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00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00화(900/935)
제900화. 나움의 마법부 입성
“엥?”
보고서만 열심히 넘겨 대던 아레나가 결국 고개를 들고 말았다.
어디서 뭐 하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온통 먼지투성이에 땀범벅, 옷도 구깃구깃. 귀족 자제 두 분께서 꼬라지가 아주 환상적이다.
그리고 그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낯선 형제 둘.
“뭐라고? 지금 내가 헛걸 들었나?”
“제 친구 한스랑 한스 형 나움입니다. 나움 형이 마법사예요!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
이안이 다시 차분하게 한스와 나움을 소개하자, 아레나의 손에서 펜이 툭 떨어졌다.
그녀는 ‘이봐, 장난이면 당장 그만둬’라는 표정으로 로만드로를 돌아봤지만, 그는 부정하기는커녕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만 훔쳤다.
“말도 안 돼.”
“왜요?”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지? 뜻밖의 반응에 한스와 나움이 긴장했다.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차서 처음으로 황궁에 입성했는데, 역시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이안은 괜찮다는 듯 한스의 손을 꽉 쥐었다. 반대쪽에서 바르사베 역시 마찬가지. 세 아이가 결속력을 다지듯 팔을 단단히 붙잡고는 아레나를 쳐다봤다.
“말도 안 돼!”
“왜요?!”
아레나는 절규에 가까운 환호성을 지르며 허공에 주먹을 찔러 댔다.
“으아아아아!”
“……?”
“기록이다. 이건 기록이라고!”
“저기, 장관님?”
“크흠. 음. 아아, 그래. 축배는 나중에. 이안, 신탁의 빛 없이 어떻게 확인한 거지? 우연히 목격했나?”
아레나는 손깍지를 끼며 차분하게 이안을 내려다봤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제가 마력을 조금 나눠 줬습니다.”
“뭐?”
생글생글 웃던 아레나의 표정이 단숨에 차가워졌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이안을 제외한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아레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일반인에게 마력을 나눠 줘?”
“장관님. 미숙한 마법사가 일반인에게 마법을 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저도 배웠습니다.”
“배웠는데도 그랬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움 형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저는 느꼈습니다. 여섯 번째 감각을요. 그래서 확신하고 마력을 나눠 준 것입니다. 신탁의 빛 없이 영혼이 트이는 길은 그것밖에 없을 것 같아서.”
아레나의 눈썹이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지금 이 아이가 뭐라고 하는 거지? 여섯 번째 감각을, 마력 감응 없이 그냥 느꼈다고?
‘그게 되나?’
한번 마력 길이 트인 자들끼리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마력을 개화한 이들끼리의 이야기.
나움은 아직 개화 전, 즉 일반인 아닌가? 대체 어떻게 느꼈단 거지? 거짓말하는 건 아닐 테고.
‘천재는 다르다, 이건가.’
아레나가 턱을 괸 채 작게 호응했다. 마력의 수준이 남다른 아이니까, 자신이 이해 못 하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 그녀의 결론이었다.
이안이 긴장된다는 듯 입술을 깨물자, 옆에서 단단히 지키고 선 바르사베와 한스가 아이의 팔을 더욱 세게 붙들었다. 괜찮다고, 혼내면 자신들이 지켜 주겠노라고.
“이안 하델.”
“예, 장관님.”
“확신이 있었대도 너는 아직 미숙하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심해서 힘을 다루어라. 오만은 언제나 확신을 가장하여 다가오니까. 알겠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레나가 엄하게 꾸중하자 이안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고, 이내 아레나는 씨익 웃으며 이안의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이안과 신난다는 듯 히죽 웃는 아레나.
“으이그, 귀여운 것!”
“…에?”
“나가자! 애들 다 뒤뜰로 모이라 해.”
아레나는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장관실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이안과 아이들은 얼떨결에 그 뒤를 따랐다. 아레나가 복도를 달리며 사무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
“다들 비상소집! 비상소집!”
“지금요? 무시하면 어떻게 됩니까?”
“뒤짐.”
“하아, 씨. 할 일이 산더미인데.”
“심심해서 부르는 거면 진짜 파업 들어갑니다.”
“신입 또 온 것 같으니까, 잔말 말고 튀어나와, 새끼들아아아!”
콰앙!
발로 문을 차 대며 빽빽 소리치는 그 과격함에, 한스가 놀라 나움에게 바짝 붙었다. 마법부라고 해서 품격 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웬걸.
“형. 여기 인쇄소보다 더 거친데……?”
나움은 빙긋 웃기만 했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게 분명했다. 거칠어 보여도 상관에게 저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 직장이 진짜 좋은 직장이라는 걸.
