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33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33화(933/935)
제933화. 러거스펠 조사
“예? 결혼이요?”
청첩장을 받은 마법사들이 황당하다는 듯 로만드로를 쳐다봤다.
“아니, 이 아저씨가 언제 연애를 다 하셨대?”
“우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동안 뭐 하신 거예요? 네? 어쩐지 요즘 살도 막 찐다 싶었어. 데이트하느라 그러셨구나?”
“와…. 로만드로 님도 가는데 내가 아직 못 가고 있네.”
“너는 그럴 만해.”
“이 사람들아! 말들이 너무 심하잖앗!”
마법사들의 웅성거림을 듣던 로만드로가 너무한다며 소리를 빽 질렀다. 워낙 충격적인 소식인지라 귀 기울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만.
“상대분 성함이… ‘비비안나’네요? 행정부의 그분이십니까?”
신부 이름을 확인한 이안이 물었다. 어딘가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로만드로가 요즘 들어 행정부에 뻔질나게 드나든다는 말에서 유추한 것이다.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로만드로의 얼굴이 헤- 풀어졌다.
“맞네. 사실 만난 지는 꽤 되었어.”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지, 원. 로만드로 님, 무서운 사람이었네?”
“원래 사내 연애는 공개하는 거 아닐세. 크흠.”
“그건 그래. 왜, 저번에 헬렌 쟤, 문화부 찰스 만나다가 헤어져서-”
퍼억!
워낙 오래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사생활을 꿰고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마법사들끼리 멱살을 잡으며 다시 투덕대자, 이안은 청첩장을 잘 챙겨 넣고서 축하했다.
“축하드려요, 로만드로.”
“고맙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우리는 그래도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데.”
한 지붕이라 한다면, 자크 백작저를 말하는 것이었다. 벌써 의탁한 지 10년. 이안은 그렇다 치고, 어영부영 로만드로까지 신세를 오래 졌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안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이안은 조금 눈치채고 있던 차였다. 다름 아니라, 바르사베 덕에.
“로만드로, 요즘 이상해. 향수를 뿌리더라니까?”
“아니, 저 아저씨가 오늘따라 넥타이 고르는 데만 한 시간이네. 여자 생겼나?”
“이안. 분명히 뭐 있다. 이 누님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당시에는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짜 대단한 직감이지 않나.
마법사들에게 한참 놀림받은 로만드로가 손수건으로 땀을 훔쳐 내며 덧붙였다.
“그간 너무 바쁘기도 했고… 괜히 결혼한다고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미뤄 왔던 거야.”
“지금은 한가해 보여요?”
“며칠 전부터 정시에 퇴근하더구먼?”
“아하.”
나름의 기준이 있었구나. 마법사들은 아무튼 재밌는 일이 생겼다며 청첩장을 들여다봤다.
“오랜만에 축제겠네요. 장관님, 이날은 다 같이 휴업 때리죠?”
“죽고 싶어? 이번 달 근속 일수 제일 적은 놈이 사무실 지킨다. 참고로 누구인지는 말 안 해 줄 거니까, 나다, 싶으면 불붙은 것처럼 노동해라.”
“헉! 씨, 나 며칠 근무했더라?”
“로만드로 님, 장소는요? 신혼집이에요?”
“으응. 다행히 지난주에 미리 매매 마무리 지었어. 결혼식 날까지 정원 꾸며 놓으려고.”
“오? 어딘데요? 중앙?”
“저택이에요?”
“그렇지. 아무래도 가정을 이루려면 조금 무리해서…….”
“중앙에서, 심지어 저택을 샀다고요? 이 아저씨 완전 능력 있었네!”
“그, 자크 백작님 덕분에 여러모로 저축을 많이 해 놔서…….”
“비비안나 님이라. 완전 인품 좋으시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좋으시겠어요.”
마법사의 칭찬에 다시 헤벌쭉.
비비안나는 균열로 인한 복구 사업을 주관하는 행정부 일원이었다. 실제로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고 성격도 다정하여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엄지를 치켜드는 부원.
마법사들은 겉으로 계속 놀려 댔지만, 임자끼리 잘 만났다는 생각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 그럼, 여기까지 떠들고 이제 일 하지?”
