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14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14화(914/935)
제914화. 삼인조 출격
한편, 하루간의 유예 기간을 갖기로 한 소수부족 족장들은 아침 해가 뜨자마자 아스타나 진영을 찾아왔다.
그들은 바리엘 측, 크로니를 만나기 전에 그들끼리 담판을 지으려는 것인지 상당히 위압스러운 분위기였다.
“아스타나의 대표에게 전한다!”
“부족끼리의 회담을 정식으로 청하겠다!”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이 들이닥쳤으니, 아스타나 진영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이를 알아챈 대표가 천막을 붙든 채로 한숨을 깊게 쉬었다. 지금 그는 어찌할 방도를 몰라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왕께서는 크로니를 죽이라고 하셨거늘, 대체 어떻게?’
크로니를 죽인다는 건 바리엘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오라는 말과 같았다. 한데 거기에 더해 바리엘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라 덧붙이기까지 하였지. …차라리 물 위를 걸으라고 하시지!
‘지금 크로니를 공격하면 다른 부족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동맹이 깨질 판인데 난들 대체 어쩌란 말인가.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출정을 하지 않는 건데.’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잘 알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뿐이었다. 안으로 들어오려는 시종을 막아서며, 천막을 꼭 붙들고 있는 것.
“저기, 대표님.”
“되었어, 잠시. 나 아직 준비 중이라고 전해라.”
“그것이 아니라요. 바리엘 진영 하늘에 또 포탈이 떴습니다.”
“또?”
대표는 반대쪽 천막을 걷으며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진짜였다. 청명한 하늘에 검은색 기운이 몰아치더니, 우주와 같은 밤하늘이 만들어졌다. 소용돌이치는 것이 딱 마법사들의 포탈이다.
‘바리엘에서 또 연락 온 것이 있나?’
있다면 무엇일까? 제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는데.
촤아악!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지. 숨어 있기는.”
“으익! 이게 무슨 무례요?”
“하도 안 나와서 내 직접 들어왔다! 크로니도 없는데 우리끼리 말 좀 편히 하자고. 어? 넌 대표, 난 족장. 괜찮지?”
“이, 이런 식으로 하니 제국에서 야만인이라 멸시하는 것이오!”
아스타나의 대표가 나올 생각이 없자 족장들이 힘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여차했다간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다른 부하들은 두고 족장들만 무기 없이 빈손으로.
아스타나 측도 족장들에게 함부로 손댈 수 없는지라 온몸으로 막아 봤지만 별수 없었다. 하나같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 할 만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니.
“그 야만족 놈들한테 지금 제국 놈들이 고개 숙이고 들어오고 있잖아. 대체 뭐가 그리 문제라고 이리 협조하지 않는 것이야?”
“균열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만 이드갈을 캐간다고 하잖아. 그리고 사실 그 정도로 큰 균열이 진짜 존재한다면, 우리가 인지해야 정상 아닌가?”
“옳지! 안 그래도 위험 지대인데, 파악하고 있어야지.”
족장들의 말에 아스타나 대표가 한발 물러서며 열변을 토했다.
“이드갈로 봉인되어 100년간 문제없이 잘 있었는데, 위험 지대는 무슨 위험 지대요? 그리고 제국 놈들을 믿으십니까? 욕심이 그득한 자들입니다.”
“채굴 과정을 우리가 지켜보면 될 일. 이봐, 친구. 계산이 그렇게 안 되나?”
지금 제국방위부에 이드갈 매장지를 알려 주면 얻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자신들 역시도 이드갈을 손에 넣어 바리엘에 대항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바리엘이라는 대제국을 지탱하고 있는 큰 축 중 하나가 바로 마법사. 이드갈을 손에 넣으면 마법사를 견제할 수 있으니, 이는 곧 제국에 부족의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이 바로 일생일대의 기로라고. 그냥 부족으로 남을지, 아니면 왕국이 되어 역사를 새로 써 나갈지!”
“오후에 있을 바리엘과의 회담에서 이드갈 매장지에 대한 정보를 내어주시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동맹을 파기하고 아스타나를 적으로 간주할 것이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 함께 연대하여 대가를 치르게 하겠노라고.
