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98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98화(898/935)
제898화. 찾았어요
한스는 뒤따라오는 이안과 바르사베를 슬쩍 돌아봤다.
러거스펠 한복판이다. 아이들끼리 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눈에 띄는 일인데, 떡하니 에너제스 교복까지 입고 있었다. 그뿐인가? 가방부터 신발까지 죄다 고급 중에서도 최고급이다.
‘…알기는 할까?’
슬럼가의 정신 나간 인간들이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누님. 사람들이 왜 자꾸 쳐다보지요?”
“내가 예뻐서 그런가 봐.”
“제가요?”
“내가!”
…알고 있긴 하구나.
한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골목길로 들어섰다. 마차는 이미 떠났다. 러거스펠 한복판에 이들을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으니, 형이 퇴근할 때까지 집에서 데리고 있어야겠다. 그런 한스에게, 이안과 바르사베가 쫄래쫄래 바짝 붙었다.
“어허, 한스. 하교하는구나?”
“안녕하세요, 아저씨.”
“뒤에는 친구?”
골목길 안쪽 주점. 테이블을 쓸고 있던 사장이 손바닥을 내밀며 호쾌하게 인사했다. 한스가 자연스럽게 그의 손바닥을 짜악! 치고 지나가자, 이안과 바르사베 역시 한스를 따라 했다.
“러거스펠이라고 해서 이상한 사람만 사는 건 아니네.”
바르사베의 중얼거림에 한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연하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이 모여 있다는 게 문제지만.
세 사람은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쳐 가며 더 깊은 곳으로 들어섰다. 한스가 오른쪽 모퉁이를 돌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우당탕탕!
“돌아가자.”
“왜?”
“싸움 났어.”
좁은 골목 안, 사람들이 이리저리 엉켜 주먹질해 대는 상황이다.
한스가 몸을 돌려 이안과 바르사베의 옷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이안은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라 눈을 떼지 못했고, 바르사베 역시 실전 무투를 보는 기분이라 흥미로워했다.
“건방진 새끼!”
퍼억! 퍽!
자세히 보니, 패싸움이 아니라 일대다인가 보다. 한스가 두 사람을 확 끌어당기며 경고했다.
“참견할 생각하지 마. 여기서 유명한 골칫거리들이니까. 매일 저렇게 치고받고 싸우는데 죽지도 않아요.”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경비대라도 부르든가.”
“경비대? 러거스펠에서 경비대는 청소부나 마찬가지야. 일 다 끝나면 와서 정리하는 인간들이라고.”
이안은 조금 충격받은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중앙으로 올라와서 봤던 것은 신비한 마법사, 깨끗하고 널찍한 도로,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한데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 같다.
한스는 이안의 반응을 알아채곤 조금 누그러진 투로 설득했다.
“진짜 걱정할 거 없어. 쟤들은 저게 일상이라서. 괜히 경비대 부르고 난리 치면 더 시끄러워져. 나도 귀찮고. 여긴 우리 동네니까, 내 의견을 따라 줬으면 좋겠네.”
“아, 으응. 그래.”
“…이래서 내가 따라오지 말라고 한 거야.”
한스는 조금 창피하다는 듯 귀가 달아올랐다. 곱디곱게 자란 귀족 도련님이 보기에는 영 이상한 세상 같겠지.
하지만 이안은 배시시 웃으며 한스의 손을 붙잡았다.
“미안해.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내가 아직 어리고 경험한 것이 없어 식견이 좁은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사과였다. 너의 상황이나 배경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나의 경험이 부족한 것이었다고.
“…….”
슬럼가에서 태어나 여태껏 자란 한스다. 아이는 위선과 진심을 구별할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 느낀 이안의 속마음엔 거짓이 없다.
“뭐 해? 얼른 가자.”
이안이 재촉하듯 소매를 살짝 붙잡자, 한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는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는 홱 몸을 돌렸다.
“…가자. 우리 집 거의 다 왔어.”
“웅.”
그 모습이 꼭 화가 난 것 같아 이안은 풀이 죽었다. 이에 콕콕, 바르사베의 팔을 잡아당겼다. 얼른 가자고.
패싸움 구경하느라 넋을 놓고 있던 바르사베가 입맛을 다시며 이안을 따라 걸었다.
“잘 싸우네.”
“누가요?”
“저기, 혼자 처맞는 놈. 왜 상대가 떼거리로 몰려왔는지 알 것 같아. 잘 싸워. 깡도 죽이고.”
크으윽. 마음 같아서는 아예 의자 펴놓고 구경하고 싶은데, 안 되겠지? 바르사베가 아쉬움에 군침을 흘리자, 이안이 등을 열심히 밀어 댔다. 한스 더 화나기 전에 어서 따라가야 해.
타닥타닥!
