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2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25화(925/935)
제925화. 꼬질이들
“실례합니다?”
외부 직원은 유독 조용한 마법부 문에 대고 인사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왜 이렇게 조용해?’
인원수는 부서 중에 제일 적으면서 시끄러운 것으로 치면 항상 제일가는 곳이다. 한데 오늘은 어쩐지 이상하게 조용했다. 로비에 널려 있는 마법사도 없고, 복도를 오가는 부원들조차 긴장한 것처럼 경직되어 있지 않나?
직원이 다시 한번 인기척을 냈다.
똑똑.
“계십니까? 급하게 결재받을 것이 있어서- 헉!”
문을 열자, 바늘처럼 쏟아지는 마법사들의 날카로운 시선. 하나같이 예민해 보이는 건 기본이고, 어쩐지 긴장감이 팽팽했다.
마법사들은 시선을 슬쩍 돌리더니, 제 책장에 코를 박았다.
“안 받아요.”
“아니, 저, 행정부에서 왔는데요.”
“다음에 오세요. 오늘 바쁩니다.”
“다들 제자리에 앉아 계시면서…….”
앉아서 뭘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 걸린 회중시계만 연신 살피며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이것도 마법부 단체 기행 중 하나인가? 직원은 이도 저도 못 하고서 서류를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놀랍도록 조용한 사무실. 가끔 들리는 소리라고는 ‘쯧’ 혹은 ‘달달달’ 다리 떠는 진동뿐이다.
째깍째깍.
“5.”
5? 왜, 왜 저래? 왜 갑자기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거지?
“4, 3, 2, 1…….”
정오였다. 하지만 직원이 알기로 마법부 점심시간은 두 시부터인 걸로 아는데?
시곗바늘이 겹치자마자 마법사들이 벌떡 일어났고, 동시에-
“집합!”
장관실 문을 박차고 나서는 아레나의 우렁찬 지시가 울렸다.
마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직원을 밀치며 달려 나갔고, 그는 서류 더미를 붙잡느라 제자리에서 핑그르르 돌았다.
“가자!”
“그래, 가 보자고!”
“무기 챙겨!”
“무기? 우리가 그런 게 있나?”
“없으면 말고!”
외부 직원은 의아해하면서도 서류 결재를 위해 그들의 뒤를 쫓았다. 마치 뒷골목 깡패들이 결연한 전투를 앞두고 달려가는 모습이다.
이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마법부 정원. 정복을 입은 아레나가 팔짱을 낀 채 궐련을 물고 있었다.
“저기…….”
그런 그녀에게, 직원이 쭈뼛쭈뼛 다가갔다. 마법사들이 결재를 받아 주지 않으니 장관에게 슬쩍 말이라도 붙여 볼까 싶은 마음이었다.
이에 보좌관이 웃으며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손날로 목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지금 건드렸다가는 화를 입게 된다는 듯.
“흐익!”
“서류는 저 주십시오. 제가 처리해서 보내죠.”
“그, 급한 건데요.”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보좌관은 딱 거기까지가 응할 수 있는 답이라며 몸을 돌렸다.
한편 마법사들은 직원 따위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잔디밭 위에 미리 그려 놓은 마법진을 다시금 점검하며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여기 이상 없습니다.”
“여기도요!”
“문제없음!”
다들 준비되었다고 소리치자, 아레나가 궐련에 불을 붙였다.
“진행해.”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마법사들이 마력을 개방했다.
지이이잉.
각기 고유의 색을 가진 자들이 일시에 금빛으로 이어지는 순간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직원은 볼일이 다 끝났음에도 홀린 것처럼 마법사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러자 이내-
사아아악!
허공에 포탈이 열렸다.
그러나 누구도 들어가는 자가 없다. 그저 고개를 들어 포탈 너머를 바라볼 뿐. 포탈에서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다. 아레나 역시 말없이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치이익- 투욱.
궐련 재가 떨어졌다.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타들어 가는 궐련. 결국 필터 끝까지 태워 버리자, 아레나는 짜증스럽게 궐련을 내던지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야. 다 출발해.”
“예, 알겠습니다!”
“하, 씨. 왜 안 오는 건데!”
아레나의 명령에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하나둘 포탈 안으로 날아들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직원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는 보좌관의 옷자락을 붙잡고는 더듬더듬 말했다.
