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23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23화(923/935)
제923화. 뜻밖의 표적
“무슨 일이지?”
진군을 지켜보던 크로니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그의 물음에 부하가 망원경을 들어 살폈고,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보호막인 것 같습니다.”
“보호막? 마법사의?”
크로니는 부하가 건네준 망원경으로 아스타나 진영을 살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쳐진 것처럼 어느 기점을 중심으로 병사들이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심지어는 돌덩이까지 내던져도 허공에 파장만 일으킬 뿐, 아스타나 진영에는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누구의 짓일까.’
아마 그 만두 머리의 미친 여자나 이안은 아닐 것이다. 마법부 소속으로 어찌 적들을 감쌀 수 있단 말인가? 헤일인가 뭔가 하는 용병, 그놈이겠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만 분명했다.
“진영에 마법사들이 있는지 확인해라.”
“예, 대장님.”
휘이익!
부하는 수신호와 함께 휘파람을 불어 뒤쪽으로 알렸고, 잠시 후 보고가 올라왔다.
“대장님,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드래곤도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갔군. 눈치도 빨라.”
이러면 조금 곤란해지지.
크로니는 저 멀리 후퇴하는 다른 부족들을 쳐다봤다. 바리엘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고 있다.
‘보호막이 꺼지지 않는 이상 아스타나와 대치하는 건 시간 낭비다.’
나중에 아스타나 진영을 빠져나오는 용병 놈만 잡을 수 있게끔 최소한의 전력만 배치하고, 나머지는 모두 부족들의 뒤를 따르는 것이 옳았다.
“백인대 한 부대만 남아 아스타나를 경계하고 나머지는 모두 부족을 추격한다. 서둘러라.”
“예, 알겠습니다!”
부우우우우! 부우우!
작전 변경을 알리는 나팔 소리에 병사들의 대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크로니는 저런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명령 하나에 수백수천의 사람이 움직여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
그 광경을 보고 있자면 마음 깊은 곳에서 희열이 솟구쳤다. 신이 있다면, 아마 이런 기쁨을 매일같이 누리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크로니는 손끝을 까딱거리며 부하에게 지시했다.
“‘그 화살’을 가져와라.”
“아.”
정확하게 지칭하진 않았지만, 부하는 크로니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이내 부하가 가져온 화살통. 화살이 가득 들어 있었다. 개중 장식이 다른 딱 하나의 화살이 있었는데, 바로 마력봉인석으로 만든 화살이었다.
크로니는 통을 어깨에 메고, 활은 말 옆구리에 매달았다.
“가자.”
바리엘에 존재하는 모든 마력봉인석은 비율에 따라 균등하게 배분된다. 대부분은 황제에게, 그다음은 황궁친위대와 마법부에게.
워낙에 희귀한 마석이다 보니 그 수량 자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제국방위부에도 분명히 그 권한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크로니에게 주어진 단 하나였다.
‘딱 한 대.’
화살촉 끄트머리를 이루는 마력봉인석. 이것이 과연 누구의 심장을 꿰게 될까? 크로니는 머릿속으로 각각 아코와 이안, 둘에게 적중했을 시 어느 쪽이 더 이득일지를 계산했다.
두두두두!
타닥타닥!
크로니를 비롯한 기동대가 먼저 앞서 나가며 바람을 갈랐다. 그가 아스타나를 우회하여 곧바로 따라붙으니 북부 동맹군은 잠시 주춤했지만, 곧 북쪽을 향해 다시금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히이잉!
달리던 말들이 작게 동요했다. 말발굽 소리밖에 안 들릴 정도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대장님, 지진인 것 같습니다!”
지진? 이런 판국에 갑자기?
크로니는 재밌다는 듯 미소 지으며, 채찍을 더욱 크게 휘둘렀다.
* * *
“커헉! 컥! 이, 이게 뭐야?!”
“으아아악!”
아코의 근처에 있던 부족원들이 두 눈을 감싸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들 주위로 실낱처럼 번쩍이는 푸른색 정전기. 아코는 씨익 웃으며 경고했다.
“눈알 잘 잡고 있어라. 안 그러면 빠진다. 짜릿짜릿하니 아주 맛있지?”
“이, 미, 미친!”