“옙. 알겠습니다아.”
아레나가 박수를 짝짝 치며 마법사들을 해산시켰다. 다들 제 책상으로 돌아가 서류 작업에 몰두하려는데, 이안만 웃옷을 챙겨 입으며 퇴근 준비에 나섰다. 옆자리 마법사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이안, 오늘은 좀 일찍 가네?”
다른 마법사와 달리 이안은 무조건 정시 퇴근이었다. 야근하겠다고 나서면 아레나가 길길이 반대했던 탓이다. 그렇기에 이안은 무조건 근무 시간을 끝까지 꽉꽉 채우고서 퇴근했는데…….
“아, 나움 형. 일이 좀 있어서요. 한스 만날 것 같은데 전할 말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 나움이 칸막이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서 웃었다.
“오늘도 못 들어간다고 전해 줘.”
“네. 알겠습니다.”
이안은 고개를 가볍게 까딱거리며 마법사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그들 모두 다정하게 이안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3년 남았다, 이안아. 즐겨라, 즐겨!”
“이안이, 성인식 하자마자 바로 야근시키자.”
“하여간 악마 같은 새끼. 이안아, 얼른 가.”
이안이 희미하게 웃으며 마법부를 나섰다. 조금 이른 퇴근이었음에도 하늘이 제법 어둑했다. 마차 대신 직접 날아 황궁 밖으로 나온 이안은 한스와 만나기로 한 광장 인근에 유유히 착지했다.
타앗.
마법사임을 알아본 몇몇 시민들이 친근하게 인사하거나 예의를 갖추어 고개 숙였다.
“한스.”
“어, 일찍 왔네?”
한스는 광장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이안이 소년으로 자나라는 동안, 그는 어엿한 청년이 되어 황궁 입부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이안이 벤치 옆에 앉으며 책을 살폈다. 행정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이미 몇 번이나 읽었는지 끄트머리가 다 해졌다.
“공부하는데 불러내서 미안.”
“아니, 괜찮아. 전서구 그놈, 성격 이상하더라. 창문 열어 줬더니 손등을 막 부리로 치는 거 있지?”
이안은 대회의가 끝나자마자 한스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흑정단에 대한 조사를 맡기로 하였으니, 한스의 도움을 좀 받고자 한 것이다.
“그거 물 달라고 그러는 거야.”
“아, 그래? 몰랐네.”
“시험 준비는 잘 되어 가고?”
“문제없지.”
한번 보면 죄다 외워 버리는 한스가 책을 헤질 때까지 읽었다. 이안이 예상하기에 이번 입부 시험 수석은 분명 한스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한스는 행정부에 입부하여 언젠가 수상 자리까지 오를 것이라고, 이안에게 제 원대한 꿈을 비밀스럽게 속삭여 왔다.
“형은?”
“오늘도 집 못 들어가신대.”
“그럴 줄 알았지.”
“그래도 조금 있으면 널널해질 거야. 마물 대응을 마법부가 아니라 제국방위부에서 하기로 했거든.”
“그래? 잘 됐네.”
“아, 그리고 오늘 로만드로가 청첩장 줬다? 너도 아마 곧 받을 거야. 우리 좀 여유로워질 때까지 기다렸대.”
“뭐어-?!”
놀란 한스의 눈이 툭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믿기지 않는 것인지 당황한 것인지, 복합적인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로만드로가 저 표정을 본다면 다시금 입술을 비죽일 것이라고 이안은 생각했다.
“아니, 대체 언제 연애를 다 하셨대?”
“마법부 사람들이랑 똑같은 말 하네.”
“아니, 우리 형도 장가 못 가고 있는데!”
“나움 형은 아직 멀었잖아.”
“아니, 생각할수록 진짜 대단하잖아? 마법부가 좀 바빴어?”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원. 이안은 행정학 책을 가볍게 집어 들며 덧붙였다.
“상대분이 행정부 소속이래. 너 합격하면 만날 수도 있겠다.”
“청첩장 있어? 나 실물로 보기 전엔 못 믿을 것 같아.”
이안은 조금 유난 떤다고 생각하면서도 품에서 청첩장을 꺼내 줬다. 한참이나 글자를 읽어 내리던 한스가 고개를 서서히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미쳤네.”
