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24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24화(924/935)
제924화. 직감이 그리 이른다
강한 기운이 크로니를 잡아당겼다. 화살은 보란 듯이 반원을 그리며 날아가 이안의 어깨 옆을 스쳐 허공을 찔렀고, 다들 갑작스러운 마물의 본체에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크로니는 두 다리를 단단히 버티고 선 채 잇새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이, 이게, 젠장!”
“크로니 님!”
정신 차린 부하들이 칼로 어둠을 베어 냈으나, 닿을 리 만무했다. 세상에 햇살을 베는 자가 있던가? 물을 베는 자는? 어둠도 그런 것이었다.
마물의 힘에 조금씩 끌려가자, 크로니의 부하들이 아코와 이안에게 외쳤다.
“어찌 좀 해 보시오!”
그대들은 마법사이지 않소? 이깟 검으로 수백 번 휘두르는 것보다 그대들의 권능 한 번이 효과적일 텐데!
아코는 잠시 망설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마력을 사용할수록 마물의 힘이 강해진다! 여긴 균열이라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크로니 님! 저를 붙잡으십시오!”
이안은 드래곤의 등 위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지금 저대로 크로니가 균열로 끌려들어 가면, 죽는 것 아닐까?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크로니의 죽음이다.
한데, 어째서일까?
‘이상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거부감. 지하신이 크로니를 이대로 데려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대로 크로니를 놓치면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아코!”
이안은 뀨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아코를 불렀다.
우선은 구해 내자. 자신들은 마법부 소속 마법사였고, 크로니는 제국방위부의 유력 차기 장관. 이곳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북쪽 소수부족은 물론이고 크로니의 부하들과 병사들이 두 눈 똑바로 뜬 채 마법사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씨발.”
아코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마력을 개방했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분명 자신과 이안을 문책할 것이다. 자신은 상관없다. 어차피 원래 마법부 소속도 아닌지라, 여차하면 출궁해 또 가판대 열어 살아가면 되니까. 혹 처벌…을 받게 되면 좀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아무튼!
‘이안은 안 돼.’
이안은 어린아이다. 게다가 귀족 자제고, 마법부에서 차기 장관으로 희망을 걸 만큼 천재였다.
사실 이런 부수적인 걸 차치해도, 내 소중한 친구가 황궁의 구설에 오르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 안 그래도 지하신, 저 새끼가 개 헛소리를 지껄였는데-
‘뭐? 나의 아이?’
오해하기 딱 좋잖아.
이안, 즉 마법부와 크로니가 대립 관계라는 건, 공공연하진 않아도 황궁 사람이라면 암암리에 모두가 아는 사실. 여기서 마법부가 크로니를 구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마법부의 질타는 물론이고 이안에게 대한 의심이 쏟아질 거다.
‘지하신과 연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촤아아악!
아코가 미끄러지듯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크로니, 이 개새끼가 방금 쏜 화살이 마력봉인석임을 알아챈 것이다. 작은 화살 하나지만 마력을 쓰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어딜 갑니까!”
“닥치고 딱 버텨!”
“이보시오! 마법사!”
그것도 모르고, 크로니의 부하들은 크로니를 붙든 채 아코에게 소리 질렀다. 망할 마법사 같으니라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제국의 이름 아래 하나인 존재 아닌가!
부하들의 외침에 병사들도 하나둘 무기를 던지고 크로니에게 매달렸다.
“크흣, 크로니 님,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젠장!”
크로니는 자신을 집어삼킨 채 끌어당기는 어둠에 어쩔 방도를 찾지 못했다. 이런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의 당황한 시선이 이리저리 바삐 이동하다 이안과 딱 마주했다. 아이는 허공에서 당황한 낯빛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굳어 있었다.
“이안-!”
크로니는 본능적으로 이안을 불렀다. 그리고 악에 받친 목소리로,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외쳤다.
“네놈의 짓인가!”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어둠이라는 존재가 신의 아이라 불리는 저것을 두고서, 어찌 자신을 노리는지.
