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8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87화(887/935)
제887화. 마법사와 마검사
“위험?”
이안이 진지한 표정으로 멈칫거리자 사장은 깔깔 뒤집혔다. 아이의 반응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말이다. 그녀는 호박빛 보석을 들고서는 작게 속삭였다.
“마법사의 힘을 앗는 봉인석 같은 거랍니다.”
“……!”
“과거에 그랬지요. 과거에.”
“그렇다면 지금은?”
“보시다시피, 아주 어여쁜 호박색 보석이고요.”
그녀는 보석을 손끝으로 집어 들더니, 안타깝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마력봉인석과 대적할 만큼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해요. 한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힘을 완전히 잃고 말았답니다. 어째서인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그저 전설 같은 것 아닌가?”
“그건 아닐 겁니다. 사용 기록은 남아 있어서요. 클리포포드 수도의 균열 제어 장치에도 이것이 사용되었었다 합니다. 보세요.”
지이잉! 지잉!
주인장의 주황빛 눈이 순식간에 금빛으로 물들었다. 마법사였구나. 그녀의 정체를 알아챈 이안은 숨죽여 지켜봤다.
그러나 미동도 없는 보석. 마법사의 힘으로도 아무런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구조는 마석이 분명한데… 마력에 반응을 안 한단 말이죠. 참 신기하고 희한한 친구라 원인을 밝히려 열심히 연구 중입니다. 지금까지 알아낸 거라고는 이름이 ‘이드갈’이라는 사실뿐이만요. 아, 이거 봤다고 다른 데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또 짐 싸서 도망쳐야 하니까.
이안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물었다.
“마법부 소속이신가?”
“아뇨. 전 여기 주인장인데요.”
“마법사잖소.”
“마법사라고 해서 꼭 마법부 소속이란 법은 없지요. 거긴 미친놈들 천지라 해서 별로 생각 없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오로지 마석 연구. 용병 일 몇 년 하면서 세상을 떠돌았고, 세상에 난 거의 대부분의 마석을 봤다고 자부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기 조이백화점에 진득하니 눌러앉아 연구에 몰두 중이고.
이안은 사장을 빤히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한데-”
“예!”
“아까 나보고 마력을 사용하지 말라 하지 않았나?”
“하핫! 손님은 아직 미숙하시니까!”
“저기 뒤에 마석, 빛나는데.”
“엥?”
사장이 놀라서 확 뒤돌아봤다. 진열대에 줄지어 늘어져 있던 형형색색의 마석들이 빛을 발하는 상태.
주인장이 놀라서 후다닥 뛰어갔지만, 이미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찬 뒤였다.
“으앗! 이거, 이거 왜 이래?”
쿠웅! 우당탕탕!
좌우 서랍장이 쓰러지고 주인장이 정신없이 뛰어 다니는 틈바구니, 이안은 슬그머니 가게를 나왔다. 오래 있으면 위험한 곳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나중에 크로니 음성 복원하러 다시 와야겠다.’
퍼엉! 펑!
…그때까지 가게가 무사하다면.
이안은 와장창 뭔가 깨지는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위쪽에 붙어 있던 간판이 힘을 잃고 툭, 발치로 떨어졌다.
-‘석석박사’ 아코의 연구실
아이는 가게 이름을 머릿속에 담았다.
“이런, 미친! 또 무슨 짓 했어?”
“뭐, 한 게 아니라, 도와줘! 불! 불났다!”
“아코네 또 터진다! 다들 보호막 쳐!”
“저저, 고발을 하든가 해야지.”
“그러지 말고 불 좀 같이 꺼 달라고, 새끼들아! 다 같이 죽고 싶으면 떠들고만 있든가!”
자욱한 연기가 새어 나오자, 인근 가게 주인장들이 몰려들어 한마디씩 핀잔해 댔다. 순식간에 북새통이 된 상점가, 이안은 지친 상태로 주저앉은 로만드로와 해나에게 다가왔다.
“로만드로, 괜찮습니까?”
“엇, 예예. 이안 님.”
“해나는?”
“저도요. 일은 다 보셨습니까?”
“응. 살 거 다 샀으면 돌아가.”
“넷!”
해나가 우드득거리는 무릎을 두드리며 일어났다. 눈 밑이 까맣게 물든 걸 보니 고된 하루였나 보다.
