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91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91화(891/935)
제891화. 보호자 호출
황궁 마법부.
아레나는 머리를 대충 틀어 묶은 채 정신없이 서류를 넘겨 댔다. 분명 어제 새벽에 모두 쳐내고 퇴근했는데, 출근하면 다시 제자리다.
“이게 저주지, 젠장. 과로사해서 물러나라는 걸 내가 못 알아 처먹고 있나? 응?”
“장관님. 무슨 혼잣말을 그리하십니까. 무섭습니다.”
“네가 장관 해 봐! 열이 안 뻗치나! 분명 몇 시간 전에 내가 다 정리했는데 이, 이것들이 대체 어디서 굴러들어 왔냐고!”
“어디서 굴러들어 왔냐고 물으신다면, 예, 여기 다섯 묶음은 행정부고, 여기 두 묶음은 마법부 내부 보고서, 그리고 이쪽은-”
“닥쳐!”
카아아악! 조금만 더 자극했다가는 입에서 불길이 솟구칠 것 같았다. 마법사는 입술을 오므리고서 조용히 서류 분류 작업에 몰두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나는 발소리. 아레나와 마법사가 동시에 문쪽을 바라봤다.
“…아, 이거 불길한데. 그치?”
“예, 저렇게 달려오는 것치고 희소식이 없어서.”
벌컥!
“장관님, 큰일 났습니다!”
“노크는 개 쌈 싸 먹었니?”
“에너제스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에너제스?”
아레나는 펜을 내려놓고서 탁상 달력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이안 하델 첫 등교 날이구나? 근데 왜 연락이 와? 그것도 ‘큰일’이라고 부를 만한 사안으로?
“왜?! 이안 하델한테 무슨 일 생겼대?”
“아니요, 그건 아니고, 저기, 정원을 날려 먹었답니다.”
“뭐? 누가?”
“이안 하델이요.”
아레나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끔뻑였다. 정원이 날려 먹을 만한 건가? 아레나가 입만 벙긋거리자, 옆에 서 있던 마법사가 되물었다.
“이안 하델이 그런 게 맞대?”
“예, 목격자가 많다고 합니다. 학교 측에서 지금 수습하고 있는데, 마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급히 연락이 왔습니다. 아마 지금쯤 로만드로 님이 먼저 가셨을 것인데요…….”
“…왜?”
이안 하델이 어째서 정원을 날려 먹었는지, 이유에 관해서 묻는 것이었다.
고작 한 번 만나 봤지만, 이안 하델은 귀족 자제의 태를 그대로 지닌 아이였다. 차분했고, 예의 발랐으며, 영민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것도 입학 첫날 사고 쳤을 리 없지 않은가.
“거기까지는 잘…. 직접 가서 들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돌아 버리겠네. 외근 준비해.”
“넵. 알겠습니다.”
아레나가 겉옷을 챙기며 일어났다. 마법부에서 이안 하델의 육아 방향성을 무엇으로 잡았던가? 바로, ‘올바르게’였다. 그 파괴적인 힘을 온전히 담아낼 단단한 그릇으로 키우는 것.
‘이거, 올바른 거 맞아?’
일단은 서둘러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게 좋겠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할 것이고, 혹 아니라면…….
‘핫쒸. 혼낼 수 있을까.’
아레나가 미간을 꾹 누르며 고민했다. 감정 섞지 않고 ‘잘 혼낸다’는 게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안 하델이 막, 막, 덤비면 어쩌지?”
“아직은 괜찮습니다. 장관님이 이길 겁니다.”
“진짜지? 지면 네 탓.”
“…저기, 장관님?”
보고하던 마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전할 말이 남아 있다는 듯. 아레나는 소매에 팔을 대충 집어넣다가 멈칫했다.
“왜?”
“별관도 부서졌다 합니다.”
쩌어억, 아레나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고요. 수리비 청구서에 찍을 인장 지참해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미치겠네, 정말!”
“이건 이안 하델이 아니라, 뀨가 한 짓입니다.”
“뭐?!”
뀨? 나이 좀 먹고 나서는 의젓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뭐 하다가 남의 집 건물을 부숴 먹고 다녀?
마법사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거의 포기하다 못해 해탈한 표정이다.
“가자!”
“예, 가시죠.”
이런 젠장, 젠장! 아레나가 장관실을 박차고 달려 나가자, 그녀에게 보고서를 전달하러 오던 마법사들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내달리는 걸음을 보아하니 뭔가 일이 터졌나 보다. 안타깝지만 본인 일 아니니 다행이지, 뭐.
