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03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03화(903/935)
제903화. 타살
크로니가 북쪽으로 떠난 지 한 달째.
이안은 턱을 괴고서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구경했다. 너무도 평화로워 마치 그려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현실감 없지만, 너무도 생생하여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래도 되나.’
그날, 그러니까 크로니가 마법부에 찾아왔던 날 이후로 이안은 그와 마주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출정식은 학교에서 강의 듣던 주중 오전에 치러졌고, 하교했을 때 북쪽 원정대는 이미 중앙을 떠난 후였다.
‘저택에 찾아오라 했으면서, 안 가도 별 반응도 없고.’
딱 두 번, 자크 백작저로 서신이 왔었다. 크로니가 전했던 내용 그대로, 그의 아버지가 신변을 정리하고 있으니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첫 번째 편지는 크로니가 미리 써 둔 것이었고, 두 번째 편지는 필체가 다른 것으로 보아 집사가 쓴 것으로 보였다.
“야.”
옆에 앉은 한스가 이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강의 시간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는 듯. 그와 동시에 교수가 칠판을 가볍게 두드리며 이안을 불렀다.
“이안 하델 군.”
“네, 교수님.”
정신 팔고 있었으면서 대답 하나는 아주 자연스럽다. 교수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별다른 경고 없이 바로 질문으로 넘어갔다.
“방금 제기한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안은 빠르게 칠판을 살핀 다음 막힘없이 대답했다.
“전쟁이란 이해관계로 점철된 폭풍입니다. 한번 일어난 이상 소멸할 때까지 모든 것을 파괴하죠. 그래서 이번 제국방위부의 북쪽 출정에 대한 제 의견은 반대입니다. 북쪽 소수민족과 여러 분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껏 큰 사상자 없이 갈등 고조 방식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굳이 병력을 이동해 자극할 필요 없다는 의견입니다.”
한스는 입을 비죽거렸다. 쟤는 딴생각하면서도 한쪽 귀를 열어 두나? 아이는 이안의 의견을 받아적으면서 교수와 칠판에 집중했다.
오늘 토론 주제가 바로 ‘바리엘의 북쪽 출정’이었다. 마법부에서 만났던 크로니가 중심이 되는, 현재 바리엘에서 제일 뜨거운 감자인 주제.
“그럼에도 어째서 제국방위부는 출정을 강행했을까요?”
“그것이 그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법부의 핵심이 마법이듯 제국방위부의 핵심은 전쟁이다. 타국과의 전쟁, 승리, 이득.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명처럼 살아 숨 쉬는 세력.
교수가 안경을 바로 쓰며 물었다.
“그들의 이득이라면 개인적인 이득을 뜻하는 것일까요? 제국방위부의 선택에 반대하는 근거로 말한 것인지요?”
“…그것은 아닙니다. 제국방위부의 이득은 곧 바리엘의 이득이기도 하니까요.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바리엘은 분명히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과연 북쪽 세력과 균형을 깨고 바리엘의 병사들이 죽어 가면서까지 얻을 만한 것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요.”
흐음. 교수는 눈썹을 까딱거리며 채점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발언 태도, 일관된 주장, 논리적 뒷받침 등 모든 면에서 우수했다. 수강 태도는… 사람이 가끔 그럴 수도 있지, 뭐.
교수는 다음 학생에게 시선을 넘기며 강의를 이어갔다.
“좋아요. 다음… 거기, 뒤쪽의 학생-”
자리에 앉은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펜을 들었고, 한스는 그런 이안을 몇 번 힐끔거리기만 했다. 크로니에 대한 생각을 떨쳐 내고 싶은데, 학교 안팎으로 모두가 이에 대해 떠들어 대니 피곤한 모양이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강의가 끝나자, 한스가 가방을 챙기며 물었다.
“바로 마법부로 가?”
“응. 왜? 같이 갈래?”
“형 옷가지 좀 챙겨 왔어. 아니, 무슨 놈의 회사가 사람을 집에 보내질 않아? 나 형 얼굴 본 지 벌써 일주일째다!”
처음에는 돈벼락 맞아 기쁘기만 했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마법부의 더럽고 흉악한 현실에 마주하고 말았다.
