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8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82화(882/935)
제882화. 자크 백작저
“얘가 왜 이래?”
마법사들은 뀨를 떼어 내기 위해 있는 힘껏 끌었지만, 드래곤의 힘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뀨는 이안이 아주 작고 연약한 생명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듯 머리만 바짝 붙여서는 계속해서 핥아 대기만 했다. 머리카락까지 죄 젖어 버린 이안이 뚱한 표정으로 뀨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만해 줘.”
-뀨우우우!
“희한하네.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이안, 괜찮아? 넘어지면서 다친 데는 없고?”
“네. 괜찮습니다.”
마법사들이 이안을 일으켜 주고 옷을 털어 줬다. 아이는 되었다는 듯 손길을 가볍게 밀치더니, 드래곤에게 과일을 내밀었다.
“먹어 줘.”
“……!”
아레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 흠칫거렸다. 놀란 건 놀란 거고, 신고식은 끝까지 하겠다는 것 아닌가. 집념이 대단했다. 아이들이 고집불통이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긴 했는데, 저게 보통인가? 아레나는 스멀스멀 조금씩 올라오는 불안한 기운을 느끼며 고개를 털어 냈다.
‘저만한 힘을 가진 아이가 성격마저 만만치 않으면 큰일인데.’
와 씨. 결혼도 안 했는데 이런 걱정을 하게 되다니. 아레나는 다시금 눈을 질끈 감으며 현 상황을 부정했다.
-뀨?
뀨는 이안이 내민 과일을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먹었고, 이안은 고맙다는 듯 미소 지었다. 마법사들은 황당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항의했다.
“마! 너 왜 이렇게 다정해? 원래 이런 놈 아니잖아.”
-뀨우우?
드래곤은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 가증스러운 태도에 마법사들이 단체로 덤벼들어 뀨의 비늘을 벅벅 긁어 댔다.
“귀여운 척하지 마라!”
“그래도 애라고 봐준다는 거냐?”
“네 나이에 비하면 우리도 애인데 왜 안 봐주는 건데? 어? 이참에 속 시원히 까 보자.”
“저기, 다들-”
가만히 지켜보던 이안이 머뭇거리며 마법사들을 말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 못 하는 동물을 괴롭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신성한 동물이지 않습니까? 그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신성한 동물이긴 한데, 봐 봐.”
마법사 한 명이 과일을 꺼내 드래곤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뀨는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먹었던 방금과 달리-
콰직!
마법사의 팔 전체를 주둥이로 확 물어 버렸다.
“매일 밥 주고 간식 줄 때마다 이 난리라고.”
“괘, 괜찮으십니까?!”
“어어. 놀라지 마. 어디 부러지거나 찢기는 건 아니라서. 그냥 좀 뭐랄까. 드래곤 혀, 이 말캉하고 촉촉한 느낌이 상당히… 기분 더러운 거지.”
“…방금 콰직 하는 소리가 났는데요.”
“어? 어어?”
마법사가 놀라서 발버둥 치자 다른 마법사들이 달려들어 드래곤의 입술을 위아래로 잡아당겼다.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는 와중 아레나는 이안의 어깨를 감싸며 몸 돌렸다.
“로만드로.”
“아, 예! 예, 장관님.”
“당분간 이안 하델은 자네가 맡도록 해. 오늘 마법부 볼일은 다 봤으니까 일단 출궁하고. 나중에 다시 자세한 일정 전달하지.”
“알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돌려 드래곤과 마법사들을 보려 하자, 아레나가 가볍게 턱을 붙잡으며 웃었다.
“매일 저래. 진짜 지긋지긋하지.”
“그런가요?”
“응. 그러니까 걱정 말고. 우리 이안 하델은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하니까. 저런 건 신경 쓰지 말라고.”
‘우리’라는 말에 이안이 미소 지었다. 그걸 본 아레나는 이안이 소속감에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걸 알아챘다. 이걸 잘 이용하면 어찌저찌 괜찮을지도?
아레나는 마차 문을 직접 열어 이안을 올려 준 다음 아이를 찬찬히 살폈다.
“주문 제작 해야겠네.”
“네? 무엇을요?”
