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3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32화(932/935)
제932화. 흰 봉투
“확실히, 마물 습격 사례가 급감했군.”
대회의장.
장관들은 마법부가 올린 보고서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몇 년 전, 한창 기승을 부릴 때만 하더라도 바리엘 접경지나 타국의 피해가 만만치 않았는데, 어찌 시간이 갈수록 마물이 줄어든 것이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장관들이 아레나를 치하했다.
“마법부가 참 고생 많았습니다.”
“예, 마법부의 활약 덕분이지요. 이대로만 간다면 다시 가이아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겝니다.”
“그럼 남부에 접근 금지 구역으로 설정한 지역도 슬슬 해제하면 어떻겠습니까? 그쪽에 하필이면 금광이 있는 터라, 그간 경제적 손실이 꽤 컸습니다만.”
“보자, 에… 지난 반년간 마물 습격이 고작 3회에 그치는군요. 어떻습니까?”
“찬성합니다.”
“저도요. 동의합니다.”
“아레나 장관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황제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다. 아레나는 빈 황좌를 한 차례 힐끔거리고는 장관들의 의결에 참여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앞으로는 제국방위부 측에서 주도하여 수고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출몰한 마물들도 전부 하급에 그친 터이니, 마법부는 비상시에만 움직이겠습니다.”
아레나의 발언에 서 있던 마법사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드디어 여기저기 싸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마법부가 관여하던 균열 관리 업무가 줄었으니,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
마법사들이 표정 관리를 하며 웃음을 꾹 누르는 동안, 제국방위부 장관 프레디는 턱만 매만졌다. 그리고 이내,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10년 전, 제국방위부 장관과 부장관 그리고 차기 장관으로 유력했던 크로니까지 연달아 죽자 부서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국가적 비상사태에 준할 정도의 혼란이었다. 파벌이 나뉜 것은 당연하고, 출세욕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짓누르며 한바탕 홍역을 치렀지 않나.
그나마 다행한 것은, 당시 황궁의 주체가 마법부였기에 그들만의 전쟁에 그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레디 장관님. 더 하실 말씀이라도?”
아레나가 보란 듯이 질문했다.
그녀는 프레디가 제국방위부 장관직을 노린다는 걸 진즉에 눈치챘고, 설령 장관직에 오른다 해도 아무것도 못 하리란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북측과 아스타나. 제국방위부와 마법부. 서로 은폐해야 할 약점을 꽉 움켜쥔 게 현재 구도이지 않나?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제국방위부에게 마법부에 덤빌 여력 따위 없을 테니까.
“없습니다. 아레나 장관님.”
그래도 프레디는 그나마 꽤 영리한 편이었다. 장관에 오르자 넙죽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수그려 아레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자리는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힘의 균형이 참 절묘했다. 마물의 범람만 빼면, 황궁은 정말이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시죠.”
“그럴까요? 고생하셨습니다.”
“예, 다들 수고하셨어요.”
장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지만, 아레나는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서류만 뒤적거렸다. 이에 의아해하는 마법사들 사이로, 이안이 먼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선배님들도 앉으시죠.”
아레나가 나가지 않는다는 건, 우리끼리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각 부서의 대장직 외 마법사는 오로지 이안 혼자였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품지 않았다. 이안은 이미 오래전, 그러니까 10년 전부터 포탈 책임자로서 대회의에 매회 참석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솔직히, 아무도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차기 장관감으로 모두 이안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물론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예전에, 제국방위부 놈들이 이드갈 노리려고 했던 사건, 잊지 않았지?”
“그걸 어찌 잊습니까?”
북부 소수부족과 손잡고 마법부 뒤통수치려고 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소수부족 측과 아스타나 측의 증언이 엇갈리고 설상가상으로 마물의 범람까지 이어지며 결국 흐지부지된 사안이었다. 그런 걸로 견제할 만큼 제국방위부가 위험한 놈들도 아니었고.
“이제 마물 관리 업무가 제국방위부 측으로 넘어갔으니, 슬슬 까불 수도 있거든?”
“그, 장관님. 그리 말씀하셔도 되겠습니까?”
“뭐 어때? 듣는 사람도 없는데. 왜? 너 가서 꼰지를 거야?”
“아니, 품위를 지키자는 거죠.”
“얼굴에 잉크 자국 묻히고 다니는 놈이 품위를 논하네.”
크흠. 아레나의 지적에 마법사가 얼굴을 대충 쓸어 내리며 헛기침을 해 댔다.
“아무튼, 최근에 정보가 하나 들어왔어.”
