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93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93화(893/935)
제893화. 첫 출근
이안은 책상에 엎드려서 마법사들이 일하는 걸 지켜봤다. ‘마법부’이니만큼 뭔가 팡팡 터지고, 휘리릭 날아다니는 걸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정적이었다.
마법사들은 대부분 서류 작성에 몰두했고, 인장을 받으러 돌아다녔으며, 네가 못했니 내가 잘했니를 따지며 싸워 댔다.
“이게 정신 나갔나, 누가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해?”
“네가 인장을 장식용으로 처찍어서 이렇게-”
언성 높여 싸우던 두 마법사가 낯선 기운에 멈칫거렸다. 책상에 엎드린 채 눈망울을 반짝이는 다섯 살 이안과 그 주위에서 ‘작작 해라’라는 경고성 시선을 보내는 동료들을 감지한 게다.
‘이 미친 시끼들아, 여기 다섯 살 있다.’
‘주둥이 잠가.’
‘하던 대로 하지 말라고. 이안 하델 듣는다고.’
‘애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 말 못 들어 봤어?’
‘마법부 들어와서 이안 하델이 이상한 거 배웠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우리 모두 죽는 거여.’
파지지직! 마법사들이 살벌하게 눈을 번뜩이자 두 사람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마치 화해하려는 듯이 말이다.
“…친구야. 일 처리를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상당히 곤란하구나.”
“어, 응. 그렇구나. 그럼 네가 진작, 잘하지, 그랬니?”
“해보자는, 거구나?”
“이쪽으로, 따라올래?”
꽈아악. 악수를 가장한 분노의 힘겨루기가 조용히 진행되었다.
두 사람이 옆으로 슬금슬금 걸어 사라지자, 이안은 꽤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고 끝까지 지켜봤다. 저런 식으로도 일 처리를 하는구나.
아직은 업무에 투입되지 않지만, 언젠가 자신도 마법부에서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내야 했다. 뭐든지 눈에 담고 머리에 새겨야지.
“어쭈?”
마침 장관실로 향하던 아레나가 사무실 꼬라지를 보고서 우뚝 멈췄다.
“안녕하세요, 장관님.”
“어어. 그래. 하교는 잘 했고?”
“네. 덕분에…….”
아레나는 눈매를 가늘게 떠 마법사들을 쳐다봤다. 이안 하델이 빈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오케이. 그 위에 온갖 간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 그것도 오케이.
아니, 근데…….
“책상 배치가 왜 이래?”
원래는 각자 벽 보는 방향으로 책상을 놓았다. 안 그래도 서로 꼴 보기 싫은데 앉은 자리에서까지 마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최대한 멀리, 간격까지 넓혀서 떨어져 있는 게 기본 배치인데…….
“배치가 왜요?”
이안의 물음에 마법사들은 대답 대신 큼큼, 모른 척 시선을 내리깔았다. 너무 바빠서 장관의 말이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하.”
아레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봤다. 죄다 이안 하델을 중심으로 책상이 원을 그리고 있지 않나? 이것들이 뭐 하자는 거지?
사무실 구조가 원래 이런 줄 아는 이안만이 뭐가 문제냐는 듯 눈을 깜빡일 뿐이다.
“저기- 장관님, 안 바쁘십니까?”
“어어, 예. 아까 보니까 또 서류 한 다발 배달 왔던데.”
허튼소리 말고 서둘러 꺼지십시오. 마법사들이 정중하게 장관을 돌려보내려 애썼다. 이안 앞이다. 겉으로는 최대한 담담하게, 마법사 선배로서의 위엄을 지키려는 중이다.
“바쁘지… 바쁜데… 참 나. 기가 찬다.”
“…….”
“이안 하델은 오늘 계속 여기 있나?”
“아, 넵.”
이안이 자세를 바로 하며 대답했다.
“오늘은 마법부 구조와 지리를 익힌 다음에 여기서 케이크 다 먹고 돌아가면 된다 하셨습니다.”
쫄래쫄래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맛있는 거 먹고 퇴근하기.
“그리고 내일은 마법부 정원 관리에 대해서 배우고요.”
화창한 날, 정원에서 따스한 햇살 만끽하며 피크닉.
“그다음 날은 황궁 출입문 작동 방법과 보호막 생성 및 유지에 대한 관리법. 그리고 각 부서와의 업무 소통 방법 등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성문 위로 올라가서 바깥 경치 좀 구경하고, 각 부서 돌아다니면서 입부 인사를 빙자한 예쁨받기.
