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2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26화(926/935)
제926화. 평화가 깨지는 순간
“…그러니까, 지하신이 크로니 대장을 죽였단 말이지?”
허름한 천막 안.
마법사들을 비롯하여 제국방위부 장교들, 각 부족장들까지 모인 탓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아레나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이마를 꾹꾹 눌러 댔고, 마법사들은 저들끼리 속삭였다.
“지하신? 그림자신을 말하는 거 맞지? 100년 전 봉인 했었잖아.”
“그놈이 어떻게 다시 나왔지?”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이건 예상 밖이었다. 마법사들이 술렁거리자 제국방위부 소속, 크로니의 부하가 덧붙였다.
“게다가 지하신 그놈은 저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불렀소. 아주 친근하고 다정하게 말이지!”
그는 손가락으로 이안을 가리켰다. 지목당한 이안이 움찔거렸으나, 별다른 변명을 하지는 못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코 역시 답답하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뭐라고 변명하기에는 그 자리에서 들은 귀가 많았다.
“야.”
이마를 꾹꾹 누르던 아레나가 크로니의 부하를 노려보며 살벌하게 경고했다.
“소속이랑 이름부터 밝히고 지껄여.”
건방지게, 여기가 시장 바닥이야? 마법부 장관한테 보고하는 작태가 영 거슬렸다.
아레나의 낮은 음성에 그가 멈칫거리며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크로니 대장님의 호위관, 프레디입니다.”
“그래, 프레디. 지하신이 이안을 ‘자신의 아이’라고 불렀다고?”
“맞습니다. 더하여 크로니 대장님이 죽길 원하지 않냐면서, 그대로 마수를 뻗어 대장님을 끌고 가 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법사들은 소극적으로 대처했고요.”
이안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하신이 어째서 자신을 그리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그때 일을 꺼낼 때마다 수치심이 솟아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지하신, 마물의 아이라니. 설마 내가 정말로 그런 존재인 걸까?
이안이 움츠러들어 아무 말도 못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코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소극적은 지랄. 팔 두 짝 다 부러진 거 안 보여?”
“마법을 안 쓰셨잖습니까!”
“균열에서는 마법 쓰면 안 된다니까? 오히려 놈들을 자극해서 거세진다고. 아무것도 모르면 걍 입 닥치고 있어!”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말해 줘? 확 쥐어 패기 전에 닥치라고!”
아코는 부러진 두 팔로 휘어 갈기려는 듯 몸을 일으켰고, 마법사들이 뒤에서 다급히 붙잡았다. 소란이 일자 아레나가 탁자를 쿵쿵 두드렸다.
“다들 조용.”
그러고는 천천히 이안을 돌아봤다.
“이안. 지하신이 어째서 너를 그렇게 불렀는지, 짐작 가는 게 있니?”
“…없습니다.”
“그렇군.”
그렇군. 아레나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이에 프레디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다입니까?”
“그럼?”
“아니, 그, 마법부에서 애용하는 실담물약을 사용하든가, 지하신이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안 하델, 저 아이가 지하신과 연관되어 있다면 크로니 대장님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제국방위부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들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나. 균열에 반쯤 빠졌을 때, 드래곤이 누굴 구했는지.
“같이 빠졌습니다. 근데 드래곤은 이안만 구해서 왔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안이 이드갈을 조종해서 구멍을 완전히 막아 버렸습니다. 조금만 늦게 닫았더라면 대장님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잠깐.”
계속 침착하게 듣고 있던 아레나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부하 중 하나를 가리키며 턱짓한 것이다. 전에 없이 살벌한 눈빛으로.
“지금 뭐라고 했지?”
이안이 이드갈을 조종해?
순식간에 바뀐 공기에 마법사들 역시 숨을 들이쉬며 동작을 멈췄다. 반면 프레디는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이안이 이드갈을 조종했다고요! 지진 때문에 박살 난 것들을 다시 조립하고, 심지어 더 두껍고 균일하게 메웠습니다. 이드갈은 마력을 파훼하는 물질 아니던가요? 마법사가 그런 마석을 만들어 내다니! 이것이야말로 지하신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명백히 선을 넘는 발언이다. 그러나 아레나와 마법사들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마력을 운용하는 마법사와 이드갈은 섞일 수 없다. 정면으로 상충하는 성질이기에 그렇다. 한데 한 몸으로 어찌 그 두 가지 힘을 다룬다는 걸까? 굳이 따지자면 이드갈은 마법사를 제어하기 위한 물질. 즉, 지하신에게 유리한 물질 아니던가.
