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1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15화(915/935)
제915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보시오, 무슨 일인가?”
바리엘군 진영. 심상치 않은 소란에 소수부족 진영의 전령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는 게다. 그러나-
처억.
원래라면 경계 없이 맞이했을 바리엘 병사들이 갑자기 창을 들이밀며 날 선 모습을 보였다.
“……?!”
“무슨 일이라니. 우리가 그쪽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나?”
거기다 적대적인 말투까지.
하지만 눈빛에는 살기가 담겨 있지 않으니, 이는 눈속임을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전령들은 한발 물러서면서도 의아해하며 바리엘 진영 쪽을 살폈다.
“우리 대제국 바리엘에는 마법사가 있다. 서둘러 항복하지 않으면 북부 모든 부족이 절멸할 것이니, 그대들의 수장에게 서둘러 가서 일러라.”
이는 은근히 돌려서 전하는 정보였다. 마법사들이 와 있으니 이전처럼 그대들과 면을 트고 만날 수 없음이라. 서둘러 수장들에게 알려 적당히들 행동하라는.
“참 나.”
전령들은 이를 알아채곤 어쩔 수 없다는 듯 말 머리를 크게 돌렸다.
북측으로 돌아가는 전령들에게 끝까지 창을 겨누는 바리엘 병사들. 그들은 슬쩍 뒤쪽을 힐끔거렸다.
“후우-”
궐련을 태우고 있는 갈색 머리 남자가 바위에 걸터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보아 마법사인 것 같은데, 어째서 천막으로 돌아가지 않고 진영 곳곳을 살펴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슬슬 눈치 보는 병사들에게, 헤일은 신경 쓰지 말라며 궐련 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없는 사람 취급하시오. 목숨 바쳐 나라를 위해 일하는 병사들 방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가 어찌 마법사님을…….”
“진짜 괜찮대도. 난 황궁 소속이 아니라.”
말 놔도 되는데?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였지만, 병사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병사들과 북측을 얼마나 날카롭게 살펴보고 있는지 말이다.
‘빠졌네.’
마법사들이 온 이후, 크로니와 그 부하는 병사들에게 경계 태세를 지시했다. 소수부족들과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회담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는 게 들통나면 상당히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무력이 아닌 교섭으로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를 못 하는 상황이라 이거지. 이렇게 엉성하게 덮고 있을 정도면.’
헤일은 궐련 재를 바람에 털어 버렸다. 정돈되지 않은 군화, 전투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지, 두려움이나 긴장 따위는 전혀 없는 병사들의 안색 등. 북부에 당도한 이후로 단 한 번의 충돌도 없었던 게 분명했다.
‘상황을 길게 끌고 가려는 의도인가.’
이는 크로니가 아직 이드갈의 흔적을 찾지 못했음을 의미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건, 소수부족들이 결정적인 단서를 쥐고 있다는 뜻이겠지.
‘아마 전부 다는 아닐 거고.’
부족 전체가 이드갈에 접근할 수 있었더라면 진즉 바리엘에 목소리를 높여 가며 제 뜻을 펼쳤을 것이다.
헤일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정리하며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은 이안과 아코, 그리고 크로니 측이 들어간 천막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왜 이리 조용해?”
그의 최우선 목표는 이안의 안전. 아코가 옆에 있긴 하지만 긴 시간 이안의 옆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설렁설렁 천막 쪽으로 다가가자, 크로니의 부하가 손으로 저지했다.
“기다리십시오.”
“아직입니까?”
황궁의 일원이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헤일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아예 천막 옆에 철퍼덕 주저앉아 새로운 궐련을 꺼냈다.
“뭐 합니까?”
“의뢰인 기다리는데요?”
“그러니까 여기서 왜?”
“못 들어가게 하니까.”
후우. 헤일은 문제 있냐는 듯 부하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에 부하는 무어라 이르려다 말고 몸을 돌렸다. 저래 보여도 마법사다. 섣불리 건드릴 상대가 아니지 않나.
“여기 전망 좋네.”
그러든 말든 헤일은 저 멀리 부족들 측 전령이 다른 진영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헤일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근데 저긴 어느 쪽 진영이지?”
