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19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19화(919/935)
제919화. 매장지를 찾아라
한편, 바리엘 진영.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오가며 경계 순찰 중이다. 그들은 마법사가 묵고 있다는 천막을 중심으로 크게 돌았는데, 은근히 비치는 불빛 너머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막사에 있는 것 같다고.”
“예. 특이 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보고를 받은 크로니가 의아한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단순히 후견인 동의를 받기 위해 이 먼 북부 땅까지 온 것은 아닐 터. 그런데 밤중에 모여 한가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의심스러웠다. 그는 직접 확인해 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계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대답. 여인의 음성인 것으로 보아 아코인 듯싶다. 크로니는 천막 가까이 얼굴을 바짝 붙이며 물었다.
“혹 불편한 건 없으신가 하여서요. 마법사분들이 묵기에는 험한 곳인지라.”
“괜찮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이안 숙부께 아까 못다 한 말이 있는데-”
“괜찮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
크로니가 미간을 찌푸렸다. 함께 듣고 있던 부하들도 마찬가지. 수상쩍지 않나. 음의 높낮이가 없고 대화의 맥락이 뚝뚝 끊겼다. 크로니가 고갯짓하자, 부하 한 명이 천막을 휙 열어젖혔다.
“하.”
그러자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 있는 아코와 멀뚱히 서 있는 헤일, 점잖은 자세로 앉은 이안의 모습이 보였다. 다만-
“가짜입니다.”
마법으로 만든 분신이었다. 부하들이 신기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아코의 이마를 툭 치자-
“괜찮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인형은 기우뚱거리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손가락으로 욕설을 날려 댔다.
마법으로 이런 것도 되는구나. 역시 미지의 인간들이다. 부하들은 감탄하며 크로니에게 물었다.
“찾아볼까요?”
“잠깐.”
크로니는 가만히 있어 보라는 듯 손을 들었다. 그리고 슬쩍 마법사들이 챙겨 온 가방을 뒤지며 생각했다. 아버지는 분명 죽었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이안이 후견인 신청서를 들고 이곳까지 온 것이겠지.
‘저택에서 이드갈을 봤나?’
아버지의 죽음 이전이든 이후든 아니면 그 순간이든, 이안은 저택에 갈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라면 분명히 곳곳의 눈을 피해 서재로 잠입했을 것이고, 꼭꼭 숨겨 두었던 것을 찾아냈을 수도 있겠지.
“아코라는 작자, 마법부의 어디 소속이라 그랬지?”
“제 기억으로는 마력석관리부일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
이제 조금씩 감이 잡힌다. 마법부에서는 제국방위부가, 아니 크로니 자신이 이드갈을 취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마법부 소속이 아닌 자까지 끼워 넣어 이안을 파견한 것이고.
‘이안과 나, 개인적인 일에 마법부가 개입할 필요는 없었지. 아무리 제국방위부를 견제한다는 명분이 있어도 말이야. 이드갈이다. 이드갈이 끼어 있으니 마법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인 게야.’
크로니는 모든 상황을 눈치챘다. 부하들이 다시금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병사들을 풀어서 수색해 볼까요?”
“아니. 어디로 갔을지는 빤하다.”
허허벌판의 바리엘 북부. 바리엘 진영 뒤편엔 아무것도 없고, 앞편에는 소수부족들이 밀집해 있다. 그중에서 이드갈에 대한 단서를 쥐고 있는 유일한 곳, 아스타나.
“아스타나와 밀담했을 가능성이 커.”
“이드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아스타나는 더더욱 함구할 것인데요. 이드갈이 마법사의 약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아예 모르쇠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마법사와 결탁할 기회라 볼 수도 있지. 이드갈은 언제, 누구에 의해 발견될지 아무도 모른다. 당장이라도 발견될 수 있지. 아스타나도 잘 알 테니 제국방위부 대신 마법부 쪽으로 줄을 댈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랬다간 북부 동맹이 깨질 것인데요.”
“북부 동맹이 아스타나를 압박하는 이유가 뭐지?”
잠시 생각하던 부하가 뭔가를 깨닫곤 탄성을 내질렀다.
“…아.”
