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9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96화(896/935)
제896화. 마법 수업
며칠 후.
“다녀오겠습니다!”
이안과 바르사베가 동시에 인사하며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아이들의 체력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다. 분명 어제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쓴 것 같은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하지 않나. 로만드로는 부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두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예, 두 분 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도시락 흔들지 말고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로만드로는 잔소리쟁이!”
바르사베가 눈 아래를 뒤집어 까며 소리치자 로만드로는 충격받았다는 듯 심장을 쥐어 잡았다.
마부는 익숙한지, 고삐를 그러쥐고서 마차를 돌렸다. 이안과 바르사베는 순식간에 학생들 틈으로 섞여 들었다.
“오늘도 하교 후 황궁 가?”
“예, 누님.”
“너도 참,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다.”
바르사베의 위로에 이안은 희미한 미소만 지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일단 마법사들이 모두 다정했고, 자신을 배려해 어려운 일은 주지 않는 게 느껴졌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
사실 마법부에 출근하여 제대로 일한 적 없다는 걸, 이안은 알지 못했다.
“다행히 일이 어렵지는 않아요.”
“그래?”
“마법사도 새로이 충원되었고요.”
“마법사가? 그럼 최근 마법부에는 신입이 둘이나 들어온 거네? 와, 대박. 아버지 말씀으로는 몇 년에 한 명 보기도 힘들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응. 새로운 마법사도 우리 또래야?”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니?”
이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은 정원 관리와 보호막 점검 등 외부로 일을 돌았고, 새로 온 마법사는 지하 연구실에 상주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얼굴이라도 보려고 몰래 내려갔는데 알 수 없는 녹색 연기 탓에 물러서고 말았다.
“장관님이 지시 내린 것이 있나 봐요. 그걸 수행하느라 바빠서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구나. 실무자인가 보네. 우리보다 어른이겠다.”
“예, 저도 그렇게 예상합니다.”
저 멀리 교정 가운데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누군가가 보였다. 바로, 인기 없어 한가한 학교장 다슈아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연신 아는 척, 친한 척해 대며 말을 건넸고, 대부분은 발걸음을 재촉해서 지나쳤다.
“오, 이안 군!”
바르사베가 쳇! 하고 혀를 찼다. 그들 역시도 물 흐르듯 스쳐 지나갈 생각이었는데,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이안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학교장 선생님.”
“그래그래, 수업은 들을 만하고?”
“덕분에요.”
“그 이후에 별일은 없었지요?”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필수 과목 강의인가?”
수업에 관한 내용이 나오자, 이안의 걸음이 멈추었다.
“아니요. 이번 주는 필수 과목 다 끝났고, 지금은 다른 수업 들으러 가는 길입니다.”
바르사베가 추천해 준 과목 몇 개와 일단 마법과 연관 있어 보이는 <주술과 마법의 차이>, <천문학으로 미래를 읽는 법> 두 개를 들어 보려 했다.
“어려울 것인데?”
“출석 세 번 전에는 변경이 가능하다고 해서요.”
“그래그래, 이안 군이라면 뭐 잘 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말이지. 좋은 소식이 하나 있네만?”
“네. 무엇입니까?”
이안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가, 예상치 못한 소식에 이내 화색을 띠었다.
“마법학 교수님이 오셨네.”
“정말이요?”
“그래. 보자, 수업 일정은… 어라, 아까 받았는데 어디 갔지? 아무래도 수강생은 이안 군 혼자일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주려고…….”
다슈아가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이안이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강의실을 알려 주시면 그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아, 그럴래? 강의실은 별관 2층 203호실일세.”
“감사합니다.”
“저기, 시간이 남으면 내 수업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이안이 꾸벅 인사하고서 별관 쪽으로 달려가자, 바르사베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다슈아는 털을 벅벅 긁으며 아쉽다는 듯 코를 찡긋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친절히 인사하며 다가갔다.
“오호, 오랜만이군! 잘 지냈는가?”
* * *
-203호
별관 2층 복도.