이에 마법사 하나가 반박했다.
“아니라니까! 100년 전, 대마물 전쟁 때 이드갈을 이용해서 승리했다는 걸 들은 적 있어. 그리고 지금 클리포포드를 비롯한 여러 균열지에도 이드갈이 사용되고 있잖아! 공식적으로!”
“하지만 이를 만들어 내는 마법사에 대해서는 들은 적 없습니다! 마법부는 알고 계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일 터다. 그러자 아코가 앞장서서 대꾸했다.
“이안의 힘은 분명히 마력에 기반한다. 이드갈을 어떻게 해서 만들어 내는지는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그 행위 자체만으로 지하신과 연관되어 있다 해석할 순 없어. 오히려 문제는 제국방위부에 있지!”
“뭐요?”
아코의 말에 장교들이 노발대발했다. 그러든 말든 아코는 붕대로 친친 감은 손으로 프레디를 손가락질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북부 동맹이랑 뒤에서 짝짜꿍해서 전쟁하는 척만 하고! 이드갈 몰래 빼돌리려고 수작질 하고! 우리가 먼저 안 왔으면 저 자식들이 이드갈 다 박살 내서 가져갔을 거잖아!”
아코에게 지목당한 부족장들이 화들짝 놀라 반발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후, 후퇴하던 중이었습니다.”
“지랄 마! 그래 놓고 우리보고 비키라고 그 난리를 쳐 대? 막 그림자 잡아서 두들겨 패려고 하고, 어? 장관님. 나, 이 새끼들한테 한 대 맞았다니까?”
제국방위부와 북부 동맹 사이의 연결 고리가 밝혀진다면, 이드갈 채굴을 위해 마법사와 대적했던 행위 자체만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제국방위부가 마법부 몰래 이드갈을 수집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균열 활성화의 위험까지 유발했다는 뜻이 되니까.
메게투족 족장이 반발했다.
“그러는! 우리 부족들이랑 뒤에서 따로 편먹고 수작질한 건 그쪽 마법사들 아닙니까? 아스타나에 보호막 걸어 줬잖아요?”
덕분에 아스타나는 공격 하나 받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온전히 진영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헤일은 투명 마법을 써서 무사히 빠져나왔기 때문에 목격자도 증거도 없었지만, 정황상 마법사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건 확실했다.
아코는 잠시 멈칫하더니 대꾸했다.
“즈, 증거 있어?”
“합리적 추론이지요! 그건 분명히 마법사의 보호막이었어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마법사가 적군인 아스타나를 도와 제국방위부를 방해하다니, 이거야말로 반역 아닙니까?”
“웃기는 놈일세. 그딴 말을 우리가 왜 메게투족한테 들어야 하는데? 할 거면 제국방위부가 해야지!”
“조용, 조용, 조용!”
콰앙! 쾅! 쾅!
아레나가 있는 힘껏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이리저리 꼬인 상황을 대충이나마 파악한 그녀가 부족장들을 둘러보았다.
“대충 돌아가는 꼴은 알겠는데, 그쪽들은 왜 여기 남아 있는 거지? 후퇴 중이었다며?”
그러자 부족장들과 제국방위부 측이 찰나 시선을 나눴다. 입을 연 것은 메게투족 족장이었다.
“…지하신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사안이라.”
“잠깐 휴전했습니다.”
균열이 자리 잡은 이곳 북부 땅. 마물들이 쏟아지면 제일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이 바로 소수민족들이었다. 하여 바리엘 측과는 휴전을 맺고 이드갈 언덕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게다. 사실상 조사랄 것도 없이, 그저 다시금 지하신이 나타나지 않을까 경계하여 주시하는 게 다였지만.
“휴전을 하셨다?”
아하. 아레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녀는 프레디에게 지시했다.
“그럼 지금 당장 바리엘 병사들을 이끌고 중앙으로 복귀하시오.”
“예? 복귀요?”
갑작스러운 지시에 프레디와 제국방위부 사람들이 반발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고 마법부 장관께서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요. 중앙에 상황을 알려 폐하의 명을 받겠습니다.”
