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88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88화(888/935)
제888화. 첫 등교
“도련님, 일어나셔요.”
해나가 이안의 이마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깨웠다. 지난 일주일 내내 바르사베를 쫓아다니더니, 기절에 가까운 단잠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다.
이안은 작게 잠투정했지만, 이내 이불을 걷고 앉아서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오늘이지?”
“예, 오늘입니다. 첫 등교요.”
그 대답에 이안이 침대 밑으로 폴짝 뛰어내려 세안실로 달려갔다. 해나가 웃음을 터트리며 따라갔고, 바깥에서는 아침 식사 준비 중인 시종들의 발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끼이익.
“좋은 아침입니다, 자크 백작님.”
“오호.”
먼저 식당에 내려와 있던 자크가 신문을 옆으로 치우며 이안을 반겼다. 그의 옆에는 바르사베가 아침부터 고기 한 덩이를 마구잡이로 썰고 있었다.
“바르사베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색다르구나. 이쪽으로 앉거라.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것이니 든든히 먹고 가야 해.”
“감사합니다.”
시종이 이안 앞에 두툼한 스테이크 한 접시를 내려놓았다. 아침부터 먹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이안은 바르사베를 힐끗거린 다음 커트러리를 집어 들었다. 저렇게 전투적으로 먹는 것으로 보아 뭔가 다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저택을 구하고 있다 하던데.”
“예, 계속 부동산업자에게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만 딱 알맞은 곳 구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중앙에는 날고 기는 자들이 벌써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으니 쉽지 않을 테지.”
백작이 흐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괜히 눈치가 보여 눈을 또르륵 굴렸다. 아무리 자크 가문이 부유하대도, 지금까지 일면식 없던 객식구가 들어앉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
“하지만 서둘렀다간 낭패를 보는 게 바로 거처를 정하는 일, 시간과 공을 들여 충분히 살펴보게나.”
“말씀 감사합니다.”
“바르사베, 아카데미에서 이안을 잘 돌보아 주고.”
“같이 듣는 과목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제 막 한입 잘라 먹은 이안과 달리, 바르사베는 그사이 고기를 반쯤 해치웠다. 아카데미 수업 방식은 어찌 되는 것일까? 자신이 첫 마법사라면 마법 과목도 없을 텐데, 입학 허가가 떨어진 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이안.”
백작이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이안에게 건넸다.
“입학 축하한다. 이걸로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도 사 먹고, 필요한 게 있다면 사도록 해라.”
“아.”
그것을 알아본 이안이 멈칫했다. 자신이 집사를 통해 백작에게 전달했던 보석이었다.
저택에 머무르는 날이 길어지니 숙박비 겸 생활비 명목으로 성의를 보였다. 돈으로 전달하면 예의에 어긋난 것이라 하여, 나름 괜찮은 보석을 구한 것이었는데…….
“마음은 잘 받았다. 이것은 내 마음이니 너 역시도 받아 주었으면 한다.”
“감사합니다.”
이안이 주머니를 건네받았다. 천 아래로 느껴지는 감각이 보석은 아니다. 보석 대신 그 가치에 알맞은 금화를 넣어 주었나 보다.
자크 백작과 이안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자, 바르사베가 입을 비죽거렸다.
“뭐 해? 밥 안 먹어?”
“아. 먹습니다!”
“너 때문에 지각하기만 해 봐.”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안이 회중시계를 확인하더니 고기를 서둘러 잘라 먹었다. 바르사베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접시를 비우기 시작했고, 자크 백작은 신문을 다시 집어 들었다.
정말이지, 평화로운 아침이다.
* * *
히이잉!
바르사베는 연신 가방을 뒤적거리며 빠진 게 없는지 살폈다. 책이나 필기구가 나오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단검, 붕대, 부목 등 훈련에 필요한 도구들만 한가득했다.
이안은 마차 창문 밖을 구경하며 물었다.
“보통 마차를 타고 등교하나요?”
“응.”