이안은 문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한쪽에 붙은 종이 위에 교수 이름과 과목이 삐뚤삐뚤 적혀 있었다. 대충 입으로 뜯은 게 분명해 보이는 고정용 테이프까지.
‘마법학 교수, 헤일. 담당 과목은 <마법1> <마법2> <마법3>……?’
과목명이 너무도 단순했다. 이거 괜찮은 걸까?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노크하고서 문을 열었다.
드르륵.
“안녕하십니까.”
창틀에 앉아 궐련을 태우던 남자가 문 쪽을 돌아봤다. 짧은 갈색 머리칼과 얼굴 여기저기 난 오래된 상처. 용병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마법부에서 들은 적 있는데, 진짜인가 보다.
…근데 마법사들은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이안 하델?”
다섯 살 꼬맹이, 금발에 벽안.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는 이 교실을 찾아온 것으로 봐서 이안 하델이 분명했다.
이안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넵.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수업은 세 시간 후다.”
“학교장님이 시간표를 분실하셔서요. 인사도 드릴 겸 시간표 확인하러 왔습니다.”
첫인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시군. 이안은 헤일의 분위기를 연신 살폈다.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마법 관련 수업들을 담당할 교수인데, 눈도장을 잘 찍어 두면 좋지 않을까 하여.
“음.”
헤일은 궐련을 툭툭 털더니, 문득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이안이 긴장했다.
‘애가 있으면 궐련을 못 피우잖아.’
“교수님?”
“…….”
“혹시 방해가 되신 것이라면-”
“아니. 되었다.”
헤일은 창문 밖으로 궐련을 퉁 튕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칠판에 시간표를 적어 주며 물었다.
“수업은 다 들을 건가?”
“예?”
“이안 하델, 그쪽 때문에 내가 불려 온 거라서. 사실상 너만 안 들으면 폐강이라는 뜻이지.”
성실하게 임하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안은 헤일의 경고를 알아차리곤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럼 예정대로 이번 학기는 수업 세 개를 개강하는 거로 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여기 있을 거니까 필요한 게 있다면 찾아오도록.”
“커리큘럼은 없을까요?”
“커리큘럼?”
“네. 과목명이 <마법1>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서요.”
어느 정도 감을 잡아 놔야 예습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헤일은 마른 궐련을 새로 꺼내 들었다. 입에 뭔가를 물고 있어야 하는 게 습관인가 보다.
“그런 거 없다.”
“없다고요?”
“네 수준에 맞춰서, 혹은 그날 내 기분에 따라서 달라질 거라.”
어디 얽매이고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그가 에너제스 교수직을 받아들인 조건이었다. 강의계획서 같이 사무적인 행정 절차에서 제외시켜 주는 것.
이안은 흥미롭다는 듯 시계를 확인했다.
“교수님. 저 여기 더 있다 가도 되나요?”
“다른 수업은?”
“안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마법 수업이 없어서 땜빵 용도로 집어넣은 거다. 취소하지, 뭐.
시원시원한 이안의 대답에 헤일이 피식 웃었다. 그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마법부에 있다지?”
“네. 그렇습니다.”
“그 인간들, 여전한가?”
“마법부를 아십니까?”
헤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법부가 헤일을 인지하고 있듯, 헤일 역시 그들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바리엘뿐만 아니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용병 일에 전념했다. 그러다 조금 지쳤고, 안정적인 생활이 그리워졌으며, 마침 큰돈이 필요했던 차라 교수직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아마도.
“자아, 그럼 이안 하델. 계속 여기 있을 거면 수업을 미리 좀 당길까?”
“네. 지금도 하고 나중에도 하시죠.”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미리 하고 일찍 퇴근하려는 계획이었는데, 아이의 열의가 대단했다. 헤일은 문득 잘못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볍게 털며 마력을 개방했다.
지이잉! 지잉!
“마력 개방은 할 수 있겠지?”
“넵.”
아이의 벽안이 순식간에 금안으로 물들었다. 주위에 휘몰아치는 마력의 흐름. 기세가 좋다. 헤일은 손가락을 들어 칠판에 대고 대충 휘갈겼다. 분필을 쥔 것처럼, 금빛 글씨가 주르륵 쓰여진다.
