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2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22화(922/935)
제922화. 어둠의 인사
정말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호박색 보석들의 언덕. 유리처럼 투명하여 햇빛을 그대로 담아내는 모습이 꼭 은하수 같았다.
이안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먼저 도착한 탓에 주변은 조용했다. 아무리 주술사들의 부족이래도 드래곤을 따라올 수는 없나 보다.
아이는 안심하여 뒤를 돌아보았고-
“아코?”
이내 엎드린 채 헐떡이는 아코를 발견했다.
무슨 일이지? 무언가에게 공격을 받았나? 이안이 놀라서 달려가 상태를 확인하자, 아코는 손 틈 사이로 줄줄 흐르는 코피를 대충 닦아 내며 눈을 번쩍였다. 광기다.
“하, 하하하, 하아-”
“아코?”
“있었어! 정말로 있었다고! 으아아아! 할매! 내가 의심해서 미안해해해!”
“아코, 위험해!”
이드갈, 마력을 흡수하는 마석이다. 그럼에도 아코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덕 위로 몸을 날렸다.
기쁨에 도취되어 이곳저곳을 어루만지고, 미끄럼틀 타듯 주르륵 타고 내려와 다시 얼굴을 비비고, 손을 하늘로 번쩍 들더니 알 수 없는 환희의 괴성을 질러 댔다.
-뀨.
뀨가 저런 건 보지 말라며 날개로 슬쩍 이안의 눈을 가려 줬다. 이안은 배시시 웃으며 드래곤의 목덜미에 이마를 부볐다.
“고마워, 뀨. 너 이드갈 매장지를 알고 있었구나?”
-뀨!
이안의 칭찬에 뀨가 브레스를 터트리며 의기양양하게 날개를 활짝 폈다. 그 몸짓에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언덕 아래로 길게 드리웠다.
이안은 그의 옆구리를 툭툭 두드린 다음 이드갈 언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중간중간 채굴한 흔적이 있네.’
앞서 방문한 자들이 조금씩 떼어 간 것이리라.
이안은 새삼 의아했다. 이렇게나 많이, 언덕을 이룰 만큼 쌓여 있는데 그들은 어째서 아주 적은 양의 이드갈만 가져간 걸까?
고오오오-
“……!”
그 의문은 걸음을 떼자마자 풀렸다. 이드갈 아래, 심연처럼 깊은 어둠이 존재했다. 까마득한 밤하늘 같기도 하고, 책에서 보았던 검은 바다 같기도 했다. 정체 모를 어둠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결코 가이아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 햇살이 존재하는 이곳에 나올 수도, 나와서도 안 되는 어둠이라는 것.
‘그래서 그랬구나.’
이드갈 매장지를 발견한 이들 모두 이 구멍을 본 것이다. 가이아 전역에서 금지된 마석이라서가 아니라, 욕심을 짓누르는 공포를 맛보고서 아주 조금, 끝자락만 캐간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심연과 같은 저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아코, 조심해.”
이안은 아코에게 구멍을 가리키며 경고했다. 몇 번이나 언덕 끝에 올랐다가 미끄러지길 반복하던 아코가 데구루루 굴러오더니, ‘아하’ 하는 표정으로 눈썹을 까딱거렸다.
“균열이네.”
“균열?”
“모든 악(惡)의 근원이자, 세상의 밑바닥. 세상 사람들은 지옥이라 하고, 우리 마법사들은 심연이라 하지.”
“들어가면 어떻게 돼?”
“무서운 소리.”
아코는 바닥에 얼굴을 딱 붙이고는 균열을 자세히 살폈다. 특이 사항은 없어 보였다. 뭔가 일그러지거나, 휘몰아치거나, 혹은 흔들리는 형상 따위 말이다. 마물을 배출하는 구멍인지라 위험이 터지기 전에는 언제나 전조 증상이 있는 법인데. 당장은 안전하다.
“아코도 무서운 게 있었구나.”
“그럼. 여기 안에는 무(無)의 공간이라 이른다고. 마석도 없고, 연구실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계속 구른다고 생각해 봐. 무섭지.”
“구른다……?”
“아, 그 구른다는 뜻이 아니라-”
아코는 이안에게 단어를 설명하려다 멈칫거렸다. 그들이 온 방향에서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지금 이쪽에 당도하는 세력이라고는 딱 하나밖에 없다. 후퇴를 가장하여 크로니에게 이드갈 매장지를 알려 주려는 소수부족들.