하루 18시간 이상 근무는 물론 거기에 야근은 필수 아닌 필수였고, 뭐만 하면 어디서 폭발이 일어나서 옷 태워 먹기 일쑤였다. 이건 뭐, 에너제스보다 더하다.
“그나마 밥이라도 꼬박꼬박 줘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우리 형 벌써 쓰러졌다.”
“요즘 들어 더 바빠. 곧 있으면 추수감사제잖아. 행사 준비를 마법부에서 하는 줄 몰랐어. 다들 물처럼 약 먹고 그래.”
“돈 많이 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니까. 아으, 불쌍한 우리 형.”
두 사람은 가방을 챙겨 메고는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이안을 기다리고 있던 마부가 손을 흔들어 댔다.
“한스, 이사는 언제 해?”
“다음 주. 중앙대로 인근이라 집값이 진짜 비쌌는데, 형이 마법사라서 대출이 잘 나왔어. 작은 정원도 있다? 치안도 좋아서 밤에는 공원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대. 학교까지는 조금 멀어졌지만 그때 되면 형이 마차 하나 빌린다고 했어.”
“잘됐네!”
이안이 엄지를 치켜들자, 한스가 피식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고맙다는 말은 자신이 할 말인데, 바보.
“이안 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스 님도 같이 오셨네요.”
한스 님이라니! 한스는 난생처음 든는 호칭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마법사의 위상이 이리도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다. 가족 중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이리 극진한 대우를 받다니. 이게 맞나?
“근데 오늘은 마법부가 아니라 저택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어째서?”
이안이 마부에게 가방을 넘겨주며 물었다. 마부는 주위 눈치를 살피듯 휙휙 살피더니,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이안에게 속삭였다. 한스 역시 귀를 쫑긋거리고 들었다.
“자세는 저도 모르지만, 얼추 듣기로는… 황궁에서 지금 난리가 났답니다. 다들 정신이 없는 터라 장관님께서 이안 님 출근 금지령을 내리신 것 같아요.”
“무슨?”
황궁에서 난리가 나다니? 어제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 자크 백작저에서 나올 때만 해도 특별히 들은 말이 없었다. 헤르치 대장 역시 별다르지 않게 출근하지 않았나.
마부는 더 목소리를 낮추며 일렀다.
“제국방위부 장관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
뜻밖의 소식에 이안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리고 이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크로니의 미소.
뭔지 모르겠지만, 그 미소의 서막이 올라간 게 분명했다.
* * *
“제국방위부 장관 샤르토가 죽었다고?”
샤르토 장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것은 점심이 막 지나간 오후였다. 도장을 기계적으로 쾅쾅 찍어 대던 아레나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예, 방금 들어온 소식으로는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지병이 있었나? 그 인간, 살집이 좀 있어도 튼튼했잖아. 매일 소리 빽빽 질러 대는 꼴이 100살까지 살 것 같더만.”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타살인 것 같다고 합니다.”
“아.”
시발.
아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제국방위부 장관의 죽음이 황궁에 가져올 파장이 어디까지일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건데?”
“욕조에 쓰러져 있는 걸 저택 시종이 발견했다고 하는데, 목에 자상이 깊게 나 있었다고 합니다.”
“와, 이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제국방위부 장관이 죽은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근데 타살, 그것도 범인은 보란 듯이 시체를 전시해 놓았다.
죽음을 자살 혹은 수면 중 불의의 사고 등으로 위장하지 않았다는 건, 장관의 죽음에 개입된 누군가가 있음을 알리는 행위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그래서?”
“경비대가 저택을 조사 중이라고 하는데 아직 보고 올라온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일단 긴급회의부터 들어가시지요.”
“하, 씨발, 영감탱. 죽을 때도 예술로 가는구먼.”
아레나는 중얼거리면서 정복 웃옷을 챙겨 입었다. 말은 가볍게 일렀지만 불길한 예감이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마법사들에게 상황을 전달하며 뛰쳐나갔다.
“다들 사무실 잘 지키고 있어. 보호막에 신경 더 쓰고, 혹시 모르니까 외곽 초소 감시 잘 해라.”
