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21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21화(921/935)
제921화. 금빛 언덕
-뀨우우우!
멀리서 들려오는 드래곤의 울부짖음에 아코가 고개를 휙 돌렸다. 이놈의 짜식, 안 그래도 오기만 해 보라며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 걸렸다!
“너 인마!”
촤아아악!
뀨의 날갯짓에 인근 천막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이안은 소매로 얼굴을 가렸고,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드래곤의 착륙에 놀라서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
아코는 짜증 티 팍팍 내며 드래곤 옆구리에 잽을 날렸다. 단단한 비늘 탓에 아무 타격도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열불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 같다.
“알 만한 짜식이 왜 창고를 털어? 여기서 책잡힐 일 하지 말라고 했지? 100년 살았으면 눈치코치 챙길 때 됐잖아!”
-뀨우우우!
뀨는 항변하듯 꼬리로 땅을 퍽퍽 내려치며 콧바람을 쒸익 내보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은데, 아코는 이미 눈 뒤집혔고 헤일은 궐련 태우느라 정신없다. 이안이 아코를 말리기 위해 한 걸음 떼는 순간이었다.
파다닥!
바리엘 진영으로 날아드는 전서구 한 마리.
헤일도 고개를 슥 들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곳에 전서구 들 일이 무엇 있단 말인가? 중앙에서 보낸 것이라면 그들이 출발하기 전에 보냈을 터인데 들은 바가 없고. 무엇보다 날아든 방향이 북쪽이다.
“이봐, 아코.”
“엉?”
씩씩거리며 드래곤 날개를 깨물고 있던 아코도 뒤늦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야, 갑자기?”
전서구는 곧장 크로니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북측에서 보낸 전갈이 분명했다. 문제는 무엇이 적혀 있는가인데…….
“뭐지? 북쪽 놈들이 왜 연락해 온 거지?”
“우리에 대해 물어보는 걸 수도 있고-”
“엥?”
아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사소한 일에 관한 게 아닐 터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들이 허허벌판에 진영을 치고 마주 앉아 있는 이유 자체에 대한 내용이겠지.
“대낮에 눈이 이렇게 많은데 전서구를 보낸다고?”
그렇지 않고서는 이리 대놓고 전서구를 보내진 않을 것이다. 차라리 전령을 보낸다면 의심이 덜 했을 터.
촤악!
잠시 후, 크로니 천막에서 부하들이 바삐 달려 나왔다. 곳곳에서 나팔 소리가 울리고, 마법사들을 제외한 병사 모두가 급하게 제자리를 찾아가느라 분주했다.
“무슨 일입니까?”
모습을 보인 크로니에게 아코가 물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북쪽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북측에 항복을 제안했으나 매몰차게 거절하더이다. 더는 봐줄 수 없음이니 선제공격할 것이오.”
“갑자기요?”
“갑자기라니? 예고하고 전투하는 전쟁터도 있더이까? 아 참, 그리고 귀환하는 날이 6일 뒤라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만.”
“전투로 인해 이안 숙부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 같으니, 그날 되기 전에 따로 자리를 만듭시다. 마법사님들께서는 이곳 진영에 계십시오. 임무가 따로 있으시니까요.”
너희들 말대로, 마법사들은 전쟁에 참가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후견인 동의를 받으러 온 것 아닌가? 그러니 전장에서 물러나 구경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막상 크로니가 그리 덧붙이니 세 마법사의 눈매가 동시에 가늘어졌다.
“그럼, 이만.”
고개를 까딱인 뒤 그들을 스쳐 지나간 크로니는 부하들의 보고를 들으며 빠르게 멀어졌다.
이안은 아코의 소매를 슬쩍 잡아당기며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이는 아코와 헤일도 마찬가지.
“이상하지?”
“어. 아무리 봐도.”
“잠깐 지켜보는 게 좋겠군.”
그때였다. 뀨가 이안의 웃옷을 잡아 물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으앗.”
촤아악!
“뀨! 이안!”
“쟤 왜 저래?”
아코와 헤일, 둘 다 마법부에서 오래 있던 게 아닌지라 뀨의 행동을 정확히 해석하지 못했다. 그저 드래곤의 장난이거나 혹은 변덕, 뭐 그런 건가? 영문 모른 채 두 사람은 드래곤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타앗!
