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9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92화(892/935)
제892화. 여섯 번째 감각의 신호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교수가 책을 덮자마자 한스가 이안을 휙 돌아봤다. 필기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없던 이안은 잠깐 움찔했다가 이내 멋쩍게 웃었다.
“이안 하델.”
“응.”
날이 바짝 선 말투. 아무리 봐도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데…. 어째서 저러는 걸까? 그런 한스가 이안은 의아했다.
“아까 왜 다쳤는지 물었지?”
한스는 잘 보라며 상처를 하나씩 손으로 짚어 가며 설명했다.
“이건 날아든 나뭇가지에 베인 거, 박살 난 조각상에 뒤통수 맞아서 멍들고, 앞으로 넘어져서 살갗 까졌지? 이씨, 교복 소매까지 찢어졌잖아.”
“아아.”
공원 터질 때 가까이 있었구나. 이안은 그제야 왜 한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자신 때문에 다친 것이니 사과하는 게 맞겠지.
“미안. 괜찮아?”
“괜찮아 보이냐?”
“응. 병원 대신 수업 들으러 온 거면 괜찮은 거 아니야?”
한스는 눈매를 가늘게 뜨며 인상을 찌푸렸다. 반박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다. 자신 역시 참을 만하니까 수업에 들어온 거지 않나. 한스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책가방을 정리했다.
“앞으로 조심 좀 해. 주위 사람들은 오가다 날벼락 맞기 딱 좋으니까.”
“응, 그럴게. 근데 한스.”
한스? 한스으으? 건방진 귀족 꼬맹이 자식. 학교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지만, 뭐 저렇게 친한 척을 해 대는 거야?
이안은 한스의 뒤를 쫄쫄 따라가며 물었다.
“아까 보니까 정문 쪽으로 가던데, 정원엔 왜 왔어?”
허점을 훅 찌르는 질문이다. 성큼성큼 도망치듯 걷던 한스가 멈칫거리며 이안을 돌아봤다. 아이의 큰 눈망울에는 하늘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정원은 학생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곳이라 들었어. 근데 한스, 너는 왜 왔던 거야?”
자신은 속았다고 하지만, 대체 너는 어째서?
한스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잠시 말을 골랐다. 당사자에게 대놓고 콩고물 먹으러 갔다 하는 건 너무 그렇지 않은가.
한스의 대답이 늦어지자, 이안의 미소가 조금씩 화사해졌다.
“구해 주러 왔구나?”
“어?”
그놈들이 자신을 위험에 빠트린 걸 알고, 구해 주러 온 거였어! 그렇지 않고서 정문으로 갔던 한스가 반대편인 정원으로 올 이유가 없지 않나. 학생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성격상 시간 허투루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고…….’
한스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알아서 생각해.”
“고마워, 한스. 근데 그 애들이 날 골탕 먹이려는 건 어찌 알았어?”
너만 빼고 애들 다 알고 있었거든? 굳이 엿들으려고 안 해도 너희들 말소리 다 들린다고.
하지만 한스는 역시나 대답하지 않았다. 등교 첫날부터 별별 시끄러운 소란에 휘말린 아이다. 더 마음에 상처를 줘 봤자 득 될 것 없다.
“한스, 그 애들은?”
“너 정원으로 데리고 갔던?”
“응. 나 꼭 만나고 싶어.”
“글쎄. 양호실에서 치료 불가라 병원으로 갔다 하던데.”
한스는 기억을 더듬었다. 공원의 보호막이 깨짐과 동시에 별관의 작은 건물 한 채가 무너졌다 들었다.
처음에는 정원에서 일어난 파동 때문인 줄 알았는데 곧장 드래곤의 소행이라는 게 알려졌다. 퍽퍽! 꼬리로 연신 지붕과 기둥을 두드려 패고 있었던 게다.
“잔해에 깔려서 어디 부러졌다고 하더라.”
“뭐?”
어어, 그러면 안 되는데? 이안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멈췄다.
덩달아 한스의 걸음 역시 정지. 한스는 문득. 자신이 이안을 배려하여 보폭을 같이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
시간 낭비도 어지간해야지! 한스가 정신을 번뜩 차리고 앞장서자, 이안이 쪼르르 따라붙었다.
“아무튼, 한스. 미안해. 나 때문에 다치고 교복까지 찢어져서. 성의껏 보상할게.”
“보상?”
“응. 뭘 원해? 새 교복을 사 줄까? 뭐든지.”
한스가 입을 비죽거렸다.
이래서 돈 많은 게 부럽다. 자신의 잘못을 수습할 수 있는 능력. 사과에 쩔쩔매는 일 없고, 자신과 잘못을 동일시 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스는 찢어진 소매 끝자락을 매만지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됐어. 이제 말 걸지 마.”
“하지만-”
“왜 자꾸 따라와?!”