돈이다. 제국방위부에서 돈을 주기로 했으니, 이것을 위해서 결집하고 아스타나를 재촉하고 있는 게다.
하지만 그걸 마법부에서 해결해 준다면? 특히나 크로니가 끌어올 돈줄 그 자체인 이안 하델이 직접 그들과 접촉한다면?
“이거, 큰일인데요.”
제국방위부는 중간에서 완전히 붕 떠 버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된다. 중앙으로 돌아가면 장관과 부장관직에 대한 인선이 새로이 진행될 텐데, 전쟁 공로도 없고 마법부에 대한 견제 수단도 없다면 크로니에 대한 결집력이 약해질 게 분명했다.
“대장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부하들의 질문에 크로니는 가만히 인형을 쳐다봤다. 지금 보니 생긴 것도 어설프다. 크로니는 이안의 이마를 가볍게 꾸욱 누르며 중얼거렸다.
“이들과 아스타나의 회담이 잘 이루어졌기를 바라야지.”
아스타나의 반응으로 봤을 때 제국방위부에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법부가 단서를 얻고 움직인다면?
“마법사의 뒤를 쫓아가면 돼.”
혹여 아스타나가 마법사에게도 이에 대해 함구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지금부터 해야 할 건, 갑작스레 나타난 마법사 셋을 유심히 관찰하고 추적하는 것. 그다음, 이드갈을 얻고 나면-
‘죽인다.’
처치해야 한다. 중앙에 소식을 알리기 전에. 그리고 이안이 이 이상 자신의 일을 방해하기 전에.
크로니는 문득, 드래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드래곤은?”
“처음 본 이후로 사라졌습니다.”
“수색이라도 나간 건가?”
하늘에서 이드갈 매장지를 찾아보겠다는 속셈이로군. 다 좋다. 마법부의 의도는 파악 완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마법사의 기동력을 어떻게 따라잡지?’
아스타나로 인해 단서를 얻든 아니면 드래곤이 수색을 통해 발견하든, 기동대로는 절대 따라붙을 수 없었다. 저들은 하늘을 날고 순간 이동을 하는 자들 아니던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소수부족 놈들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주술사들이니 어떻게 해서든 수를 만들어 내겠지.
‘중요한 것은 그다음인데…….’
잠시 고민한 크로니는 계획을 재수립했다.
“아스타나를 제외한 다른 부족에게 전언을 넣어라.”
“무어라 전할까요?
“아무래도 아스타나가 북부 동맹을 배신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할 것 같으니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말이지. 수색과 추적에 능한 자가 있다면 잠시 파견해 달라는 말도 같이.”
아스타나는 필시 마법사들과의 밀담을 타 부족에게 비밀로 했을 테니, 중간에서 장난질하기 딱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은밀히 움직여라. 어둠이 짙다곤 하나 마법사들의 눈빛은 밝다.”
부하는 명심하겠노라며 고개를 꾸벅 숙이곤 천막을 나갔다.
크로니는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수 싸움이. 마지막으로 내부를 쭉 살펴보던 그는 이안의 가방에서 고이 접힌 후견인 신청서를 찾았다. 삐뚤삐뚤 빼곡한 필체 속, 눈에 들어오는 한 단어.
‘가족?’
웃기는 소리.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고작 다섯 살 난 아이인데 불구하고 자신을 경계하던 그 벽안. 아니나 다를까 예감은 적중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인 것이 없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의 앞길을 이처럼 가로막는 이가 하나라도 있었던가? 없다. 이안 빼고는.
투욱.
크로니는 후견인 신청서를 다시 집어넣으며 다짐했다. 북쪽 땅, 중앙에서 제일 먼 이곳에서 기필코 놈을 죽이고 돌아갈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안이 자랄수록 문제가 커질 게 분명했다.
촤악!
크로니는 멍청하게 생긴 인형들을 뒤로하고 천막을 빠져나갔다. 저 멀리, 어두운 밤하늘을 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드래곤인 것 같다.
-뀨우우우!
