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2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27화(927/935)
제927화. 이안이 필요한 이유
황궁의 점심시간. 업무에 치이고 깔린 부원들이 유일하게 바깥공기를 맡으며 숨 돌리는 시간이었다.
다들 식당 정원이나 테라스 등에 자리 잡고 앉아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때였다.
콰앙!
거칠게 열리는 식당 문.
워낙 시끌벅적한 곳인지라 평소라면 이 정도 소란은 소란으로 쳐주지도 않았을 터다. 하나 오늘은 다르다. 빵을 베어 물려던 사람이나 웃으며 궐련 재를 털던 사람이나, 연차가 짧은 부원이나 긴 부원이나, 하나같이 반사적으로 멈칫거리며 문 쪽을 돌아봤다.
“…왜, 왜 그래?”
“큰일 났습니다!”
“마법부 때문에 그래?”
“그 인간들 아직 안 왔어? 아, 나, 진짜 안 되겠네.”
“아니요! 왔는데, 왔는데-!”
숨을 헉헉거리느라 말끝이 늘어지자, 하나둘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채근하기 위함이다. 개중 몇몇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러나 이어진 부원의 말에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제국방위부 크로니 대장이 전사했다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지하신이 출몰했습니다. 이드갈 매장지도 발견됐다고-”
“뭐?”
“이게 무슨 소리야?”
“…하여, 현재 아레나 장관께서 대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히이이익!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부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각 부서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식기가 떨어지고, 서로 어깨가 부딪쳤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릴 뿐.
“젠장, 크로니 대장은 어쩌다 전사했다는 거야? 바리엘군 피해 상황은?”
“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돌아 버리겠네. 지하신이라면 100년 전에 그놈 말하는 거지? 각 신전에 전서구 날려. 그리고 아, 클리포포드랑 버고스에는 어쩌지?”
“아레나 장관께서 곧 지시하겠다 하셨습니다.”
“아이 씨, 오늘 우리 장관님 출장인데.”
“빨리 들어오시라고 연락해!”
콰앙! 쾅!
이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미친 듯이 서류를 뒤지고 있었고, 복도는 무어라 소리치며 내달리는 괴성으로 가득했다.
이건 긴급 경보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이었다. 전쟁 나간 총지휘관이 전사한 것도 모자라, 뭐? 지하신?
타닥타닥!
각 부처의 장관들과 직원들이 대회의장으로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마차가 어지럽게 얽히고, 바삐 움직이는 발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벌컥!
“오, 식사는 하셨습니까?”
땀 뻘뻘 흘려 가며 도착했더니, 여유롭게 커피 마시고 있던 아레나가 웃으며 인사했다. 그녀 옆에는 이안과 아코, 그리고 낯선 사내가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제국방위부 소속 프레디가 자리했다.
“아레나 장관,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예, 그러게나 말입니다. 자세한 것은 폐하께서 자리하시면 전할 것이니 일단 착석들 하시고, 땀도 좀 닦으십시오.”
“아, 그래요. 그래.”
폐하께서 오시는구나. 하긴, 아무리 몸 상태가 안 좋으셔도 지하신이 재림한 상황에서 가만 계실 리가 없지.
아레나는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며 황제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와 마법부 사람들만 연신 힐끗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때였다.
“황페 폐하 드십니다!”
바깥의 안내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는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떼었는데, 장관들은 문득 황제의 거동을 보는 것이 굉장히 오랜만임을 깨달았다.
“…앉으시게.”
황제의 말에 다들 착석했다. 그는 시작하라는 듯 아레나에게 눈짓했고, 그에 마법부원이 모두에게 보고서를 나눠 주었다. 사락사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 한참 동안 들렸다.
“그러니까, 지금… 지하신이 크로니 대장을 살해했다는 말씀이오?”
“전해 들은 바로는 그렇습니다. 여기 현장에 있던 아코, 이안, 용병 헤일 그리고 저쪽, 제국방위부 소속 프레디 호위관까지요. 북부 부족장들의 증언도 일치하여, 이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리 의문의 여지가 없다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나? 장관들이 속닥거리는 동안, 황제는 차분한 시선으로 보고서를 응시했다. 아레나는 그런 황제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덧붙였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신의 힘이 부활한 것 같습니다. 각 균열지에서 마물의 습격이 예상되니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라족에게 마물에대응할 특수 무기를 주문해서 최대한 많은 병사들을 무장시키길 청합니다.”