“그러고도 시간이 좀 남으면 마법부에서 운영하는 중앙지점 사업장에 방문하여 수익 구조에 대해서 알려 주신다 하셨습니다.”
응. 마법사들 시간 되면 바깥 외출해서 나들이한다는 말이로군? 아레나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어쨌거나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재밌는 구경도 하고, 사흘 치 계획을 상당히 알차게 짰다는 거잖아? 아레나는 만족스럽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시작부터 정신없이 바쁘네, 이안 하델.”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우, 기세 좋고. 오케이! 그럼 수고!”
“저기, 근데 장관님!”
“응?”
아레나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등을 돌리려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뀨가 사고를 쳤다고 하던데요.”
“아아.”
망할 드래곤. 덕분에 이번 분기 예산에 구멍 났다. 아레나의 표정이 팍 찌그러지자, 이안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혹시 뀨가 그런 게 저 때문인가 해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이라 하기에는 이상하지 않나. 자신을 그 정원으로 데려갔던 아이들이 하나같이 잔해 더미에 깔려 병원으로 실려 갔다니.
이에 안 듣는 척 딴짓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펜을 멈추고는 귀를 쫑긋거렸다.
‘지금 저게 무슨 소리래?’
‘몰라.’
서로 시선으로만 쑥덕쑥덕. 다들 숨죽인 채 아레나와 이안의 대화를 엿들었다.
아레나는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본인 때문이라.’
뭔 일이 있긴 있었다는 거지.
그녀 역시 뀨의 의중을 완벽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 중이었다. 한데 지금 이안 하델 반응을 보아하니 확실히 아이와 연관된 것 같다.
“아니.”
“예?”
“아니라고.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아…….”
하지만 아레나는 이렇게 일단락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더 대화하기에는 밀린 업무가 산더미였다.
이안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아레나를 보면서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
그리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마법사들의 시선을 알아채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다들 일하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이안의 질문에, 다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류에 코를 박아 댔다.
사각사각, 펜촉 갈리는 소리만 나지막이 울리는 사무실. 이안은 다시 테이블에 앉아 케이크를 떠먹으며 마법사들의 업무를 지켜봤다.
“이안 하델.”
“예?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시키긴 뭘, 뭘 시켜. 이제 막 첫 출근한 다섯 살짜리 애기한테! 마법사는 손을 크게 휘저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에너제스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없었습니다.”
“내가 드래곤 담당이라서. 말해 주면 좋겠는데.”
사실뻥이다. 뀨는 이미 오래전에 마법부에서 자리 잡았고, 홀로 여기저기 떠돌며 자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먹고 자는 것만 마법부에서 맡으니, 사실상 담당이라고 할 만한 직책은 필요 없었다.
“드래곤 담당이요?”
“응. 그러니까 말해 줄래?”
말해 줘, 말해 줘, 말해 줘! 마법사들이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눈을 반짝였고, 이안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 케이크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며 입을 막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마법사들이 아니다. 다섯 살 아이의 고집도 대단하지만, 날고 기는 황궁에서 마법부원으로 몇 년씩 버틴 마법사들 역시도 만만치 않은 자들이다.
스윽.
마법사들이 의자를 끌고 와 이안의 곁에 슬쩍 앉았다.
어느새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인 이안.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포크를 내려놓았지만, 빠져나갈 틈은 없어 보였다.
“이안 하델. 이건 말이지, 단순히 네 일과가 궁금해서 그런 게 아니야.”
“맞아. 우리가 그런 걸 왜 궁금해하겠어?”
“그럼그럼. 절대 그런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지.”
“드래곤 업무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뀨에 대해서,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우리에게 말하는 건 고자질이나 뭐, 그런 쓸데없는 잡담이 아닌 거지. 그래! 일종의 업무 보고인 셈이다.”
“맞아. 업무 보고.”
“마법부원이면 절대적으로 해야지.”
“그럼! 우리가 알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절차가 그래.”
조금씩 조여 오는 마법사들의 압박. 이안이 조금 놀란 것처럼 상체를 뒤로 물리자, 마법사들이 황급히 태세 전환했다. 금세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환기하는 그들이다.
“자자, 정 그러면 간단히라도. 응?”
“그게…….”
