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13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13화(913/935)
제913화. 현장학습
“답신이 왔습니다!”
포탈을 유지하던 마법사들이 외쳤다.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가 또르륵 굴러떨어지는 서신을 잡아챘고, 동시에 포탈이 닫혔다.
마법사들은 땀을 닦아 내며 연신 허공에다 불만을 터트렸다. 마치 그곳에 크로니의 얼굴이 있는 것처럼.
“에라이, 씨. 대체 뭐 한다고 이렇게 늦어?”
“그러니까.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하여간. 마법이 날로 먹는 건 줄 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아니, 근데 이 짓을 내일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거잖아.”
“아레나 장관님! 답신이요!”
마법사들이 서신을 전해 주자 아레나가 안경을 벗어 내용을 살폈다. 이안은 예의 바르게 그 앞에 앉아 종이를 건네주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그녀는 한숨과 함께 서신을 이안 앞에 내밀었다.
“쉽게 가질 않네.”
“장관님. 뭐라고 하나요?”
“이안, 네가 북쪽에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데?”
오면 부모님에 대한 비밀과 후견인 신청 수락을 선물해 주겠노라고 말이다. 이쪽에서 잘 차려진 미끼를 대접했듯, 그쪽에서도 잘 차려진 함정을 한 상 가득 차려 보낸 게다.
이안이 잠시 고민하더니, 아레나를 힐끗 쳐다봤다.
“안 돼.”
절대 안 돼. 북쪽으로 가는 것만큼은.
그쪽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시 상황인 데다 크로니가 이안에게 어떤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공동 후견인까지는 수락했지만, 북쪽으로 가는 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레나 님.”
옆에서 상황을 가만 듣던 보좌관이 의견을 전했다.
“이안이 아니더라도 마법부가 북쪽으로 출장 갈 필요가 있긴 있습니다. 이드갈 매장지를 찾기 위해서라도요.”
아레나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사무실 곳곳에 널린 낡은 종이들을 둘러봤다. 황궁 중앙 자료실과 마법부 전체를 뒤집어엎어 이드갈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는데, 좀처럼 나오는 게 없다.
크로니 역시 황궁에서 이드갈에 대한 단서를 얻은 건 아닐 터. 모순적이게도 세상의 중심인 황궁에는 이드갈에 관한 것이 완벽하게 지워져 있었고, 바깥으로 나갈수록 흔적이 드러났다. 대사막의 천려 이야기만 해도 그 증거다.
“크로니가 북쪽으로 간 이유 중 하나가 북쪽 이드갈 매장지 조사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으로는 거의, 그렇게 예상되지.”
서랍 속에서 이드갈 조각이 나온 것만 봐도 이를 찾고 있는 건 분명했다. 아코도 북쪽 어딘가에 매장지가 있다고 증언하지 않았나? 이런 마당에 크로니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금이라도 마법사들을 보내서 크로니를 조사, 감시하고 이드갈에 대한 단서를 빼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수로?”
“크로니가 이안을 요청했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려, 아주 그럴싸한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앞서 제국방위부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던바, 넙죽 받아먹듯 포탈 타고 넘어가기엔 면이 안 섰다. 갑자기 승낙할 명분도 없고.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않나? 게다가 이번에도 상대가 먼저 이안을 호출했다.
“적당히 받아들이는 척, 호위대 겸 조사단을 꾸리심이 어떠십니까.”
아레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보좌관을 돌아봤다. 애를 앞에 두고 별소리를 다 한다는 듯이. 하지만 보좌관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아레나 역시 잔소리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수였으니까.
‘하지만 이안이…….’
아레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이안을 발견하곤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뭔가 이상해서요.”
“뭐가?”
“제국방위부랑 이드갈이요.”
아레나가 채근하듯 쳐다보자, 이안이 부연했다.
“출정 전에 제국방위부에서 마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셨잖아요. 왜 그랬을까요? 이드갈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이드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이안이 고갤 끄덕이자 아레나의 눈썹이 휘었다. 일리 있는 추리였다.
“하긴, 우리가 응하지 않을 걸 예상했다 쳐도 쉽지 않은 제안이긴 해. 혹시라도 수락하면 이드갈 조사에 차질이 생기니까.”
