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80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80화(880/935)
제880화. 마법부 애기
이안은 가만히 앉아서 마법부가 돌아가는 걸 지켜봤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게 바로 이런 건가 보다. 마법사들은 바삐 뛰어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서로 부딪히지 않았고, 사무실은 난잡했으나 물건을 찾고자 하면 쉬이 구할 수 있었다.
로만드로는 그런 이안의 곁에 앉아 마법사들의 업무를 설명해 주거나, 부원들에 대해서 넌지시 언질했다.
“황궁 위에는 보이지 않지만, 돔 형태의 보호막이 항시 가동 중입니다. 그걸 유지하는 것이 마법부의 주된 업무 중 하나지요.”
“허공에 쳐 두었다는 말씀이세요?”
“예. 그렇습니다.”
“그쪽으로는 위험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요.”
“1000년이 넘는 바리엘 역사상 딱 세 번, 보호막이 부서진 적 있습니다. 그중 제일 최근은 100여 년 전, 동방의 마법사 때문이었답니다.”
“동방의 마법사.”
와아. 미지의 세계에서 온 미지의 인물이라. 이안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며 입술을 살짝 벌렸다. 로만드로는 킥킥대며 걱정하지 말라 덧붙였다.
“당시 여러 문제가 있긴 했지만 결국은 우호인(友好人)이었습니다. 하나 마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 가이아 마법 수준을 한층 발전시키는 걸 목표로 삼았고, 이리 눈부신 성공을 이루어 냈답니다. 이제 눈먼 마법사가 허공에 꼬라- 아니, 갖다 박아도 끄떡없습니다!”
눈먼 마법사가 어찌하여 허공에 갖다 박았던 거람? 이안이 의아한 얼굴로 웃으며 로만드로의 말을 경청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과거에는 참으로 재밌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이제 이안 님이 그 영광스러운 발전에 함께하실 것이고요.”
“제국의 안전과 번영을 위하는 게 마법사의 소임이라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정확합니다. 가이아에는 제국 소속이 아닌 마법사도 많지만, 각국은 긴밀한 협정을 통하여 동맹을 맺고 있답니다. 혹, 기본적인 외교 관계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로만드로의 질문에 이안이 또박또박 답했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서 공부했다는 듯이.
“예. 서쪽의 버고스 왕조는 바리엘 귀족 출신이며, 남쪽의 클리포포드는 바리엘 황실과 혼인을 통하여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아이고, 누구 자식인지-”
아차. 하델 가문의 자식이시지. 헤벌쭉하여 이안을 칭찬하려던 로만드로가 정신을 바짝 차리며 표정을 바로 했다. 그때, 누군가 슥 지나가면서 테이블 위에 초콜릿을 올려 두었다.
“먹으면서 기다려요.”
“아, 고맙네.”
“로만드로 님은 조금만 드시고.”
“뭐어? 너무해!”
휘잉!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서 얼굴조차 제대로 안 보여 주었지만 말이다.
이안은 덩그러니 놓인 초콜릿을 쳐다봤다. 로만드로가 먹어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지나간 사람은 마력석관리부 소속입니다. 온리홀 마을에서 제가 도적놈에게 썼던 물약 기억하시지요?”
“네. 기억합니다.”
“그걸 주도하여 만드는 부서입니다. 대대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다는 평을 듣습니다만, 어느 분야나 연구자들은 원래 좀 그런가 봐요.”
로만드로가 무어라 일러 대며 초콜릿 껍질을 벗기려던 순간이다. 후다닥 달려가던 마법사가 또 무언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어?”
과자, 사탕, 다시 초콜릿, 그리고 빵…. 마법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며 자신의 비상식량들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조금씩 수북이 쌓여만 가는 환영 선물들. 로만드로는 황당하다는 듯 마법사들을 불렀다.
“아니, 이보게! 내가 저번에 사탕 하나 좀 달라고 했을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제가요? 언제요?”
“이거, 이거 판타캔디에서 나온 20주년 한정판 아롱사태 맛이잖아! 저번에 못 구했다며?”
“그 이후로 구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네!”
하지만 로만드로의 불만은 허공에서 사그라졌다. 마법사들이 바삐 이동하느라 듣지 못한 탓이다. 바쁜 건지, 아니면 쑥스러워서 저러는 것인지, 원.
로만드로가 콧방귀를 흥 뀌어 대며 꿍얼대는 동안, 이안은 초콜릿 하나를 오물거리며 먹었다.
“이안 하델?”
