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29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29화(929/935)
제929화. 어린 게 좋아
원래도 정신없이 바빴던 마법부다.
하지만 지금,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마법사들 모두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초췌한 모습으로 건물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녔는데, 개중 제일 많이 들리는 단어는 역시나…….
“이안!”
“넵!”
이안은 열심히 달려가 계단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아이의 역할은 버고스와 클리포포드 수도를 잇는 포탈을 시간에 맞춰 열고 닫으며 마법사들을 전송하는 임무였다. 보좌관이 서류를 착착 넘기며 부탁했다.
“12시 15분입니다. 클리포포드 남부 지역의 살라에토르 9번 균열 지역 열어 주십시오. 파견할 마법사는 알톤과 댄인데… 아, 저기 오는군요.”
“죄송합니다!”
“이안, 늦어서 미안해!”
마법사들의 사과에 이안은 괜찮다는 듯 살짝 웃어 보인 다음 뒤뜰 땅을 손으로 짚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금빛으로 변하는 눈동자. 동시에 포탈이 허공에 생겨났다.
지이이이잉.
두 마법사는 외근증을 목에 거는 둥 마는 둥 황급히 포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이걸로 또 한 건 완료! 포탈을 닫은 이안은 재빨리 수식을 수정했다.
사악.
“다음은 어디입니까?”
“클리포포드 동부 지역의 아르코토 지역입니다. 균열 번호는 3번이군요. 복귀하는 포탈입니다.”
“아, 어제 17시에 열었던 거기군요?”
“맞습니다.”
아이의 손에는 지도가 들려 있었지만, 들여다보지도 않고 곧장 좌표를 슥슥 그어 댔다.
그 모습을 본 보좌관이 혀를 내둘렀다. 일반인은 지금 이안의 활약이 얼마나 큰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특히 대회의장에 모였던 그 장관 나으리들 말이다. 혼자서 포탈을 열었다 닫기를 하루에 몇 번씩이나 반복하면서도 오차 하나 없다니, 이건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네.”
눈 밑이 퀭한 채로 나타난 아레나가 보좌관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었다.
“장관님.”
아레나의 목소릴 들은 이안이 멈칫하자, 그녀는 커피를 홀짝이며 이안에게 신경 쓰지 말고 일에 집중하라며 손짓했다. 참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쓰리다.
“마법부 전체가 달려들어서 일주일 넘게 붙들고 있을 일을, 아이 혼자 몇 시간 만에 해낸다니….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아레나의 발악은 하늘로 향해 있었다. 신의 사랑이 이렇게 균등하지 못해도 되는 거냐고!
다 늙은 인간들은 하루만 밤새도 죽어 나갈 지경인데, 이안은 하룻밤 자고 오면 다시 멀쩡해져서는 탱탱한 피부를 자랑하지 않나?!
“무시하십시오, 이안.”
“…예, 3번 균열 열겠습니다.”
지이잉! 지잉!
이안의 손끝에서 마력이 휘몰아치며, 허공에 또 다른 포탈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내려오는 마법사 둘. 이에 보좌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째서 둘입니까? 세리는?”
“마물이 나타났습니다. 다행히 하급 중의 하급이라 금방 처리했는데, 그래도 불안한지 지역민들이 정찰 범위를 늘려 달라 간곡히 요청하여 세리가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음, 지금으로부터 여섯 시간 후 다시 열어 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마물…….”
사각.
지하신이 봉인되어 있던 균열이 깨진 게 원인임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로 각지의 균열에서 마물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이안의 포탈 덕에 이를 재빠르게 파악,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거기에 더해, 아직 균열의 힘이 미약한지 일반인도 저항할 수 있는 수준의 마물들만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레나가 중얼거렸다.
“100년 전이랑은 다르지.”
데라족의 무기는 100년 전부터 소량이지만 꾸준히 시장에 유통되고 있었다. 일반인들도 소지 가능하게끔 조치한 덕이었다.
이에 긴 거리를 유랑하는 상단이나 용병, 혹은 모험가 등 특별한 위험을 경계해야 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데라족의 무기가 선호되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마물이 하나둘씩 새어 나와도 감당이 가능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지금까지는.’
보좌관은 상황을 기록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를 짐작할 수는 없다만, 마물의 출몰이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건 확실했다. 이미 깨어난 지하신을 다시 어찌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게다.
“이안, 괜찮아?”
아레나의 물음에 이안이 끄떡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화창해서 그런가, 볼이 조금 붉었지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다. 아레나는 연신 자신을 불러 대는 한 마법사의 외침에 몸을 돌리면서도 신신당부했다.