“신입이라고?”
“지하실 그 미친 마법사?”
“말고, 다른 사람 말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마법사가 또 와? 또 올 수 있는 거였어?”
“얘들아, 이제 장관님한테 인력 보충 얘기 그만하자. 어지간히 부담되셨나 보다.”
“그러게. 어디서 사람 하나 주워 와서 마법사라고 우기는 건 아니겠지?”
마법사들은 툴툴대면서도 정원에 모두 모였다. 아레나는 나움과 마주 선 다음, 간단히 설명했다.
“길이 트였다고 하니까 신탁의 빛 같은 건 필요 없겠고. 바로 들어가자. 마력 좀 보여 줘봐. 네 있는 힘을 다해서.”
마법사들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아레나와 나움을 지켜봤다. 하는 거 보니까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몇몇이 이안에게 속삭여 물었다.
“이안, 저 애 누군데?”
“제 친구 형이요. 마법사인 것 같아서 제가 데리고 왔어요.”
“데, 데리고 와?”
이게 무슨 하늘에서 금화 떨어지는 소리란 말인가? 마법사들이 어리둥절하여 수군덕거리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잉!
돌연 나움의 갈색 눈동자가 금안으로 변하며 그의 긴 머리칼이 나풀거리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몰아치는 따뜻한 힘. 나움이 어설프게 힘을 끌어모으자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자아가 깃든 것처럼 나움의 주위를 살랑살랑 돌았다.
마법사들이 단체로 경악했다.
“지, 진짜다.”
“진짜 마법사!”
“쒸엣! 미친!”
촤아아악!
이안의 마력이 벼락처럼 강렬한 것이었다면, 나움의 것은 한결 차분하고 묵직한 바람살과 같았다.
그를 본 이안은 가볍게 웃었고, 한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친 듯 박수 쳐 댔다. 반면 아레나와 마법사들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니…….”
이안은 모를 것이다. 보호막을 깨 버릴 정도로 엄청난 마력을 보였던 이안과 달리, 나움의 마력엔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말이다.
원래 보통의 마법사라면 촛불만 한 크기의 불빛을 내거나, 자그마한 마력구를 빚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데 나움은?
“아니, 뭔…….”
“올해 엄청나네.”
평범한 빛이 아니라, 바람을 불러내 조종하고 있다. 이건 이안과 다른 의미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무릇 마력이란, 파괴의 힘만으로 쓰이는 게 아니니까.
마법사들이 넋 놓고 구경하는 동안, 나움은 끊임없이 집중하여 제 몸에 흐르는 힘을 느꼈다. 그러다 툭- 현상이 멎었다.
“아.”
첫 시도치고는 굉장한 능력이었지만, 나움은 사그라진 자신의 마력을 보고서 아쉽다는 듯 탄식했다. 하지만 이것만도 어디인가. 이내 나움은 한스를 돌아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만 울고 눈물 닦으라며.
“하 씨.”
아레나는 이마를 부여 쥔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안이 놀라서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아레나는 혼자 벌떡 일어나 다시금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이거지이이이!”
아주 오랜만의 인원 충원? 경사는 그게 아니다. 조금만 갈고 닦으면 보석이 되고도 남을 천재 신입들이잖아!
아레나는 넋을 잃은 마법사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이제부터 골골대는 새끼들은 진짜 혼난다! 어? 신입이 셋이나 한꺼번에 들어왔는데 시간 없다, 힘들다 하면 아주 너 죽고 나 사는 거야. 알겠어?”
“우, 우우우-!”
“우우우는 지랄. 하, 신이시여. 진짜 감사합니다.”
“장관님, 저 친구는 누가 담당합니까?”
“원래는 맞선임이 하는 게 맞는데, 보다시피 좀.”
아코는 사실상 경력직 신입인지라 혼자서 지하실 처박혀 연구하느라 정신없고, 그 위는 이안 하델이었다.
하지만 이안도 배울 게 산더미고, 무엇보다 할 일이 너무 많지 않나. 정원 관리, 간식 창고 재고 확인, 뀨 산책, 사무실 꽃 갈기 등등.
아레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가락을 튕기며 한 마법사를 가리켰다.
“네가 해라.”
“지, 진짜요?”
“뭐야? 왜 좋아해? 어젠 일 많아서 때려치운다며?”
“제가요? 하하하. 그럴 리가.”
아레나는 찌릿, 한 번 째려보며 다 정리되었다는 듯 손을 가볍게 탁탁 털었다. 그러고는 나움을 불렀다.
“내일부터 바로 출근할 거지?”
“내일이요? 아, 다니던 곳에 말씀을…….”
