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01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01화(901/935)
제901화. 책
“오.”
나움과 한스가 별채를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마법부 본관 건물도 고유의 멋이 있었지만, 별채는 또 달랐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훨씬 깔끔하고 신식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신식이라고 해 봤자 100년 가까이 된 건물이지만, 아무튼.
이안이 별채 문을 열며 물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별채에 관한 말씀은 자주 하셨어?”
“할아버지는 기억이 거의 없고 아버지는 종종 하셨던 것 같아. 특별한 말은 아니고, 그냥 마법부 별채 우리 집안이 지었다… 뭐 그런 거.”
끼이익.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로 아치형 문이 크게 나 있었다. 대부분 자료를 보관하는 공간으로 사용 중이었는데, 맨 안쪽 복도 끝방에는 커다란 창이 나 있었다. 나무 하나가 통으로 보일 만큼 큰.
“여기서 책 읽기 딱 좋겠다. 계절의 흐름을 바로 느낄 수 있겠어.”
“그걸 의도한 거겠지?”
“할아버지가?”
“응. 할아버지가.”
한스는 벽을 가볍게 매만지며 웃었다. 이곳은 형제에게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할아버지의 생각과 의도가 듬뿍 녹아 있는 곳이다.
나움 역시 감회가 새로운지 연신 천장 쪽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층고도 높고, 정말 멋있다.”
“근데 얘기 들어 보니까 마법사들은 여길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왜요?”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던 나움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청소만 깨끗하게 되어 있지, 사용감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본관에서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서류나, 조금 구겨진 소파, 물 자국 찍힌 테이블 등등- 마법사들의 생활 흔적들로 가득했었는데 말이다.
“마법사 수가 워낙 적어서 사실 본관만으로도 업무 수행에는 문제가 없다 들었거든요. 그래서 별관 지어질 때 다른 부서랑 의견 다툼이 많았대요. 굳이 지을 필요 없는데 왜 짓냐면서.”
“흐음.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다만 당시 마법부도 생각이 있었겠죠? 뒷부분은 아직 안 배워서 모르겠지만.”
이안이 가지런히 정리된 책장을 손끝으로 도도독 두드리며 이것저것 자세히 살폈다.
“뭐 찾아?”
“음…….”
“왜?”
나움은 책 한 권을 꺼내 책장을 팔랑이며 넘겼고, 한스는 이안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소각의 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 줬다.
“정원 사건 때 말이야.”
“소각장?”
“응. 거기서 이상한 걸 봤거든.”
“이상한 거라니?”
“내 모습이랑 똑같은 아이를 봤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한스는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끼며 창밖을 힐끔거렸다. 다행히 해는 쨍쨍하게 떠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
“안 놀라게 생겼어?”
“원래 그런 거 나오는 곳 아니야?”
“됐거든. 소각장에서 귀신 봤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귀신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래서?”
이안은 골똘히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 아이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보고 답을 찾으려면 별채로 가라지 뭐야.”
“뭐?”
한스의 눈매가 구겨졌다. 그게 무슨 영문 모를 소리냐는 듯이. 이안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한스의 물음에, 이안은 멈칫 고개를 들었다.
“질문이 뭔데?”
“어?”
“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며. 그건 질문이 있다는 뜻이잖아.”
그렇네. 이안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듯 입술을 살짝 벌렸다.
“걔한테 무슨 질문을 했어?”
“음. 넌 누구냐고.”
“그럼 그거에 대한 답인가?”
기억을 곰곰이 되새겨 봤지만, 자신이 아이에게 한 질문은 그것이 유일했다. 하지만 뭔가 직감적으로 그것이 ‘진짜’ 질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스는 이안과 함께 책장 곳곳을 뒤적거리며 그 아이가 전해 주려던 답이 무엇인지를 찾는 데 열중했다.
스윽.
반면 이안은 책장과 책장 사이를 넘나들며 연신 창문을 쳐다봤다. 녹음 진 수풀과 나무가 참으로 아름답고, 되레 불길할 만큼 평화로웠으니.
가만히 서서 햇살을 느끼던 중, 이안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살짝 놀렸다.
“……!”