“…? 정문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니까?”
한스와 이안만이 아니라 학생 대부분이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이안도 정문 앞에서 바르사베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안이 투명한 얼굴로 물었다.
“마차 태워 줄까?”
“됐어. 형이 데리러 와.”
“형이 있구나. 부럽다.”
한스는 나움의 자랑이었고, 나움은 한스의 자랑이었다. 이를 부러워하는 순수한 감탄에, 한스의 반응이 조금 누그러졌다.
“너희 마법부 안에 별채 있지?”
“응? 별채?”
음? 공원 안에서 봤던 미지의 존재도 ‘별채’를 언급했었는데. 한스 역시 똑같은 말을 입에 올리자 이안은 살짝 놀라며 고개 들었다.
“그 별채, 우리 선조가 지은 거라 그랬어.”
“정말?”
“어. 아주 옛날 일이긴 하지만.”
“와, 대단하구나. 황궁 건물을 짓는 건 아무나 못 하잖아.”
“뭐. 그렇긴 하지.”
어디까지나 과거의 영광이긴 하지만.
말끝을 흐리던 한스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일 마친 나움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사아아아.
좌우로 난 나무 이파리들이 파도처럼 너울 쳤다. 그리고 그 사이로 새어 드는 오후의 햇살-
이안의 심장 어딘가에서 깊은 울림이 퍼졌다.
“한스!”
“나 간다.”
한스는 가방을 둘러메며 자전거 쪽으로 달려갔다. 이안은 어쩐지 크게 뛰는 심장 탓에 대답조차 못 할 지경이었다.
“저기-”
이안은 턱, 하고 막힌 말문을 겨우 터 보았지만, 이미 한스를 태운 자전거는 저 멀리 멀어진 뒤다.
‘몽글몽글해.’
심장께의 낯선 감각. 이안의 손끝이 떨렸다. 자신도 모르는 기억 저편에 누군가의 흔적이 존재하는 기분이다. 짙게 그리고 따뜻하게.
이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스가 사라진 길 쪽을 끝까지 지켜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어이, 이안!”
바르사베였다.
아침과 달리 땀과 먼지에 엉망인 차림새. 이안은 폭발 사고에 휘말려 이런 꼴이라면, 바르사베는 그냥 일상처럼 보였다.
“첫날부터 거하게 한 건 했다며?”
“…….”
“왜 그래? 뭘 그렇게 봐?”
“누님.”
“응.”
“이상한 감각이 느껴져요. 오감을 넘어선 무언의 감각이 꼭 저를 깨우려는 것 같아요.”
이게 뭔 개소리? 바르사베는 팔짱을 턱 하고 낀 채 이안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더니 짝! 손뼉을 쳤다. 알겠다, 요놈! 등교 첫날부터 사랑에 빠진 거냐? 이거 웃기는 놈일세.
아니나 다를까, 이안이 심각한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한스와 나움이 사라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 한스라고 제 짝꿍인 아이인데요.”
“응. 예뻐?”
“아니요.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라요. 한스의 형이요. 형이 좀 이상해요.”
“…형? 어허? 이것 봐라?”
“머릿속에서 누가 손가락을 탁, 튕긴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허허?”
바르사베는 흥미롭다는 듯 이안에게 가까이 다가와 눈썹을 까딱거렸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사랑에 빠진 건 아닌 것 같고.
“혹시 이게 그건가요?”
“어허, 아니야. 그거 사랑 아니-”
“마검사.”
“아아. 크흠.”
바르사베가 그러지 않았나. 마법사는 마검사를 알아볼 수 있다고. 마력을 공통으로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만남이 분명히 주어진다고.
바르사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혹시 모르니 다음에 만나면 확인해 봐.”
“그래야겠어요. 보상에 관한 문제도 남았고…….”
“보상?”
그때였다. 멀리서 로만드로가 지친 낯빛으로 터벌터벌 걸어왔다. 학교 측과 사태 마무리 관련해서 잘 매듭짓고 온 듯싶다.
“아이고, 이안 님!”
“로만드로. 미안해요. 첫날부터.”
“아닙니다, 아녀요. 크게 안 다치셔서 다행인 거지요. 학교 측이랑은 잘 마무리했으니, 전혀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장관님은요?”
“바쁘시다고 날아가셨습니다.”
그렇구나.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 올랐다.
고작 첫날, 시간으로 따지면 9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두 아이의 모습은 아침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꼬질꼬질하고 여기저기 헝클어진 옷. 로만드로는 손수건으로 이안의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 주며 물었다.
“마법부에 들렀다 갈 것인데, 피곤하지는 않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어린 게 좋긴 좋습니다그려.”
“나도! 나도 황궁 들어가는 것인가?”
“바르사베 아가씨, 원하신다면요. 아버님 퇴근하실 때 같이 가시겠어요?”
