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94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94화(894/935)
제894화. 경고
끼이익.
제국방위부 장관 샤르토가 친절히 의자에서 일어나 아레나를 맞이했다. 로브를 휘날리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뭐랄까-
바로 싸대기를 갈길 것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아이고, 아레나 장관님.”
하지만 다행히도 아레나는 그러는 대신 샤르토 앞에 우뚝 멈추었다. 크로니를 비롯한 장교들이 아레나를 주시했다.
“샤르토 장관님. 시간 괜찮으신지?”
“물론입니다. 아레나 장관께서 이리 직접 오셨는데요. 앉으십시오. 이쪽으로.”
샤르토는 소파로 안내하며 장교들에게 은밀히 눈짓했고, 시종들은 바삐 움직여 찻잔을 내왔다.
“예, 한데 어쩐 일로?”
“어쩐 일인지는 장관님께서 더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마법사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씀 안 하시면 알 길이 없습니다.”
능글맞은 새끼. 아레나는 입매를 비틀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제 입으로 물꼬를 틀지 않겠다, 이거지? 아레나는 손을 내밀자 보좌관이 그녀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아까 제국방위부에서 올라온 제안서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이안 하델을 북쪽 원정에 차출해 달라고 하셨는데.”
“예예, 맞습니다. 한데 문제라도?”
“…문제라도오? 지금 제가 잘못 들었나요?”
아레나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이 황당한 태도 좀 보게? 샤르토는 찻물을 홀짝이며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출병에 마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건 으레 있는 일 아닙니까? 가능하다면 허가해 주시고, 불가하다면 답신을 보내면 되는 것을요. 마법부가 바쁘긴 바쁜가 봅니다. 서류 보낼 직원이 없어서 장관님께서 직접 오시다니.”
명백한 비꼼이었다. 바쁘다더니 고작 이런 일로 행차하느냐는. 아레나는 미소를 유지하며 대꾸했다.
“아무리 봐도 ‘황당’해서 말이죠. 제국방위부에서 정식으로 검토한 내용이 맞는지, 맞는다면 우리 장관님 깊은 마음도 헤아릴 겸, 겸사겸사 시간 좀 내 봤습니다.”
정신 나간 새끼들아. 말도 안 되는 걸 올려놓고서 어딜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어? 아레나의 속마음이 모두의 귓가에서 울리는 듯했다.
“무엇이 그리 황당하더이까? 제국방위부 자체 결정인데, 혹 문제가 있다면 시정하겠습니다.”
사르토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이미 이의 제기에 대한 반박 논리를 완벽히 준비한 참이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니 다른 이로 대체하겠다?’
이안 하델은 공식적으로 두 번이나 강한 힘을 증명했다. 마법부에서 한 번, 에너제스에서 한 번.
그럼에도 나이가 어려 전장에 나갈 수 없다고 한다면, 결국 마법부의 일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뜻과 같다. 마법사로서 실격인 셈이 아니냐고 반박할 여지가 충분해지는 게다. 나랏일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으니까.
‘혹은 차출 거부?’
북쪽에서의 전쟁은 예정된 수순이다. 상대는 소수민족이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술사들. 병사들만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패할 수도 있겠지.
황제의 군대가 패전했다? 이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대회의에서는 패인을 따져 물을 것이고, 마법부는 술사들과의 싸움을 앞두고 협조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물게 되겠지.
“말씀 잘하셨습니다. 이안 하델은 말입니다-”
그래, 어디 한번 지껄여 보시지. 질 수 없는 판임을 확신한 샤르토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레나는 무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짜바리입니다.”
“…뭐라고요?”
속으로 각종 경우의 수를 헤아리던 샤르토의 머릿속이 고장 난 것처럼 정지했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으로.
이는 뒤에 서 있는 장교들 역시 마찬가지. 크로니를 포함한 이들이 구겨진 얼굴로 아레나를 쳐다봤다.
“짜바리라고요.”
“아레나 장관.”
“전쟁의 최고 미덕이 뭡니까?”
“지금 뭔가 대화가 어긋나는 것 같은데-”
콰앙!