“하지만, 거래가 잘 끝난다면 우리는 아스타나의 공로를 잊지 않고 분명히 보답할 것이네. 부족의 명예를 걸고 믿어도 좋아. 구체적인 논의 사안이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그때였다.
“어? 어어?”
“대표님! 대표님!”
“밖에 나와 보십시오! 큰일 났습니다!”
“족장님! 족장님!”
부우우우-!
천막 밖, 사방에서 뿔 나팔 소리와 함께 고함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다들 놀라서 밖으로 달려 나갔고, 곧이어 보인 것은-
“헉!”
포탈을 비집고 주둥이를 쩌억 벌리고 있는 레드드래곤이다.
수백 개나 되는 놈의 이빨 사이로 침이 흘러넘쳤고, 숨을 쉴 때마다 콧구멍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세상이 망하기 직전 하늘에 균열이 생긴다면 이런 느낌일까? 드래곤이 포효하자 천지를 흔드는 듯한 진동이 울렸다.
-뀨우우우우!
…뀨?
뭐야? 저 외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울음소리는?
어깨를 한참 움츠렸던 병사들이 슬쩍 고개를 들어 드래곤을 자세히 살폈다. 드래곤은 포탈 밖으로 튀어나와 날개를 활짝 펴고는 병사들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았다.
촤아아아악!
“으, 으앗!”
엄청난 돌풍 탓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사람들이 소매로 얼굴을 가리는 동안, 드래곤은 허공에서 두어 바퀴 돌더니 다시 포탈 쪽으로 날아들었다.
쉬이이익!
“누, 누가 또 나온다!”
이번엔 또 무슨 무시무시한 괴물이야? 병사들의 안색이 희게 질려 있을 때였다. 귓가에서 울리는 높은 톤의 웃음.
“꺄아아아악!♡”
분홍 머리칼을 휘날리며 사지를 쭉 뻗은 채 자유낙하 하는 여자다. 병사들이 입을 떡 벌린 채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마법을 이용해 잔디밭에 가뿐히 착지했다.
투욱.
“먼저 그렇게 가는 게 어디 있습니까?”
“어디 있긴? 여깄지?”
“이안이도 데리고 와야죠.”
“옴마? 그쪽이 안고 있었잖아요.”
아코를 바로 뒤따라온 헤일. 두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작부터 이거, 아레나가 알면 혈압 올라 죽을지도.
사아악.
이안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포탈을 건너 보는 거라 뭔가 잘 되지 않았나 보다. 아이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몸을 밖으로 빼내자, 포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휘이익!
“아.”
그리고 그대로 추락!
파라락! 이안의 옷자락이 쉴 새 없이 흔들렸고, 느닷없이 아이가 떨어지는 것을 본 병사들이 기겁하며 달려갔다.
“어, 어어어! 저기! 저기!”
“천, 천 없어?!”
“어이, 어이. 보세요들. 우리가 떨어질 때는 구경만 하더니?”
아코가 지나가던 병사 등을 쿡 찔러 대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으나, 그 누구도 관심 주지 않았다.
한편 이안은 처음으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며 하늘과 땅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늘은 여전히 아득한데, 땅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으니.
지이잉! 지잉!
이안은 손을 뻗어 마력을 발동시켰고, 허공에서 두어 바퀴 차르륵 돌아 완벽하게 착지했다.
“얍.”
천을 펼치거나 손을 뻗어 받아 내려던 병사들이 놀라서 굳어 버릴 정도로 완벽하고 조용한 착지였다.
이안은 손바닥을 툭툭 털더니 자신을 에워싼 사람들을 보며 의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뭐 하시오?”
“아…….”
마법사였구나. 병사들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고, 이안은 주위를 둘러보며 ‘그자’를 찾았다.
“이안.”
마침 병사들을 헤치고 나타난 크로니. 그도 전혀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는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제 몸뚱이만 한 가방을 진 아코와 헤일이 이안 양쪽에 서서 경례했고, 뀨는 허공에서 브레스를 연신 날려 댔다.
-뀨우우우우우!
“마법부에서 공식으로 지원 나온 아코입니다. 전할 소식도 있고 처리할 서류도 있는지라 기별 없이 온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처억.