“닥쳐!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번개탄 개량 버전. 일명 ‘눈알 찌릿찌릿’ 공격이다!”
아코가 움직이지 못했던 것처럼, 부족원들도 눈을 가린 채 연신 몸을 웅크리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제야 이안은 예전에 아코에게 받았던 그 번개탄의 정체가 무언지 깨달았다. 사람에게 안 쓰길 정말 잘했다.
-뀨우우우!
뀨가 허공을 향해 거대한 불길을 뿜어냈다. 이안이 빛으로 그림자를 없애는 걸 보고서 따라 한 것이다.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 끝까지 닿을 듯 치솟자, 뀨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스으윽.
아코의 손과 발을 붙잡고 있던 그림자에도 힘이 빠졌다.
그녀가 의아해하며 손목을 돌리자, 메게투족이 그림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설했다.
“이, 비겁한 겁쟁이들!”
안 그래도 바리엘을 두려워하던 놈들인데, 아코와 드래곤의 공격을 보고서 완전히 전의를 잃은 것이다.
메게투족이 욕하든 말든, 그들은 수풀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 모습을 아예 감췄다. 아코는 옷깃을 탁탁 털며 웃었다.
“비겁한 겁쟁이라니. 판단력 죽이는 똘똘이들이구만.”
“크윽,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바리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영역이다. 이드갈에 대한 소유권을 그쪽이 주장할 수는 없어.”
“누가 주장한대? 깨 먹다가 균열 다시 터지면? 그 뒤처리는 누가 할 건데? 그럼 우리가 또 뼈랑 살을 갈아 넣으면서 개고생해야 하는 거잖아. 안 그래?”
아니면 너희들이 할 수 있어? 대마물의 범람 혹은 지하신의 강림에 대적하여 가이아를 지켜 낼 수 있냐고.
이 정도 규모의 균열이라면, 재앙급이다. 아코는 다시 한번 공격 태세를 취했다.
“뒤지고 싶은 놈들은 계속 덤벼. 눈알 빠지게 해 줄라니까.”
차악.
그러면서 손가락 틈에 끼운 물약들.
이에 부족들은 잠시 고민하며 주춤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무언가. 이드갈 언덕에 서 있는 백금발의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연신 당황스럽고 두려운 표정으로 바닥을 보고 있었다.
“이드갈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떼면 돼.”
“차라리 저쪽을 노리자.”
“좋아.”
메게투족과 엥자르갈족이 신호를 주고받았다. 아직 눈알이 번쩍번쩍 찌릿찌릿한 부족원들은 기어가듯 뒤로 물러서 신음을 흘려 댔다.
“이안! 보호막 잘-”
아코가 이안 쪽을 돌아보며 당부하려는 차였다.
이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발밑에서 일렁거리는 어둠의 눈동자에 묶인 듯, 꼼짝하지 않고 굳어 있었다.
“이안!”
쟤 왜 저래?
아코가 소리쳤으나 이안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이안은 희게 질린 낯으로 여전히 균열 아래를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심연이 있었다.
“하델 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럼. 괜찮지. 내가 죽으면 이안 저 어린것 하나밖에 없는데, 하델가의 명성이 어찌 되겠나?”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세요?”
“이안, 왜 그런 것을 묻니?”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요. 어머니, 그럼 저는 사랑하세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구나.”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작은 조각들이 떠올라 이안의 심장을 쿡쿡 찔렀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아 어둠을 더욱 깊이 들여다봤다. 과거가 지나가고, 익숙한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안 하델. 마법사로서의 힘을 잃어버렸구나. 그렇다면 너는 더 이상 필요 없다. 황궁을 나가 주려무나.”
“따지고 보면 나의 제자 제리아가 죽은 것도 너 때문이지 않겠나. 하델. 자크 저택을 떠나라.”
“미안해, 이안. 할아버지가 너랑 놀지 말래.”
“이안, 내게 말 걸지 말았으면 좋겠어.”
“귀족이 맞긴 맞대요? 반쪽짜리라고 하던데.”
“지하신이 저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불렀다죠?”
“마법사가… 맞긴 한 걸까요?”
아레나가, 자크 백작이, 바르사베가, 한스와 나움이, 그리고 로만드로까지 모두가 자신을 외면하는 세상이 그곳에 들어 있었다.