그에 부하들과 병사들의 눈빛이 힐끗 이안을 스쳐 지나갔다. 워낙에 급박한 터라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마음 깊은 곳에 의심이 싹트고 있었다.
“아니-!”
-이안. 스스로를 속이려 들지 말거라. 크로니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조용히 해!”
이안이 분에 찬 투로 윽박질렀다.
분명히 크로니의 죽음, 복수, 이런 것을 원하긴 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영문도 모르고 일어나는 상황에 휩쓸려 운명을 결정 짓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크로니의 죽음에는 자신에 대한 원망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오로지 후회와 반성, 그리고 패배감만이 있어야 한다.
츠츠츳!
버티던 크로니의 몸이 조금씩 균열로 끌려갔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힘을 써 봐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지하신이 장난치듯 힘을 느슨하게 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쩌지? 어쩌지?’
이안의 동공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때, 아코가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화살을 집어 드는 게 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힘차게 균열로 달려들었고, 화살촉 끝부분으로 어둠을 찔렀다.
파앗!
올곧던 어둠에 파장이 생겼다. 마치 수채화 위에 물을 쏟은 것처럼 말이다.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아챈 아코가 계속해서 찔러 댔고, 그럴수록 어둠은 수축했다.
그 틈에 이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서 반짝거리는 이드갈. 저걸 이용한다면……?
‘마력을 파훼하는 힘!’
지진으로 곳곳이 쩍쩍 갈라져 있어 위험했지만, 그거야 나중에 다시 막아 버리면 될 일 아닌가?
이안은 뀨의 등에서 내려가 가까이 떨어져 있는 큰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조이백화점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그마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아악.
“아코, 조금만 힘내 줘!”
“이안, 뭐 하려고-”
촤악!
날카로운 어둠의 날이 아코의 볼을 그어 버렸다. 순식간에 피가 주르륵 흘렀고, 이를 인지하기도 전에 아코는 크로니와 함께 제 손목이 묶인 걸 깨달았다.
“……!”
우드득!
“아아아악! 개, 씨!”
손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엄청난 고통에 아코는 결국 화살을 놓쳐 버렸고, 압도적인 힘에 짓눌려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툭.
땅 위에 널브러진 화살. 크로니의 부하 중 한 명이 아코 쪽으로 달려와 화살을 집어 들려고 했으나, 어둠이 그자의 몸뚱이를 그대로 갈라 버렸다.
촤아악!
“……!”
반듯하게 반으로 갈라진 시체가 양쪽으로 쓰러졌다.
이안은 충격적인 광경을 보면서도 계속 이드갈에 힘을 불어넣었다. 이드갈 안에 답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제발, 어떻게?
지이잉! 지잉!
이안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듯, 금안과 벽안이 번갈아 가며 섞여 들었다. 빛을 머금은 이드갈은 계속해서 진동했고, 어둠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몰랐다.
혼란과 죽음의 한복판. 그 탓에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이안의 두 눈에 녹안이 깃들었음을.
촤아아악!
이안을 중심으로 황금 빛무리가 몰려들더니,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이드갈 조각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마치 수천 개의 반딧불이가 한낮에 죽음을 맞이하는 듯한 광경이다.
“……!”
모든 이들이 놀라서 멈칫거렸다. 그사이 크로니는 어둠을 버티지 못하고 끌려가 바닥을 굴렀고, 균열 끄트머리를 겨우 붙잡고서야 멈췄다.
“구해라! 나를 구하란 말이다!”
“크, 크로니 님!”
하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멀리서 그를 잡는 것과, 균열 낭떠러지까지 다가가 손을 뻗는 것은 다른 일이지 않나. 반으로 갈려 죽은 시체가 경고하고 있었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어서!”
“크, 크흣!”
부하들이 망설이는 발걸음으로 앞서갔다 물러나길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이안의 손끝에서 휘몰아치던 이드갈이 조금씩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이안……?”
으스러진 손목을 붙든 채 이안을 보고 있던 아코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깨져서 흩어진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이드갈이 아이의 주위에서 휘몰아쳤다.