“무리 없이 해. 알겠지?”
“네. 장관님.”
이안이 희미하게 웃으며 걱정 말라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보좌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음은 어디입니까?”
“이번에는 버고스 쪽입니다.”
“아, 수식을 완전히 바꿔야겠네요. 클리포포드는 끝난 건가요?”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정상 버고스로 연결해야 합니다.”
“…넵, 알겠습니다.”
이안은 흐트러지는 정신을 집중하며 다시금 포탈 마법의 수식을 수정했다.
이에 서류를 한 뭉치씩 들고 가던 마법사들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이안을 지켜봤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리 무한에 가까운 마력이 나오는 걸까?
“지치지도 않네. 어린 게 좋긴 하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 연 거지?”
“내가 알기로는 네 번?”
“와, 말도 안 돼. 우리가 네 번 열려면 일주일은 더 걸릴 텐데.”
“뻥치고 있네. 열흘도 더 걸리지.”
끙끙대기라도 하면 걱정이라도 할 것인데, 겉보기에 이안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새로운 포탈 수식을 계산할 때마다 즐거워 보일 정도. 마법사들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르며 사무실로 뛰어갔다.
“흠.”
한편, 선배들을 따라 걸음을 서두르는 나움. 그는 아이의 손끝에서 금빛 빛줄기가 계속해서 형상을 이루는 걸 지켜보며 스쳐 지나갔다.
“형!”
그때, 마법부 입구 쪽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 동생 한스였다. 한스는 종이 가방을 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형 속옷이랑 옷가지.”
“아, 고맙다.”
“얼굴 못 보고 가나 싶었는데 운 좋았네. 일이 그렇게 바빠? 집에 안 들어온 지 열흘째잖아.”
가족이 찾아온 걸 안 다른 마법사들은 나움의 서류를 대신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고, 그에 나움은 꾸벅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하고는 한스에게 다가갔다. 고작 열흘 못 봤는데, 그사이 키가 좀 큰 것 같다.
“미안. 당분간은 계속 이럴 것 같아.”
“몸 돌보면서 해.”
“그럼. 너는? 별일 없어?”
“별일은 무슨. 형이 벌어다 준 돈 편하게 쓰고 있지.”
좋은 저택에다 식사와 청소를 담당해 주는 시종도 있고, 매일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마차도 있다.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편히 공부해 본 적이 있던가?
나움은 한스의 장난스러운 말에 뿌듯해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근데 형, 이안은?”
마법부 일이 바빠지면서 한스와 못 본 지도 꽤 되었다. 듣자 하니 마법학 과목 자체가 폐강되었다던데.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한스는 궁금해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맘으로 속삭였다.
“요즘 밖에 소문이 돌아. 이안이 최초의 귀족 마법사잖아.”
“응.”
“사람들이 그거 거짓말이라고 떠들어 대더라?”
“뭐?”
정확히는 철부지 에너제스 멍청이들의 뒷담화였다. 물론 한스는 너무 허무맹랑해서한 귀로 흘렸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여, 뭔가 외부에서 들은 소식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지 말이다.
그 때문일까. 그놈들 머리통을 가방으로 후려쳐 버렸음에도 속이 후련하지 않았다. 왜 자꾸 그런 소문이 떠도는 걸까? 뭘 알아야 대응을 하든 할 텐데.
“…마법이 아니라 가짜 마법이라고, 뭐 마물이 어쩌고 지하신이 저쩌고 하는데 정작 제대로 아는 놈은 하나도 없어. 내용이 없으니까 떠드는 놈들이 입맛대로 꾸며 내고…. 형. 이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나움도 소문은 들었다. 분명 다른 부서에서 흘린 말이 와전되어 부풀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마법부 자체적인 보안 탓에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놔뒀어?”
“그놈들? 아니! 머리통을 후려쳐 버렸지.”
“제대로 후려쳤어?”
“당연하지.”
“잘했어.”
그저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이안에 대한 오해를 풀어 줄 뿐.
한스가 시선을 이리저리 또르륵 굴려 이안을 찾자, 나움이 넌지시 언질해 주었다.
“뒤뜰에 있어. 근데 지금 바쁘니까 인사는 못 할 거야. 멀리서 얼굴만 보고 가.”
“응. 알겠어.”
기다렸다는 듯 한스가 계단을 탁탁 내려가 뒤뜰로 달려갔다. 나움은 그런 동생의 뒷모습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걸음 했다. 사무실 눈치가 보이지만, 한스가 마법부를 떠날 때까지는 지켜볼 생각이었다. 워낙 험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마법부인지라…….
지이잉! 지잉!
“네. 좋습니다.”