귀족이라서 그렇구나- 그런 생각을 하려는 차였다.
“뭐, 학교가 산 중턱에 있어서 걸어가기는 힘들고, 각자 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날아갈 수 있는 애들은 날아가고.”
“……?”
그게 가능한가? 의문이 들었지만, 이안은 이내 수긍했다. 중앙에 오자마자 보았던 마법사를 떠올린 것이다. 잘만 날더라. 응.
“어?”
인적이 드문 숲길로 들어서자마자, 무언가를 느낀 이안이 반응했다. 바르사베는 제법이라는 듯 눈썹을 치켜들었다.
“맞아. 여기서부터는 마법 보호막이 작동 중이야.”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서인가요?”
학생들? 아니면 바깥의 주민들?
바르사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지라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도저히 답을 내릴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든 안전하면 좋잖아.”
퍼엉!
동시에 어디선가 희미한 폭발음이 들렸다. 이안이 놀라서 주위를 둘러봤으나, 나무 위로 날아가는 새들만 보일 뿐이다.
이안은 슬그머니 가방을 꽉 쥐고서 정면을 쳐다봤다. 등교용 마차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그때 툭툭, 바르사베가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전방 높다란 곳, 거대하고 아름다운 고성(古城)이 고고히 서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특수 학교가 아니라 숲속의 정갈한 수도원 같다.
“에너제스는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어. 신입생들에겐 필수 과목이 있지만-”
‘필수 과목’에 대해 뭔가 덧붙이려다가 그냥 넘어갔다. 말보단 직접 겪어 보는 게 나을 테니까.
“아무튼,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려면 필요 학점 채우고 시험에도 통과해야 해. 나중에 나랑 같이 시간표 짜 보자.”
“예, 누님.”
“<검술의 이해-기초>나 <체력 단련-기초>는 꼭 들어.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라서 점수 받기 좋아. 뭔 말인지 알지?”
이미 바르사베는 입이 닳도록 몇몇 과목을 추천했다. 다만 아쉬운 건, 전부 검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의 커리큘럼이라는 점. 바르사베는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마법 관련 과목은 거의 없으니까, 그냥 네가 보기에 재밌어 보이는 것 위주로 들으면 되겠다. 이건 부럽네.”
“누님도 원하는 걸 들으면 되잖아요.”
“몸이 두 개도 아니고, 챙길 거 다 챙기면서 어떻게 그래?”
“그런가요?”
바르사베가 그렇다고 하니 일단 고개는 끄덕인다만, 이안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챙길 거 다 챙기면서 왜 못 하지?
“다 왔다. 내려.”
마차는 에너제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정문 가까이서 멈췄다. 바르사베는 마부에게 고맙다며 인사했고, 마부는 모자를 벗어 흔들며 응원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아가씨! 이안 도련님도 파이팅입니다!”
“시끄러워! 얼른 가!”
“고맙소!”
타앗!
마차에서 내린 두 아이. 같은 교복을 입은 각양각색의 학생들이 둘을 발견하고서 힐끔거렸다.
이안도 이안이지만, 사실 바르사베 역시 아카데미 내에서는 상당히 어린 축이었다. 보통은 열세 살에서 열일곱 정도가 제일 많은 나이 대. 쪼그만 두 아이가 손잡고 달려가니 눈에 띌 수밖에.
“바르사베잖아?”
“누구?”
“<실전 마검술> 듣는 아홉 살짜리, 걔.”
“옆엔 누구지? 동생?”
“동생…이 있었나?”
이안은 열심히 뛰면서도 교정 안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잘 관리된 건물과 잔디밭은 알 수 없는 설렘을 선사했다.
“누님. 모두 우리를 쳐다봅니다.”
“당연하지. 너처럼 어린애는 아카데미에 없었다고.”
“근데 우리 어디로 갑니까?”
“너 교무처에 데려다주고 난 수업 들으러.”