“폐하께 상황을 알리는 것도, 일단은 바리엘 국경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하시길. 지하신과 이드갈은 전적으로 마법부의 소관입니다.”
아레나의 말투가 정중하게 바뀌었다. 이는 공식적인 발언이라는 걸 시사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타깝지만 제국방위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지요. 바리엘 병사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신다면 이곳에서 물러나 복귀하시든 아니면 국경 안쪽으로 돌아가든 선택하십시오.”
지하신과 이드갈의 존재를 마법부가 알았으니, 이제 이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마법부가 결정할 일임을 공언하는 게다. 아레나는 이어 족장들에게도 당부했다.
“그대들은 가지 마시고, 바리엘 측과 좀 더 깊은 회담을 나누시고요. 북부의 평화를 위한 길이니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아, 크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제국방위부는 산더미 같은 이드갈을 두고 물러서려니 아쉬운 마음에, 부족들은 제국방위부 없이 마법부와 대면하기 부담스러워서. 왜냐고? 그들 역시 이드갈을 얻기 위해 이안과 아코를 공격했으니까!
대답이 없자, 아레나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다만 이를 어찌 해석할지는 저희의 몫이니, 그리 아십시오.”
새끼들아, 이드갈 얻어 내려고 마법사를 공격했다며? 그에 관한 대가를 바로 치르게 해 주마. 이 천막을 나가는 즉시! 아레나의 섬찟한 눈동자가 그리 경고했다.
이에 대한 부족장들의 답은 사실상 하나뿐.
“아, 예예. 알겠습니다. 서로 간의 오해도 좀 풀고, 가이아의 안전을 위한 쪽으로 말씀 나누시지요. 마법부 장관님을 이리 뵙게 되어 영광이면서도 참… 자리가 그렇네요.”
“자, 그럼 정리된 것 같으니 움직입시다. 제국방위부는 황궁에서 뵙도록 하지요.”
아레나가 고개를 까딱거린 다음 천막을 먼저 박차고 나갔다. 밖에 몰려 있던 부족민들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든 말든 아레나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내 날개가 찢긴 뀨와 헤일을 발견했다.
-뀨!
“어이고, 여기도 난리 났네.”
“오셨습니까.”
“헤일. 이안 지켜 주는 김에 아코랑 뀨도 좀 도와주지 그랬어?”
“…그, 사정이 있었습니다.”
헤일이 조심스레 속삭이며 눈짓했다. 아스타나에 보호막을 쳐 준 게 자신이라는 걸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발설할 수 없었으므로.
“균열 먼저 보자.”
이를 심증으로 눈치챈 아레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이드갈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그 뒤를 우르르 따르는 마법사들. 등 뒤로는 후퇴를 명하는 바리엘군 나팔 소리가 울렸다.
스윽.
이안 역시 아코와 함께 아레나를 뒤따랐다. 지하신도 그렇고, 이드갈도 그렇고. 마법부에서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이안이 그런 걱정을 하던 차였다. 한 마법사가 뒤를 돌아봤다.
“어이, 이안.”
그러고는 읏싸! 단번에 아이를 끌어안아 들었다.
“미끄러우니까 딱 잡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대하는 마법사의 태도. 이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품에 안긴 채 이드갈 언덕마루에 다다르자, 거대한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레나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래를 살폈다.
“이안, 아코. 여기가 맞아?”
“네. 맞습니다.”
“크기는 엄청나게 크구나.”
이만한 걸 대체 어떻게 틀어막은 건지. 아레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바닥으로 들이밀었다. 불투명한 호박색 너머로 어른거리는 어둠. 아레나는 소매를 걷고서 손을 대고 집중했다.
지이잉. 지잉.
이드갈 탓에 쉽지 않았지만, 그녀는 집중을 멈추지 않았다. 이럴 때 쓰는 마력이상반응장치가 있지만, 그건 현재 마법부에 있지 않나. 이가 없을 때는 잇몸으로. 아레나만이 할 수 있는 미세한 기운 감지였다.
그리고 잠시 후-
“아.”
그녀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이미 시작됐네.”
정상 범위 기준치를 넘어선, 명백한 마물의 기운. 아레나는 낮게 신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100년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