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8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86화(886/935)
제886화. 조이백화점
“…백화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이안은 작고 노후된 건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들어가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허름하다. 자세히 보면 조금 기운 것 같기도 했다. ‘조이백화점’이라는 글자는 녹까지 슬어 반쯤 떨어져 나가 있었고.
해나가 슬그머니 이안을 안으며 로만드로를 돌아봤다.
“들어가자마자 무너질 것 같습니다.”
“어허, 괜찮아. 괜찮아.”
로만드로는 걱정하지 말라며 두 사람을 백화점 관리실로 이끌었다. 창문 옆에는 ‘필독! 신분증 제시 바람!’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똑똑.
“계십니까?”
로만드로의 노크에 손바닥만 한 창문이 드르륵 열리며 노인 한 명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금 놀라운 것은, 뒤쪽의 배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오로지 컴컴한 어둠만이 가득하여, 관리실 내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없었다.
“신분증.”
노인은 세 사람의 신분증을 대충 눈으로 확인하더니 들어가도 좋다는 듯 고갯짓했다. 너무도 간단히 끝난 절차에 이안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분증 확인을 왜 하는 것입니까?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 다인데요.”
“여기 조이백화점은 상상외의 기상천외한 것들이 가득하답니다. 사용 방법에 따라서는 굉장히 위험한 물건도 있기 때문에 범죄자 혹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특정인들은 출입 금지입니다. 저 관리인, 저래 보여도 한번 본 사람은 절대 안 잊는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눈으로만 슬쩍 봐도 출입 가능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로만드로가 건물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빼곡하게 들어선 작은 상점들. 한 평 남짓한 크기부터 입이 떡 벌어지는 대형 잡화점까지 즐비했다.
이안은 백화점 지도를 펼쳤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지 찍찍 줄 긋고 대충 기입하여 가시성이 엉망이었다.
“여기서는 지도 볼 필요 없습니다. 숨겨진 상점도 많고 제대로 신고 안 한 곳도 많아서요. 알음알음 물어 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지요.”
“저기 근데, 여기 10층까지 있는 것 맞습니까? 내부도 밖에서 본 거랑 차이가 많이 나는데요.”
분명 밖에서 봤을 때는 5층짜리의 좁아터진 건물이었는데?
로만드로가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마법을 파는 백화점이잖아요. 나라에는 5층짜리 건물로 신고되어 있지만, 마법사와 술사들이 불법 증축하여 바깥에서 보는 크기와 완전히 다릅니다.”
“불법 증축…이면서 범죄자를 가려 받는 게 이상하네요.”
“하하하!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로만드로가 낄낄대며 동감했다.
하지만 이곳, 조이백화점은 가이아에서 제일가는 신기술 개발지이자 마법 용품 유통의 중심지였다. 각국에서 몰려온 마법사들이나 술사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돈을 버는 장소. 나라 입장에서는 불법 증축쯤은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었다.
“아예 큰 건물로 옮기는 건요?”
“그것도 추진해 보려 했는데 말씀드렸다시피 숨어 있는 상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수를 파악하기도 힘들고 ‘조이상인회’ 자체에서도 관리에 애쓰는 터라 맡겨 두는 것이지요.”
“오래되었습니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버고스, 클리포포드, 루스웨나 등 ‘대마물 전쟁’ 이후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지은 것이라서요. 이쪽입니다. 에너제스 학생들이 자주 가는 상점은 3층에 모여 있어요.”
해나와 이안은 두 손을 꼭 잡고 로만드로의 뒤에 바짝 붙었다.
중앙에 와서 보았던 희한한 사람들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놀라운 자들이 한가득하다. 사람처럼 생긴 짐승이 두 발로 걸어 다니거나, 이 좁은 복도에 소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마법부에서도 운영하는 상점이 몇몇 있습니다.”
“몇몇이라 하시면?”
“하하.”
역시나 파악 불가. 이래도 되나 싶다.
3층으로 올라온 이안은 쭉 늘어진 가게들을 둘러봤다. 에너제스 학생들이 많이 온다더니만, 교복 입은 손님이 심심찮게 보였다.
“여기서 교복 사고, 다음 가게에서 가방 사고, 그다음이 교구 및 잡화, 이런 식으로 동선이 완벽하게 짜여 있답니다.”
띠리링.
교복 상점으로 들어서자,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 먹던 사장이 놀라서 쳐다봤다. 이 시간에 누구지?
“무슨 일이십니까?”
“교복 상점에 교복 사러 왔지. 식사 시간이면 다음에 오겠네.”
“아아! 아닙니다. 사이즈 말씀 주세요. 바로 내어드릴게요.”