지이잉.
“마력이란 영혼에 내재한 힘이다. 그 외의 것은 그릇이지. 신체나 뭐 그런 거. 다만 그것이 영혼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뜻은 아니다.”
영혼의 힘은 일정 수준 정해져 있으며, 이것은 신체적 결함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다-
바르사베에게 들은 적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그릇은 어디에 사용합니까?”
“마력을 걸러 내는 데 쓰이지.”
“걸러 낸다……?”
“그릇의 크기와 재질에 따라 마법을 받아들일 때의 반응이 달라진다. 쉽게 설명하자면, 일반인은 ‘체가 촘촘한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잘게 쪼갠 물질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것은 체를 통과하지 못할 테니, 언젠가는 넘치겠지?”
“네.”
“신체가 망가진다는 뜻이다. 마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바로 이런 경우다.”
헤일은 사람 모양을 그리며 자세하게 설명했다. 설렁설렁 말투는 가벼웠지만, 이안이 이해했는지 못 했는지 상세히 살폈다. 돈 받은 만큼 열심히 해낸다가 그의 좌우명이었으니까.
“다른 예로, 치유 마법사들은 일반인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마력을 잘게 쪼개고 희석할 줄 안다. 아무리 촘촘한 체도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그만큼 어렵고 아무나 못 하는 일이다. 치유 마법사가 귀한 까닭이지.”
이안은 서둘러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필기했다. 헤일이 느릿하게 손가락을 탁탁 튕기자, 금빛 마력이 가루처럼 흩날렸다. 그가 이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나 마법사들끼리는 그릇의 결이 같아 마력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지. 우리를 가리켜 ‘신의 자식’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나?”
신의 자식.
이안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니요. 없습니다.”
“마법사들은 여섯 번째 감각으로 연결된 하나의 형제다. 마검사들은 먼 친척 정도 되려나. 마력 수혈의 방식으로 서로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지. 잡아 봐.”
헤일이 손을 내밀었다. 이안은 웃옷에 손바닥을 슥슥 닦고는 서둘러 손을 붙잡았다. 뭘 하려는 걸까?
지이잉!
“마력을 주고받는 방법은, 마력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아.”
이안은 그렇게 했다. 그러자 사아악- 따뜻한 감각이 손끝으로 들어와 이안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기이한 감각. 이안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자, 헤일이 작게 웃었다.
“자, 이제 다시 돌려줘 봐라.”
“예, 교수님.”
이안은 몸 안에 휘몰아치는 기운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이것의 움직임을 형상화하여 떠올렸고, 곧이어 생각대로 이동하는 경험을 만끽했다.
“와…….”
움직인다. 움직여! 이안이 환희에 차서 웃었다.
그러나-
사아아악!
“……!”
헤일은 웃지 못했다. 순간 엄청난 양의 마력이 헤일에게로 흘러들어 온 탓이었다.
뒤로 넘어짐과 동시에 바다 한가운데로 빠진 기분. 몰아치다 못해 침몰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 헤일이 놀라서 이안의 손을 내쳤다.
타앗!
“……?”
놀란 이안이 의아한 얼굴로 헤일을 올려다봤다. 헤일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대로 굳은 채 아이를 살폈다.
“괘, 괜찮나?”
“제가 드릴 말씀인데요, 교수님.”
놀라서 손을 쳐 낸 건 교수님이지 않습니까? 어리둥절한 이안의 표정에 헤일의 궐련이 툭, 하고 떨어졌다.
방금의 마력량은, 다른 마법사였다면 거의 제 몸의 모든 마력을 넘겨 준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아이라서, 힘 조절이 미숙하여 실수했나 싶었는데 끝도 없이 밀어닥치는 양에 깜짝 놀란 게다.
“정말 괜찮다고?”
“네. 제가 실수한 거라면 다시 해 보겠습니다.”
이안이 입술을 깨물며 헤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고 옹골찬 주먹에서 이번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다짐이 느껴졌다.
“…….”
헤일은 아이의 작은 손을 빤히 쳐다보며 고민했다. 이거… 잡아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