“마법사 정복. 유아용은 없잖아.”
“아!”
아레나가 입고 있는 저 멋진 옷 말하는 거구나. 이안은 설렘 가득한 얼굴로 볼을 붉혔고, 아레나는 그런 아이의 볼을 툭 두드리고는 마부에게 신호했다.
“로만드로, 우리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예, 들어가십시오. 장관님.”
“그럼 이안 하델, 또 보자.”
히이잉!
아레나는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참. 애기들은 쑥쑥 자란다지?”
그럼 이참에 여러 벌 미리 주문해 두는 게 낫겠네.
그녀가 다시 마법부 본관으로 들어가려 하자, 마법사 여럿을 매단 드래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으아아아아-!”
-뀨우우우!
마법사들의 비명이 메아리치며 허공에서 맴돌았다.
아레나는 그 모습을 한심하게 보다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진짜 저것들을 믿고 이안 하델을 같이 ‘잘’ 기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듯.
* * *
마차 창문에 이마를 대고 있던 이안이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그에 긴 일정에 지친 해나가 하품을 쩌억- 해 대며 다가왔다.
“도련님. 또 무엇을 보셨어요?”
“응. 드래곤이 마법사를 물고 가.”
“예?”
그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세요? 해나가 말도 안 된다며 창밖을 쳐다봤지만, 이미 드래곤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로만드로가 수첩에 일정을 정리하며 설명했다.
“이안 도련님. 남은 일정을 말씀드릴까 하는데요.”
“응. 말해 주십시오.”
로만드로의 부름에 이안이 자세를 바로 하며 앉았다. 놀랍게도 도적 떼를 만나 그 난리를 겪은 이후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중앙에 거처를 구하는 것부터 상속 문제까지, 처리할 게 산더미다.
“우선 자크 백작저로 가서 백작님을 뵙고 인사를 나누신 다음 오늘은 좀 쉬겠습니다.”
어차피 곧 저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안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도적 떼로 인해 구르고, 몇 시간 동안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마법부에서 힘을 썼다가 드래곤까지 만났으니.
해나는 로만드로의 눈치를 보며 아이의 머리칼을 단정히 빗었다.
“소가 핥았습니까? 왜 이리 빳빳해요?”
“많이 이상해?”
“도련님은 뭘 해도 괜찮아요.”
“크흠. 그리고 내일은 상속 건부터 처리할 것입니다. 세금 납부를 비롯한 여러 금융 용무를 볼 것이니 인장을 잘 챙기십시오.”
“황궁으로 다시 들어갑니까?”
“아니요. 하이만 은행에서 일을 볼 것입니다.”
“아아. 거기서 하는군요. 하델에도 분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이만. 수백 년 동안 바리엘의 금융 시장을 주도한 은행. 시작은 가문이었지만, 지금은 일종의 조합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실권자는 ‘하이만’의 피를 잇는 가문 일원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 대외적으로 밝혀진 게 없기 때문이다.
로만드로는 상속에 필요한 서류를 대충 적어 가며 덧붙였다.
“그리고 부동산 들러서 적당한 집 알아보고…. 아 참, 이안 님. 학교 들어가는 거, 알고 계십니까?”
“학교?”
“아레나 님이 말씀 안 주셨군요. 하긴, 드래곤 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니. 중앙 에너제스 아카데미라고, 특수교육을 위한 명문 중의 명문입니다.”
“저, 이제 다섯 살인데요.”
학교에 가려면 3년이나 더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 물음에 로만드로가 웃었다.
“에너제스 아카데미는 나이 제한이 없습니다. 미성년자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지요. 물론, 입학 결정은 교장과 이사회가 따로 논의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교육이 가능한 아이들이 모입니다.”
‘그러니까 갓난아이는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로만드로는 관두었다. 이능력자들의 세계다. 범부들은 가늠조차 못 하는 영역이니, 아무리 자신이라도 함부로 확신할 수 없지 않나?
“통학과 마법부 출근 모두 가능한 곳에 저택을 구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오, 다 왔나 보군요.”
덜컹!
백작저 영지임을 표시하는 문턱이다. 마차가 작게 흔들리자, 로만드로는 수첩을 품에 챙겨 넣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숲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전망이 울창했다.