아레나가 입 닥치고 들어 보라는 듯 테이블을 가볍게 내려쳤다. 기세에 밀린 샤르토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정확히는, 황당해서 말문이 막힌 것이지만.
“승리, 아닌가요?”
“…….”
“승리하려고 나가는 길! 방심은 금물이요, 한 치 앞도 모르는 전장에서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혹여라도 패배하면, 그 빚은 소중하고 고귀한 제국민의 피로써만 갚을 수 있으니까요. 샤르트 장관님의 피가 아니라.”
아레나의 보좌관이 눈을 슬쩍 감았다 떴다. 그녀가 주장하려는 게 뭔지 알아챘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전장에, 지원 병력으로 고작 ‘짜바리’를 요청하신 것입니까? 한 명의 제국민으로서, 이건 좀 모욕적으로 느껴지는데요.”
“모욕이라니요, 아레나 장관님.”
가만히 듣고 있던 크로니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자, 아레나의 눈빛이 번뜩였다. 비유가 아니라, 그녀의 눈동자가 진짜 금빛으로 물든 것이다. 맹수의 눈매였다.
사아아악.
“이런 씨, 장관들끼리 대화하는 데 어디서 건방지게…….”
“……!”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마력에 크로니는 흠칫 놀라 말문이 막혔다. 이내 자중하라는 샤르토의 눈짓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송구합니다, 아레나 장관님.”
“기본적인 선은 서로 지킵시다, 크로니 장교. 예?”
“예, 알겠습니다.”
아레나는 마력을 거두고서 다시 샤르토를 돌아봤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긋 웃는 얼굴. 그녀가 찻잔을 들었다.
“어디까지 말했지요?”
“모, 모욕적이라고…….”
“아아. 맞습니다. 승리를 위한다는 분들이 오늘 막 처음 출근한 이안 하델을 지원 병력으로 차출해 달라는 제안에 가슴이 무너지더이다. 마법부를 배려하신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승리할 생각이 없으신 것인지.”
“아레나 장관, 발언 조심하시오. 그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오!”
“예를 든 겁니다. 그렇다는 게 아니고요.”
아레나가 웃으며 진정하라는 듯 찻잔을 빙글빙글 돌려 댔다.
“요청서에도 적었지만 이안 하델의 재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전천후의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처음 출근한 것이 크게 중요합니까? 존재만으로도 우리 군의 사기를 올려 주는 데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쪽 지대는 광활하여 인가도 없지요.”
주체할 수 없는 마력을 마구마구 방출해도 문제없다는 의미였다.
그 말엔 자신도 동의한다는 듯 아레나가 눈썹을 치켰다. 그녀는 찻잔을 대충 내려놓고서 능청스레 대꾸했다.
“예예, 그 부분도 봤습니다. 그래서 이안 하델에게 특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하셨지요. 위험 부담 없이 경험 쌓기에는 최적일 것이라고.”
“맞습니다.”
“한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십니다.”
“모르다니?”
샤트로는 아레나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안 하델의 천재적인 힘, 이것저것 다 떼고 경험치만 본다면 성장할 기회, 맞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가 마법부랑 에너제스에서 마력을 써서 어떻게 됐는지, 혹시 아십니까?”
마법부에서는 황궁의 보호막을, 에너제스에서는 시공간 마법이 걸린 정원을 통째로 박살 냈다.
“이안 하델이 품은 마력의 파괴력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입니다. 그래도 이안 하델의 지원을 꼭 원한다 하시면, 좋습니다. 대신 이것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시지요.”
아레나가 찻잔을 옆으로 밀어내고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아이의 미숙함으로 아군에게 어떠한 해가 끼쳐지든 간에, 이는 마법부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안 하델의 차출을 요청한 제국방위부가 책임지시는 겁니다.”
포괄적으로 ‘해’지, 이게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적군 대신 아군을 날려 먹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대장이나 고위 장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어디 데려갈 수 있음 데려가 봐.’
아레나가 어서 서명하라는 듯 연신 펜을 권했다. 이안 하델을 넘겨받고 싶으면, 네놈의 목숨을 담보로 주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혹 누가 알겠는가? 마법부 장관이 이안 하델을 이용하여 제국방위부 고위직 장교들을 모두 죽여 버릴지. 그리하여 장관의 사지를 묶어 두고, 황궁 정세를 순식간에 정리해 버릴지 말이다.