그리고 얼마 후. 업무를 대충 마무리한 마법부 장관 아레나가 보좌관과 함께 로비로 나왔다. 그녀는 이안과 로만드로 그리고 그 앞에 잔뜩 쌓인 간식들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걸 좋아하나 보네?”
하델에서 올라올 때 간식거리만 죄 챙겨 왔나? 마법사들이 오가며 준 것이라며, 예상치 못한 아레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딱 하나 까먹은 초콜릿 껍질을 옆으로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이안 하델입니다.”
“아레나. 마법부 장관이다.”
아레나가 쪼그려 앉아서 이안에게 악수를 청하자, 이안이 그 손을 맞잡았다. 어이구, 작기도 해라. 아레나는 아이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일단 들어가자며 고갯짓했다.
“대충 이것저것 전달은 받았고, 시간 길게 끌 것 없이 확인이나 하러 갈까?”
네가 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게 맞는지, 그리고 마법부에 입부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장관님.”
“음.”
아레나는 이안의 둥그런 볼을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몸을 빙글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확 잡아당겨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마법부원이 아닌 이안 하델은 귀족 자제였으니까.
‘어디 고발당할 일 있나?’
그럴 순 없지, 암.
크흠, 아레나는 제 뒤를 따르는 이안을 돌아보았다. 큰 전투에 임하러 가는 듯 결연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안을 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귀엽긴 하네.’
* * *
두둥.
마법부의 뒤뜰로 보이는 공터.
이안은 자신을 흥미롭게 구경하는 마법사들을 슥 둘러봤다. 어느덧 하나둘 모여 마법사 전체가 자리 잡고 앉았다. 일정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따악.
아레나가 이안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기더니 정신 차리라며 웃었다.
“별거 아닌데 벌써 떨면 쓰나?”
그녀가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배경으로 선 마법부 본관과 별채가 순간 반짝이는 듯 보였다.
“여기는 황궁 마법부. 황궁 내 모든 부서의 장관은 모두 황제 폐하께서 선임하지만, 마법부만큼은 예외다.”
철저히 능력주의가 적용되는 곳이니, 자체적으로 장관을 선출하는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이야 여러 가지지만, 제일 중점으로 보는 것은 역시나 마력. 따라서 마력의 깊이를 마법사들끼리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신탁의 빛을 피워 올렸다면 영혼이 트였단 뜻이니까, 어느 정도 힘을 발산할 수 있겠지? 있는 힘껏,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능력을 보여 봐.”
아레나는 머뭇거리는 이안을 두고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으니까 부담 갖지는 말고.”
그저 마력만 제대로 사용해도 박수갈채가 터질 것이다. 뭐랄까. 신입 보기 힘든 마법부의 의례적인 행사 정도라 보면 될 터.
마법사들은 와그작와그작 주전부리하며 이안을 주시했다.
“미친. 쪼꼬매서 얼굴도 잘 안 보여.”
“긴장했나? 움직이질 않네.”
“아무리 귀족 도련님이라도 이런 상황은 낯설겠지.”
“마력운용자, 맞긴 하지?”
“로만드로 님이 데려왔으니까 맞을 겨.”
“이안 하델! 대충해! 후딱 하고 밥 먹자!”
다섯 살. 그리고 이제 막 길이 트인 마력운용자. 그 누구도 이안에게 많은 걸 바라진 않았다. 자그마한 불꽃이라도 만들어 내면 마법부의 막내로 환영하여 인사를 건넬 것이니.
하지만 이안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듯, 한참을 망설였다.
“이안 하델?”
아레나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아이를 불렀다. 혹 로만드로가 실수한 건 아니겠지? 마력운용자가 아니라거나…….
“저기, 마법부 장관님.”
“무슨 문제라도?”
“정말 마음껏 펼쳐도 됩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저의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에, 이안이 설명을 덧붙였다.
“혹 누가 다치거나, 건물이 부서지면 어찌합니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힘을 써도 되는 것인지 염려되어서요.”
“뭐? 푸하하하하!”
아레나가 허리까지 접어 가며 포복절도해 대자, 이안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이게 그리 웃을 만한 말인가? 황궁 한복판 아니던가? 건물은 물론이고 주위에 심은 나무며 돌이며 하나하나가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그런데 혹여 자신의 실수로 이를 훼손하기라도 하면 어찌하려고?
이안의 말을 전해 들은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술렁임이 일어났다.
“…쟤가 지금 뭐래니?”