제국방위부 장관이 죽었다. 범인은 필시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 그렇다면 제국방위부 내부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혼란을 틈타 병사라도 움직인다면 국가적 비상사태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안 하델 말인데. 내가 다시 이를 때까지 황궁 들어오지 말라고 전해. 괜히 왔다가 안 좋은 거 볼라.”
“예에-! 다녀오십시오.”
“오야.”
타앗!
아레나를 태운 마차가 황궁 본관으로 내달렸다. 작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그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해프닝으로 끝날 사건이 아닌 것 같아. 의도적이고 뒤에 명백한 무언가가 있다. 폐하께서 북쪽 원정을 반대하면서도 샤르토를 해임하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데?’
제국방위부의 결속력. 누구를 그 자리에 앉히든 샤르토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그 샤르토가 누군가의 손에 죽었다라.’
조금 더 정보가 필요했다.
이미 본궁 앞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타 부서 장관과 관료들이 즐비했다. 아레나가 계단을 오르자, 장관들이 몰려들어 말을 걸어왔다.
“아레나 장관, 들으셨습니까?”
“들었으니 여기 왔지요.”
“허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원.”
“황망하기는 샤르토 장관 본인이 더할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건 경비대가 할 일이고, 샤르토의 죽음이 황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가늠하는 게 관료들의 일.
“폐하께서는요? 대회의에 참석하신답니까?”
“몸이 불편하셔서 모르겠습니다. 한데 사안이 사안이니 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시국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황제가 거의 산송장이나 다름없다는 소문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여러모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수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료들을 맞이했다.
“다들 앉으십시오.”
“폐하께서는요?”
“연락드렸습니다. 우선 우리끼리 수습하고 있으라는 전언이십니다.”
이런, 황제께서 못 일어나시는군. 관료들이 서로 눈빛을 나누며 고개를 작게 저어 댔다.
“제국방위부 샤르토 장관의 죽음은 타살로 밝혀졌습니다. 명명백백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샤르토 장관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가 범인일 것입니다. 솔직히 발언하자면, 제국방위부 내부를 의심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옳으신 말씀이지요. 한데 그것은 그것이고, 공석을 오래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제국방위부 장관직 같은 중직을요.”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 전에 섣불리 새 장관을 임명할 수는 없습니다. 혹 그자가 범인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전에 없던 사태에 장내는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이에 수상이 탁, 봉을 내리치곤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국방위부 내부 분위기는 어떠합니까?”
이에 뒤에 선 관료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보고했다.
“혼란스럽습니다. 분개하는 자와 의연한 자, 범인을 찾겠노라 날뛰는 자, 주시하는 자 등등… 업무가 거의 마비 상태입니다.”
끄응. 관료들은 복잡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침묵했다. 개중 누군가가 조심히 물었다.
“…부장관은?”
현재로서 의심 가는 자는 부장관이다. 그가 장관의 죽음으로 제일 큰 이득을 보는 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북쪽 출정 건으로 장관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부장관직은 본래 크로니의 자리였노라고 말이다.
“소식이 닿지 않습니다.”
“어허, 이런이런.”
다들 탄식을 터트리자, 아레나는 팔짱을 끼고서 현 사태를 가만히 둘러봤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꼭 짜 맞춘 것처럼 돌아가는, 뭔지 모를 불편함.
“그렇다면 일단, 부장관 쪽이 아닌 자 중에 인선하여 임시직으로 임명하는 건 어떻습니까? 조심스레 건의합니다.”
“예, 뭐, 안전하게… 저도 그것이 나쁘지 않은 것 같군요.”
“소렌 대장이 일단 장관의 측근입니다. 사촌의 사돈이라 하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아레나는 관료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다가, 문득 들려온 말에 눈이 커졌다.
“…그리고 음, 크로니 대장과는 확실히 무관한 일이겠군요. 장관 샤르토의 측근이었으면서 지금은 북쪽에 가 있으니까요.”
바로 저거다.
아레나가 느낀, 뭔지 모를 불편함.
쾅!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책상을 크게 내려쳤다. 그에 모두의 시선이 아레나를 향했다.
“……?!”
“……?”
대체 뭔 소릴 하려나-
기대 반, 우려 반의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