로만드로가 한바탕 난리 난 마석 가게 쪽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저기는 왜 저럽니까?”
“주인장이 조금… 특이한 자더군요.”
이안은 호박빛 보석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금지된 마석 같은데 저자는 어찌 갖고 있는 걸까?
그나저나-
‘이드갈이라.’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로만드로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인장이 발설하지 말아 달라 하였으니 참는 게 좋겠지?
‘마법부에 가면 자료를 따로 찾을 수 있을 거다.’
“왜 그러세요, 이안 님? 뭐 사실 거 더 있으십니까?”
“아니, 아니야. 얼른 돌아가자.”
“휴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순간 설마 했던 해나가 크게 안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미 짐이 산더미였다. 여기서 더 샀다간 짐꾼을 부려야 할 수준으로.
“얼른 가시죠, 도련님.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한편-
화재를 진압한 아코는 식은땀을 흘리며 탁자에 걸터앉았다. 이번에도 날아갔으면 상인회에 찍혀 백화점 출입 금지당할 뻔.
“와 씨. 죽는 줄 알았네.”
숯 검댕을 곳곳에 묻힌 채로 이제 겨우 한숨 돌리려던 차였다. 아코는 깜짝 놀라 멈칫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이드갈이 빛을 내고 있는 것 아닌가?
“……?!”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그녀가 급히 들려 올려 살펴봤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짐작할 길이 없었다.
마석 폭발로 인한 반응인가? 방금 뭐가 터졌더라? 아니면 열기? 연기? 몇 년 동안 잠잠하던 놈이 대체 왜?
‘아니면 설마……?’
타앗!
아코는 급히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사이 이안 하델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정쩡하게 멈춘 몸과 당황한 얼굴. 하지만 서서히 환희로 바뀌었다.
“야아아아! 미친! 진짜?!”
이안 하델, 그 아이한테 반응한 거야? 이드갈이? 뭐 이런 재밌는 상황이 다 있어?
아코가 방방 뛰며 소리를 질러 대자, 불 끄고 제 가게로 돌아가던 사장들이 그녀의 뒤통수를 갈겼다.
“미친 건 너다, 너.”
“어우, 누가 저 또라이 좀 안 잡아가나 몰라.”
아코는 제 뒤통수를 후려친 자의 손을 확 붙들며 눈을 반짝였다.
“이안 하델, 어디 산대?”
“뭐? 갑자기? 그건 모르지. 부자니까 중앙 거리 인근 살지 않겠어? 찾고 싶으면 마법부로 문의해.”
“마법부…….”
“그래. 저, 문의하는 김에 그쪽으로 좀 꺼져라.”
“마법부우우-!”
“저기, 내 말 듣고 있니?”
“으아아아아아-!”
주인장들은 날뛰는 아코를 보며 이안 하델에게 영문 모를 연민을 느꼈다.
무엇 때문에 아코의 흥미를 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이른 나이부터 참으로 호화찬란한 인생을 맛보게 되었으니. 쯧쯧.
* * *
“후! 후!”
바르사베는 짧은 호흡을 따라 검을 내질렀다. 어린아이의 몸놀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군더더기 없고 정확했다.
절도 있는 움직임을 따라 검기가 희미하게 일렁이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문의 검술 사범이 막대기로 팔을 툭 건드렸다.
“마력이 새어 나온다. 정신 집중.”
“후우! 후!”
“신체는 마력을 담는 그릇. 네 나이 때는 그릇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마력을 절제하는 힘 역시도 중요하지. 다시 한번 마력이 흘러나오면 훈련장 열 바퀴다.”
“알겠습니다!”
바르사베의 턱 밑으로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무리 헤르치 대장의 딸이라지만, 이를 감안해도 아이의 재능은 규격 외였다. 성장에 대한 열망이 뜨겁고, 배운 것은 무섭게 흡수했다. 이대로면 적령기가 되기 전에 황궁에 들어가, 곧장 친위대 대장직을 맡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명문 무가의 피를 이었다고 하지만… 정말 놀랍군.’
하앗! 바르사베가 허공에 목검을 찔러 넣으며 자세를 마무리하려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이안 하델. 사범이 수고했다며 물병을 건네자 바르사베는 그걸 들어 보이며 이안에게 소리쳤다.