원체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에너제스였다. 안 그래도 혈기 왕성한 학생들인데 일반인과는 다른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보니 교복 찢어지고 구멍 나는 건 예삿일이다. 하여, 상점 주인은 수많은 사이즈의 옷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
“아이가 입을 것인데.”
“…어라?”
로만드로가 이안을 앞으로 보이자, 주인이 난감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상점 운영 역사상 처음 맞이한 난관이다.
“소, 소인(小人)족인가요?”
“아니, 인간일세. 다섯 살.”
“다섯 살…….”
제일 작은 옷이 어느 정도였더라? 주인은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창고 제일 안쪽에서 교복 한 벌을 가져왔다. …조금 큰데?
“더 작은 것 없소?”
소매가 손끝을 가리고, 바짓단이 신발을 덮었다. 품이 넉넉하여 편하기는 하다만.
“혹시 입학이 언제세요?”
“다음 주.”
“이게 옷감이 일반 옷감이 아니거든요. 공정 과정도 굉장히 까다롭고요. 적어도 한 달에서 두 달까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좋지? 이안이 당황하여 로만드로를 올려다보자, 사장이 괜찮다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곤 아주 야무진 손길로 소매를 접어 주고, 바짓단을 고정해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아버님, 원래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키가 자라지 않습니까? 몇 달 입으면 딱 맞을 것 같으니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원래 애들은 좀 크게 입히는 거예요.”
“아, 아버님?”
“교복값이 한두 푼도 아니고, 저야 여러 벌 팔아먹으면 좋지마는 에너제스 입학생이시면 제국의 미래나 마찬가지니 그럴 수는 없지요.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요. 자, 이걸로 하십시오.”
툭툭. 사장이 아이의 옷깃을 바로잡아 주며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태가 아주 번듯하니, 품이 남아도 귀엽고 단정했다.
이안과 로만드로가 동시에 해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런 쪽으로는 그녀의 의견이 중요했으니.
“흐음.”
해나는 턱을 괸 채 눈빛을 번뜩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으며 품위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적당히 크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었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네요.”
“좋네! 이걸로 주시오.”
“네, 감사합니다! 바로 포장해 드릴게요.”
이상한 가족이네. 아들과 아빠가 아닌가? 사장은 교복을 봉투에 포장하며 물었다.
“그런데 자제분께서는 어떤 능력이 있으셔서 에너제스에 입학하십니까?”
“마법사입니다.”
리본을 차르륵 묶으려던 사장의 손길이 멈칫거렸다.
“뭐, 뭐라고요?”
“…마법사.”
“최, 최초의 귀족 출신이라는 그분입니까, 혹시?”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장은 카운터 아래에서 놋그릇을 꺼내 스푼으로 땅땅땅 두드려 댔다. 갑작스러운 이상행동에 로만드로와 해나가 한 발 물러나 이안을 감쌌다.
“이안 하델! 최초의 귀족 마법사가 왔다아아!”
땅땅땅! 시끄러운 소란에 상점가의 사장들이 하나둘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더니 너 나 할 것 없이 교복 가게로 달려와 이안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마나, 세상에. 진짜 작네.”
“반갑습니다, 하델 님. 소문은 들었어요. 아! 저는 저기 안쪽에서 잡화점을 운영 중인 델입니다. 자주 모시겠습니다.”
“악수 부탁드려도 될까요?”
“손바닥이나 닦고 내밀어라.”
“하델 님, 저희 가게로 오시면 최고급 품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뭐 필요하신지요?”
사장들이 몰려들자 이안은 당황스레 악수와 인사를 받으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자 교복점 주인이 사장들을 물리며 허리를 잔뜩 숙였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최초의 귀족 마법사가 나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에너제스에 입학하신다는 건 몰랐거든요. 하긴, 아직 어리시니 학교에 들어가는 게 맞는데 말입니다. 마법부도 참 이럴 때 보면 정상적이에요.”
“…한데 다들 왜 이러는 것이오?”
환영이 과하지 않나.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다.
이안의 질문에 사장들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세요? 이안 님은 에너제스에 입학하는 첫 마법사시거든요. 마법사는 이쪽 세계에서 제일가는 인재입니다. 마법부만이 아니라 에너제스에서도 큰 획을 그으실 게 분명하니, 이렇게 미리 인사드리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에너제스 덕분에 먹고 사는 자들이라. 호호홋!”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안은 사장들의 손에 이끌려 각기의 상점을 정신없이 돌았고, 해나와 로만드로의 손에는 묵직한 쇼핑백이 계속 쌓여 갔다.
“에단. 저것 좀 봐.”