“각, 각 균열지라 하면?”
“현재 바리엘에서 파악하고 관리 중인 12개의 균열을 뜻합니다. 그 밖에 새로운 균열이 생겨날 수 있으나, 그건 예측할 수 없으니 일단 제외했습니다.”
“어허. 이거, 원! 대마물의 범람이라도 온다는 뜻인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현재부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의 평화는 깨졌노라는, 아레나의 경고를 알아들은 장관들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현재 북쪽에 마법사 다섯이 남아서 상황을 주시 중입니다. 특이 반응이 없다면 셋으로 줄일 것이고, 버고스와 클리포포드 쪽으로 마법사를 파견하여 이상 증세가 없는지 확인할 것입니다.”
“황궁을 비운다는 말이오?”
“필수 인원 외, 불가피한 일입니다. 하여 북부에서의 전쟁 역시 휴전이 아니라 종전으로 전환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현재 그쪽을 신경 쓸 시기가 아닙니다.”
북부 소수부족들과 전투 중 발생한 피해도 없고, 사실상 상황을 이용하려던 크로니를 포함하여 제국방위부 간부들 모두 이젠 없어졌으니, 전쟁의 동기 자체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빠른 종전은 황제를 비롯하여 모두가 원하던 일.
이에 대해서 황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다. 북쪽 국경선에 마물을 대비한 병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복귀하라 전하라. 그리고 데라족에게 명하여 마물에 대응할 무기들을 북쪽으로 먼저 보급하라.”
“예, 폐하.”
크로니의 죽음은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안타까운 일은 아니었다. 아쉬운 일은 더더욱.
장관들은 보고서를 슬쩍슬쩍 넘겨 대며 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벌어진 상황은 대충 알겠고, 이제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 알아볼 차례였다.
“제국방위부의 프레디 호위관입니다.”
프레디가 자신을 소개하며 발언했다. 북부에서 마법부와 설전을 벌였던 그 내용 그대로였다. 이안 하델에게 지하신과의 연결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크로니의 죽음에도 작게나마 책임이 있노라고.
그러나 큰 반향이 있을 거라 예상한 프레디의 기대와 달리 장관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아니, 약속이라도 한 듯 묵과하는 것에 가까웠다. 긴 침묵 끝, 장관 중 하나가 마지못해 이리 물었을 뿐이다.
“…크흠. 저, 마법사 이안 하델?”
“예. 문화부 장관님.”
“해당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있는가?”
죽은 사람은 이미 죽었고, 아레나는 눈앞에 멀쩡히 앉아 있다. 이안이 지하신과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결정권은 마법부 장관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미 권력의 추가 기울었거늘, 이에 대해 누가 반발하겠는가? 이미 죽어 버린 크로니가? 아니면 이빨 빠진 제국방위부 장관이?
“저도 지하신이 어찌 그리 일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끄응. 그렇군.”
문화부 장관은 그리 말하면서도 아레나의 눈치를 살폈다. 마물과의 전쟁이 벌어지면 제국방위부도 제국방위부지만, 그 어디보다 마법부가 가장 큰 권력을 쥐게 될 터. 안 그래도 막강한 부서인데, 제국방위부가 수습될 때까지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황궁에 군림할 것이다. 황제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한 것이다만…….
모두의 시선이 아레나에게로 집중되는 지금, 그녀는 무슨 의중인지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존경하는 황제 폐하. 그리고 각 부처의 장관님. 현장의 상황을 글만으로 담아내려니 한계가 분명해 한탄스럽습니다.”
이에 프레디가 벌떡 일어나 호소하듯 외쳤다.
“제국방위부는 마법사 이안 하델에 대한 완전 격리와 면밀한 조사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더불어 이안과 동행한 자들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하길 청합니다. 모두 현장에서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아코와 뀨는 크로니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헤일은 적인 아스타나를 도와 보호막을 쳐 주었노라는.