촤아아악!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메게투족이 먼저 와 있던 이안과 아코, 그리고 드래곤을 보고서 놀라 멈추었다. 이어서 다다른 엥자르갈족까지.
한순간에 대치하는 상황이 되자, 아코는 이안을 제 뒤로 숨겼다.
“어이, 바리엘 피해서 도망치고 있는 거면 다른 길로 가지?”
부족들은 그들이 마법사라는 걸 쉽게 알아챘다. 붉은 드래곤 때문이었다. 드래곤은 위협적으로 주둥이를 쩌억 벌리며 수백 개의 이빨을 드러낸 채 침을 질질 흘려 댔다. 날숨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는 덤이다.
메게투족장과 엥자르갈족장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시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러니까. 크로니가 와야겠는데.’
힐끔힐끔, 둘이 눈빛을 주고받는 걸 보던 아코가 처억,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경고했다.
“눈빛 주고받기 금지!”
여인과 아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마법사다. 그리고 드래곤까지. 분명히 만만치 않은 상대임이 분명한데 부족의 시선은 뒤쪽, 이드갈 언덕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드갈만 있으면 마법사들이랑 해볼 만한 거 아닌가?’
지천에 널린 것이 이드갈이다. 강도가 어떨지는 모르겠다만, 힘쓰는 것에 자신 있는 엥자르갈족이 단단히 버티고 있지 않나. 몸체만 한 거대한 도끼는 가르지 못하는 게 없다.
“뭐 해? 얼렁 꺼져!”
“누가 누구보고 하는 소리지?”
“뭐?”
“여기는 바리엘이 아니다. 북부란 말이다. 우리 북부 동맹의 구역이거늘, 어디서 가라 마라 헛소리인지.”
“…어쭈.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드갈을 노리겠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어쩌면 저놈들은 크로니가 오기 전인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바리엘, 그러니까 크로니 몰래 이드갈을 조금 빼돌릴 기회. 그리된다면 바리엘에 대항할 힘을 기를 수 있을 터.
스윽.
아코가 주먹을 쥐며 전투 자세를 취하자, 이안이 그녀의 옆구리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수풀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백 명 정도 되는 인원이다. 또한 계속해서 후퇴하는 인원이 도착하겠지.
“아코. 보호막을 칠까?”
“좋은 생각인데, 혼자 할 수 있겠어?”
그녀는 떼거리로 덤비는 저놈들을 상대해야 한다. 아스타나군 규모가 거의 비슷한지라, 이안은 할 만하다고 느꼈다. 헤일 교수님도 하는데, 뭐.
“응. 해 볼게.”
“좋아. 그럼 보호막 잘 치고 있어. 뀨!”
-뀨우우우우!
뀨가 브레스를 내뿜었다. 다만 브레스는 그저 다가오지 못하게끔 불의 장막을 쳤을 뿐이다. 외교적 문제를 유발할 여지가 있음을 이해하고 있음이다.
“잘했어!”
-뀨우!
한결 안전해졌다. 이제 이드갈에 다가가려면 뀨의 화염 장벽을 뚫고, 이안의 보호막까지 깨야 하는 상황.
“흠.”
메게투족이 전투태세를 취하며 고민했다.
‘드래곤은 무시한다.’
드래곤은 방해물이지, 무찌를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일단 눈앞의 저 분홍 머리칼 여자만 어찌하면 어린애 하나쯤은 단번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메게투족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익!
약속된 신호였다.
엥자르갈족 역시 뜻을 알아채고는 자세를 낮추고 잠시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기세를 올렸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이에 아코가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이었다.
“……?!”
무언가 발목을 꽉 잡아채는 느낌. 아래를 보니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사람의 머리가 쑤욱 나오고 있었다.
해골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누더기 옷을 걸친 이들은…….
“나탄! 여자랑 드래곤을 단단히 붙잡아! 특히 손!”
메게투족의 외침에 나탄족은 말없이 그림자 속으로 잠수하여 모습을 감추었다.
아코와 뀨는 열심히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마법사들은 마법진을 그려 마법을 시전한다지? 손이 묶여 있으면 뭐 할 수나 있겠어?”
“이런- 씨! 이거 뭐야! 당장 안 풀어?!”
“흥. 그림자를 떼어 내지 않는 이상, 힘들 거다.”
메게투족이 날랜 동작으로 달려들자, 엥자르갈족도 도끼를 들고 합세했다.
