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0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05화(905/935)
제905화. 초대장
“크로니 대장의 숙부시라고요.”
이안은 소렌이 내민 손을 가만 쳐다봤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에서 그를 지칭하는 수많은 말 중 ‘크로니의 숙부’를 언급한 건 무슨 의미일까.
이안은 천천히 손을 들어 악수하며 소개했다.
“예. 마법부 소속 이안 하델입니다.”
자신은 크로니의 숙부이기 전에 마법사라고.
부드럽지만 확실한 정정이다. 소렌은 의례적인 미소를 지었다.
“역시 듣던 대로입니다.”
“무엇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고 나오는 길이실까요?”
자연스러운 말 돌림.
이안은 약간의 불쾌함을 느끼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자, 크로니와 한패가 분명했다. 제국방위부 소속인 것도 그렇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묘하게 크로니와 닮아 있었다.
“…그렇습니다.”
“무슨 말씀을 나누셨나요?”
정신도 온전치 못한 황제가 이안을 침실로 불러서까지 하려 했던 말이 무엇일까. 소렌은 아이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며 질문했다. 대답의 진실과 거짓을 가리겠다는 듯.
이안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꾸했다.
“그것이 어찌 궁금하십니까?”
“이안 경은 황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폐하께서 가까이하심이 의아하여 말입니다.”
“그렇다면 폐하께 직접 여쭈십시오. 폐하의 의중을 짐작하고자 하시면서 어찌 제게 답을 찾으려 하십니까.”
황제께 묻지 못할 것은 내게도 묻지 말라. 불경하다. 어린아이의 기백이 예상 밖이었다.
소렌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침묵하더니, 크로니의 얘기를 꺼냈다.
“부장관의 죄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면 크로니 대장께서 제국방위부의 장관이 되실 것입니다. 듣자 하니, 두 분 사이에 오해가 좀 있다 하던데, 서로를 위해 감정을 푸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오지랖이군. 이안은 소렌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부장관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으셨습니까? 어찌 그리 속단하시는지요?”
장관의 시체가 발견된 지 이제 겨우 반나절 지났다. 한데 소렌은 어째서 부장관이 범인이라 확신하고, 그다음을 얘기하는 것일까.
소렌은 싱긋 웃으며 쪼그려 앉아 이안과 눈높이를 맞췄다.
“다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크로니 경은 현재 북쪽에 있습니다. 출정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다시 돌아온다는 말입니까?”
“출정 기간이 중요하겠습니까? 결과가 중요한 것이지.”
이안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말이었다. 소렌은 그런 아이의 어깨를 툭툭, 가볍게 격려하고는 일어났다.
“서둘러 들어가 봐야겠군요. 차기 제국방위부 장관으로 크로니 경을 추천한다는 부서의 서명서랍니다. 폐하께서 또 언제 잠들고 일어날지 모르니, 서둘러야겠어요.”
그럼, 이만. 소렌은 이안에게 인사를 남기곤 복도를 지나쳐 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수십 명의 제국방위부 직원들.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이안을 힐끔거렸다.
스윽.
아이는 조심스럽게 걸음 하여 본궁을 빠져나왔고, 계단 쪽 난간을 붙잡고 섰다. 일이 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거지? 이안의 머릿속이 복잡하던 그때-
“이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본궁 앞에 서 있던 마차에서 아레나가 고개를 내민 것이다. 어서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까지 흔드는 모습에, 이안은 힘차게 내달렸다.
타닥타닥!
“장관님!”
“어서 타. 제국방위부 놈들 더 몰려오겠더라.”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회의하다 너 들어왔다고 해서 기다렸지. 마부! 출발하자고!”
“예, 장관님.”
히이잉!
아레나는 서류를 옆으로 치우며 물었다.
“폐하께서 무슨 말씀 하셨어?”
그 질문에 이안은 황제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마른 목소리의 경고.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충 둘러댔다.
“마법부 적응은 어떤지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말 잘 했지?”
“그럼요. 다들 너무 친절히 잘 대해 주신다고.”
“그래그래. 암.”