이안이 우물쭈물 에너제스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려 하자, 마법사들은 ‘회의 중!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내걸고는 사무실 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방해하는 즉시 파업!’이라는 자그마한 메모와 함께.
* * *
드르륵.
아레나는 장관실 문을 열자마자 다시 닫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 분명 ‘서류 한 뭉치’라며?
책상 위, 산처럼 쌓인 서류 더미에 창문이 가려질 정도였다. 그녀는 외투를 벗어 대충 내던졌고, 이를 보좌관이 익숙하게 공중에서 낚아챘다.
“지긋지긋하네, 정말. 이번엔 어디서 왔는데?”
“제국방위부인 것 같습니다.”
“제국방위부?”
아레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현재 황궁 분위기 물 흐리는 데 제일 앞장서서 열심인 새끼들이다.
이번엔 뭐? 북쪽에 병력을 대거 추가 배치해야 한다나 뭐라나. 그것 때문에 대회의에서 관료들끼리 언성 높인 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졌다.
‘황제 폐하는 분명히 반대하실 것인데, 명분이 있으려나 몰라…….’
제국방위부가 올린 병력 추가 지원 요청은 황권을 위협하는 수였다. 야금야금 권력의 추를 제 쪽으로 끌어오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황제에겐 심히 부담스러울 터.
심지어 방위부 놈들은 마법부에도 마법사 지원을 요청했었다. 북쪽의 소수민족은 술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라는 명목이었다.
물론 아레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일단 인력도 부족했고, 전쟁도 국지전도 아닌 단순한 긴장 상태에 가까웠으니까.
‘아마 이번에 북쪽으로 지원 병력 올라가면, 그때는 진짜 전쟁이 날지도 모르겠어. 제국방위부 놈들, 그걸 원하고 있으니까.’
그때 되면 어쩔 수 없이 참전해야겠지만, 지금은 굳이? 네놈들 잔치하려고 벌인 판에 발 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레나의 입장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종이를 넘기다 뭔가를 발견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너무 피곤한가?”
“약 좀 가져올까요?”
“아니, 제국방위부에서 이안 하델을 차출해 달라네?”
“네?”
보좌관 역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서류를 함께 확인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글자를 따라 읽었다.
“이안 하델은 현재 마법부에 필요한 재원이 아니니 차출하더라도 마법부 업무에 차질이 없을 것이며, 전쟁이 아닌 북쪽 지대 경계 강화를 목적으로 한 차출인지라 그 위험도도 낮다. 반면 마법 역량 성장을 위한 기회는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이라 판단하는 바… 무엇보다 혈계인 크로니가 함께하여 안전을 도모할 것이니, 마법부는 이에 응하여 견문을 넓히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아레나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하다가 중얼거렸다.
“이것들이 미쳤나?”
애 나이가 다섯 살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고작 다섯 번 계절의 흐름을 겪었다고. 그런 애를 데리고, 뭐? 차출? 전장엘 나가?
“나 지금 상식이 파괴되는 기분인데.”
“예. 당연히 거절함이 마땅해 보입니다만-”
보좌관 역시 말끝을 흐리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제국방위부 놈들의 비열한 속내를 감지한 게다.
“쉽게 생각해 답해선 안 될 거 같습니다.”
분명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안 하델의 차출을 수락하면 수락한 대로, 거절하면 거절한 대로 제국방위부는 이득을 얻게 될 터.
“그러니까, ‘나이가 어려서 안 된다’ 같은 빤한 거절은 안 된다, 이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레나도 동의했다. 구린내가 났다. 분명 그에 대한 반박을 준비하고 있으리란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것도 그렇고, 자꾸만 저희를 한쪽으로 몰아간다는 느낌입니다. 벌써 두 번째 지원 요청이지 않습니까. 이것마저 거절하면 제국방위부에서 어찌 나올지…….”
“아, 골치 아프네.”
아레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미간을 좁혔다.
“하, 나 원 참, 새끼들…….”
“일단 답변을 미루겠습니다.”
“아니아니, 제국방위부에 면담 요청해. 말로 하자고, 말로. 이딴 식으로 쪽지 주고받는 거 종이가 아깝다.”
직접 만나서 그 의중을 파악하고 선 넘는 부분은 그 자리에서 잘라 버리는 게 속 편하니까.
“맞다이로 들어간다.”
아레나의 지시에 보좌관이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