이안은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도르륵 흘리고 말았다.
“이안, 정신 차려! 왜 저래?”
아코의 외침을 신호로 부족 전체가 덤벼들었다. 대부분은 이안의 보호막을 깨기 위해서. 아코는 황급히 마법진을 그리며 반격했다.
지이잉! 지잉!
「기속(羈束)」.
젠장! 인정한다. 자신은 연구실 안경잡이지, 이런 실전 전투에 특화된 마법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막지 못하면 모든 게 끝장날 것 같다는 직감 때문에.
촤아아악!
곧 유리판과 같은 벽이 하늘에서 쿵쿵 떨어지며 놈들을 제압했다. 아코의 턱 끝으로 굵다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뀨우우우!
차마 두고 볼 수만 없었던 뀨도 모른 척 부족 가운데를 내달리며, 마차보다 무거운 몸으로 놈들을 텅텅 날려 버렸다.
콰아아앙!
사방이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터지고, 땅이 흔들렸다. 아코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해 부족들을 공격했다.
그때, 어디선가 ‘쩌어어억-’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이에 아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정보 하나.
‘균열을 제어하는 건 봉인석이나 이드갈 같이 마력을 파훼하는 마석. 그런데, 그 근처에서 이렇게 마법을 남발하면…….’
…너무도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균열은 마력에 반응하여 더욱 큰 흐름을 일으킨다는 걸.
아코는 결국 남은 물약을 모두 꺼내 터트렸다.
“이안, 보호막 외에 다른 마법은 쓰지 마!”
그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모르겠다. 심연을 모두 들여다본 이안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와 동시에 크게 흔들리는 대지.
쿠구구궁! 쿵!
두두두두!
“지, 지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진동이다.
아코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고, 이안 역시 이드갈 언덕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져 굴렀다. 뀨가 단번에 날아올라 이안의 옷을 잡아챘다.
촤아악!
“잘했어! 근데-”
쿵! 쿠우우웅!
아코의 외침이 묻힐 정도로 지진은 거셌다. 나무가 쓰러지고 땅이 뒤틀리자, 단단히 굳어 있던 이드갈이 쩌억쩌억 갈라졌다.
부족들은 납작 엎드린 채 상황이 어찌 되어 가고 있는지를 살폈다.
“균열이…….”
콰아아아앙!
균열에서 거대한 어둠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산산이 조각난 이드갈이 별빛처럼 흩날렸고, 다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인지하지 못했다.
“터졌다!”
이어서 마물의 기척을 감지한 것은 찰나였다. 지진으로 인한 대지의 균열이 이드갈을 깨 버리고 만 것이다.
그 지진을 일으킬 수 있었던 지하신의 힘은, 아코와 이안의 마력에 자극을 받아서 활성화되었던 것이겠지만. 아무튼, 이드갈 언덕이 초토화되며 박살 났다.
“이안! 뀨!”
아코가 날아오르며 둘을 불렀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당장 중앙에 알려 마법부 전원을 투입해야 했다.
“얼른 돌아-”
-기다렸다. 이안, 나의 오랜 인연.
아코는 수풀 가까이 다가온 다른 인기척을 느꼈다. 바리엘 측 병사들이었다. 기병대인지 하나같이 말을 타고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보고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새로운 시작에 축배를.
이어서 도착한 크로니가 조심스럽게 화살통에 손을 넣었다. 균열이 깨진 것은 지진 때문인 것 같은데, 이렇게 된 이상 마법부에서도 본격적으로 개입할 터. 그렇다면 역시…….
꽈아아악.
화살촉은 드래곤과 가만히 떠 있는 이안을 겨누었다. 아주 적절했다. 마물을 처치하려다 실수로 이안이 맞았다고 하면 될 일. 크로니의 입매에 미소가 감도는 순간이었다.
촤아아악!
검은 손이 먼저 뻗어졌다.
그것은 이안을 지나쳐 뒤편으로 날아들었다. 분명 자신에게 닿을 줄 알았던 이안은 반사적으로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지하신의 목표는 확실했다.
“……?!”
화살이 시위를 떠나자마자, 검은 손이 크로니를 집어삼켰다. 단숨에, 너무도 먹음직스럽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