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9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95화(895/935)
제895화. 황궁에 깃드는
“회의 중? 출입 금지?”
로만드로는 닫힌 문을 보며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마법사들이 언제부터 회의 같은 걸 했다고? 아니, 그것보다 아래 메모는 또 왜 이래?
“방해하는 즉시 파업이라. 하여간 무서울 것 없는 마법사들 같으니.”
황궁에서 그 누가 파업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하기 싫으면 본인이 나가야 하는 게 황궁이다. 여기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지천에 깔렸고, 여차했다가는 명령 불복종으로 고된 일을 치르기 일쑤다.
한데 마법사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귀하고 힘이 되니 파업이란 무시무시한 단어를 입에 담는 게다. 대담하게.
벌컥!
로만드로가 문을 열자 마법사들의 시선이 한번에 쏟아졌다. 둥그런 테이블, 아니 이안 하델을 중심으로 몰려 있던 마법사들이다.
그들은 화들짝 놀라더니 로만드로임을 알아채고 야유했다.
“우우. 노크도 안 하고 매너 똥이네.”
“아니, 언제부터 사무실 들어올 때 노크를 했다고?”
“로만드로 님, 앞에 팻말 못 봤어요? 파업 함 때려?”
“차라리 날 때려라. 이안 님, 이제 그만 퇴근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이리 되었나? 이안은 시계를 확인하곤 널브러졌던 가방을 챙겼다.
이에 마법사들은 아쉽다는 듯 입맛만 다실 뿐, 누구 하나 아쉬운 소리 하는 이가 없었다. 전전긍긍하는 얼굴로 서로 눈치 보기 바쁘다.
왜들 이래? 요상한 분위기에 로만드로가 아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 주며 넌지시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오늘 에너제스에서 뀨가 사고를 쳤대서요. 중요한 보고를 올리던 참이었습니다. 마침 끝났으니 퇴근하시지요.”
이안은 차분히 이른 다음 마법사들에게 눈짓했다. 첫날부터 괴롭힘으로 정원에 갇혔다는 걸 로만드로가 알게 되면 마음 아파할 것이 분명하니까. 입단속 잘 부탁한다는 신호다.
마법사들은 눈치껏 아무렇지 않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아, 우리는 언제 퇴근하려나.”
“이안, 내일은 언제 와?”
“하교 후에 바로 올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시간이겠군요.”
“좋다. 내일은 뭐다?”
“정원 관리에 대한 업무입니다.”
“잊지 말라고. 긴바지 입고 와.”
반바지는 안 돼. 같이 잔디밭에서 뒹굴뒹굴할 거니까.
그런 마법사들의 속뜻도 모르고, 이안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몰라도 참으로 고된 노동을 하겠구나, 싶어서.
“그럼, 먼저 퇴근합니다.”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막내님.”
“나도 먼저 가네.”
“예, 가든지 말든지.”
이안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꾸벅 남기곤 사무실을 떠나자, 여기저기서 한숨 섞인 탄성이 새어 나왔다. 마법사들이 의자에 널브러져서 중얼거렸다.
“이안 하델. 뭔가 있지?”
“응. 애 말에 따르면 자신을 해치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거잖아?”
사실 이안은 그리 말하지 않았다. 누가 크로니의 편인지 모르니, 최대한 그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고 담백하게 전했다. 학교에서 괴롭힘 아닌 괴롭힘을 당했고, 뀨가 그것을 응징해 준 것 같다고.
하지만 눈치 빠르고 기민한 마법사들은 어렵지 않게 간극을 읽을 수 있었다.
“아니, 뭐 인생 기구한 놈들만 마법사 되는 건가. 우리도 만만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안 하델 보니까 더해, 아주.”
“그러게. 귀족 출신이라 인생 풍파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고작 다섯 살에 저게 뭐람.”
“그 있잖아, 누구더라? 이안 하델이랑 사촌이라는.”
“제국방위부에?”
“어어, 크로니 알파트였나?”
“아마도.”
“의심스럽지.”
흐으음. 모두 대답 대신 콧소리만 냈다.
하지만 침묵은 긍정이라 하지 않나. 곰곰이 따져 봤을 때, 이제 고작 다섯 살 난 아이가 누군가의 원한을 샀을 리는 없다.
“부모 없는, 무지막지한 부잣집 아이라.”
“각 나오네.”
가문의 재산을 노린 검은 손길.
마법사들은 이안이 먹다 남긴 간식을 입에 털어 넣으며 크로니를 씹어 댔다.
“요즘 은근히 말 많이 돌더만.”