하지만 장관들은 여전히 미온한 태도로 황제와 아레나의 낯만 살폈다.
“…이안이 이드갈을 조종했다는 부분, 보이십니까?”
아레나가 보고서를 들어 보이며 내용을 짚었다. 다들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집중했다.
“이드갈은 분명 마법사에게 위협적인 마석입니다. 자칫 영구히 마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지하신과 마물에게도 위협적인 물질이라는 뜻이지요.”
아레나는 이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선택이 진정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안이 상식을 벗어나는 마법적 재능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하신이 빚어낸 하나의 계획이라면? 이안과 함께한 미래의 끝이 절망으로 덮여,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고 원망하게 된다면?
‘몰라, 시발.’
아레나는 어쩐지 지하신의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고 나발이고, 직접 들은 것이 아닌지라 단체로 헛것을 들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존재 자체가 악(惡)의 근원인 놈 아닌가.
‘놈을 믿느니 이안 백 번 믿고 말지.’
그 믿음이 틀렸대도 상관없다. 만약에, 정말 만에 하나 아이가 지하신과 연관이 있다 한들-
‘우리가 잘 키우면 돼.’
계속 면밀히 지켜보며 선(善)을 주입하는 것.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안 하델을 마법부 밖에 둘 수는 없다는 게 그녀의 결론이다. 그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마법부는 이안 하델을 조사하고 이드갈 조종 능력을 연구하여 마물의 습격과 지하신의 봉인 방법을 찾아낼 생각입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 자를 황궁 안에 둔다는 게… 저는 크흠, 좀 우려됩니다만.”
“마법부 지하 감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세를 잘 읽는 장관들이라지만 황궁 전체에 대한 위협은 잘 구분했다. 불경한 혐의를 받는 꺼림칙한 아이를 굳이 황궁 안에 둘 이유가 있나 싶은 게다.
이안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고, 아레나의 의중이 훤히 보이는 터라 노골적으로 이르지는 못했지만, 사실 그냥 추방하거나 처리하는 게 제일 깔끔했다. 아무리 천재 마법사래도 바리엘의 운명을 걸 이유는 없으니.
“흐음.”
황제 역시 작게 신음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기가 없는 눈동자에선 어떠한 감정도 읽어 낼 수 없었다.
이안은 황제를 힐끔거렸다. 선황부터 내려온 축복이라고, 다음 황제의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며 동결까지 부탁했던 황제다. 그는 지금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침묵을 깬 것은 아레나였다.
“송구하지만, 마법부에서는 이안 하델에 대한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무슨 근거로요? 일이 일어난 지 이게 겨우 몇 시간 되지 않았습니까?”
“예. 그래서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아레나는 이안에 대한 사심은 빼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했다.
“지하신은 크로니 총지휘관을 살해했고, 이어 이안 하델에 대한 암시를 늘어놓고 사라졌습니다. 진짜 이안 하델이 어둠과 관련 있다면, 암시가 내려진 즉시 행동을 개시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이니 격리하니, 헛소리 듣기도 전에 말이다. 그 자리에 있던 제국군 병사들을 몰살했을 것이며, 황제를 눈앞에 둔 지금도 이리 가만있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혐의를 벗기엔 부족하지 않습니까? 장관들이 말끝을 늘어뜨리자, 아레나가 한숨과 함께 덧붙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안 하델 없이는 마법부 운영이 어렵습니다.”
“예?”
“말씀드렸죠? 버고스와 클리포포드를 비롯, 가이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12개 균열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앞으로 더 발생할지도 모를 균열은 뺀 숫자가 그렇습니다. 이 모든 곳에 마법사들을 파견하면 황궁은 누가 지킵니까? 마법부 업무는요? 하지만 균열지로 곧장 이어지는 길을 틀 수만 있다면, 파견이 아니라 외근 수준에 그칠 수 있습니다.”
“아레나 장관님.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천재적이고 경이로운 마력의 깊이. 영민하여 마법의 진리를 바로 이해하는 명석한 두뇌. 십수 명의 마법사가 달라붙어 하루에 겨우 한두 번 여는…….
“그 포탈. 이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도 혼자서 연다고요. 이제 이해가 좀 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