반대편 창문에 서서 미소 짓고 있는 크로니. 이안이 놀라서 뒷걸음질 치자, 크로니는 잠시 할 말이 있다는 듯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숙부. 오랜만입니다.”
“크로니.”
“잠시 전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여긴 어찌 알고?”
“마법부로 가니 별채에 있다고 해서요. 잠시 말씀 좀 나누시지요. 제가 들어갈까요? 아니면 나오시겠습니까?”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나가겠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크로니를 이곳에 들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도 혹여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여기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한스는 자신과 같이 어린아이였고, 나움은 아직 미숙한 마법사다. 그것도 황궁에 입지가 없는.
“이안, 어디 가?”
“잠시 밖에. 둘은 더 둘러봐. 금방 올게.”
이안이 서두르며 별관을 나서자, 두 형제는 의아한 시선만 나누었다. 나움은 읽던 책을 덮고서 심각한 표정이 되었지만, 한스는 다시금 책 찾기에 빠져들었다. 간이 사다리까지 가져와 재밌는 제목이 없는지를 살폈다.
‘음?’
그리고 발견한 책 한 권.
제목이 좀 특이했다.
-<히엘로 일대기>
저자는 비비. 모르는 이름이었다. 소설인가? 다른 책보다 유독 낡고 먼지가 많이 쌓여 있어 눈길이 갔다.
한스는 책을 살짝 꺼내 표지를 살폈다. 아무런 장식 없이 그저 가죽 커버만이 씌워져 있다.
“마법부 별채에 왜 소설이 있어?”
중요한 자료도 아닐 건데.
한스는 별생각 없이 맨 앞장을 넘겼다. 흘리는 글씨체로 적힌 인사말.
-이안 님,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이안이라.
한스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이안 하델이랑 이름이 같잖아? 물론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마법부 별채에서 마주하니 왠지 마음이 쓰였다. 한스가 막 다음 장을 넘기려 할 때였다.
“한스.”
“응?”
“이안 방금 나갈 때 좀 불편해 보이던데, 따라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나움이 바깥쪽을 턱짓하며 물었다. 마음 같아선 곧장 따라가고 싶었지만, 아직 정식 입부하기 전인지라 혼자 돌아다니기 부담스러웠다.
한스는 그제야 깨달았다며 서둘러 책을 덮고는 사다리를 내려왔다.
“응. 따라가 보자.”
“그래. 여긴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데리고 와 줄 거야?”
“그럼. 당연히.”
곧 마법부 소속이 될 건데 가족 한 명 데리고 오지 못할까? 그리고 아까 대충 들어 보니, 옷가지 따위를 가져다주러 가족들이 자주 온다고 하였다.
한스는 씨익 웃으며 형의 허리를 껴안았고,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여 문 쪽으로 달려갔다.
타닥타닥!
덜컥!
문을 열자, 멀리 서 있는 이안이 보였다. 아이는 정복 입은 사내와 대화 중이었다. 무슨 얘길 나누는가 귀를 기울여 보려는데-
“어? 형, 저기 봐.”
한스가 이안 너머의 저편을 가리켰다. 마법부 본관 건물 쪽이다.
“……?”
한 무더기의 마법사들이 이안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난간에 기대서, 앉아서, 구멍 뚫린 신문지 너머로, 심지어는 뻔뻔하게 망원경을 든 채로.
* * *
이안을 기다리던 크로니는 짜증이 묻어나는 눈으로 마법부 건물 쪽을 힐끗거렸다. 모르는 척 여기저기 숨어서 엿보고 있지 않나.
‘미친것들.’
원래도 기행을 일삼는 자들이긴 했지만, 막상 목도하니 영 불쾌했다. 이안 하델을 만나러 왔다는 말에 번뜩이던 그 눈빛들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레나, 그것의 말이 어느 정도 맞았군.’
이안은 마법부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는, 마법부 장관의 언질 말이다.
당시에는 그저 면박 주려는 말에 불과할 것이라 여겼다. 귀족과 평민 사이의 벽은 분명히 존재했고, 안 그래도 바쁜 업무 중에 이안 하델의 입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짐일 게 확실해 보였으니까. 한데, 아니었다.
타앗!