“와, 부럽다. 나도 다섯 살이었으면 놀림 적당히 받는 건데. 애가 저러니까 막 이해하고 싶어지고 그러네.”
“맞다. 너도 저랬지? ‘건물 날아가면 어떡합니까?’, 이 지랄. 그때 어땠더라? 촛불 같은 거 뽕 터지더니 바로 사그라들었었나?”
“선배. 뭐 그리 기억력이 좋습니까? 평소에는 할 일 죄다 까먹으면서.”
“귀족이라 그런가, 자의식과잉이 대단하네.”
“애잖아, 애. 그럴 수도 있지.”
누군가는 이해했고, 누군가는 그럴 줄 알았다며 비아냥댔으며, 또 누군가는 웃기만 했다.
이안은 일순 시끄러워진 분위기를 살피며 자신이 무언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저 멀리, 로만드로가 안타깝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할걸- 하는 얼굴로.
“이안 하델. 그런 걱정은 뭐랄까…. 돈벼락 맞아서 죽을 확률과 비슷하다고 보는데.”
일어날 일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
이안의 귓불이 살짝 붉어졌다. 하델 저택에서 보았던 자신의 빛이 너무도 밝고 화려하여 염려되었는데,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별것 아니었나 보다.
‘괜찮아.’
몰라서 그런 거잖아. 이안은 자신의 실수를 애써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손을 신중히 모아 내면에서 흐르는 마력의 힘을 모아 냈다.
지이잉! 지이잉!
아이의 벽안이 순식간에 금안으로 물들었다.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휘날리고, 아이의 주위로 바람이 몰아쳤다. 잔디가 크게 흔들리며 파닥거렸다.
“……?”
아레나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력이 발산되면 이처럼 공기의 흐름에 변화가 생기긴 한다만, 이건 뭔가…….
‘달라.’
흐름이 아니라, 무게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아레나가 그걸 깨닫자마자, 이안의 손아귀에서 번개 파편 같은 빛줄기가 길게 새어 나왔다.
파지지지직!
“……!”
“……!”
툭, 마법사들은 먹던 것을 떨어트린 채 입을 떡 벌렸다. 이미 그 진가를 알고 있던 로만드로 역시 놀라서 꽉 붙든 기둥 뒤로 숨어 버렸다. 금빛의 반짝임이 심상치 않았다.
“저, 저거-”
“대장!”
“장관님!”
이안이 만들어 낸 빛줄기가 아레나의 볼을 벨 듯이 스쳐 지나갔고, 이내 사방으로 튀었다.
파지지직! 파직!
이안의 마력이 허공의 보호막을 강하게 타격했다.
쩌저저적,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균열이 일자, 기겁한 마법사들이 반사적으로 마력을 개방하여 보호막에 힘을 덧댔다.
지이이잉!
“잠깐, 장관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지만, 금빛 빛줄기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안이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던 탓이다. 제 보잘것없는 힘 따위 제 눈으로 지켜보기 부끄럽다는 듯이.
“장관님! 이안 하델-!”
“멈춰! 이안 하델! 멈춰!”
“이, 이런 미친!”
안 그랬다가는……!
콰지지직!
100여 년 동안 굳건했던 보호막이 깨진다! 그것도 막 황궁에 들어온 다섯 살 난 아이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 마법사들이 단체로 덤벼들어 이안의 마력을 짓눌렀다.
끄응. 그 힘을 느낀 이안이 작게 신음하며 더욱 격렬하게 마력을 방출했다.
‘내가 의미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해.’
그래야 마법부에 힘입어 크로니에게 대항할 수 있어.
이안이 정신을 못 차리자, 아레나가 방출하는 힘을 헤치며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꽈악!
“이안!”
“아.”
이안이 놀라서 멈칫거리자, 마력이 뚝 하고 끊어졌다.
일순 거짓말처럼 느슨해진 공기. 다들 숨을 헉헉 내쉬며 이안을 바라봤다. 방금까지의 난리가 모조리 사라졌다.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이안이 조심스레 둘러보며 물었다.
“저, 괜찮은가요?”
그 말뜻은 ‘제가 마법부에 적합한 인물인가요?’였지만, 마법사들은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였다. 너희들이 내 힘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이런, 안 괜찮아아-! 이 꼬맹이 자식!”
결국 참지 못한 아레나가 이안의 볼을 쭈욱 늘리고 말았다.
‘…꼬맹이 자식?’
처음 겪는 상황에 놀란 이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활짝 웃었다. 마법부 장관이 자신을 저리 부른다는 건, 마법부 막내가 되었음을 의미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