“서명만 하십시오. 그럼 내 바로 이안 하델, 곱게 씻겨서 꼬까옷 입혀 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마법부는 제국방위부의 지원 요청을 거절한 것도 아니다. 내준다니까? 그쪽이 원하는 최강 전력을?
대신, 사용 설명서 친절히 설명하고 폭발 위험이 있다는 걸 알려 준 다음에.
“크흠.”
샤르토가 크로니를 힐끔 돌아봤다. 이안 하델을 처리하는 건 크로니의 몫이다. 여기서는 장관보다 크로니의 의중이 중요했다.
정말 북쪽 지대로 올라가서 이안 하델을 처리할 수 있겠나? 마법부 장관이 저리 자신 있게 나오는 걸 보니, 여차하기라도 하면 이안 혼자서 뭐든 압도해 버릴 것 같은데?
“…장관님. 곧 있으면 회의 시간입니다. 이 사안은 나중에 천천히 결정하시지요.”
크로니가 넌지시 신호했다. 아직 결정하지 말되, 한발 물러서라는 뜻이었다.
샤르토는 괜히 과장된 몸짓으로 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어어, 벌써 그리되었군.”
“아, 회의도 있으십니까?”
아레나가 짐짓 몰랐다는 듯 물었다. 책상 위 존나 깨끗하구만, 어디서 일하는 척이래?
“뭐, 제국방위부도 마법부 못지않게 정신없는 부서라서요.”
“그러시겠죠.”
“이 부분은 다시 전달드리겠습니다.”
“아, 서면으로?”
“문제 있으신지?”
“저는 대화가 좋아서.”
이리 얼굴 까고 얘기하면 얼마나 속 시원하고 좋아? 종이에 낙서질 해 대며 시간 잡아먹는 것보다 편하고 확실하잖아?
하지만 샤르토는 확답을 피했다.
“음, 다시 연락드리지요.”
“알겠습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기까지인가. 아레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들어올 때처럼 펄럭, 로브를 휘날리며 사무실을 나서려다가-
“아, 그리고 크로니 장교님.”
반쯤 열린 문을 두어 걸음 앞두고서 크로니를 돌아봤다.
“생각보다 이안 하델과 그리 애틋한 관계는 아닌가 봅니다? 마지막 남은 혈육을 전쟁터에 데리고 나가려 하다니. 난 또, 후견인까지 자처해서 되게 사이좋은 줄?”
“아이가 어려서 낯을 많이 가립니다. 그리고 전장을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바리엘을 위하는 자라면 누구나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곳이니.”
“그래요? 그런 것치고는 마법부에서 너무 잘 지내.”
“…….”
“좀 거슬렸다면 미안해요. 근데, 군인의 기상 같은 건 그쪽이나 차려 먹어요. 다섯 살 난 애 데리고 뭐 하자는 거야, 짜증 나게.”
이미 제국방위부에 공식적으로 답한 뒤다. 나이 트집으로 쓴소리 몇 마디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 없었다. 아레나는 대답을 바란 말이 아니었다는 듯, 크로니의 반응을 보지도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콰앙!
문이 부서질 듯 닫히자, 팽팽했던 분위기가 살짝 풀어졌다. 샤르토는 턱을 괴며 인상을 팍 찡그렸고, 장교들은 크로니의 눈치만 봤다.
“크로니.”
“예, 장관님.”
“어쩔래?”
응? 우리가 먼저 던진 공, 저쪽에서 받아쳤다. 이제 우리 차례인데 좋은 수를 내보라는 재촉이다. 사실상 경고에 가까운.
“…맡겨 주십시오.”
“믿는다? 응? 저 싸가지없는 계집애 입 놀리는 꼴, 더는 내 앞에서 보이지 않게 해.”
“물론입니다.”
“쯧. 재수가 없으려니까.”
샤르토는 찻물을 바닥에 대충 쏟아 버리고는 소파를 박차고 일어났다.
시종들이 허겁지겁 테이블을 치웠다. 아레나가 건네주고 간 종이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