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8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85화(885/935)
제885화. 엔로우 가문
“상속세를 현금으로 납부했다고?”
뜻밖의 보고에 크로니가 언성을 높였다. 그는 집사가 건네 준 서류를 받아 들었다. 하델가의 세금 납부 내역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완납이라니. 말이 되는가?”
조작일 리는 없다. 중앙 세무국장의 ‘은밀한 배려’로 받은 원본 서류였으니.
사락.
“하이만 은행 중앙지점에서 완납했다고 합니다. 영지나 건물, 광산 등을 매각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물리적으로 불가하지. 그런데 전액 현금 납부라니? 내가 알기로 보유 현금이 빠듯했는데, 대체 어찌?”
심지어 가압류까지 걸어 놓지 않았던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선 친인척 가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통할 수밖에 없었고. 무슨 수를 쓰든 이안은 제 발로 제 저택에 찾아왔어야 하거늘!
크로니가 미간을 꾹꾹 누르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누가 돈을 빌려준 거지?”
자크 백작저에 머물고 있으니, 그쪽인가?
아니다. 아무리 명문 무가(武家)라 하더라도, 수백 개의 금화를 턱턱 내놓을 만큼의 현금 유동성은 가질 수 없다. 그것도 이리 짧은 시간에.
‘그렇다면 마법부?’
이안의 후견인 자격을 가져간 마법부다. 그럴 만한 동기가 충분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를 수가 있나? 그만한 액수라면 황궁 내부에 소문이 파다했을 터인데. 혹 아레나 장관이 개인적으로 차용해 준 것일까 싶었지만, 글쎄다. 그것 역시 조금 미심쩍다.
“아무튼, 그래서 이미 상속은 끝났나?”
“예. 그렇습니다.”
“…아깝군.”
이안 하델이 상속받기 전에 죽으면 세금 낼 필요가 없는데. 괜히 이중으로 돈이 나가게 생겼다.
크로니가 궐련을 잘근잘근 씹자, 집사가 다른 전언을 전했다.
“이안 하델이 마법부에 입부했다는 연락입니다.”
“뭘 새삼스럽게.”
크로니는 편지를 펼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하델가 저택에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참이다. 어린것이 만들어 낸 금빛의 환상을.
-…중앙 에너제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방과 후 마법부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마법부 측의 반응을 보아하니, 마력 수준이 역대급이라, 차기 마법부 장관으로 거론될 정도입니다.
‘뭐? 마법부 장관?’
크로니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눈두덩이를 꾹 문질렀다. 그 잘나신 마법사들이 고작 다섯 살 난 아이를 두고 차기 장관직을 거론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뒷골이 서늘해졌다.
“…이거 진짜 안 되겠는데.”
상속이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지금도 이안 하델은 부모의 죽음에 자신이 연관되어 있음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마법부 장관이 된다? 권력으로도 꺾을 수 없고, 무력으로는 더더욱 불가해진다. 수백수천의 병사들이 덤벼들어도 제압을 장담할 수 없는 게 마법사니까.
‘일이 이렇게 풀리면 안 되는 거였어.’
원래 계획했던 대로 자신이 이안 하델의 정식 후견인이 되었더라면 하등 문제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 되었겠지. 차기 마법부 장관인 ‘아이’를 잘 구슬려 완벽히 제 편으로 만들었을 테니까. 이만한 아군이 없었거늘 일이 어긋나는 바람에 골치 아프게 되었다.
‘죽인다.’
망설일 틈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할 녀석을 확실히 죽여 후환이 없게 해야 한다.
“자크 백작저에 계속 머무를 예정인가?”
집사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도 그럴 게 크로니의 질문은 자신의 대답을 원해서가 아니라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녀석이 저택에 머무는 한 방법이 없으니, 외출했을 때 기회를 엿보는 게 좋겠군. 집사?”
“예, 주인님.”
“사람을 좀 불러와.”
현재 이안의 방패는 마법부와 자크 백작. 크로니는 방법을 모색했다.
‘우선 마법부.’