“…다음은요?”
“음. 다음은 두 시간 뒤에 클리포포드 7번 균열입니다. 이안, 잠깐 쉬고 계시겠어요? 장관님께 보고서를 올리고 오겠습니다.”
두 시간의 휴식.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리 일하고 처음으로 갖는 휴식 시간이었다. 이안은 그대로 뒤로 발라당 쓰러져서는 눈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제야 머리칼 끝이 땀으로 흠뻑 젖었음이 느껴졌다.
‘하아.’
힘들다. 솔직히 말하면, 지쳤다. 하지만 대회의에서 아레나가 말했듯, 마법부에는 자신이 필요했다. 지하신과 연관 없음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이아의 안전을 위해 열심히, 계속 열심히 하는 거.
“야.”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눈을 뜨니, 한스의 얼굴이 거꾸로 보였다. 이안이 일어나려고 하자 한스가 가만히 누워 있으라며 이마를 툭, 밀었다.
“…오랜만이야, 한스.”
“그러게. 마법부 진짜 악랄하네. 너처럼 어린애를 이렇게까지 굴려?”
“그런 거 아냐. 나움 형님도 오랜만입니다.”
“엥? 웬 인사? 같은 마법부면서 얼굴도 못 봤어?”
“일이 바빴다니까.”
“와, 악독하다. 악독해.”
이안이 재밌다는 듯 킥킥거렸다. 아레나 장관님이 들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
“하아.”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탓에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이내 조금씩 쌕쌕 올라오는 이안의 숨소리. 바로 단잠에 빠진 것이다.
한스는 조심스럽게 이안의 머리칼과 옷깃을 정리해 줬고, 안쓰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기절했다.”
“기절했네.”
한스와 나움이 동시에 속삭였다.
나움은 아이의 이마에 손을 가볍게 대고서 마력을 나눠 줬다. 이안의 것에 비하면 양도 질도 보잘것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어이, 나움!”
“아.”
그때, 지나가던 마법사들이 나움과 한스를 발견하고는 큰소리를 내었다. 한스가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고, 뒤늦게 이안을 발견한 마법사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이안 왜 이래?”
“자는 거예요. 쉿.”
“아. 놀래라.”
“방금까지 쉬지도 않고 포탈 열고 있더만, 바로 잠들었어? 휴.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러게. 티가 안 나서 몰랐어.”
“에긍, 어린 것이 뼈 삭겄네.”
마법사들도 하나둘 손을 모았다. 나움의 손 위로 조심스레 포개지는 마음들. 그들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금안을 빛냈다
지이잉. 지잉.
눈앞에서 펼쳐지는 진기한 광경에, 한스는 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 반짝이는 금안! 언제 봐도 경이로웠다. 이리 가까이서 보니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다. 꼭 신의 사자(使者) 같잖아!
“이 정도면 됐겠지?”
짧지만 꿈같았던 순간이 끝났다. 어느 정도 마력을 불어넣어 줬다고 생각했는지 마법사들은 금안을 거두었고, 신의 사자 같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 모습을 찾았다.
“야야, 조심해라. 애 깰라.”
“보고서는? 너 아까 나한테 준 거 어디 뒀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알겠지.”
“하아… 됐다. 가자. 장관님이 결재 5분 안에 받아 오랬다.”
“이미 늦었는데?”
“더 늦으면 뒈져.”
빠르게 사라지는 마법사들. 이 틈에 나움도 한스를 마법부 밖으로 배웅했다. 어느새 이안 곁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 뒤, 푹 잔 이안이 눈을 떴다.
“음?”
머리맡에 양산이 씌워져 있다. 근처 테이블 벤치엔 보좌관이 앉아 이안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새롭게 받아온 서류가 한가득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두 시간 벌써 지났나요?”
“5분 정도 남았습니다.”
이안은 벌떡 일어나 제 손을 꼬물거리며 살폈다. 보좌관이 안경을 바로 쓰며 물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저기, 보좌관님.”
“예.”
이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꽤나 진지하게,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노라 일렀다.
“아레나 장관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요?”
“제가 팔팔한 이유요. 어려서 그런 게 맞았어요. 겨우 두 시간 잤는데, 온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요!”
이안이 활짝 웃자, 보좌관도 따라 웃음을 터트렸다. 두 시간 동안 뒤뜰을 지나간 마법사가 몇이나 되는지, 아이는 모를 것이다. 알 필요도 없고.
“그렇군요.”
“네! 어린 건 좋은 거였습니다!”
“깨달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요?”
이안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뭐든 맡겨만 달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저 멀리, 골골대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마법사들 틈바구니로 쏘옥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