아레나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눈치챈 참이다. 황제가 이안을 침실까지 불러서 이른 말이 고작 저것일 리 없다는 걸. 하지만 아이가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어쩔 수 없다. 존중할 수밖에.
“그리고 장관님.”
“응.”
“크로니가 제국방위부 장관이 될 것 같아요.”
이안이 조심스레 이르는 말에 아레나가 멈칫거렸다. 어디서 뭘 들었나? 자세히 일러 보라는 눈짓에 이안은 소렌과의 대화를 전달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레나가 턱을 괴었다.
‘이미 북쪽이랑은 대화가 끝났구나.’
제국의 이름으로 나선 정벌이다. 제국방위부 수장의 자리가 비었다고 회군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단 뜻이다. 그 말인즉, 북쪽 소수민족들과 어느 정도 협상이 진행되었고, 그쪽과 한패를 이루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정벌은 지랄. 가서 얼굴 보고 악수하고 오는 거구먼.’
크로니는 북쪽 세력을 등에 업고, 제국군의 지휘권을 가지게 되었으니, 제국방위부의 그 누가 반기를 들고 일어서겠는가? 소렌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던 인간들만 하여도 장교 대부분이 그와 힘을 합쳤다 볼 수 있다.
“크로니가 제국방위부 장관이 되면 어찌하지요?”
이안이 걱정스레 중얼거리자, 아레나가 이안의 머리에 손을 툭 올려놓으며 쓰다듬었다.
“되면 되는 거지, 뭐. 걱정할 거 없다. 우리는 마법부야.”
아무리 크로니의 힘이 막강해진다고 하더라도 마법부를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까 안심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안, 말했듯이 너는 황궁 잠잠해질 때까지 학교 열심히 다니고 있어.”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에는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상을 살라는 말이었다. 마차가 마법부에 도착하자, 이안이 따라 내리며 물었다.
“저, 잠시 사무실 들러서 물건 챙겨도 되나요? 놔두고 온 책이 있어서요.”
“그래. 볼일 보고 서둘러 나가.”
“예, 장관님.”
아레나는 바쁘다는 듯 장관실로 올라가 버렸다.
이안은 로비를 지나쳐 사무실 복도로 들어섰다. 황궁 내부가 워낙 소란스럽다 보니 마법사 모두 비상사태에 들어섰나 보다. 다들 어딜 갔는지 텅 비어 있다.
“찾았다!”
그때, 뒤에서 이안을 확 끌어안는 누군가.
이안이 놀라서 화들짝 놀라 뒤돌아봤다. 헝클어진 분홍색 만두 머리와 주황빛 눈동자, 그리고 주근깨.
“어?”
“얼굴 한번 보기 힘드네!”
마석을 취급하던 상점 주인장, 아코였다.
이안이 그녀를 알아보곤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뭐가 이리 바빠요? 응?”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긴? 일터니까 있지요.”
“아, 그럼 혹시 새로 들어왔다던 마법사가 아코였습니까?”
“중고 신입♡-이라고 하죠. 근데 무슨 일 있어요? 다들 코빼기도 안 보이고 말이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일 보는 마법사와 달리 아코는 지하 실험실에 콕 박혀 있느라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알고 싶지도 않아 보였고.
“아, 그게-”
“그것보다, 이쪽으로 와 봐요!”
휘익!
아코가 이안을 끌고 지하 실험실로 내려갔다.
이안은 처음 오는 곳이다.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좀 났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잘 관리된 공간. 복도 끝 문을 열자, 녹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 맞나? 숨 한번 들이쉬면 폐가 녹아 버릴 것 같은데? 이안의 걱정을 알아챈 아코가 깔깔 웃으며 손으로 부채질을 해 댔다.
“이래 봬도 이게 다 영양제에요. 영양제. 힘껏 들이마시고! 흡! 하-!”
하지만 이안은 소매로 슬쩍 코와 입을 가렸다. 아코는 의자 하나를 밀어 주더니, 서랍에서 이드갈을 꺼냈다.
투욱.
“이건 저번에 그…….”