자신이 이안을 해치려는 걸 마법부에서 알게 되면 역풍을 맞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제국방위부를 비롯해 황궁 곳곳에 입지를 다져 놓았다 한들, 마법부가 전면으로 차고 들어오면 자신은 물론 아군 세력 모두 온전치 못할 것이다.
‘자크 백작 쪽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
바리엘에서 첫손에 꼽는 권세가이자 명문 무가다. 황궁친위대 헤르치 대장의 집안이기도 했다. 역시 쉬이 건드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둘의 영향권이 동시에 약해지는 곳에서 이안을 노릴 수밖에.
“…‘그 아이’, 에너제스에 다니는 것으로 아는데.”
“아, 맞습니다.”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마차로 데려와라.”
마차로 데려오라는 건 은밀히 행하라는 뜻. 집사는 잘 알겠다는 듯 인사하고서 집무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크로니는 장갑을 벗어 던지며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마법부와 자크 백작. 둘 중 더 위험한 쪽을 고르면 당연히 후자다.’
황제를 바로 곁에서 보필하는 데다, 최근에는 온리홀로 집사까지 파견했다. 공식 조사관도 아닌 주제에 경비대 사무실을 들쑤시고 다니는 꼴을 보아, 단서를 잡으려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럼 안 되지.’
공들인 음식이 막 완성될 참인데 그르쳐서야 되나.
까득.
크로니는 창문에 비친 자신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분노 어린 웃음 틈으로 송곳니가 반짝였다.
…이안의 방패?
‘방패는 또 깨부수는 맛이 있지.’
* * *
“엔로우라, 엔로우…….”
한편, 상속세 납부를 마친 이안과 로만드로 그리고 해나는 가까운 관공서로 가 엔로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열람 중이었다.
이안이 까치발을 들어 테이블에 턱을 걸치자, 해나가 번쩍 안아 들어 서류를 볼 수 있게 도왔다.
“아아, 예. 있습니다.”
관공서 직원이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한 장을 빼서 보여줬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시아오시 엔로우라는 분이 자작 작위를 수여하면서 시작된 가문입니다.”
직원의 설명에 이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또다. 또 100년 전으로부터 시작된 무언가가 자신에게 닿았다.
“진 베로시온 황제 시절인가?”
“맞습니다. 영민하시군요, 도련님.”
요즘 귀족들은 다섯 살짜리 애한테도 선행 학습을 시키나? 참으로 독하다니까. 직원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예. 천민 태생으로 제국방위부 장교를 거쳐 자작 작위까지 받은 대단한 분이시네요. 진 베로시온 선황을 황자 시절부터 보필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출세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영지는 어디입니까? 중앙에는 없다 하던데.”
이안의 물음에 직원이 지도를 살폈다.
“작위만 받고 영지가 없었던 기간이 좀 깁니다. 그러다 클로이 다비온이라는 다비온가 영애와 혼인하는 과정에서, 바리엘 동부 외곽 지역의 영지를 매입한 것으로 나옵니다.”
“동부 지역?”
“여기, 보십시오.”
이안이 꼬물거리며 손가락 끝으로 지도를 짚었다. 외곽 중에서도 국경과 인접한 최외곽이다. 그 옆에는 ‘대사막’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해나가 이를 알아보고서 덧붙였다.
“네르사른 님이 말한 그 사막인가 봅니다.”
“…천려?”
그렇다면 네르사른은 엔로우 지역을 잘 알겠구나.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이를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아무튼 시아오시 엔로우라는 분이 매입했다는 그 동부 지역 영지가, 원래 우리 하델 가문의 것이란 말이오?”
“음, 글쎄요. 그것은 기록된 바가 없네요. 말씀하신 매각 대금이 그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도 확실치 않고요.”
“확실치 않다니? 매매가 이루어졌으면 파는 자와 사는 자가 명확할 터인데?”
“사는 자는 명확히 시아오시 엔로우인데, 파는 자는 기록이 없습니다.”
“말도 안 돼. 놀리는 것이지?”