“지, 지금 다들 어딜 가십니까? 황궁을 비우시는 겁니까?”
“예, 외근입니다.”
“장관님까지요?”
아레나는 직원의 중얼거림을 듣고서 슬쩍 뒤돌아보더니, 보좌관에게 소리쳤다.
“잘 지키고 있어!”
“옙. 여부가 있겠습니까.”
처억.
보좌관이 경례하며 인사하자, 아레나가 가볍게 날아올라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닫히는 포탈. 직원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화, 화, 황궁은 어쩌고요!”
“외근증 끊어서 올렸습니다.”
“아니, 그 문제가 아니라-”
“에, 두 시간 안에 돌아오실 거니까 가서 식사나 하시죠. 행정부 곧 있으면 점심시간 아닙니까?”
“맞는데, 맞는데요.”
“맞으면 됐지, 또 무슨 말씀을. 갑시다.”
보좌관이 그의 등을 떠밀며 웃었다.
보호막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 놓고 마법사들은 모두 북쪽으로 떠났다. 이안을 데려오는 것이 첫 번째 목표고, 후견인 동의서를 온전히 가져오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어쩐 일인지 그 누구도 아코와 헤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만, 그건 뭐, 중요치 않고.
‘이안에게 무슨 일이 생겼든, 두 시간 후면 돌아온다.’
딱 점심시간을 이용한 외출이었다. 사실상 그들에게 점심시간 따위 아무 의미 없었지만, 아무튼.
끼이익.
보좌관은 직원을 밖으로 보낸 다음, 마법부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점심시간 변동! 나중에 오시오!
…라는 팻말을 걸어둔 채로.
* * *
포탈 속, 마법사들은 저 앞의 빛줄기를 따라 내달렸다. 그들의 로브가 휘날리는 가운데 하나가 물었다.
“장관님. 이안한테 무슨 일 생긴 거면 어쩌죠?”
아레나는 말을 아꼈다.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과 시간이 되었음에도 반응이 없다. 필시 무슨 일이 생기긴 생겼는데, 그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마법부의 대응이 달라질 터.
아레나가 침묵하자, 뒤따르던 마법사들이 기합 넣듯 고함쳤다.
“어쩌긴! 다 조져야지! 우리 막내 건드린 새끼들 죽여 버려어어!”
“공식적으로 막내는 아코입니다만.”
“초 치고 앉아 있네.”
“달리고 있습니다만.”
“너 이 새끼, 해보자는 거냐!”
“다들 닥쳐!”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해 죽겠는데 저 멍청한 마법사들의 만담까지 들어야 한다니. 아레나가 경멸의 시선으로 노려보며 일갈하자, 시비 붙은 두 마법사는 서로의 어깨에다 주먹질해 대며 달렸다.
“다 왔습니다!”
“준비해!”
화아아악!
빛이 점점 커져 갔다.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차가운 북쪽 공기의 감촉. 폐까지 시원해지는 바람이 그들을 감쌌다.
쉬이이익!
“내려……!”
내려가라고 외치던 아레나가 멈칫거렸다. 기선제압 할 요령으로 멋있게 착지하려던 마법사들도 의아하여 눈이 커졌다.
“허업!”
“마, 마법사님들?”
분명히 바리엘 진영에 좌표를 제대로 찍었건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휑했다. 백인대급의 작은 부대만이 텅 빈 진영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하여 전투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야?”
아레나는 전방을 둘러봤다. 황폐한 북부 땅. 아스타나 깃발이 걸린 진영 외에는 적들이 없었다. 오로지 철수한 것으로 보이는 군막 뼈대들만이 무수히 남아 있을 뿐.
아레나는 자신들을 보며 몸을 달달 떨고 있는 바리엘 병사들을 돌아봤다. 추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마법사를 두려워하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된 거지? 이안은?”
“이안이라 하시면 그 어린 마법사님이요?”
“그래. 크로니는 어디 가고? 아니, 그것보다 상태가 왜 이래? 지금 전쟁 중 아닌가?”
“아, 그것이 말입니다요…….”
병사들은 더듬더듬 상황을 설명했다. 아스타나를 뺀 다른 부족은 전장에서 후퇴하여 북쪽으로 올라갔고, 이를 쫓던 바리엘 본대는…….