반나절 만에 돌아온 것으로 보아 둘 중 하나겠지? 이드갈 매장지를 찾았거나, 아니면 드래곤의 비행 가능 시간이 반나절이거나. 뭐든 상관없다. 이 전쟁의 승리는 내 것이니까.
크로니는 서둘러 천막을 정리하라 지시했다. 자신들이 침입했다는 사실을 마법사들이 모르도록.
* * *
“예, 그러니까… 이 부근입니다.”
대표는 낡은 지도를 펼쳐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어디까지 넓어지나 살피던 아코가 눈을 가늘게 뜨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이씨, 장난 똥 때리나.”
“흐익. 그렇게 살벌한 말씀을.”
“뭐! 똥 때리는 게 뭐!”
아스타나 대표가 짚어 준 지역 범위가 너무 넓다. 거의 북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 이안도 이건 좀 너무하다는 식으로 힐끗거렸고, 헤일은 마른 궐련만 잘근잘근 씹어 댔다.
“이렇게 할래? 어? 똑바로 안 하지?”
아코가 대표의 멱살을 잡고 흔들자, 그가 살려 달라는 듯 펜을 붙잡고 외쳤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아, 그래? 진작 말을 하지.”
“흐, 흐윽.”
“울지마. 울지 말고 뚝. 어서 마저 표기해.”
“크릅, 그러니까, 아스타나에서 알기로는-”
지금 대표가 사용하는 지도는 100년 전의 것이다. 워낙에 척박한 탓에 개발이 전무했던 터라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간 대홍수, 지진, 화재 등으로 인해 완전히 그대로라고도 할 수 없었다.
“100년 전, 바리엘이 대마물 전투를 치르고 지하신을 봉인하기 위해 행군하던 중에 균열을 발견하여 이를 봉쇄했다고 합니다.”
“행군하던 중에 갑자기 봉쇄를?”
“예. 아스타나 기록으로는요.”
아코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 말인즉, 전쟁에 나섰던 바리엘의 누군가가 이드갈을 만들어 냈다는 뜻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이드갈 만드는 모종의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고.
‘일단 장치는 아닐 거야. 그런 게 있었으면 황궁에서 파기할 이유가 있나? 마법부 견제하기 딱 좋은 물건인데. 마력봉인석을 대체할 유일한 방법이잖아.’
마법부에서는 반대했겠지만, 황궁 입장에서는 결코 쉽게 파기할 물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장치가 있다는 건 설계도와 기술자 역시 존재한다는 뜻. 지금처럼 흔적도 없이 이드갈에 대한 정보가 증발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이드갈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
와, 그게 가능한가? 아코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잡아서 이것저것 실험해 보고 싶은 충동이 치솟았다.
아코가 몸을 부르르 떨자, 헤일은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며 고갯짓했다.
“아, 예. 그러니까 당시 바리엘 대군이 이동하는 길목으로는 이렇게… 북쪽 갈림길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황궁에 자료가 있다면 찾아보심이 더 정확하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크로니가 알게 될 수도 있고, 황궁에서 자료를 찾을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어.”
“유독 100년 전 그 전쟁에 대해서는 기록이 희미하다니까. 안 그래?”
“응. 이상하지.”
선황인 진 베로시온. 그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이건만, 전해지는 상세 기록은 부실하기 그지없다. 뭐, 당대에는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그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을 터이니 상관없었으려나.
계속하라는 마법사들의 눈치에 대표가 설명했다.
“그 행군 당시에, 아스타나를 비롯하여 북쪽 소수부족과 전투한 기록이 있습니다.”
“누가? 바리엘이?”
“예. 골렘까지 사용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마법사들의 활약으로 쉽게 마무리되었다 합니다. 그 전장이 정확히 이곳입니다.”
외국인의 입으로 바리엘의 역사를 듣다니, 이것 참 모순적인 상황이다. 대표는 아스타나 기록에 남은 당시 바리엘군의 행군로를 점점이 이었다.
“즉, 그러니까 여기서 여기. 이 길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에 이드갈 매장지가 있다는 겁니다.”
축척을 따졌을 때 추정 지역의 직경은 10킬로미터. 충분히 찾아볼 만했다.
아코와 헤일, 이안 세 사람은 해 보자는 듯 시선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