어느 문 앞에 도착한 바르사베가 푯말을 가리켰다. ‘제1동 교무처’라 적힌 글자. 문 앞까지 데려다줬으니 됐지? 아이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바삐 왔던 길을 내달려 돌아갔다.
“들어가서 학교장님 만나! 끝나고 정문에서 보자!”
이안은 손을 가볍게 흔들어 인사했고, 이내 커다란 문을 올려다봤다. 인기척을 먼저 내는 게 맞나? 아이가 잠시 고민하던 차-
드르륵!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이 휙! 열렸다. 잘 차려입은 정장에 세련된 안경, 그리고 생김새는…….
‘두더지?’
“이안 하델 군?”
“…안녕하십니까.”
이안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격식 있게 인사했다. 두더지 인간인가, 인간 두더지인가. 몸은 성인 남성인데 키는 이안보다 조금 더 큰 정도다.
“반갑네. 나는 에너제스 아카데미의 학교장이자, <라자산의 지리 탐험>, <주조 기술 훈련>, <석고 주형 주조의 응용> 등의 과목을 담당하는 다슈아일세. 현재 공석이 있으니 원한다면 언제든! 수강 신청해 주게.”
다다다 쏟아 내는 자기소개가 조금은 절박하게 느껴졌다. 이안은 조심스레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수북한 털 촉감이 부드럽다.
“다슈아 학교장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이안 하델입니다.”
“으응. 우리가 영광이지. 참고로 난 데라족일세. 저기- 바리엘 서쪽 라자산 인근 출신이지.”
그는 뒤뚱뒤뚱 걸으며 들어오라 손짓했다. 교무처 안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이안이 조금 긴장하자 다슈아가 상당히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친절해 보이기 위해 필사적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터다.
“너무 그럴 것 없네. 학교장이 거창해 보여도 별 권한도 없고, 임시직이라 금방 바뀔 거니까. 음. 꼭 그러고말고.”
에너제스는 바리엘 제국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다. 교수들은 자신이 데려가는 학생 수만큼 봉급을 받고, 제자 양성에 대한 권한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인기 없는 교수는? 일정이나 시설 관리 등 모두의 편의를 위해 한 몸 희생하는 고귀한 역할을 맡을 수밖에.
‘할 일 없는 사람이 학교장을 맡는 건가?’
이안은 다슈아의 중얼거림으로 에너제스의 생태계를 단번에 파악했다. 그래서 처음 만나자마자 자신의 과목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나 보다.
다슈아는 주섬주섬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이안에게 내밀며 교육과정을 설명했다.
“에너제스의 교육 이념은 ‘최고의 기술, 최상의 인재’일세.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세간의 기준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무슨 말이냐면-”
“귀족 대우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오. 소문대로 똑 부러지는데? <라자산의 지리 탐험>에 아주 잘 어울릴 인재 같아.”
“…….”
“크흠. 아무튼, 입학생이 필수로 들어야 할 과목은 총 열 개. 목록을 참고하고, 40학점마다 다음 학년으로 진학할 기회를 얻게 되네. 자세한 교칙도 여기 뒤에 있고…….”
이안은 다슈아의 과목이 어째서 인기 없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설명에 성의가 너무 없다. 의욕이 없는 건지, 아니면 재능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에도 학교장을 맡을 것 같다.
“네. 감사합니다.”
“마법 관련한 과목 개설은 빠른 시일 내로 진행될 것이니, 따로 언질하겠네.”
“마법 관련 과목이요?”
“왜? 설마 타 전공 섭렵이 목적인가?”
“그건 아니지만, 에너제스에는 마법 과목이 없다 들었습니다. 제가 최초의 마법사 입학생이라고…….”
다슈아는 기다란 코끝을 쿰찔거리며 대답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듯이.
“여기는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에너제스. 학생의 적성에 맞는 과목이 없다고 판단 시 새로이 개설하는 게 교칙일세.”
“아.”
신기한 교칙이다. 그럼 교수님은? 새로 뽑는 건가?
이안의 궁금증을 눈치챈 다슈아가 덧붙였다.