히이잉!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안내와 동시에 마차 문이 열렸다. 미리 나와 있던 자크 백작가의 시종이었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인사한 다음 짐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이안 하델 님이시지요?”
“그렇소.”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크 백작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시다시피, 집사님은 현재 온리홀에서 이안 님을 대신하여 상황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리 제가 마중 나왔습니다.”
그녀의 손짓에 맞춰 짐꾼들이 일사불란하게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백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들어오시지요.”
딸랑.
정문에서 듣기 좋은 소리가 울렸다. 이내 펼쳐진 저택 안 풍경. 고풍스러우면서도 상당히 시원시원하고 감각적인 실내장식으로 가득했다. 무인 가문답게 곳곳엔 잘 닦인 무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안은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응접실에 올랐다.
“백작님. 이안 하델, 도착했습니다.”
“어서 모시어라.”
끼이익.
중후하고 잔잔한 음성. 이안은 문틈으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을 보고서 살짝 멈칫거렸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중년일 것이라 여겼는데, 아무리 보아도 노인이다.
하긴, 황궁친위대 삼대장이라는 헤르치 자크의 아버지이니, 노인이 맞겠구나.
“오호.”
자크 백작은 이안을 보고서 흥미롭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부답지 않은 꼿꼿한 자세에서 기개가 흘러넘쳤다. 그는 이안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이고는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제리아 판박이로구나.”
“안녕하십니까. 이안 하델입니다.”
“…특히나 이 눈빛. 똑 부러지듯 단단한 것이 제리아를 아주 많이 닮았어.”
노인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이안에게 소파를 권했다.
“어머니의 스승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옛날 일이지. 장례식에도 못 간 내가 무슨 낯으로 스승이라 할까.”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사정이 있으셨다 하니 어머니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는 끌끌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을 복기하는 건 내 성정에 맞지 않으니 두 번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다오. 나는 제리아의 죽음이, 그리고 네가 홀로 남은 것이 너무도 슬프단다.”
진심 어린 위로에 이안은 다시금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하지만 눈에 힘을 꽉 주고서 감정을 가다듬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도울 것이 있다면 내 성심성의껏 도우마. 무엇이든 말만 하려무나.”
그 말에 이안이 잠시 고민했다.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딱 하나. 바로 안전이었다. 자신을 노리는 크로니에게서 벗어나고, 나아가 언젠가 그를 처단하여 복수하는 것.
하지만.
‘…믿어도 될까?’
방금 막 만난 사람인데?
이안이 머뭇거리자 자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하델.”
“예, 자크 백작님.”
“욕구는 결핍의 거울이요, 그것은 언젠가 약점을 비추지. 남에게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는 건 아주 바람직한 태도다.”
그가 찻물을 한 모금 마시며 덧붙였다.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중에 된통 당하는 것보다야 낫지. 제리아도 나에 대해 그리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을 테고.”
“송구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너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내 노력하겠다는 뜻이다.”
“아.”
일단 시간을 길게 갖고서 서로를 지켜보자는 뜻. 이에 이안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똑똑.
“할아버지.”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자크 백작은 마침 잘 되었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이안에게 신호했다.
“내게는 네 또래의 손녀가 있거든. 소개해 주마. 들어오렴.”
끼이익.
남색 단발 머리칼의 어린아이. 차분한 듯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눈동자가 반짝였다. 한눈에 보아도 귀족 여자아이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흙먼지투성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바르사베다. 바르사베, 이쪽은 이안 하델. 네 새로운 친구란다.”
“친구라니요, 할아버지. 저는 아홉 살인데요?”
“그만하면 친구 아니니?”
바르사베는 이안을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작게 비죽거렸다. 뭐래. 내가 쟤 인생만큼 더 살았는데!
콧방귀를 뀌는 아이에게, 이안이 슬쩍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누나. 반갑습니다.”
“……?!”
바르사베는 작은 손을 내려다보더니 마지못해 붙잡았다. 안 그러면 당장 할아버지가 훈련장 30바퀴 벌을 내리실 것 같았으니까.
…뭐, 누나라고 부르는 게 귀여워서 잡은 건 절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