열심히 골목을 달려 도착한 곳은 허름한 건물 앞이었다. 주거용이 아닌 듯, 입구에는 온갖 상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틈틈이 죽치고 앉아 있는 사내들. 한스는 그들을 보자마자 멈칫거렸다.
“어어, 한스. 오랜만이다?”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우리가 뭐 너 보고 싶어서 왔겠니? 집에 아무도 없어서 앉아 있었지. 나움은?”
“형은 오늘, 일이 늦는다고…….”
“없던데?”
“네?”
“일하는 데 없었다고. 얼마 전에 짤렸다더라. 몰랐어? 돈은 제대로 벌고 있는 거 맞지?”
한스의 안색이 조금씩 희게 변했다. 저게 무슨 말인가? 형은 인근 인쇄소에서 잡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럼 지금 어디서 일하고 있는 거지?
한스가 놀라서 인쇄소 쪽으로 뛰어가려 하자, 사내들이 목덜미를 확 붙잡았다.
“어딜?”
“이거 놔!”
“우리도 받을 건 받아야지?”
대롱대롱 매달린 한스가 발버둥 쳤지만, 다 큰 성인 남자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안과 바르사베가 놀라서 다가가려 하니 한스가 소리쳤다.
“너희는 끼어들지 마!”
“어허, 살면서 친구들 도움도 받고 그러는 거지.”
“닥쳐! 얘들은 상관없잖아!”
“쪼끄만 게 어디서 바락바락!”
사내가 한스의 몸을 거칠게 잡고 흔들자, 바르사베가 소리쳤다.
“이봐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한스 형한테 볼일 있으면 가만히 기다리기나 할 것이지, 왜 애를 잡아요?”
“얘는 또 뭐야? 부잣집 아가씨야? 근데 왜 흙먼지투성이야?”
“저기, 다들 진정하시고- 우선 한스를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저기 성격 불같은 마검사가 막대기로 그대들 볼기짝을 터트릴 수도 있습니다!
이안이 더듬더듬 말렸으나, 사내들은 비웃음을 흘리며 이안의 손을 휙 쳐 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이안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돈 내놓을 거 아니면 엉겨 붙지 마라. 나는 애새끼들 딱 질색이다.”
“잠깐만, 요놈은 좀 반반하게 생겼네. 너 어디 사냐? 부모는 있고?”
“이안이는 내버려두라고오!”
“오호, 이름이 이안이구나? 흐흐.”
이안은 두 눈을 부릅뜨고 사내들을 노려봤다. 가슴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오르는 기분이다.
“…부모님 여부는 왜 물어?”
이안의 말투가 변했음을 사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사내들이 보기에는 귀여운 투정에 불과했으니.
“그냥. 알아 두면 좋으니까?”
“왜지?”
“부모 있는 애들은 팔 때 골치 아프거든. 돈도 덜 받고.”
사내가 음흉한 미소를 짓자, 이안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어리석군. 쓸데없는 정보에나 집중하고.”
“뭐?”
“에너제스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나?”
“모르겠는데에-?”
특출난 능력자들이 가는 학교라고 알고 있지만, 한스 친구들이면 뭐 비슷비슷하지 않겠나? 기억력이 좋거나, 계산을 잘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실생활에 도움 하나 안 되는 숫자놀음에 재능이 있거나.
이안은 바르사베의 손을 붙잡고 이내 흙을 탁탁 털며 일어났다.
“한스, 이 사람들한테 돈 빌렸어?”
“…응.”
“갚을 돈은 지금 있어?”
“아니. 형한테 물어봐야 돼.”
“그럼 내가 빌려주는 거, 괜찮아?”
“…….”
한스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돌려보내지 않으면 이안과 바르사베가 일에 휘말리게 될 거다.
한스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사내들은 이게 웬 횡재냐는 듯 휘파람을 불어 댔다.
“오호, 친구 잘 뒀네, 한스.”
“오늘 우리가 받을 건 은화 스무 닢인데, 되겠어?”
“꼬마야, 아저씨들이 가방 좀 확인할게?”
사내 중 한 명이 이안의 가방을 잡으려고 하자, 이안이 손을 들어 가볍게 제지했다. 그에 사내들의 손이 절로 멈췄다.
“……!”
사내들을 멈추게 한 것은 힘도, 신분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무형의 위세. 그뿐이다.
이안이 말했다.
“그 전에, 우리끼리 먼저 정산할 것이 있다.”
“우리끼리?”
“이거.”
넘어지면서 가방 밑부분에 묻은 흙 얼룩이다.
이게 왜? 사내들이 바르사베와 한스를 돌아봤다. 바르사베는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게 막대기를 들고 있었고, 한스는 이안이 하는 행동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쪽들 때문에 내 가방이 더러워졌으니 이것부터 배상해 줘야지. 그리하면 내 은화를 주겠다.”