“맞습니다. 저번에 그! 보석인데요. 다시 한번 이걸 잡아 보시겠어요?”
이안은 주춤주춤 손을 뻗어 호박색 보석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천천히 빛을 발하는 마석. 아코가 환희에 차서 몸을 배배 꼬았다.
“꺄아아아! 역시! 역시!”
“이게 왜 이러는 것입니까?”
“저도 모르죠! 다만 이안 님에게 반응하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함께 알아 가 보는 건 어때요? 네?”
아코의 콧구멍에서 연기가 후욱 나왔다. 이안은 뭔가 잘못 걸렸다는 생각에 차분히 거절했다.
“장관님께서 당분간 출입을 금하셔서요.”
“예?! 어째서?”
“모르십니까? 제국방위부 장관께서 피살당한 사건으로 황궁이 뒤숭숭합니다.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저는 입궁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에에에?! 아코는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입을 쩍 벌린 채로 굳어 버렸다.
“아니, 그럼, 그럼 내 연구는? 연구는 어쩌고요?”
“…글쎄요.”
아코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처럼 소매를 걷고서 물었다.
“그럼 그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면 일단락되는 겁니까?”
“아마도요. 짐작 가는 사람이 있긴 한데-”
대체 어떻게 증거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경비대에서 조사 중이라고는 하지만 그쪽에도 분명히 크로니 측의 사람이 있을 터다. 범인을 잡지 않는 이상 크로니가 사주했다는 걸 증명할 수 없는데…….
“압수수색 걸어 버리면 될 일을.”
“명분이 없습니다. 다들 유력 용의자로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 그자는 곧 죽은 채로 발견될 것 같습니다. 모든 죄를 떠안고서 그렇게 마무리되는 거죠.”
“흐음.”
아코가 콧소리를 내었다. 일단락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마법부도 사건 조사에 개입하는 것으로 봐서 그쪽이나 이쪽이나 쉽게 쉽게 못 갈 것 같은데.
“걍 쳐들어가면 안 되나?”
“그럴 수는…….”
이안의 머릿속에 초대장이 스쳐 지나갔다. 크로니의 아버지 병환이 깊어졌으니 저택에 한 번 와 달라던, 그 초대장.
“아.”
그거라면 명분을 갖고 저택에 들어갈 수 있다. 필시 그곳에는 크로니가 장관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증거나 흔적이 남아 있으리라.
그것만 찾아서 아레나에게 전달하면 크로니가 제국방위부 장관이 되는 걸 막을 수 있고, 나아가 처형까지 가능했다.
“맞아, 직접 가면 되겠네.”
“어딜요? 그 인간 저택에요?”
“고마워요. 아코. 덕분에 깨달았어요. 저, 초대장 있거든요.”
이안이 짐을 챙겨 실험실을 나가려고 하자, 아코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워워워. 진정해요. 진정.”
쪼끄만 꼬맹이. 뭔지 몰라도 살인 사건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겠다고?
“괜찮아요. 저 잘할 수 있어요.”
“잘하고 말고 문제가 아니라, 남의 집 방문하는데 빈손으로 가는 경우가 어딨어.”
아코는 잠시 기다리라며 손끝을 튕긴 다음, 수납장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내 라벨지를 하나씩 확인하며 책상 위에 물약을 올렸다.
투욱.
“이건 투명화물약, 이건 번개탄, 그리고 이건…….”
다해서 다섯 개 정도 되는 작은 ‘물약 키트’다. 아코는 그걸 이안의 손에 쥐여 주더니,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무사히 다녀오면, 나랑 같이 이거 연구하기?”
아코는 엄지와 검지로 이드갈을 들어 보이며 속삭였다. 이안은 약속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지하 연구실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아코는 손날로 연기를 휘휘 내젓다가, 혀를 쯧 찼다.
“…보고는 해야 쓰겄지.”
저택에 초대받아서 간다는데 뭐라 말리겠는가? 이안 표정을 보니 말린다고 해서 들을 노릇도 아니었다. 아코는 설렁설렁 보고서를 작성하고는 도장을 꽝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