에는 아무도 없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자신을 따라오는 해나, 짐을 옮기다 맞이하는 로만드로, 크로니를 의아한 낯으로 쳐다보는 네르사른, 정신없는 와중에도 눈인사를 건네는 필리아…. 이들이 곁에 있어서 그런지, 이전처럼 두렵지 않다.
‘이전처럼?’
불현듯 떠올린 단어에 이안의 생각이 멈추었다.
‘이전처럼이라.’
부모님이 죽었던 그날들을 이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날짜로 따지면 겨우 보름 남짓한 시간인데. 이전이라 하면, 더 먼 과거의 어느 날을 지칭하는 것 아니던가.
“이안 님?”
“아, 로만드로.”
“네 시쯤 일 보러 갈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셔요. 배는 안 고프고요?”
“…고파.”
“해나. 식당으로 모시어 식사하게.”
“예, 알겠습니다. 도련님. 이쪽으로.”
해나가 이안을 안아들고는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로만드로는 짐 가방을 바닥에 두고서 저 멀리 경비대장과 대화하는 크로니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나를 노린 것 같습니다.”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만, 이안의 말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아이가 그리 여길 수밖에 없는 모종의 연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혹,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제일 의심되는 인물은 바로 크로니.
‘재산 상속 권한이 어찌 되지?’
이안이 없으면 하델 영지의 처분권이 누구에게로 가는지가 중요했다.
로만드로는 중앙으로 올라가면 그것을 확인해 보겠노라 여기며 크로니와 경비대장의 대화를 눈여겨 살폈다.
“도적은?”
“아직 정신 차린 놈들이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이방인 주먹에 하나같이 정신 줄 놓고 사경을 헤매는 중이다.
크로니는 궐련을 꺼내 물며 인상을 찌푸렸다.
“쯧. 망할 놈들 같으니라고. 이안 숙부께서는 전 하델 영주의 유일한 계승자시다. 영지의 유일한 상속자이시기도 하지. 게다가 얼마 전에는 부모님을 모두 여의는 불행까지 겪으셨다. 그런데 중앙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런 불의의 사고가 또 일어나다니. 나로서는 마음이 찢어지는 일이다.”
“예예, 잘 알지요. 미처 치안을 관리하지 못한 점 송구합니다.”
경비대장이 머리를 크게 조아렸다. 그와 동시에 서로 알 만한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여기서 도적들의 조사가 이루어지면 곤란한 사람이 여럿이다. 경비대장은 크로니의 뜻을 알아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서 덧붙였다.
“경비대장의 명예를 걸고, 제가 아주 혼쭐을 내겠습니다. 이번 피해에 대한 책임을 단단히 지게끔 조치하지요.”
“그래. 잘 좀 해 보시게. 나는 지금 그놈들만 생각하면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언제까지 이런 변두리에서 대장 노릇 할 건가? 황궁으로 들어와야지.”
제국방위부에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하여 능력을 보이라는 뜻이었다.
경비대장은 힘차게 경례하곤 건물로 들어갔다.
* * *
“아니, 이것 보아.”
로만드로는 황당하다는 듯 멈칫거렸다. 경비대의 소맷자락에 흥건히 묻어 있는 피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벌써 네 시가 되었다며 꿍얼거렸다.
“오셨군요.”
“무슨 일 있는 겐가?”
“일은 무슨 일이요. 그냥 할 일 하는 거죠. 도적놈들 태도가 꼴같잖고 건방져서 손 좀 봐줬습니다. 근데 뭘 조사하려고 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별거 없는 것 같던데요?”
로만드로의 뒤에 숨어 있던 이안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러든 말든, 경비대는 미리 얻어 낸 진술서를 로만드로에게 건네며 땀과 피로 엉망인 목덜미를 닦아 냈다.
“신원 조회 끝났고, 전부 수배 내려진 놈들이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근방에 가끔 나타나던 도적들이었어요. 신고 들어온 상단 피해가 두 건, 여행자 피해가 세 건 있는데, 모두 그놈들 짓이더라고요.”
그냥 일상적인 일이었다. 도적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나가던 마차를 습격했고, 하필이면 그게 하델가의 행렬이었을 뿐, 경비병들은 그리 결론을 내린 상태다.
“흐음.”
로만드로는 찬찬히 내용을 살폈다. 마법부에서 서류 작업하던 경험을 총동원하여 어디 하나 수상한 점은 없나 따졌지만, 빈틈이 없다.
꽤 긴 시간 일에 매달렸는지, 경비병들은 궐련을 태우며 각기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조사하겠다 하시면,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음. 여기까지 왔는데 안 하기도 좀 그렇지?”
“아, 근데-”
로만드로를 따라 이안도 들어가려 하자, 경비병이 막아 세웠다. 그는 아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걱정스레 갸웃거렸다.
“아이는 안 들어가는 게 좋겠는데요.”
“어째서?”
“피도 많고, 좀… 보기에 좋지 않아서요.”
로만드로가 이안을 돌아봤다. 어찌할까요? 저 혼자서 들어갈까요?
하지만 이안은 로만드로의 옆에 딱 붙어서는 경비병을 쏘아봤다.
“괜찮네. 그리고 나는 이안 하델일세.”
어디서 감히 아이라 호칭하냐는 꾸짖음이었다.
경비병은 실수했다며 슬쩍 손들 들어 보였다.
“송구합니다. 제가 힘들어서 정신이 반쯤 빠졌습니다.”
“다음부터 조심하게. 로만드로, 들어가지.”
“아, 예예.”
로만드로가 조사실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러자 훅 끼쳐 올라오는 피비린내. 로만드로는 의자에 묶인 채 반 죽어 있는 도적을 발견하곤 경비병들 돌아봤다.
“아니, 이봐!”
상태가 너무 처참하지 않나?
온갖 고문과 폭행으로 성한 곳이 하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질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피의자를 이리 만들면 어찌해?”
“입을 제대로 열지 않으니 경비대의 방식대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잖습니까. 보기에 충격적이니 물리시라고요.”
“그런 뜻이 아니라, 네 시에 조사를 하겠다고 했으면 적어도……!”
적어도 말은 할 수 있게 놔뒀어야지!
로만드로는 그리 소리치려다가 멈칫했다. 크로니와 경비대장이 대화하던 모습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혹시?’
…입막음을 위해 일부러 이리 초주검으로 만든 것일까?
로만드로는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이죽대는 경비병을 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로만드로.”
이제 어찌해?
이안이 나지막이 묻자, 로만드로는 한숨을 쉬며 품을 뒤적거렸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는 수밖에.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방법?”
“아주 오래전부터, 마법부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미치광이 마법사가 하나 있답니다. 마법부 장관까지 하신 분인데, 기행 탓에 그 업적이 과소평가되어 있지요.”
뽀옹!
이안은 로만드로가 꺼낸 분홍빛 약통을 보곤 눈을 끔뻑거렸다. 뽕! 뚜껑 따는 소리가 꽤나 경쾌했다.
“마법부 특제 치료제입니다. 부상자들한테 사용하느라 딱 하나 남았는데, 아깝지만 이놈에게 쓰는 수밖에요. 뭔가 구린 냄새가 나니 도통 물러설 수가 있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