“됐어, 됐어. 마법부에서 사람 보내서 정리할 거니까 당장 내일부터 출근해. 계약서부터 써 보자고? 응?”
이, 이래도 되나? 나움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나가 손끝을 따악! 튕기자 허공에서 종이랑 펜이 나풀나풀 내려왔다.
“마법부이기 전에 황궁에서 일하는 거라 간단한 호구 조사가 있을 예정. 이름이랑 주소 여기 적고, 근로계약서는 다음 장에.”
계약서라는 말에 한스가 고개를 들이밀고 함께 읽었다. 한 번 본건 잊지 않는 터라, 어디서 주워들은 잡다한 법률 지식을 총동원하려는 게다. 나움이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괜찮아. 지금 서명 안 해도 돼. 이안 하델은 변호사까지 데려와서 확인했어.”
황궁에서 내민 거지만 확실하게 하자, 이거지. 이안이 히- 웃으며 덧붙였다.
“소개해 드릴까요?”
“아. 마음만 받을게.”
밥 사 먹을 돈도 없는데 변호사 비용은 어찌 내겠는가.
나움은 맨 뒷장, <마법부 규칙>이라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공식 문서는 아닌 것 같고 마법부 자체적으로 이행하는 내용인가 보다.
“파업은 가능한 한 1년에 두 번까지만, 서로 간식 훔쳐 먹기 없음, 마력회복제 빌려달라고 했는데 없다고 구라 치면 손모가지, 뀨 똥 치우기는 미루지 말 것…….”
이게 다 뭔 말이람. 나움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레나가 종이를 톡톡 치며 강조했다.
“앞에 계약서보다 이게 제일 중요해. 잘 숙지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
“저기, 급여는 어찌 되는지…….”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나움의 질문에 아레나가 멋쩍게 웃었다.
“신입은 좀 적어. 그건 좀 미안하게 됐네.”
나움의 얼굴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래, 아무리 마법사라도 신입은 신입이다. 급여가 많을 리 없었다.
그래도 인쇄소보다는 높겠지? 1년에 금화 12개 받았으니까, 그 정도만 되어도 여차여차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거다.
“금화 12개였나? 맞지?”
“예, 1년 차에는 그 정도입니다.”
나움은 안도했다. 좀 적다 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급여는 똑같았다. 보통 금화 1개가 평민의 한 달 생활비니까, 1년에 12개면 딱 평균치인 편이었다. 거기다 황궁에서 일하면 여러 복지도 있을 거고, 나중을 생각하면 확실히 좋은 기회…….
“이것저것 떼고 계산하면 1년에 금화 100닢 정도 되겠네요.”
“……?!”
마법사의 말에 나움과 한스의 입에 동시에 벌어졌다.
“그, 금화 12개가 한, 한 달 급여였습니까?”
“그럼?”
하얗게 질린 나움의 안색에, 아레나가 변명하듯 주섬주섬 덧붙였다.
“아, 너무 적지? 에휴, 하여간 짠돌이들,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힘들어도 좀만 참아. 내년엔 많이 인상될 수 있게 힘써 볼 테니까. 그때까지 힘들다고 그만두면 안 된다?”
너스레였다. 그녀 역시 평민이었기에 이것이 얼마나 큰 액수인지 잘 알았다. 사실 돈 많이 받아 봤자 야근이니 출장이니 바빠서 어디 쓸 시간이 없는 게 진짜 문제지만… 이것만큼은 어색한 미소 뒤에 꼭꼭 감추는 아레나였다.
그래도 나중에, 나아아아중에 무사히 살아남아서 은퇴하면, 말년은 진짜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거다. 마법사들 모두 그것만 바라보고 사는 중이다.
“혀, 형아!”
“한스!”
한편 나움과 한스는 서로를 껴안으며 다시금 자지러졌다. 이제 진짜 배고픔과는 안녕이구나! 두 사람이 환호하자 마법사들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들도 한때는 모두 평민, 처음 들어왔을 때 저런 반응이었으므로.
‘이안 하델은 워낙 부자라서 별 반응 없는 게 재미없었지.’
데구루루.
두 형제가 정신없이 뒹굴다 이안의 발치에서 멈췄다. 이안이 웃으며 둘을 내려다봤고, 형제는 역광을 등에 업은 이안의 미소를 보며 중얼거렸다.
“천사인가?”
“천사인가 봐.”
“하하, 뭐래. 한스, 일어나 봐. 형, 저기 보세요.”
이안은 두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서 정원 뒤쪽을 가리켰다.
“별채예요. 두 분 선조께서 지었다는.”
울창한 조경과 한데 어우러진 건물이 참 아름답다. 이안이 턱짓하며 제안했다.
“구경, 가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