그렇다 보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에너제스 저학년 학생들이 이안을 발견하고서 수군거렸다.
“저 애가 이안 하델인가 봐. 이번에 에너제스에 입학한다는.”
“마법사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나 제대로 하면 다행이게? 인생 진짜 편하게 사네. 태어날 때부터 귀족인데, 고작 다섯 살에 재능 발견하고.”
“재수 없긴 하다. 크큭.”
에너제스는 천재 중에서도 최고 재능들만 모이는 곳. 이안처럼 이름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질투를 살 수밖에 없다. 아직 어린아이들이기에 더 그랬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우리랑 수업 같이 들으려나?”
“그럼 재밌겠네. 안 그래, 에단?”
에단이라 불린 남학생은 한참이나 이안을 지켜보더니, 이내 성큼성큼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
누구지? 로만드로와 해나를 올려다봤지만 둘은 이미 얼굴 높이까지 짐이 가득해서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안은 어쩔 수 없이 에단이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나는 에단이야. 에너제스 아카데미 4학년.”
“반갑소. 나는 이안 하델이오.”
“……?”
에단이 흠칫거렸다.
말투가 왜 이래?
“…어어, 반가워.”
“한데 무슨 일이신지?”
“애들이랑 살 게 있어서 나왔다가 소란스럽길래 와 봤더니, 너였구나? 소문 들었어. 학교에서 보게 되면 알은체하자.”
말속에 약간의 우쭐이 섞여 있었으나 이안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
그럼, 더 할 말은? 이안이 빤히 쳐다보자, 에단은 말을 잇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에단이 몸 돌려 사라지자, 로만드로가 짐 더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이들의 대화를 모두 들은 참이다.
‘벌써부터 기 싸움을 걸어오는구만.’
하여간 누가 에너제스 생도 아니랄까 봐.
대화 내용으로만 들으면 상당히 막무가내인 상급생이다. 초면에, 그것도 귀족 자제인 이안에게 반말 찍찍거리면서 ‘알은체하자’라니…. 입학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상호 평등’이라 이거지?
‘떼잉! 글러 먹은 녀석 같으니라고. 이안 님 학교 가면 별별 놈 다 꼬이겠어.’
하지만 로만드로의 걱정과 달리, 이안은 별생각 없이 제 손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손이 얼얼했다. 에단과 악수한 손이었다.
‘왜 저렇게 꽉 쥐지?’
그만큼 반갑다는 뜻일까?
그때였다.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이안에게 누군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에단 반. 연금술사 지망생이고, 성적은 중상위권. 여기저기 참견하길 좋아해서 발이 넓습니다. 그만큼 입도 가볍고요.”
“……?”
“깊게 사귀긴 불편하고, 적당히 이용하기에 알맞다고나 할까?”
분홍 만두 머리에 주황빛 눈동자. 그리고 주근깨. 상당히 인상적인 외모의 여인이었다.
“너무 적나라한 평가였나요?”
“…누구신지?”
“아, 저는 저어기 구석에서 광물 상점 운영하는 주인장입니다. 에너제스 학생들이 실험이나 연구 등에 쓰는 마력석을 취급하지요. 이안 하델 님이 오셨다는 말에 나와 봤습니다. 저희 가게에도 한번 들러 보시겠어요?”
당장은 들를 필요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물어볼 것도 있고 어쩐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돌아오셔야 합니다, 도련님! 짐에 파묻혀 주저앉은 로만드로와 해나를 뒤로하고, 아이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끼이익.
비좁은 외견과 달리 내부는 갖가지 마석들로 꽉 차 있었다. 이안이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자, 주인장은 주의해 달라며 눈을 찡긋거렸다.
“여기서는 마력 함부로 쓰시면 안 됩니다. 별별 것들이 있어서 백화점 터져요.”
“…조심하겠네.”
“무엇부터 보여 드릴까요?”
“다른 게 아니라, 내게 녹음용 마석이 있는데, 음질을 선명하게 보정하는 작업도 가능한가?”
“물론이지요. 마석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가능합니다. 지금 갖고 오셨어요?”
“아니. 나중에.”
사실 지금 갖고 있지만, 초면인 자에게 함부로 맡기기에는 조심스러웠다. 크로니 일행의 대화가 녹음된 것이니 신뢰가 생길 때 의뢰하는 게 좋겠다.
그러다 문득, 이안의 시선이 구석에 놓인 호박색 보석에 걸렸다.
“저건 뭐지?”
“아아. 이드갈이라고-”
사장이 보석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고서 속삭였다.
“마법사에게는 조금 위험한 것인데…♡ 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