“곧 있으면 부장관 제끼고 올라설 거라 하던데, 대체 뭐 했다고 그렇게 인정받는 건지 모르겠어. 최근에는 전쟁도 없었잖아?”
“제국방위부 내부에서 입김이 좀 세나 보더라. 그쪽네는 전쟁 나기만을 바라니까. 나서서 일 터트려 주는 인간 밀어주겠다, 이거지.”
“어? 장관님이다.”
아레나가 사무실 옆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이안 하델을 찾는 눈치다.
“방금 갔습니다. 다시 불러올까요?”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근데 어디 다녀오십니까?”
“제국방위부.”
제국방위부? 거긴 왜? 안 그래도 크로니에 대한 말을 나누고 있었던 터라, 마법사들이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레나는 마침 잘 되었다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혹시 말이지. 북쪽으로 출장 갔다 올 사람?”
“북쪽이요?”
“…….”
“…….”
북쪽 출장?
동서남 어느 곳이라도 괜찮지만, 북쪽은 예외다. 마법사가 가야 하는 일이라면 필시 국경선 쪽일 터인데, 거긴 척박하고 제대로 된 술집 하나 없다고 들었다. 그나마 있는 곳도 맥주에 물 타서 판다나 뭐라나. 아무튼, 월급을 두 배로 준다고 한들 선호하지 않는 지역이다.
마법사들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동시에 바쁜 척 자리를 떠났다.
“아우, 갑자기 일이 많아.”
“어서 하자. 이러다 황궁에 뼈 묻을라.”
“앉아, 이것들아.”
“넵.”
처억.
아레나의 말 한마디에 제자리로 복귀했지만 말이다. 그녀 역시 마뜩잖은지 미간을 찌푸렸다.
“확정은 아니고, 이번에 제국방위부 주관으로 북쪽에 지원 병력 파병하는 거 알지?”
“기어코 간답니까?”
“가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우리 쪽으로 지원 요청도 들어왔었다.”
“예?”
“미친 전쟁광 놈들.”
마법사들이 난리법석 떨어 대자, 아레나가 탁탁, 주의를 환기했다.
“조용! 아무튼, 지금 반려하고 오는 길인데 아무리 봐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거 같아서. 미리 한 명 정해 두는 게 좋을 것 같거든?”
“아니, 지나가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마당에 뭔 출장이요? 그것도 북쪽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크로니가 이안 하델을 데리고 가고 싶어 해.”
“예?”
고개 숙이고 구시렁대던 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이안 하델을 어디로 데려간다고? 북쪽? 그 쪼그만 것을?
“이안 하델, 이제는 우리 식구니까 적당한 선에서 쳐 내려면 카드는 많을수록 좋아. 그러니까, 뭐… 북쪽 공기 좋다며? 궐련 피는 놈들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아…….”
이거, 원…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 거람? 마법사들은 황당하다는 듯 서로를 힐끔거렸다.
“돌았네. 대가리 맛 갔네.”
“다섯 살 애가 거기 가서 뭐 한다고. 진짜 미친놈 아니야.”
“어쩔 수 없으면 뭐, 대신 갈 마법사 많을 겁니다. 장관님은 보충할 인원만 좀 구해 주십쇼. 아니, 꼭 구해 주셔야 합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마법부에서 한 명이 가야 한다면 이안 하델 대신 자신들이 가는 게 맞으니.
이에 아레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하늘에서 마법사가 뚝 하고 떨어졌으면 좋겠다. 그러자 문득, 한 가닥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어? 에너제스에 마법 교사 들어온다는 소문 있던데. 용병 마법사라는 말도 있고?”
“에너제스에요? 혹시 그분이신가?”
“누구?”
“왜요, 맨날 궐련 물고 다니는.”
“아아. 그 양반?”
아레나가 턱을 괴며 고민했다. 안 그래도 좁은 마법사 바닥, 척하면 척이지. 그 양반, 성격이 느릿해서 그렇지, 마력 하나는 기깔 나지, 암. 어디 얽매이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여기저기 떠돈다고는 들었는데…….
“까짓것, 꼬셔서 데려옵시다.”
“이안 하델도 좋겠네. 따지고 보면 교수가 후배인데 이것저것 수업도 편하겠고. 응. 모두가 만족할 만한-”
쿠웅!
주절주절, 되는대로 떠들어 대던 마법사들이 갑작스러운 굉음에 멈칫거렸다. 아레나 역시 바깥을 살피며 물었다.
“뭐야? 또 폭발이야?”
“어…. 잠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타닥타닥!
“저, 저기, 장관님!”
“뭔데?”
직원이 당황하며 달려오자, 아레나가 소매를 걷었다. 당장이라도 마력을 발산할 수 있게 감각을 잔뜩 곤두세운 채다.