“하하하! 웃기고 자빠졌네. 흙 좀 묻은 걸로 배상? 지랄도 풍년이다, 꼬맹아. 트집 잡지 마라. 응?”
“트집으로 보이나? 이게 얼마짜리인 줄 알고?”
이안이 의젓하게 대꾸하자, 사내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귀찮게 구는데 확 그냥 데리고 날라 버릴까? 그러다 하나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들어나 보자. 얼만데?”
“금화 두 닢.”
“…뭐?”
그때, 오히려 사내들의 소매를 붙잡는 이안. 도망칠 생각일랑 하지 말라는 듯이 꽉 잡아챘다.
“어, 얼마?”
“금화 두 닢이라고 했다.”
“맞아! 내가 같이 고른 거다!”
바르사베가 은근슬쩍 덧붙이며 진짜라고 소리쳤다.
아니, 무슨 꼬맹이 가방이 월급 두 달 치래? 당황한 사내가 이안을 다시 밀쳤고, 곧 짜증스럽게 손을 쳐들었다.
“닥쳐, 이것들아! 아까부터 봐줬더니-”
지이잉! 지잉!
“……!”
“……!”
순간 벽안에서 금안으로 바뀌는 이안의 눈동자. 사내들은 물론이고, 한스마저도 놀라서 굳어 버렸다. 처음이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눈과 마주한 것이.
“봐줘?”
누가 누구를?
이안의 주위로 바람이 몰아치자, 사내들이 뒷걸음질 쳤다. 마, 마법사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다. 힘으로는 맞붙어서 이길 확률이 없는. 아니지, 이길 확률을 따지는 게 아니라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를 따져야지!
“흐잇!”
“죄, 죄송합니다!”
한스같이 가난하고 성깔 까랑까랑한 놈이 어째서 저런 마법사와 같이 있는 거람? 상상도 못 한 일인지라 사내들은 혼비백산 도망치려 했다.
그에 이안이 마력을 방출하려는데-
촤아악!
그보다 앞선 바르사베. 아이는 막대기로 사내들의 무릎과 정강이를 시원하게 강타했다.
따악! 따악!
“으아아악!”
앞으로 고꾸라진 사내의 머리 옆으로 막대기가 꼿꼿하게 꽂혔다. 바르사베는 쪼그려 앉아서는 작게 속삭였다.
“…돈.”
“예?”
“있는 돈 다 내놓고 가라고. 아까 들었잖아? 저 가방, 금화 두 개짜리라고.”
사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주머니를 털어 동전을 꺼내놓자, 바르사베는 만족스럽게 빙긋 웃으며 처억, 막대기를 어깨에 걸쳤다.
“그럼, 썩 꺼지라는 의미에서-”
막대기를 있는 힘껏 휘둘러 사내의 볼기짝이 반으로 쪼개지도록 내려쳤다.
짜아아악!
“아아아악!”
순식간에 정리된 싸움. 이안은 멍하니 앉아 있는 한스를 일으켜 줬다. 한스는 이안과 바르사베를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너희 둘, 귀족 아니야?”
특히, 저 바르사베는 그 유명한 자크 백작가의 손녀…라며?
한스의 물음에 이안이 히, 하고 웃었다.
“에너제스 교복 입고 있을 때는, 그런 거 없대.”
* * *
“흡!”
나움은 거대한 폐기물 자루를 등에 업고서 조심히 걸었다. 인쇄소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인원 감축을 시행했는데, 하필이면 나움이 딱 거기 포함되고 만 것이다.
나중에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돌아오라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급한 대로 일용직을 구해 폐기물 수거장에 취직했다. 한스가 걱정할까 봐 아직 말은 못 했는데…….
‘일이 좀 익숙해지면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겠지? 한스는 벌써 학교에서 돌아왔겠네.’
일은 두 배로 고되어졌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일부터 한스에게 점심 사 먹을 돈을 줄 수 있다는 것.
“나움!”
“네, 사장님!”
“동생이 찾아왔다는데?”
“네? 누구요?”
“일 어서 마무리하고 가 봐.”
나움은 놀라서 폐기물을 내려놓고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꼬질꼬질한 세 명의 아이가 쪼르륵 서서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형을 발견한 한스가 울먹이며 달려갔다.
“형-!”
“한스. 여긴 어떻게 알았어?”
“왜 말 안 해 줬어? 형 찾아다녔잖아!”
“미안, 인쇄소 찾아갔었어?”
나움은 한스를 토닥이며 이안과 바르사베를 쳐다봤다. 이 두 친구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아무 영문도 모르는 나움에게, 이안이 조심스레 손을 건넸다.
“…이안 하델이라고 합니다.”
“아, 한스 친구? 반갑다. 나움이야. 손이 더러워서-”
나움이 주저했지만, 이안은 단숨에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영문도 모를 인사를 건네고 말았다.
“계속 찾았어요. 계속,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