전령들이 왜 다 저쪽으로 들어가는 거야? 헤일은 눈을 찌푸리며 진영의 깃발을 살폈다.
‘…아스타나?’
* * *
한편, 아스타나로 몰려든 전령들이 줄줄이 제 족장에게 보고했다. 하나같이 같은 내용이다. 황궁에서 마법사가 파견 나온 듯한데, 그 뒤로 바리엘 측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황궁 마법사라면, 제국방위부랑은 적대 관계 아닌가?”
“어디 뭐, 제국방위부한테 우호적인 부서가 있나요?”
“아니, 그럼 앞으로 어찌 되는 것입니까? 마법사들이 온 이상 회담도 자유롭지 못할 거고, 돈 얘기도 못 꺼낼 것 아닙니까?”
“상생 지원금이라 하지 않습니까.”
“아잇! 지금 그게 중요해?!”
“진정하시오들, 마법사가 왔다고 해서 뭐 바뀔 게 있겠어요? 크로니 측이 알아서 정리해 돌려보내겠죠. 마법사들이 황궁 비우는 거, 그리 쉬운 일 아닙니다.”
“맞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것만 보고 바로 돌아갈 것입니다.”
“어허이, 일이 이게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원.”
“이래서 돈 먼저 받고 움직였어야 한다니까!”
시끌벅적한 족장들 틈에서 아스타나 대표가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마법사들의 등장으로 시간을 번 것 아닌가? 한시름 놓았다.
‘잠깐.’
크로니와 마법사들이 서로 적대하는 관계라고? 연신 떠들어 대는 대화 내용 중 대표는 그 부분에 꽂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리엘을 적대 관계로 돌리지는 않되 크로니를 처치할 방법이, 방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아닌가!
‘맞네. 그러면 되겠네!’
마법사들을 이용하면 아스타나에 위험 없이 왕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성공 확률 역시 아스타나가 직접 실행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그들은 강하고 절대적이며, 무엇보다 ‘아군’이니까.
“아스타나 대표, 어찌 눈동자에 이채가 돕니다?”
표정 변화를 알아챈 족장이 의아해하며 묻자, 대표는 바로 정색하며 대답했다.
“이채라니요? 눈물인가?”
“…아무튼. 이드갈에 대한 협조, 할 거요 말 거요?”
때아닌 마법사의 등장에 잠시 묻히긴 했지만, 그들이 아스타나 진영으로 몰려온 이유는 분명했다. 대표는 모두에게 진정하라며 손짓했다.
“자자, 우리 아스타나는 북부 동맹을 깰 생각이 추호도 없소. 당연히 협조를 할 것이지마는, 보십시오. 마법사가 지금 여기 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아스타나에서 크로니에게 이드갈에 대한 정보를 흘려 줬다는 걸 마법사들이 알기라도 하면, 저들이 우리를 가만두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아스타나를 말하는 겁니다.”
당연히 궤멸이겠지. 그리고 그다음은 북부의 다른 부족들 차례일 것이고.
“마법사가 아스타나를 위협하면 방도가 있겠습니까?”
너희들, 도와줄 거 아니잖아? 다들 아스타나가 처맞는 걸 보면서 다음 계획 세울 거 아냐?
아스타나 대표의 말을 이해한 족장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침 지금 크로니 쪽도 우리랑 접촉하는 걸 자제하는 것 같으니 일단 좀 두고 봅시다.”
“아스타나, 믿고 있겠소.”
“그럼요. 우리 북부 동맹의 역사가 얼마인데!”
대표는 걱정하지 말라며 족장들에게 연신 술을 권했다. 그들은 시원하게 한입에 비운 다음 각자 진영으로 떠났고, 급한 불을 끈 대표는 두 손을 모으고서 간절히 중얼거렸다.
“하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시기가 아주 적절하셨어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마법사들이 신의 선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니.
그는 천막 입구에서 대기 중인 부하를 불러 은밀히 지시했다.
“마법사들에게 은밀히 연락할 방법을 찾아보아라.”
“제국방위부 모르게 말씀이지요?”
“그래. 다른 부족도 알아서는 안 된다. 할 수 있겠지?”