“좋아!”
방방 뛰는 바르사베와 달리, 이안은 꼼지락꼼지락 옷매무시를 정돈했다. 대롱대롱 흔들리는 두 다리엔 흙 얼룩이 가득했다.
로만드로는 어쩐지 육아 최전선에 나와 있는 기분이 들어 애꿎은 하늘만 올려다봤다.
* * *
황궁 본관, 제국방위부 건물 상층에 모인 장교들은 각 잡힌 자세로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들의 장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게 여유로워 보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크로니다.
“장관님 도착하셨습니다.”
끼이익.
처억!
제국방위부 장관 샤르토의 등장에 장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절도 있게 경례했다. 샤르토는 모두 귀찮다는 듯 설렁설렁 테이블로 걸어가 장갑을 벗어 던졌다.
“어, 됐어. 편하게들 해.”
제국방위부에서 매일 진행하는 일간 회의 시간이다. 그들이 보고서를 나누며 일상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잠시-
“그거 들으셨습니까?”
누군가 크로니 쪽을 힐끔거리며 장관에게 고했다.
“마법부에 새로이 들어온 마법사 말입니다.”
“아아, 알지. 이안 하델. 우리 크로니 대장의 숙부라지?”
한참이나 나이 어린 이를 숙부로 두고 있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족보상 문제가 있다는 뜻이니. 장관은 혀를 쯧 차며 말을 덧붙였다.
“대단하다고 하던데.”
하델 가문의 재산을 끌어오려는 계획은 이미 장관과 논의가 된 사안이었다. 지지부진하여 이리 엎어질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마법부 자체에서도 천재라 난리더군.”
크로니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까딱거렸다. 대외적으로 부정하기에는 그 기대가 너무 컸고, 수긍하기에는 솔직히 속이 뒤틀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이안 하델이 에너제스에 입학했는데,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 탓에 마법부 장관에게 일정에 없던 외근이 생겨 처리 못 한 서류가 있습니다.”
“문제? 에너제스에서?”
장관이 보고 중인 장교가 아닌 크로니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여 의도한 것인지 묻는 시선이다.
“워낙 강력한 마력 탓에 학교 기물을 파손했다고 하더군요.”
크로니는 싱긋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사실에 입각한, 약간의 거짓을 섞어서.
“크로니 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에너제스에 심어 둔 정보원을 통해 계속 기회를 엿볼 것이다. 하지만 이안이 가진 힘이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는 게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크로니는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내밀며 제안했다.
“생각보다 그 성장세가 경이로울 지경이니, 마법부 측에 한 가지 업무 요청을 하고자 합니다.”
스윽.
장관과 장교들이 보고서를 살폈다.
“이번에 북쪽 지대 병력 파견 안에, 이안 하델의 동행을 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안 하델을요? 될까요?”
고작 다섯 살이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애를 전장에 데리고 가다니. 전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돌보느라 병사들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다.
“안 될 이유는요?”
하지만 크로니는 강경했다.
“마법부에 정식으로 입부했으니, 제국이 수행하는 모든 전투에 차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천재 ‘마법사’라 하지 않습니까? 한 명으로 많은 병력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필시 황제께서도 반기실 테지요.”
제국방위부의 견제를 위해, 황제는 병력을 움직이는 데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이안 하델이라면? 황제 역시 흔쾌히 허락할 것이다.
“물론 경험이 일천하여 세심한 마법적 기교까진 기대할 수 없겠으나, 북쪽 지대는 민가가 거의 없으니 파괴적이고 과시적인 힘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북쪽 소수민족 놈들에게 제국의 저력을 보여 주는 용도니 그리 위험한 전투도 아니고요. 어린 나이에 경험을 쌓기에는 이만한 기회가 없다 여겨집니다만.”
“하지만 너무 어려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장께서도 열셋의 나이에 첫 전투를 치렀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나이는 차출 거부 명분이 되지 못한다. 어린 것이 문제라면 마법부에서 일하는 것 또한 문제고, 그리되면 마법부 입부 자체가 무효가 되어야 하니까. 이안은 마법부라는 보호자를 잃는 셈이다.
이를 이해한 장교들이 고갤 끄덕였다.
“잠시 북쪽 여행을 떠난다 생각하라 하지요. 뭐.”
“황제께서는 허락하실 것 같고…….”
“문제는 마법부지요?”
“거기서 이안 하델 취급이 어떠합니까?”
“그냥 신입처럼 여기는 것 같긴 했습니다만…….”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져 이안을 북쪽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면? 에너제스에서 죽길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쉽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다.
크로니는 이 사안에 대해 떠들어 대는 장교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래, 그렇게 더 열과 성을 다해라. 결과야 어찌 되든 나에게는 이득인 상책(上策) 중 상책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