“하하. 송구합니다. 그런 것은 아니고, 황궁에서 삭제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관공서에서는 공란으로만 확인되네요.”
황궁에서 삭제를? 대체 왜? 이안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직원 역시 의아하다는 듯 웃었다.
“기밀일 수도 있고, 열람 금지된 정보일 수도 있어서 말이지요. 결론은 그 동부의 영지가 하델 가문의 것인지는 확인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다른 영지 건일 수도 있으니 자세한 건 각 가문이 보유한 장부를 확인해 보심이 좋겠습니다.”
상황이 급해서 이미 금화 1,000개 중 절반을 사용했다. 혹 엔로우 측에서 실수하여 잘못 보낸 것이라면 돌려주어야 하니 사정을 전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럼 지금도 동부에는 엔로우 가문이 있는 것이지?”
“예, 아직도 가문과 영지는 건재합니다.”
“서신을 보내는 게 좋겠군.”
“그것을 추천드립니다. 저희 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이게 다라서요.”
셋은 관공서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 두 잔과 초코우유 한 잔이 나오자 셋은 동시에 식물 줄기 빨대로 음료를 쪼오옥 빨아 먹었다. 왠지 뭔가 일이 끝도 없이 벌어지는 기분이다.
“도련님. 그래도 어찌어찌 상속세 납부는 해서 다행입니다. 상속이 완료되었으니 한시름 놓았습니다.”
“응. 그러게. 로만드로, 하델과 엔로우 쪽으로 서신을 보내고 싶습니다만.”
“예예, 준비하겠습니다. 두 쪽 다 소명할 자료와 장부 확인 요청 목적이겠지요?”
척하면 척이다. 이안이 냅킨으로 입가를 툭툭 두드렸다.
“근데 100년 전 장부가 아직까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살짝 애매하긴 하군요.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인데, 또 못 찾으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찾을 세월이라…….”
하지만 로만드로는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하델 가문의 돈이 아니더라도 괜찮을 겁니다. 상속이 완료되었으니 재산을 처분해서라도 돌려줄 수 있으니까요. 그쪽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상황이지요.”
“그렇겠지요?”
“물론입니다.”
하아아. 세 사람은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쩍 긴장을 풀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맛있는 음료, 그리고 일을 일단락시켰다는 안도감이 충만했다.
“그럼 이제-”
커피로 기운을 회복한 해나가 제일 먼저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진짜 일 보러 갈까요?”
“진짜 일?”
“살 게 많잖아요.”
우선 중앙에서 거주할 저택, 가구, 마차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해나가 손가락으로 멀리 지나가는 무리를 가리켰다. 이안과 로만드로가 동시에 고개 돌려 쳐다보았다. 깔깔거리며 뛰어가는 학생들.
“학교 갈 준비 해야죠.”
이안은 지금껏 제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하델 영지 유일의 귀족 자제였기 때문이다. 수업 또한 가정교사를 들여 일대일로 진행했었다.
“학교 갈 준비…….”
이안은 그리 중얼거리며 학생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저게 에너제스 교복인가?”
“로만드로 님, 에너제스 교복인가요?”
해나가 방긋 웃으며 질문을 넘겼다. 로만드로는 남은 커피를 쪼오옥 빨고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댔다. 찬 음료를 급하게 들이킨 탓이다.
“…크으으. 아닐세. 에너제스는 남색에 붉은 띠가 들어간 디자인이거든. 자자, 그럼 서둘러 움직여 볼까? 나왔을 때 일 다 보고 들어가는 게 좋으니까.”
로만드로가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거기’까지 걸어서 가긴 무리겠군. 마차를 탑시다, 이안 님.”
“거기라니요?”
“아아, 에너제스 교복은 물론이고 입학에 필요한 물건들을 한데 모아 두고 파는, 뭐랄까, 백화점 같은 데가 있습니다. 어지간한 건 거기서 한꺼번에 사면 됩니다.”
로만드로는 그리 대답하며 잠시 이안을 쳐다봤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입을 만한 사이즈도 있겠…지?
‘뭐,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가게니까.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