“이쪽으로 오고 싶으면 와!”
누구를 부르는 거지? 사범이 고개 돌리자, 이안이 두 사람에게로 토도도 달려왔다.
“어제는 도망치더니.”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잠든 것입니다.”
“그게 그거지.”
바르사베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사범이 하하 웃으며 훈련장을 정리했다. 시종에게 들었던 ‘그 마법사’ 아이로구나.
“볼일 다 보고 들어와 오늘 일정이 끝났습니다. 어제만큼 피곤하지도 않고요.”
“볼일?”
바르사베가 목검을 어깨에 걸치며 물었다.
“저택도 알아보고, 입학에 필요한 물건도 샀어요.”
“조이백화점 갔었구나? 저택은?”
“몇 개 봐 둔 데가 있는데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에단이라는 에너제스 학생을 만났습니다. 혹시 누군지 아세요?”
“에단?”
바르사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선명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글쎄. 얼굴 보면 알겠는데.”
“그렇군요.”
이안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제를 돌렸다. 훈련장까지 찾아온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데 아까 검에 마력이 감기던데요.”
“……!”
그걸 느꼈어? 아주 희미하고 찰나였는데.
“마검사가 사용하는 마력도 마법사의 것과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뭐, 맞아. 마법사처럼 진언을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결 자체는 같으니까. 수련을 거듭하면 나중에 마력으로 무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대.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금방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은 무인의 미덕, 검날 앞에서 자만은 금물이야. 고개를 치켜들면 목이 베인다고 하였어.”
베르사베의 똑 부러지는 가르침에 짐짓 엿듣고 있던 사범이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그래도 자기보다 동생이라고, 썩 의젓한 자세였다.
“그럼 마검사도 마법사처럼 시험이 있나요? 저는 신탁의 빛이라는 하프를 켰습니다.”
“마검사는 그런 거 없어. 애석하게도 마법사가 ‘기(氣)’를 터 줘야 하거든.”
“기요?”
로만드로가 말했던 ‘영혼의 길’과 비슷한 것일까? 궁금해진 이안은 아예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마검사의 마력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이상 계속 잠재되어 있어. 그래서 예전에는 자신이 마검사인 줄도 모르고 죽는 사람이 많았대. 마법사를 만나지 않으면 방법이 없으니까.”
자크 가문에서 뛰어난 마검사가 많이 배출된 것은 피로 이어지는 태생적 이유도 있지만, 황궁과 가까이서 활동하는 환경 덕이 컸다. 재능 있어 보이는 아이는 곧장 마법부로 보내 마력 주입을 거치고, 마검사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었으니.
바르사베 역시 일곱 살 때 마검사의 재능을 확인, 에너제스에 입학한 것이었다.
“그럼 마법사는 마검사를 어찌 알아봅니까? 오가는 사람 모두에게 마력을 보내 보면 될까요?”
“일반인에게 마력을 함부로 흘려 넣으면 버티지 못하고 죽어. 치유 마법 외에는 치명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마법부에서 이런 거 안 알려 줬어?”
“네. 아직.”
바르사베는 목검을 거치대에 걸며 덧붙였다.
“나는 마법부 통해서 개화한 거라 잘은 모르지만, 마법사와 마검사의 만남은 가끔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랬어.”
마법사가 희미한 마검사의 힘을 감지하는, 한마디로 작은 인연.
“그리고 마검사를 알아보는 기준도 있긴 해. 신념과 명예를 중시하는 성격, 불구덩이 같은 기백 그리고…….”
바르사베는 더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확실히 ‘더럽고 무지막지한 성격’은 제외였다. 마검사 자존심이 있지, 정말로 제외다!
바르사베가 모른 척 등을 돌리자, 이안은 쫄래쫄래 아이를 따라갔다.
“훈련 끝나셨어요? 저도 같이해요.”
“뭐래, 곧 있으면 저녁이거든!”
“그럼 밥 먹고 해요.”
“또 곯아떨어지겠지.”
“아니에요. 같이 먹고 같이 나와요.”
“…정말?”
“정말!”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너, 검 잡아 본 적은 있어?”
바르사베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이런, 자신의 첫 제자로군!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잘 따라와. 내 발목만 잡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