“조이백화점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우리가 관리하는 거래처인가?”
“아니요, 그건 아닌데. 혹시 ‘석석박사’라고 아십니까?”
“석석박사? 미친 인간?”
마석에 미친 연구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석 상점 주인장인데, 마법사라는 말도 있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과학자라는 말도 있었다.
다만, 특이 마석 조사와 연구에 관해서는 마법부를 능가하는 부분이 있어 가끔 업무 협조를 요청한 적 있다.
“미친 인간이라니이♡ 듣는 미친 인간 당황스럽자너!”
처억.
제 몸만 한 가방을 앞뒤로 두 개나 지고 나타난 핑크 머리칼의 여인. 방금 폭발음이 어디서 난 건지 알 것 같았다. 아코의 주위로 희미한 연기가 휘몰아치고 있었으니.
“미쳤어? 황궁에 그런 걸 들고 들어와?”
“나 아냐? 어디서 반말?”
“마법부 장관 아레나다.”
“앗,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이백화점에서 가게 작게 운영 중인 아코라고 합니닷.”
아코가 능청스레 허리 숙였다.
사실 둘 다 익히 알고 있었다. 서로의 괴소문은 물론 괴팍한 성깔까지. 그럼에도 모른 척 능청 떤 건 그냥 반말 한번 지껄여 보고 싶어서였다. 둘 다 말이다.
“여기, 이안 하델 입부했다면서요?”
아코는 가방을 툭 내려놓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저도 입부하고 싶은데, 안 되려나요?”
지잉, 지이잉.
그와 동시에 아코의 주황빛 눈이 금안으로 물들었다. 일종의 자격 증명인 셈.
이에 잔뜩 흥분한 마법사들이 ‘미친! 대박 사건!’ 속삭여 대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 구경했다. 아레나의 두 눈은 잡아먹을 듯 희번덕거렸지만.
“예전에 입부 제안했을 땐 답장도 안 하고 무시하더니만,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이안 하델이-”
그에 아코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답했다.
“저를 꼬셨거든요♡”
“…….”
“…….”
아레나와 마법사들의 표정이 똑같았다. 안 그래도 난장판인데, 제정신 아닌 인간 하나 또 추가되겠구나, 싶은.
아레나가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거절한다.”
“예?! 왜요?!”
“황궁과 마법부의 안전을 위해서.”
“아니잇! 언제는 와 달라고 구구절절 난리 치더니?”
단호한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코는 아레나를 따라 마법부로 들어섰고, 이에 마법사들은 직원을 불러 부탁했다.
“여기 사무실에 책상 하나 더 놔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대처다.
그래. 고양이 손보다는 그래도 사람 손이 낫겟지. 아아. 어서 내일이 와서 이안이랑 잔디밭에서 뒹굴고 싶어라.
* * *
유독 긴 하루였다. 이안과 바르사베는 서로 머리를 맞댄 채 잠들었다.
로만드로와 헤르치 대장은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 지켜봤다. 마차가 크게 흔들릴 때마다 턱을 받쳐 주며 잠이 깨지 않게끔 했다.
“오늘 황궁에서 시끄러운 일이 좀 있었다지요.”
“아, 헤르치 대장님도 들으셨군요.”
“제국방위부 쪽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파악 중입니다.”
혹여 배반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부서인 데다, 서로를 견제하는 처지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헤르치는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이안 하델과 크로니 경 사이에 모종의 문제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예, 아무래도 복잡한 사정이지요.”
“하나 그것은 황궁 밖의 일. 조만간 궁 안에서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 것입니다.”
로만드로는 조심스레 이안의 머리칼만 쓰다듬었다. 서로 팽팽하게 줄다리기하고 있던 황제, 마법부, 제국방위부, 세 구도가 크게 요동칠 거란 뜻이었다. 이번 북쪽 출정을 시작으로.
‘여기서 제국방위부의 위상이 꺾이면, 크로니 역시 꺾이면서 이안의 부담이 좀 줄어들겠지.’
아이는 더 이상 위험에 시달리지 않고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게 될 터다.
하지만 반대로, 이 혼란 속 제국방위부가 살아남는다면?
‘미래, 이안 하델의 몫이 무거워질 것이고.’
마법부와 황궁친위대 모두 중추지만, 제국방위부 역시 만만치 않은 부서다.
그렇다고 이안이 뭘 할 수 있나? 아니. 이제 고작 다섯 살 난 아이가 황궁 암투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고.
‘에고고. 어찌 되려나.’
“…우웅.”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안이 작게 잠투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바르사베의 어깨에 기대어 입을 살짝 벌린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