“저기, 적임자가 있는데 영 귀찮은 작자- 아니, 아니지. 그러니까 일정이 안 맞아서 시간이 좀 걸릴 뿐!”
서둘러 말을 돌리는 다슈아. 뭔가 수상했지만 다행이었다. 어찌 됐든 마법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니 말이다.
다슈아가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진행 중인 신입생 필수 과목은 <바리엘 역사-기초>로군. 제2동 본관 2층일세. 지금 바로 가면 늦진 않을 거야.”
끝? 이안이 종이를 품에 안고서 다슈아를 올려다봤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자, 다슈아가 확신에 찬 얼굴로 화색을 띠었다.
“오? 역시 <라자산의 지리 탐험>에 관심이-!”
“그럼, 이만. 반가웠습니다.”
드르륵!
이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교무처를 나왔다.
에너제스 교정은 미관적으로 상당히 깔끔했는데, 이안은 잡다한 표지판이 없어서 그렇다는 걸 알아챘다. 그사이 우르르 들어왔던 학생들은 각자의 교실로 사라진 지 오래.
‘어쩌지.’
일단 건너편 건물로 가 볼까? 이안이 고민하며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이안?”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다. 고개를 돌리니 조이백화점에서 만났던 에단이 친구들과 이안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교구를 들고 있는 거로 봐서, 지각은 아니고 수강을 위해 이동하는 중인 것 같다.
“이안 하델? 마법사라는?”
“와아, 귀여워라.”
“완전 애기잖아? 왜 여기 혼자 있어?”
학생들이 이안을 신기해하며 떠들자, 에단이 작게 우쭐대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알은척을 해 대며 이안의 손을 꽉 잡았다.
“나 기억하지? 백화점.”
“…응.”
“이야, 이제 진짜 후배네?”
사실상 선후배 관계가 중요치 않은 에너제스였지만, 에단은 능청스럽게 웃어 댔다. 1년 만에 졸업하는 천재가 있고, 10년 만에 한 학년 진급하는 학생도 있는 게 이곳이건만.
“오, 에단! 아는 사이야?”
“어, 그럼. 잘 알지.”
에단이 사람들 앞에서 이안의 어깨를 꽉 쥐었다. 또 다. 또 아플 정도로 꽉 쥔다. 이안은 조심스레 에단의 손을 내렸다.
“그런데 저기, 에단.”
“응?”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이안은 알지 못했다. 이런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배운 적도, 겪어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안은 에단이 잘 모르는 거라고 여겼다.
“사람의 어깨를 아플 정도로 꽉 쥐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야.”
예의범절을 말이다.
“…뭐?”
“저번에 손을 꽉 쥔 것도 좋지 않았어. 처음 봤을 때 악수는 이 정도의 세기가 적당하거든.”
이안은 에단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예시를 보였다.
“괜찮아. 모를 수도 있지. 하지만 기본 예의니까 꼭 알아 두는 게 좋아. 있잖아. 제2동이 저쪽 건물이야?”
“…….”
“에단?”
에단은 얼굴이 벌게진 채 굳어 버렸다. 순수한 마음으로 가르쳐 주려는 이안의 의도와 달리, 에단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으므로.
‘천민이라서 못 배웠나 봐? 예의 있게 행동해야지?’
친구들은 굳어 버린 에단을 힐끔거리더니, 이내 이안에게 다가와 살갑게 말했다.
“2동이면 가는 길이니까 우리가 알려 줄게.”
“오, 고마워.”
“에단이랑 친해?”
“그러고 싶어. 하지만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걸.”
“아, 그랬구나…? 근데 너 정말 귀엽다.”
“다섯 살이라고?”
“응.”
“안아 줄까?”
“싫어.”
에단은 멀어지는 이안과 친구들을 보며 콧김을 씩씩거렸다. 귀족이라고 유세라니. 그것도 친구들 앞에서 이런 개망신을!
‘어디 두고 보자.’
아이는 씩씩거리며 돌부리를 힘차게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