“됐다. 다음에 오자.”
“근데 오늘 오후, 이안 하델 첫 출근하는 날 맞지?”
“아마도 그럴걸?”
“…간식 준비해야겠네.”
마법사들은 여유롭게 보고서를 팔랑거리며 몸을 돌렸다. 저 멀리, 직접 도약하여 날아가는 마법부 장관을 구경하며.
* * *
콰앙!
아레나가 교무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소파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던 이안 역시 그녀를 알아봤다. 긴장과 흥분에 씩씩거리던 아레나가 이안의 상태를 보고는 멈칫거렸다.
“이안 하델?”
“아, 장관님.”
“너 꼬라지, 아니, 상태가 왜 그래?”
헝클어진 머리칼과 대충 닦아 냈지만 완전히
지워 내진 못한 먼지, 얼룩덜룩 엉망인 교복. 어디서 한바탕 구른 모양새였다.
학교장인 다슈아가 코끝을 찔끔거리며 다가왔다.
“아레나 장관님?”
“아, 다슈아 학교장님? 오래 계시네요.”
별 의미 없는 간단한 인사였지만, 마지막 말이 다슈아의 마음을 후벼 팠다. ‘그때도 인기 없는 교수였는데, 아직도?’라는 말로 들렸으니. 다슈아가 더듬더듬,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대답했다.
“예, 뭐, 이 자리도 나름 고충이 많아서요. 생각보다 할 일도 많고, 사명감을 가지지 않으면…….”
“그나저나, 무슨 일이지요?”
대체 왜 공원이 폭발했고, 이안 하델의 꼴이 저런 것인지 묻는 말이었다. 아레나의 날카로운 말투에 이안이 슬쩍 그녀를 올려다봤다.
“다른 게 아니라, 이안 하델 군이 ‘소각장’이라 불리는 정원에 들어갔더라고요. 평소에는 학생들 출입을 금하는 곳인데, 주의가 부족했나 봅니다.”
학교장의 말에 이안은 아무런 대답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레나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서 소파에 앉았다. 이안의 맞은편이 아니라, 아이의 옆자리에.
“소각장이요?”
“예, 몇 년 전에 공간술사들의 실험으로 만들어진-”
“아, 예예. 기억납니다. 폐쇄하려다가 의외로 효용성이 높아 운영하겠다 하셨지요. 그런데 거길 이안이 들어갔단 말입니까? 혼자서?”
마지막 질문은 이안에게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아레나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답했다.
“네. 제가 지리가 익숙지 않아 잘못 들어간 것 같습니다. 바로 나오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마력으로 파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안은 자신을 정원으로 데려간 학생들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용서한다거나 그런 거룩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 불려 와서 추궁당해 봤자, ‘그냥 괴롭히고 싶었다’ 따위의 허망한 이유를 대면 모든 게 끝이지 않나.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진의 여부를 파악하려면 직접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마력으로 파훼했다? 그 정원을?”
“네. 복구 불가라고 하던데요.”
“아.”
짤막한 감탄. 무엇에 대한 것일까. 다슈아는 코로 분위기를 감지하려는 듯 연신 움찔거렸다. 가만히 생각을 이어가던 아레나가 뭔가를 깨닫고는 눈을 번뜩였다.
“학교장님-!”
“히익!”
“그럼 지금 이안 하델이 위험 구역에 들어갔다가 이 사달이 났다는 말씀이시네요? 제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서, 서, 서로의 입장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에- 그러니까 이것이 꼭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은 또 아니고요-”
“의견을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요. 기다, 아니다!”
“기, 기다!”
“이거, 이안 하델의 보호자로 가만히 넘어갈 수 없는 사안입니다. 그럼 위험 구역을 학교 내 버젓이 둔 것도 모자라, 출입 통제마저 허술했다는 것 아닙니까?”
“원래 그 앞에 가림막과 경고문을 쳐 두었는데요…….”
“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첨단 아카데미에서, 그 무슨 구질구질한 변명이십니까?”
아레나의 목청이 계속 높아졌다. 이는 이안 하델을 두둔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다음으로 논의할 ‘뀨’ 사건에서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목적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소리치는 아레나를 힐끔힐끔 구경하던 이안이 불쑥 끼어들었다.
“장관님.”