“정보요?”
“흑정단.”
가장 기민하게 반응한 것은 이안이었다. 흑정단이라면, 10년 전 크로니의 저택에서 발견했던 명함 속 상단 이름이지 않나. 이드갈과 함께 있었던.
“흑정단이요? 이제 와서 갑자기요?”
“내 말이. 뭐, 당시에는 워낙 바빠서 찾을 수도 없었고 마침 크로니도 죽어 버리는 바람에 뒷전이었는데. 얼마 전에 하완 오가는 상단이랑 마석 거래하다가 우연히 들었어.”
마석 거래를 통해 들은 거라면 아코도 알고 있겠군. 마법사들은 보채듯 열심히 고갤 끄덕이며 아레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크로니랑 흑정단, 서로 가까운 관계였더라고.”
“정말입니까?”
그리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이리 사실로 밝혀지니 새삼 놀라웠다. 지금까지 어떻게 소식 하나 없이 감쪽같이 숨어 있었던 거지?
아레나가 설명했다.
“크로니가 그렇게 되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흑정단 놈들, 그 당시 잠적 후 이름까지 바꾸고 신분도 싹 세탁한 것 같아. 소식 알려 준 상단주도 그 밑에 일하는 놈 얼굴 알아보고 눈치챘다 하더라고.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지만.”
그에 한 마법사가 손을 슬쩍 들어 질문했다. 이안을 살피는 눈빛이 조심스럽다.
“한데, 장관님. 흑정단을 저희가 쫓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미 크로니는 죽었고 상황 종료인데요.”
굳이 수고를 들여 그 흑정단이라는 놈들을 파헤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동조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끝난 사안이긴 하지. 근데 흑정단 그놈들이 크로니한테 정보를 준 거잖아. 아스타나 쪽한테 이드갈 매장지에 대한 단서가 있다는 것도 크로니 그놈이 어떻게 알았겠어? 흑정단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는데, 그럼 우리도 상대에 대한 실체를 확인해 둬야지. 안 그래?”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미안한데, 아직 안 끝났어. 새끼들아.”
아레나가 싱긋 웃으며 팔짱을 꼈다. 당시 크로니 파벌 중 상당수가 제국방위부에 남아 있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조직으로 개편되었지만, 사람이 어디 가나?
‘뭐라도 칼자루를 들고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다고.’
혼란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황궁이 평화로웠던 건, 그간 마물들로 인해 모두의 시선이 외부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부터는 이 일을 제국방위부가 맡게 될 테고, 그로 인해 혹 마물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면? 황궁은 다시금 여러모로 시끄러워질 것이다.
‘황제 폐하 문제도 있으니까.’
다행스럽게 황제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지만, 그 손아귀가 너무도 가냘팠다. 언제고 신께서 부르신다면 세상을 등질 준비가 되어 있는 노쇠한 황제.
그가 서거한다면, 황궁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제국방위부가 시끌시끌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고, 더럽고, 어지러운 정세가 펼쳐질 것이다.
“뭐가 안 끝났다는 말씀입니까?”
“있어, 그런 게. 아무튼 대비가 왜 대비냐? 미리미리 해 두니까 대비지. 됐고, 흑정단 관련해서 조사 나갈 사람? 다행히 상단주랑 의심 세력들 전부 현재 바리엘 중앙에 머무는 중이다.”
아, 마물 업무 내려놓고 이제 좀 널널해지나 싶었는데, 이게 뭔 날벼락이다냐. 마법사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말을 아끼자, 이안이 자청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계속 이안한테 짬 때리네?”
“예? 저희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재깍재깍 지원자가 없으니까 막내가 눈치 보고 이러는 거잖아!”
“이안이 눈치 볼 사람입니까?!”
“하긴. 그것도 그래.”
서류 더미로 책상을 내려치려던 아레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이안이 무덤덤한 투로 말을 이었다.
“흑정단 명함을 발견한 게 저니까,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 크로니 저택에 다시 들어갈 일이 생기더라도, 저라면 절차상 문제도 없을 거고요.”
크로니의 친부인 라토 알파트가 죽은 이후, 저택은 쭉 빈집으로 남아 있었다. 거액의 세금이 부채로 쌓여 지금껏 누구도 상속받지 않은 것이다.
이안 또한 한 차례 거절하긴 했지만, 아직 상속을 주장할 권리는 유효했다. 즉 저택에 출입할 명분이 있는 셈이다.
“음. 진짜 괜찮겠어?”
“문제없습니다.”