반면 나탄족은 그들과 달리 마법사들을 공격하는 걸 꺼렸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조차 이유를 몰랐으니까. 오래전부터 이어온, 마법사에 대한 두려움? 혹은 바리엘을 적대해서는 안 된다는 불길함? 뭐 그런 거라고 하던데…….
촤아아악!
뭐 어때? 전투에서 제 역할만 톡톡히 해내면 상관없지! 엥자르갈족 전사들이 도끼를 휘둘러 아코에게 덤벼들자, 그녀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올라왔다.
‘아니, 시발. 진짜 꼼짝을 못 하겠네. 어쩌지?’
한쪽 손만이라도 쓸 수 있으면……!
퍼어엉!
그때, 아코를 중심으로 퍼퍼펑- 터지는 폭발. 엥자르갈족이 뒤로 날아가고, 나무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뒤로 한 바퀴 구른 엥자르갈 전사가 정신을 차리고 폭발의 원인을 확인했다.
지이잉! 지잉!
한쪽 손으로는 보호막을 구축하고, 한쪽 손으로는 마력구를 터트리는 어린아이. 그의 벽안이 이드갈과 같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안은 입을 꾹 다문 채 경고했다.
“아무도, 아무도 다가오지 마.”
그리하면 이번에는 진짜 공격하고 말 테니까.
엥자르갈족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러니까, 저 꼬맹이 녀석이 날린 공격 하나에 자신들이 뒹굴었다, 이거지?
“이런, 씨!”
촤아아악!
거대한 도끼가 엄청난 속도로 이안의 보호막을 내리쳤다.
투우웅!
“……!”
뜻밖의 묵직한 힘에 놀란 이안이 멈칫거렸다. 일반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괴력이다. 하나같이 전투에 특화되어 있고, 인간의 범위를 살짝 벗어난 존재.
저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헤일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크로니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코와 뀨가 저리된 상황에서는 최악이었다. 이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생각해. 생각해. 어서 생각해!’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을!
‘그림자.’
그래. 나탄족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애들이라 하였으니, 그림자만 사라지면 될 일. 그리고 그림자를 지우는 건…….
‘강한 빛!’
“아코, 눈 감아!”
빛을 모아서 터트릴게! 이안이 손을 위로 뻗는 순간이었다.
-이안.
이안을 부르는 서늘한 음성.
거기엔 세상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잦아들었고, 주위 사람들 역시 심장이 멎은 것처럼 우뚝 멈추었다.
이안은 어디서 목소리가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서서히 돌아가던 고개가 이윽고 아래로 내려가자-
-반갑다. 나의 아이야.
균열에서 지상 쪽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미는 어둠. 형체는 없었으나 웃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의 음성을 들은 자들이 의아하게 이안을 쳐다봤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그것보다, 저게 뭐지?
-나는 지하의 신. 마물의 왕. 균열의 지배자. 심연의 주인. 이안, 너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내 너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지.
“무, 무슨…….”
이안은 저것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갚아야 할 것이라니? 이안이 당황하던 차, 발끝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두두두두두.
지진이다. 숲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가라앉았던 수풀이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놈이 균열 앞 이드갈을 모조리 깨부수려 하고 있음을.
“이안! 물러나!”
아코가 소리쳤다. 혹여나 균열을 막고 있던 이드갈이 깨져 버린다면 위험했다.
이안은 조심스레 뒤로 물러났지만, 이드갈을 밟고 있으려면 균열 구멍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 지금이다!”
부족원들이 외쳤다. 지금 저 마물이 아이보고 자신의 아이라 한 것, 맞지? 갚을 것이 있다며 다정하게 일렀고?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다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잡아라!”
이드갈도 이드갈이지만, 일단 이안이라는 저 아이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
그들은 100년 전, 대마물의 범람을 아직 잊지 않았다. 혹여 저것이 마물의 씨앗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처리하는 게 북부 동맹의 최우선 목표일 것이다. 크로니가 뭐라 하든, 이건 북쪽의 일이다.
“아코, 뀨! 눈 감아!”
이안은 여전히 자신을 보며 웃는 어둠을 보면서도 침착하게 손을 올렸다.
지이잉! 지잉!
아이의 손끝에서 태양과 같은 강한 빛이 파편으로 터졌다. 모든 걸 지워 버릴 것처럼 강렬한 빛.
세상이 백색으로 변하자, 그림자 역시 순식간에 지워졌다. 아코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 새끼들아! 앞뒤 분간 못 하지-!”
빛이 사라지면 다시 묶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퍼엉!
“주둥이 벌려. 약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