고개를 휙 올려 이안을 제 등에 태운 뀨가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두 진영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만큼의 높이가 되었다. 마치 장난감 깃발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개미 떼처럼, 모든 게 작게 보였다.
“뀨, 왜 그래?”
“짜식아, 너 진짜 죽을래?”
아코가 뀨의 등에 기어오르는 동안 헤일은 가만히 서서 밑을 내려다봤다.
바리엘 병사들이 대열을 만들고 출정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진군 명령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코는 수상하단 얼굴로 헤일을 돌아봤다.
“명령 떨어지자마자 바로 저렇게 진격하는 게 가능해?”
“…가능은 하지. 그리고 그게 원래 맞고.”
‘정상적인’ 전시 상태라면 말이다.
하지만 두 진영은 명분상으로만 대치 상태였고, 병사들의 사기 역시 바닥이었다. 심지어 요 며칠 동안 정찰이나 척후 작전도 없었으니, 지금 크로니는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진격을 명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슨 자신감이지? 왜 저러는 거야?”
“어? 아코. 저길 봐.”
이안이 손가락으로 북측을 가리켰다. 진격할 때 울리는 나팔 소리가 들리자마자 북부 소수부족들이 진영을 버리고 천천히,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일사불란하고 침착한 것이 바리엘이 진격하리란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오직 아스타나만 제외하고.
“……!”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양측의 움직임으로, 전서구가 가져온 전갈 내용이 무언지 예상한 것이다.
“찾았구나.”
“뭐?”
“크로니가 이드갈 위치를 찾았어.”
아코와 헤일이 의아한 얼굴로 이안을 돌아봤다. 그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이. 이안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봐봐. 아스타나만 반응이 달라. 바리엘이 갑자기 진격하니까 당황한 눈치잖아. 맞서려는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렇네.”
바로 후퇴하는 타 부족과 달리, 아스타나는 공격 태세를 갖추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근데 그게 왜?”
“이드갈의 단서는 아스타나가 쥐고 있고, 이 때문에 북부 동맹과 크로니의 회담이 무기한 유예되고 있었지. 근데 지금 크로니는 아스타나 따위 상관없다는 듯 공격을 명령하고 전진 중이잖아.”
잠자코 듣던 헤일의 눈이 깊어졌다.
“아스타나가 필요 없어졌다는 뜻이군.”
“어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부족을 통해서 이드갈 위치를 확인한 게 분명해. 부족들은 이 기회에 아스타나를 처치하려는 거고.”
북부 동맹 중 유일한 왕국이다. 아스타나가 바리엘로 인하여 와해된다면, 다른 부족들에겐 패권을 노릴 기회가 생긴다. 이미 크로니 측에 이드갈 위치를 알려 협조했기 때문에 기회만 잘 타고 간다면 아스타나보다 더 거대한 왕국을 세울 수도 있겠지. 단꿈에 젖어 있을 게다.
“그럼 지금 부족 놈들 후퇴하는 척하면서 이드갈 있는 쪽으로 안내한다는 거네?”
“응. 내가 봤을 때는 그래. 헤일 교수님. 어찌 생각하십니까?”
“일리가 있다. 이해관계가 분명해.”
헤일도 이안의 해석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코는 황당하다며 이안의 볼을 연신 문질렀다.
“새끼들, 대체 이드갈 위치를 어떻게 안 거지?”
-뀨우우우우!
뀨는 어딘지 나도 안다며 길게 포효했지만, 아코는 그의 뿔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 뿐이다. 안 그래도 정신없으니 조용히 있으라며.
“아코, 그리고 교수님. 제 생각에는 일단 아스타나를 구하는 게 맞습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크로니는 아스타나를 궤멸하려 하고, 아스타나는 이안에게 호의적이었다. 일단 구하는 쪽이 훗날 이안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나 마음이나 가릴 것 없이 안온한가? 그리고 자주 웃는가? 매일 아침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지, 밤의 고요한 정취는 온전히 즐기고 있는지… 궁금하네.]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던 하샤 왕의 음성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을 도와야 할 것만 같은,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이안을 어지럽혔다.
헤일은 궐련을 꺼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스타나도 크로니를 처치하는 게 목적이라 했으니. 살리는 게 맞지.”
“우리는 개입 못 해.”
아코가 헤일을 빤히 보며 덧붙였다.