“아, 저는 용역입니다. 수고.”
각 딱 잡은 아코와 달리, 헤일의 소개는 느슨하고 허술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안. 아이는 각오하고 왔다는 듯, 조금 굳은 낯으로 보고했다.
“마법부 소속 이안 하델입니다. 크로니 경, 잘 지내셨습니까?”
부르시기에 이리 왔습니다. 그대가 내게 내민 가시 돋친 만찬을 즐기러.
크로니는 혀로 볼 안쪽을 연신 매만지고는 한숨을 애써 삼키며 몸을 틀었다.
“안쪽으로.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아코와 헤일 그리고 이안은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적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이쪽을 주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안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크로니를 뒤따랐다.
* * *
“자, 복창할 것. 이번 임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다?!”
아레나의 외침에 아코가 기분 좋게 손을 번쩍 들었다.
“이드갈 확보. 존나게, 어마무시하게, 많이 많이!”
“땡! 틀렸어, 미친년아!”
“미친년이니까 가끔 틀릴 수도 있지, 뭐. 오케이. 장난 안 칠게요. 제일 중요한 것은 이안 하델의 안전!”
“좋아. 헤일?”
아레나의 눈짓에 헤일이 궐련 재를 툭툭 털며 심드렁하게 답했다.
“이안 하델을 비롯한 아코의 무사 복귀.”
베테랑 용병이라 그런지 보수 흥정부터 계약 성사까지 매끄럽게 진행됐다. 따분한 에너제스에 출근하는 대신, 북쪽 출강 한 번 나가고 수십 배에 달하는 대금을 얻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뭐, 구태여 말은 안 했지만 이안 혼자 보내자니 괜히 좀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이드갈 매장지 확인은 그다음이다. 그리고 나서-”
“크로니 정리. 맞지?”
지금은 공식적으로 크로니를 체포하거나 고발할 명분이 없다. 장관과 부장관,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죽음이 비밀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딱 사흘. 사흘 안에 이안을 통해 크로니에게서 후견인 선임 동의를 받고 정보까지 확인하여 복귀한다. 정확히 사흘 후에 포탈을 열 건데, 그때 돌아오지 않으면-”
치이익.
헤일이 이로 궐련을 세게 누르자, 불빛이 바짝 타들어 갔다. 아레나는 서류철로 책장을 짓이기며 덧붙였다.
“내가 직접 간다.”
크로니는 알까? 아레나가 직접 움직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마법사로서 이를 잘 아는 아코와 헤일은 서로 시선을 나누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험 하나는 죽이는구먼.”
“알겠습니다.”
“근데 사흘은 좀 짧은데. 이안이 일도 일이지만 이드갈 관련한 것도 중요 사항 아닌가? 일주일 줘요. 내가 이안이 잘 지킬게.”
아코가 손톱 밑을 후- 불며 제안하자, 아레나가 잠시 고민했다. 이내 그녀는 알겠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좋아. 일주일. 사실상 시일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크로니가 이안을 해치려고 한다면 사흘이든 일주일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리고 여차하면 그들이 직접 포탈을 열어 도망칠 수도 있다.
“하나 더.”
“또 뭐요?”
“뀨 데리고 가.”
이에 둘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왜지? 타고 다니라고?”
“그거 협약 위반입니다만?”
드래곤은 전쟁에 동원될 수 없다는 국제협약 탓이었다.
“알아. 그래서 뀨 관리는 당신이 맡아 줬으면 하는데.”
헤일을 쳐다보는 아레나.
이내 둘은 아레나의 의도를 알아챘다. 외부인인 헤일에게 관리를 맡기면 뭐가 됐든 변명할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책임은 피하면서 안전장치가 하나 더? 이거 완전 럭키잖아?
“오케이! 근데 장관님, 걱정이 너무 많으시다.”
아코는 벌떡 일어나 장관실 창문으로 정원을 내다봤다. 마법사들 틈에서 혼자 포탈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이안. 다들 신기하다는 듯 연신 감탄과 박수를 터뜨렸다. 아코가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이안이잖아요. 아무리 어린애여도 마법사는 마법사, 천재는 천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