‘말도 안 돼…….’
지금, 이안이 이드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건가? 아코는 자신의 부러진 손목을 붙잡은 채 이안의 기적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타앗!
아이는 망설임 없이 균열을 향해 날아들었다. 당장이라도 균열을 찢어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정작 아이의 손이 닿은 것은-
“……!”
크로니의 손.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는 이드갈을 통제하여 균열의 틈을 조금씩 메워 나갔다. 그로 인해 어둠이 조금씩 짙어지자, 어디선가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심연의 파동이다.
“이안.”
크로니는 자신의 손을 꾹 움켜쥔 이안을 올려다봤다. 왜인지 눈매가 다정해 보였다. 이안은 계속해서 이드갈을 만들어 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어서 올라오십시오!”
이대로 죽게 둘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모든 죄를 등에 지고 나에게 잘못을 빌어야 해! 그리고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를 마물의 왕이 원하는 대로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적의 적은 아군. 지금 상황에서 올바른 말인지 모르겠지만, 지하신의 뜻에 반하는 게 가이아를 위한 일인 것 같았다.
“이안. 아아. 다정한 아이야-”
크로니는 작게 속삭이다 눈빛을 번뜩이며 이안을 확 잡아당겼다.
“내가 이대로 죽을 줄 알고!”
화악!
크로니는 이안을 끌어당기며 위로 올라가려 발악했다. 이안의 몸이 허공에서 기울어지며 균열 아래를 향해 고꾸라졌다. 마법으로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었지만 균형이 깨지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둠의 영역에 들어선 탓이다.
“아.”
이안이 미끄러지니 크로니 역시 잡을 것이 없어져 허공에 붕 떴다.
순식간에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 차올랐다. 두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조금씩 균열을 메우는 금빛 보석, 이드갈뿐. 이대로 같이 추락하는 걸까? 이렇게?
-뀨우우우우!
그때, 뀨가 온 힘을 다하여 수직 하강했다. 드래곤의 단단한 손아귀가 이안을 잡아챘고, 이내 빠르게 떠올랐다.
이안은 잠시나마 심연을 살펴볼 수 있었다. 찰나로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어둠. 어둠에도 결이 있다는 걸, 아이는 처음 알았다.
“뀨! 어서 나와!”
이드갈이 점점 빠르게 생성되었다. 좁은 구멍을 치고 나가느라 뀨의 날개가 찢기고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뀨우우우!
“으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크로니의 괴성 역시 조금씩 잦아들었다.
사아아악.
동시에 이드갈로 인해 완전히 봉쇄된 균열.
쿵쾅거리는 심장 고동이 머릿속에 가득 울렸다. 거짓말 같은 적막이 이어졌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각자의 심장박동뿐.
“…….”
이안은 조심스럽게 기어가 이드갈 아래를 살폈다. 여전히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공간.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크, 크로니 님?”
“크로니 님!”
그제야 정신 차린 부하들이 달려와 부르짖었으나, 이미 늦었다. 지하신은 사라졌다. 마치 꿈을 꾸었던 것처럼. 부하들이 단단하게 굳은 이드갈을 내려치며 울부짖자, 아코가 소리쳤다.
“그만! 새끼들아, 또 박살 나면 어쩌려고!”
“그래도, 아래에 크로니 님이…….”
부하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들의 시선은 이안에게 가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죽은 겁니까?”
크로니가 죽었다?
크로니가 죽었다.
이안은 그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분명히 균열 아래로 떨어졌으니 무사하지 못할 터다. 마법사들에게도 지옥이라 불리는 심연이지 않나.
한데 어째서,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들지?
“죽은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재차 물었다.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은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이안은 속으로 대답했다.
‘모르겠소.’
크로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았다면 어디로 간 것이며 지하신은 그를 왜 데리고 간 것인지, 데려갔다면 필시 목적이 있을 것인데…….
누군가 왜 그리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이안은 이리 대답할 것이다.
‘직감이 그리 이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