“전적으로 아카데미에 책임을- 어? 왜?”
이안의 부름에 아레나의 목소리가 단번에 꺾였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다음부터 조심할 터이니 혹 배상이 필요하다면 알려 주시고 이만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업이 시작되어서요.”
“옴마? 이안 하델, 너에게 청구할 건 아무것도 없어. 앞으로도 위험이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위를 지켜. 너는 마법부와 황궁의 소중한 재원이다.”
알간?
아레나가 눈썹을 까딱거리자, 이안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먼저 가 보라는 듯, 우아한 손짓으로 교무처 문을 가리켰다.
“어서 가 보렴. 수업 늦겠다.”
“그럼, 나중에 마법부에서 뵙겠습니다.”
고개까지 꾸벅 숙이는 인사에 아레나는 한숨 놓았다. 혹여 이안이 사고 친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뭐, 납득이 되잖아.
드르륵!
이안이 나가자, 아레나 역시 다슈아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일어났다.
“아무튼 학교장님, 이 일 관련해서는 따로 논의하시지요. 에너제스의 안전 실태에 대해서 내 허투루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잠깐.”
“…예?”
은근슬쩍 뒤따라 나가려다가 뒷덜미를 잡힌 아레나. 다슈아가 까만 코를 찡긋거리며 눈빛을 바꿨다.
“마법부 소속 드래곤 관련하여 기물 파손 보상에 대해서 말씀 나누셔야 하는데용.”
“…….”
하, 거참. 안 넘어가네. 두더지라도 교수는 교수라 이거지? 아레나는 다시 소파에 몸을 맡기듯 풀썩 앉았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태세 전환하여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흠흠, 다슈아는 이때만을 기다렸다며 연신 얼굴 털을 매만지며 꿍얼거렸다.
“아니이- 도마뱀도 아니고. 무려 드래곤입니다, 드래곤! 마법부에서 신경 써서 관리해 주셨어야지용. 갑자기 교내에 들어선 것도 모자라서 기물 파손이라니… 이거, 문제 있습니다요?”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 아레나는 애써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뀨가 대체 왜 그랬을까요? 애가 참 순한데. 사고 한번 친 적 없고…….”
“글쎄요? 드래곤이랑 말 통하는 게 바로 마법부니, 마법사님들이 알지 않을까요? 우선 피해 추산액은 이 정도입니다.”
스윽.
아레나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다슈아가 내민 종이를 슬쩍 뒤집었다. 0이 하나, 둘, 셋, 넷…….
“이게 맞아요?!”
“마법부에서 따로 알아 보셔도 됩니다.”
“아니, 이, 안 그래도 비싼 것만 처먹는 놈이 뭘 이리도 해 처먹, 하! 지금 뀨 어디 있습니까?”
내막을 자세히 물어봐야지, 안 그랬다가는 혈압 올라서 못 살겠다. 예산 담당하는 부서에선 또 얼마나 닦달할 거야?
-뀨?
마침 교무처 창문에 고개를 거꾸로 내미는 뀨. 아레나는 너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한편, 홀로 2동으로 올라간 이안.
이안은 강의실 문 앞에서 잠깐 멈추었다.
‘아무렇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에게 약점을 보이게 될 것이다. 네놈들이 나를 위험에 빠트리려고 했으나,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다고-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꾸욱.
이안은 제 볼을 있는 힘껏 누르며 마음을 추슬렀다. 수업이 끝나면 놈들의 반응을 살피고, 왜 그런 짓을 했는지, 혹 크로니가 시키지는 않았는지 알아낼 것이다.
드르륵!
수업에 열중이던 교수와 반쯤 졸고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이안은 듬성듬성 비어 있는 자리를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안 하델 군? 어서 들어오시게.”
“아, 네.”
어찌 된 일이지? 이안을 정원으로 데리고 갔던 애들 모두…….
‘없어?’
이안은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머리에 붕대를 덕지덕지 감은 채 필기 중인 한스를 힐끔거렸다.
“저기 있잖아. 너 왜 그렇게 다쳤어?”
“…….”
“애들은 어디 갔는지 알아?”
한스는 할 말 많지만 수업이 먼저라는 듯 이안을 째려봤다. 그에 이안은 어색하게 웃으며 책을 펼쳤고, 머릿속으로 사라진 아이들의 행방을 궁금해하며 눈을 깜빡였다.
-뀨우우욹!
어디선가 드래곤의 포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