“지하신과 마주해?”
“예, 그래서 크로니 대장님이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저희는 국경을 넘지 않고 여기서 아스타나를 주시하라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게, 이게 무슨…….”
말문이 막혔다. 대체 그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크로니가 죽어? 그리고 지하신은 또 무슨 상황이고? 이안은?
“그럼 지금은? 다들 어디 있지?”
“지하신이 나타났다는 마석 매장지에 있을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복잡하여 그 장소를 쉬이 떠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안내해라.”
“아, 예예. 말을 가져오겠-”
병사가 묶어 둔 말 쪽으로 달려가려 하자, 아레나가 그의 팔을 확 잡아끌었다.
“으아아아아-”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듯, 순식간에 하늘로 떠오른 병사가 반쯤 기절한 상태로 비명을 질러 댔다.
마법사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들을 보고 벌벌 떨었던 건 추워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였음을. 이리 무지막지한 작태에 대한 소문이 이미 황궁 내에 파다했다.
“어디로 가?”
“저쪽! 저쪽!”
“…말이 짧다?”
“입니다! 입니다아아아!”
아레나가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자 병사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이제 어떡하지?’ 싶었지만, 다행히 저 멀리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곧이어 금빛으로 뒤덮인 언덕이 눈에 들어왔고, 바리엘군과 이상하게 섞여 있는 북부 부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관님! 저, 저거!”
“이드갈입니까? 세상에!”
마법사들은 마치 고대의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동시에 느껴지는 두려움. 아코의 전언대로라면, 저 아래 균열이 있다는 뜻 아닌가? 그러자 문득 자신들의 마력이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따라와.”
하지만 아레나는 망설임 없이 하강했다. 이에 마법사들의 등장을 알아챈 바리엘 병사들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고, 북쪽 부족들 역시 놀라서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타앗!
아레나가 로브를 휘날리며 가볍게 착지했다. 동시에 따라나선 마법사들도.
“마, 마법사?!”
“어이, 이안 어딨어?”
그리고 대체 적군인 소수부족 놈들과는 왜 섞여 있는 거지? 궁금한 게 산더미였지만 최우선은 이안의 안전이었다.
소란을 보고받고 달려 나온 크로니의 부하가 아레나를 알아보곤 인사했다.
“마법부 장관님 아니십니까?”
“그래. 크로니가 죽었다던데?”
“…맞습니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좀 길고 복잡합니다. 마법부와도 얽힌 일인지라.”
“마법부랑 얽혀 있다?”
아레나가 눈썹을 까딱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아코가 저 멀리서 붕대 감은 손을 흔들며 인사해 왔다. 양손 다 박살이 났는지 팔꿈치까지 부목을 덧대고 있다.
“뭐야?”
“뭐긴 뭐야? 천재 마법사 아코 님이시지. 포탈 반응 없어서 온 거죠? 잘 됐다. 치유 마법사 있나?”
꼬라지가 왜 저래? 마법사들은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코가 저 정도라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아레나가 다시 한번 이안을 데려오라 소리치려는 순간이었다.
“장관님?”
꾀죄죄한 모습의 이안이 사람들 틈으로 나타났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옷도 엉망인 데다 피부 곳곳엔 생채기가 나 있다.
말문이 턱 하고 막힌 아레나는 순간 과거의 자신을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이 등신아! 역시나 애를 보내는 게 아니었어.’
고작 다섯 살 난 아이를 보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젠장! 크로니 그 새끼는 나중에 어떻게 해서든 모가지 비틀 일이 있었을 텐데!
아레나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 숙이자, 이안이 살금살금 달려와 마법사들을 불러 모았다.
“장관님.”
그리고 마법부 선배들. 다들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리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촉촉하게 차오른 아이의 눈동자는 그간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안은 그대로 아레나에게 총총 달려왔고, 아레나는 반사적으로 아이를 푹 껴안았다.
“제시간에 못 돌아가서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건 됐어.”
아레나는 아이를 안아 들고서 제국방위부 사람들과 하나씩 눈 마주쳤다.
“여기 보호자 왔으니까, 이제 얘기 좀 들어 볼까? 우리 애들, 상태가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