“제국방위부 장관과 부장관은 몰랐을 확률이 커요.”
북부 원정군의 지휘관은 크로니지만, 전쟁에 대한 중요 결정권은 제국방위부 장관에게 있었다. 이안의 말대로, 현재 제국방위부에서 이드갈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어쩌면 크로니 혼자. 혹은 그자의 부하들…….
‘부하들까지 확대되면 곤란한데.’
장관과 부장관이 제거된 지금, 제국방위부에 남은 것은 크로니의 파벌뿐이다. 그들에게 마법부를 견제할 힘이 있다는 게 주위에 알려지면, 다른 부서의 지지를 얻기 쉬워질 터.
“대가리 아프네, 진짜. 이드갈 만들었다는 자식, 뭐 하는 놈이야? 확 씨, 꿀밤 100대 처먹여 버릴라.”
아레나의 짜증스러운 중얼거림에 이안이 우유를 호로록 쪽! 빨아 먹었다. 그러게 말이다. 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들어서 이렇게 상황을 어지럽히는지, 원. 에휴.
“아레나 님.”
보좌관이 넌지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원래라면 오늘 크로니의 부고를 전해야 했건만, 마법부의 재량으로 잠시 미루었다.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일 뿐. 그에게 부고를 알리는 일은 황궁 자체적인 문제인지라 오래 미룰 수 없다. 즉 북쪽으로 마법사를 함께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서둘러 결정해야 한다는 뜻.
“하아아. 이 작은 애를 대체 어디로 보내라고오오!”
아레나가 이안을 꽉 끌어안으며 징징대자, 이안이 슬쩍 몸을 비틀어 도망쳤다. 그리고 다시 늠름하게 옷깃을 다듬어 소파에 앉았다.
“장관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이 안 되게 생겼어?! 거울을 봐, 거울을!”
“무슨 일 생기면 저 혼자 포탈 열고 돌아오겠습니다.”
“……?”
이안에게 손거울을 들이대던 아레나가 놀라서 멈칫거렸다. 보좌관 역시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눈썹을 까딱.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안. 오만은 독이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 믿기시면 내일 포탈은 혼자 열어 보겠습니다.”
“하.”
이, 깜찍하고 무서울 것 모르는 천재 아기 좀 보소?
그러나 이안은 연신 할 수 있다는 듯 작은 주먹을 쥐어 보이며 아레나를 설득했다.
“보호막도 마법사들 중에서는 제가 제일 단단히 만들고요.”
“그래. 그렇다고는 하더라.”
“공격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데 너는 하면 안 돼. 어릴 때부터 그렇게 크면 나중에 사이코- 아니, 아코처럼 된다.”
너를 올바르게, 착하게, 반듯하게 키우는 게 우리 마법부의 숙명이란다, 쪼꼬만 것아.
‘아코처럼 된다’는 말에 이안이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나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지금이 아니면 크로니에 대한 약점을 또 언제 잡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이안이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부모님에 대한 비밀이 뭔지도 알고 싶습니다.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요.”
나왔다. 부모님의 비밀.
아레나는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며 눈을 뒤집었다. 이안이 어리다는 것만 제외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게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일단 이안이 제외하고 북쪽으로 갈 마법사 지원부터 받아 보자.”
받고, 이안의 합류는 나중에 결정하자는 게다.
이안이 마지못해 끄덕이자, 아레나는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정원으로 나가서 손가락을 탁탁 튕겼다.
“집중!”
한차례 힘쓴 마법사들이 피곤하다는 듯 풀밭에 널브러져서는 고개만 까딱 돌렸다.
“북쪽으로 지원 갈 사람?”
저게 뭔 소리다냐?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마법사들은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맥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레나가 다시 한번 목청을 높여 조건을 달았다.
“봉급 다섯 배! 갔다 오면 유급휴가 일주일!”
“봉급은 별로 안 끌리는데 유급휴가가 좀 땡기네.”
“저걸 믿냐? 갔다 오면 고스란히 일주일 치 폭탄이다.”
“아무도 안 가?!”
“장관님이 가면 안 돼요?”
“어, 맞네. 장관님이 가면 되겠네!”