이안이 별채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불안한 듯 빠른 걸음이었으나, 천천히 숨을 가다듬더니 이내 차분해졌다. 크로니와 가까워질수록 평정심을 되찾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이젠 어엿한 마법사다, 이거지.’
크로니는 허리를 살짝 숙이며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숙부. 오랜만에 뵙습니다. 같은 황궁 안에 있어도 이리 얼굴 보기가 힘드네요.”
“……크로니 경,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덕분에요. 숙부께서는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했지만, 어쩐지 기이한 불편함을 주는 크로니였다.
“함께 차라도 마시면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마법부 안에서는 워낙 듣는 귀가 많은지라, 이렇게 별채까지 직접 와서 이안을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크로니의 제안에 이안이 저 멀리 있는 마법사들을 힐끔거렸다. 표정은 안 보였지만, 하나같이 손날을 세우며 엑스 자를 그려 대고 있었다.
“아니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제가 업무 중이라서요. 아직 배울 것이 많은지라 상관 허락 없이 마법부를 나갈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습니까? 일이 바쁘다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오랜만에 만난 조카와 차 한잔 나눌 시간 없다니.”
크로니가 아쉽다는 듯 대꾸했다. 아이가 마법부에서 하는 일이라고 해 봤자 놀고먹는 것 외에 별거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한데 바쁘다? 그리 나오신다면 어쩔 수 없지.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음. 전할 것이 많은데 장소도 시간도 여의찮으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로니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이안을 내려다봤다. 그때랑 똑같았다. 하델 저택에서 처음 마주하였을 때.
“도적 떼의 마차 습격 사건은 곧 종결될 것입니다.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게 경비대의 의견입니다. 자크 백작께서도 곧 전해 듣겠지만, 제가 먼저 숙부를 보았으니 겸사겸사 말씀드립니다.”
자신의 사주로 인한 습격이었다는 혐의는 침묵 속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일종의 승리 선언이었다.
이안은 주먹을 가볍게 쥐며, 크로니를 올려다봤다.
“감사합니다, 크로니 경.”
“별말씀을요. 그리고 하나 더 여쭐 게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요즘 몸이 편치 않아서 주변 정리를 하고 계십니다. 숙부께서도 가능하다면 저택으로 와 주셔서 함께해 주셨으면 하시네요.”
크로니의 아버지라면, 이안과는 이복형제 되는 관계였다. 족보가 꼬인 탓에 나이로는 이안의 할아버지뻘인 자였지만, 아무튼.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이름조차 가물가물할 정도. 하지만 마지막 정리를 운운하며 초대한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이안은 어찌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하며 대답을 미루었다. 그러자 크로니는 걱정하지 말라며 싱긋 웃었다.
“아마 저는 저택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들으셨습니까?”
“…무엇을요?”
“북쪽 출정에 제가 나서게 되었답니다.”
흘려들은 적 있다. 북쪽의 소수민족과 바리엘의 갈등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그곳에 크로니가 직접 간다는 소문을.
“숙부께서는 언제 오실지 모르겠지만, 다음 달에는 제가 중앙에 없을 것입니다.”
떠난다. 크로니가 떠난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려다 멈칫거렸다.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비가 마지막을 준비하는데, 북쪽으로 출정을 나간다고?’
아들 된 도리로 그것이 가능한가?
황제는 현 사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들었다. 그러니 황명을 받고 가는 것은 아닐 터. 심지어 제국방위부엔 장교들도 많을 텐데, 어째서 크로니가 가게 된 거지? 제국방위부 내 방침이 따로 있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크로니의 입가에 웃음이 깃들었다. 마법부 생활도 얼마 안 남았으니, 즐길 거라면 마음껏 즐기라는 뜻이었다.
크로니는 아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이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안 숙부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아…….”
“그래서 말입니다만, 숙부. 저와 함께 북쪽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정식으로 제안하는 것입니다.”
“예?”
갑작스러운 제안. 하지만 크로니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것이 숙부에게 나은 선택일 것입니다. 이곳, 황궁에 남는 것보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크로니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리 경고하고 있었다.
“…어째서요?”
“어째서냐고요?”
잇새로 흘러나오는 희미한 웃음. 크로니는 이안의 팔을 꽉 붙들고서 속삭였다.
“미리 알면 재미없지요. 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