마법부 소속이 바리엘을 등지고 적군을 돕는다면 중앙으로 복귀해서 어떤 징계, 아니 처벌을 받을지 눈에 훤했다. 재수 없으면 모반죄로 사형이다.
아코는 아레나 장관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참, 그 여자. 그래도 장관 짬이 있어. 판단 한번 끝내준단 말이지.”
마법부 소속이 아닌 마법사를 붙여 준 판단 말이다. 헤일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나도 바리엘에서 먹고사는 입장이라 아군을 공격할 수는 없고, 막아 두는 선에서 시간을 끌어 보지. 근데 오래는 못 해.”
“얼마 정도?”
“보호막만 쓰면 다섯 시간?”
“널널하네!”
다른 마법사나 마물의 공격이 아니라 일반 병사들의 칼과 창 따위를 막아 내는 일이다. 혼자서 보호막을 쳐도 그 정도는 충분히 받아 낼 수 있다. 물론, 헤일 자체의 마력이 방대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좋아. 그럼 우리는 저쪽 따라서 간다.”
열심히 연극 중인 크로니와 북부 동맹 놈들 말이다. 아코는 뀨의 뿔을 붙잡고 가볍게 흔들며 지시했다.
“뀨. 들키지 않게 더 올라가서 천천히 따라붙자.”
-뀨우우우!
촤아아악!
“으아아아악!”
“으앗!”
하지만 뀨는 아코의 말을 무시하며 일직선으로 재빠르게 날아갔다. 왜인지 쉭쉭 뿜어지는 콧김은 덤이다. 이드갈 위치, 나도 안 다니까! 뀨의 돌발 행동에 놀란 아코와 이안은 자세를 납작 엎드려 뀨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
이를 지켜보는 헤일은 순식간에 멀어지는 드래곤을 보며 감탄했다.
“말 한번 더럽게 안 듣네.”
안 됐지만 어쩔 수 있나. 이드갈 매장지는 저쪽한테 맡기고, 자신은 맡은 일만 해내면 되었다.
헤일은 아래로 수직 하강하여 아스타나 진영 앞쪽에 착지했다.
척.
“마, 마법사!”
“저번에 그 마법사 아닌가?”
“조심해! 바리엘 놈들의 함정일 수도 있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스타나 병사들을 뒤로하고, 헤일은 정면을 쳐다봤다. 바리엘의 병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봐.”
헤일은 마침 헐레벌떡 뛰어온 아스타나 대표와 눈을 마주쳤다.
“진영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마라.”
“예, 예?”
“그리고 궐련 준비해.”
헤일은 대지에 손을 올리고서 금안을 개방했다. 순식간에 그의 주위로 몰아치는 바람. 짧은 수풀이 파다닥거리며 흔들렸고, 아스타나 병사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수그렸다.
지이잉! 지잉!
헤일을 중심으로 거대한 보호막이 아스타나 진영 전체를 반원 형태로 감쌌다. 투명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날리는 돌멩이가 부딪힐 때마다 ‘투웅’거리며 원형파를 만들어 냈다. 마치 조용한 수면에 물결이 이는 것처럼.
“어이, 비켜.”
보호막을 완성한 헤일은 병사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아무리 마법부 소속이 아니라고 해도 대놓고 보호막 세워 줬다고 알릴 필요는 없지.
이를 본 아스타나 대표는 멀리서 돌격해 오는 바리엘 병사들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이런 말은 없었는데, 일이, 이게 어떻게…….’
우왕좌왕하는 대표 등 뒤로 헤일이 은밀하게 다가왔다.
“내 말 못 들었나?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 테니까-”
“…예?”
“궐련.”
“아! 아아, 예예!”
헤일의 요구에 대표가 그를 뒤따랐다. 병사들도 주춤주춤, 보호막 안쪽 제자리로 돌아가 무기만 꽉 쥔 채 대기했다.
* * *
한편, 뀨의 거침없는 비행에 아코와 이안은 정신이 쏙 빠질 것 같았다.
그러다 점차 느려지는 속도. 아코는 여전히 토악질을 해 대며 멀미했고, 이안도 그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우에에엑. 우엑! 이런 미친 도마뱀-”
“아코, 괜찮아?”
“너는?”
“난 괜찮…….”
이안의 말이 뚝 멎었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 보이는 금빛 언덕. 이드갈 매장지였다.
“……!”
이안의 두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이드갈을 찾았다는 환희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금빛 언덕을 담아내 빛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