세상 완벽한 해결책을 발견했다는 듯, 마법사들이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아레나는 말을 말자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아아아-!”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외침. 흰색 가운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아코였다. 그 기세가 얼마나 맹렬한지 아레나조차도 움찔거릴 정도였다.
“나! 나! 내가 갈래! 나 북쪽 갈래!”
“지, 진정해.”
“으흐흐흐. 이드갈 때문에 가는 거 맞지? 무조건 내가 간다. 내 자리 뺏을 생각 하는 놈들은 각오해!”
…?
아무도. 전혀.
“뺏긴 누가 뺏어요. 줘도 안 가져.”
“쯧쯧. 이런 돌대가리들. 계산이 그렇게 안 되나? 이건 절호의 기회라고!”
마법사들은 동태눈으로 아코의 생난리를 가만 지켜볼 뿐이다.
반면, 아레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이안을 돌보고 보호할 ‘믿음직한’ 마법사가 필요한데 지원자가 아코뿐이니 그럴 수밖에. 차라리 이안이 아코를 보살피는 게 더 자연스러울 거다.
“음.”
아레나는 침음했다. 앞서 후보들을 헤아려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안에게 붙일 만한 마법사는 많았다. 하나같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서 그렇지.
‘강한 마법사이면서 마법부 소속이 아닌, 믿을 만한 사람.’
여차하면 전투도 불사할 수 있는, 제국방위부의 유력 차기 장관인 크로니를 해한다 한들 정치적으로 한 발 떨어져서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그런 마법사 말이다.
능력 출중하고, 책임에선 자유로운…….
‘어디 그런 사람 없나?’
그때였다.
“저기.”
“어?”
낯선 기척에 아레나가 돌아보니, 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슬쩍 고개를 내밀어 정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다들 누군가 싶어 의아해하던 찰나, 이안이 알아보고는 인사했다.
“교수님!”
“이안.”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학교에 나오질 않아서.”
수업 듣는 학생이라고는 딱 한 명인데 그 아이가 결석했다. 이안이라면 분명 이유 없이 수업을 빠질 학생이 아닌데 이리된 거 보면 무슨 일이 생겼노라 짐작한 것이다. 걱정보다는 별일 없는 것 같지만.
“아! 헤일! 그쪽이 헤일이군?”
“저를 아십니까?”
“알지. 소문 자자하잖아. 나는 아레나.”
“아아, 장관님이시군요.”
“나를 아네?”
“네. 역시 마찬가지로 소문이…….”
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눴고, 마법사들은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헤일을 구경했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용병 마법사? 이안의 교수? 어디 한번 얼굴 좀 보자는 눈빛이었다.
“아.”
그때, 헤일을 가만 올려다보던 이안이 뭔가를 깨달은 듯 그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이안?”
“교수님. 혹시 현장학습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현장학습?”
그러자 돌연 아레나의 두 눈이 빛났다.
‘믿을 만하고, 용병 생활로 북쪽 지대를 잘 알고 있으며, 실력 좋고, 무엇보다 마법부에 속하지 않은 존재?!’
완벽했다. 아레나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짝, 내리쳤다. 알맞은 사람을 딱 찾았다는 듯이.
하지만 이내 거칠게 도리질했다.
“아니, 아니지! 이안, 네가 합류할지 안 할지는 아직 결정 안 했어. 그러니까 일단 진정-”
“교수님. 북쪽에 일이 있는데 가면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 가 주시면 안 돼요? 네? 제발요.”
이안이 헤일의 허리춤에 매달리며 연신 부탁하자, 헤일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아레나를 힐끔거렸다.
아레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혹여 이안이 마법부가 아니라, 에너제스 수업의 일환으로 북쪽에 가겠다고 하면 진짜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당장 여기서 멈춰야 해!
“이안, 잠깐만. 일단 진정하고-”
“북쪽 현장학습 강의 가면요, 마법부에서 출강비도 준다 했어요. 마법사 봉급 다섯 배요!”
오, 맙소사. 아레나가 탁, 하고 이마를 쳤다. 진작 알아챘어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높은 보수와 흥미로운 일감에 헤일이 흥미를 보였다.
“이거 진짭니까?”
아레나는 못 살겠다는 듯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헤일을 안내했다.
“잠깐, 장관실로 들어올래요? 나눌 얘기가 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