방법이 있나? 부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굳건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로 봐서 지금 임무에 아스타나의 운명이 걸린 것 같았기에.
“알겠습니다. 마법사들과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 * *
“이안 숙부. 한잔하시지요.”
크로니가 직접 우린 따뜻한 차였다. 이안이 우물쭈물하며 잔을 집어 들려고 하자, 아코가 자신의 것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이안의 것까지 단숨에 마셔 버렸다. 연기가 폴폴 나고 있었는데, 괜찮나? 이안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아코는 아무렇지 않게 입가를 닦았다.
“환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한데, 마법부에서 어쩐 일로?”
“전황은 좀 어떻습니까?”
아코의 질문에 크로니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황궁에서 걱정이 많은가 보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지원을 요청했을 때 딱 잘라서 거절하던 마법부가 어찌 전황을 궁금해하겠느냐는 뜻이었다.
뼈가 잔뜩 든 말이었지만, 아코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황궁뿐만이겠습니까? 가족과 연인을 떠나보낸 제국민 모두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지요.”
“그렇군요. 뭐, 보시다시피 큰 피해 없이 대치 상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부 동맹의 저항이 꽤 거세어 전력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요. 황궁은, 별일 없고요?”
여기까지. 더는 말해 줄 수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는 뜻으로 말을 돌린 것이었다.
아코는 크로니를 따라 하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뭐. 별일 없던 적이 있겠습니까?”
“오. 그래요? 잘 아시는가 봅니다. 황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신 걸로 아는데.”
“오. 우리 마법부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아니면 내 팬?”
“…역시 마법사이십니다. 발상이 기발하세요.”
이안은 크로니와 아코가 서로 헐뜯는 것을 가만 지켜봤다. 파지직 튀어 오르는 신경전이 눈에 보이는 듯싶다.
크로니는 찻물을 가볍게 머금더니, 이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이안 숙부. 제가 공동 후견인이 되길 원하신다고요.”
“아, 맞습니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으셨습니까? 저는 당연히 이안 숙부의 요청이 기껍지만, 궁금하군요.”
하델 저택에서부터 계속 요리조리 빠져나가지 않았나? 지금 와서 ‘가족’으로 묶이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안은 아코와 빠르게 시선을 나누며 준비한 답을 내놓았다.
“마법부에서도 최선을 다해 주고 있습니다만 저를 온전히 보살피지는 못합니다. 마법사 수도 부족하고 업무도 과다해서요. 이에 조카님의 보살핌이 필요하여 이리 부탁드립니다.”
“자크 백작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의탁하는 것과 신변을 보호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지요. 마법부 소속이라는 신분도 소중하지만, 저는 하델이란 신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뿐입니까?”
다 알면서 묻는 것 같다. 이미 그의 아버지는 죽었고, 부검을 위해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게 눈에 훤하다는 듯한 얼굴. 하지만 그때-
“그럼요? 뭐 다른 이유라도 있어야 합니까? 어린아이가 보호 좀 해 달라는데 따지시는 게 많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처럼 자크 백작저에서 출퇴근하고, 마법부에서 책임지고 제대로 가르치겠습니다. 우리가 뭐 능력이 없나? 시간이 없지.”
아코가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부채질했다. 어차피 부고는 일주일 후, 포탈이 열려 황궁으로 돌아가기 직전에야 말할 생각이었다.
‘일명 던지고 튀기.’
부고 소식 전했으니까 마법부는 할 일 다한 거고, 설령 크로니가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 황궁으로 전서구를 보낸다 한들-
-뀨우우우우!
드래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따라잡아 한입에 꿀꺽할 것이다. 놓친다 해도 일주일 안에 소식이 닿기에는 무리겠지. 이미 중앙에는 신호만 떨어지면 부검할 준비가 끝나 있다.
“흐음.”
크로니는 후견인 신청서를 반으로 깔끔하게 접더니, 싱긋 웃었다.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알겠습니다. 이 부분은 긍정적으로 검토하죠.”
“검토라면?”
“급할 거 있겠습니까? 이안 숙부와 나눌 얘기도 있고요. 그러니 오늘은 편히 쉬었다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