귀찮은 일에서 벗어났다! 마법사들이 다시금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차라리 마물 때려 부수는 게 낫지, 어디 가서 정보 캐고 은밀히 숨어들고… 이런 건 진짜 딱 질색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안의 생각은 달랐다.
‘장관님 말씀이 다 맞아. 제국방위부 견제를 위해서는 혹시 모를 크로니의 과오를 모두 파헤쳐 두는 게 좋아. 그리고 혹시 모르지. 부모님 죽음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
크로니는 현재 순국 군인으로 기록되어 사람들의 추억 속에 잠들어 있다. 그런 그의 민낯을 모두에게 알리고 바로 잡으려면, 지난 세월 묻혀 있던 증거를 찾아내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분명히 남아 있다.’
황제 폐하의 신변을 위협했던 크로니의 수족 말이다.
황제의 측근 쪽에서는 축출된 인물이 없었다. 크로니가 죽자마자 활동을 멈추고 숨어든 까닭일 텐데, 흑정단을 파고들면 이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 그럼 오늘 회의, 진짜 끝이지요?”
마법사들이 목과 어깨를 으드득 돌리며 일어나려고 하자, 아레나가 손깍지를 끼며 눈을 날카롭게 번뜩였다.
“아니. 아직 하나 남았다.”
“하, 하나 더요?”
난리 났네. 마물은 잠잠해졌는데 마법부는 왜 자꾸 일이 늘어나는 건데? 마법사들이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뭐, 뭔데 그러십니까. 무섭게.”
“아주 중요한 문제야.”
“괜히 분위기 잡지 마십쇼.”
아레나는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로만드로.”
“예?”
“로만드로 요즘 좀 이상하지 않나?”
갑자기?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이안까지 의아해하며 눈썹을 까딱였다. 워낙 업무가 바빠서 신경 쓴 적이 없는데.
“글쎄요. 살이 좀 찌셨다는 것 정도?”
“에, 생각해 보니까 요즘 들어 자리에 잘 안 계시던데요. 계속 어디 나가려고 하고. 움직이는 거 그렇게 싫어하시던 양반이.”
“행정부 쪽이랑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요?”
아레나가 비상하게 눈빛을 쨍- 하고 찢었다.
“부서 이동 신청할 것 같아.”
“예? 왜요?”
“몰라! 너희도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 행정부랑 교류가 많다고! 저번에는 나한테 반차 쓴다고 해 놓고 행정부로 가더라니까?”
“에이, 설마요.”
“아냐. 내 감은 확실해. 로만드로, 속으로 뭔가 딴생각을 품었어.”
로만드로는 마법부의 핵심 인력 중 하나다. 마법사는 아니지만, 그가 없으면 업무 뒤집어지는 게 한두 개가 아니란 말이다.
마법사들은 저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일어나지?”
“어. 그러자.”
“이것들아! 이거 진짜 중요한 문제라고!”
“아니라니까요, 하여간 똥촉 오져.”
“그치, 이안?”
이안은 잘 모르겠다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서류를 정리했다.
잠시 후, 마법사들이 우르르 나갔다. 그들이 마법부로 돌아올 때까지 아레나는 계속해서 로만드로의 부서 이동을 걱정하며 조잘댔다.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들, 장관한테 똥촉이 뭐야, 똥촉이…….”
끼이익.
아레나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장관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주한 익숙한 얼굴. 로만드로였다. 그는 가만 서서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서류를 갖고 따라오던 이안도 놀라서 멈칫거렸다.
“아, 장관님.”
“로, 로만드로?”
로만드로의 손에 들린 흰 봉투. 아레나의 안색이 파리해졌고, 로만드로는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급히 알리려고 했던 건 아닌데요.”
“잠깐! 로만드로,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아니면 너무 오래 일했나? 내가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그거 진짜 안 좋은 선택이야.”
“예?”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아레나가 손으로 엑스 자를 그으며 거부하자, 로만드로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저한테도 선택할 권리가 있는데요.”
“있지. 있는데, 후회할 게 빤해. 내가 여기저기 들어서 알아. 생각만큼 그렇게 좋지 않다?”
“장관님!”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미묘하게 흘러가자, 이안은 로만드로 손에 들린 봉투를 슬쩍 빼 들었다. 이내 내용물을 확인한 이안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장관님.”
“어, 그래! 이안아 그거 불태워 버려! 당장!”
“이거 청첩장입니다.”
“아주 찢어- 어?”
“청첩장이요.”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흰 봉투. 로만드로는 울상이 되어서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