“로만드로 앞에서는 자중해. 아까 울 뻔했거든.”
“비비안나라. 어떤 분일까? 근데 뭔가 이름이 익숙하다.”
“그래? 황궁 내에서는 그렇다 쳐도 외부인이 아는 경우는 잘 없을 건데.”
비비안나의 평판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나 있는 일이지, 대외적으로는 이름 알려질 일이 없다. 균열지 수습 중에 도움받은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아냐. 분명히 들은 적 있어. 비비안나, 비비안나, 비비, 비비…….”
한스는 이마 가운데를 꾹 누르며 기억을 되새겼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그거였네!”
“그거?”
“왜, 예전에 내가 처음 마법부 방문했을 때, 너랑 나랑 형이랑 다 같이 별채 구경 갔었잖아.”
갔었지. 그리고 크로니도 만났고. 이안은 계속 말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때 기억 안 나? 내가 네 이름 쓰인 책 발견했었다고. 책 제목은 <히엘로 일대기>, 첫 문장이 아마도…….”
너무 깊은 기억 저편이라 떠올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한스는 계속해서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이안 님,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이안도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 것 같다며 작게 호응했다. 하지만 그게 왜?
“그 책 저자가 비비였어.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나.”
“전혀 상관없는 사람 아니야?”
“몰라. 비비안나라고 하니까 갑자기 떠올랐어. 뭔가 비비안나 님 애칭일 것 같지 않아?”
“글쎄.”
한스가 오랜만에 떠올린 기억에 흥분하는 동안, 이안은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아까보다 훨씬 어둑해진 주위. 꽃무덤 주위의 촛불에 불이 들어왔다.
“근데, 오늘 왜 만나자고 한 거야?”
그러고 보니까 아직도 부른 이유를 안 물었네. 한스가 의아해하며 묻자, 이안이 골목길을 가리키며 물었다.
“러거스펠 구역, 기억나?”
나움과 한스가 마법부에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 바리엘 중앙의 슬럼가였으며, 온갖 범죄의 온상이자 불안정한 치안의 대명사.
한스가 당연하다며 되물었다.
“지금 나한테 기억이 나냐고 묻는 거야?”
“그것도 그렇네.”
우스운 질문이었어. 10년 전 읽은 책 문구도 기억하는 친구에게 적합하지 않은 질문.
“거길 조사해야 하는 일이 생겼어. 지도는 있는데, 주민들만 아는 뒷골목이나 건물 등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
“마법부가 러거스펠을 조사한다고?”
경비대도 아니고 별 희한한 일이다. 한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책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쪽 동네는 내가 빠삭하지. 그리고 거긴 어지간하면 변하질 않아.”
술주정뱅이와 약에 찌든 인간들, 더러운 거리, 경비대의 존재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소란스러운 거리 등등.
“나움 형이 말했는데, 우리가 처음 거길 갔을 때랑 나올 때, 변한 게 하나도 없었대. 시간이 멈춘 거지. 바리엘 중앙의 한 구역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세계라는 거야.”
망하고 새로 생긴 가게들은 있을지언정, 전체적인 변화는 특별히 없다는 게 한스의 설명이었다.
그리 말하고도 조금 씁쓸했는지, 한스는 멋쩍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아무리 험난한 곳이라지만 마법사와 함께 가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리고 운이 좋으면 사이좋게 지냈던 이웃들도 볼 수 있을 거다. 밤중 갑작스러운 산책으로 아주 적합했다.
“대신, 나 집까지 데려다 줄 거지?”
“…마차 불러.”
“나도 하늘 좀 날아 보자!”
“무거워.”
이안이 딱 잘라 거절하자 한스가 낄낄대며 이안의 어깨를 툭툭 쳐 댔다.
그렇게 그들은 인파를 헤치며 조금씩 러거스펠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밤중이라 그런가.’
짙고 인위적인 냄새가 찬바람을 타고 훅 끼쳐 왔다.
러거스펠 입구, 사람들이 백금발의 미소년을 힐끔거리기 시작하자, 한스가 이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로브 뒤집어써.”
“왜?”
“…설명하기 싫으니까 걍 해.”
이안은 잠시 망설였지만, 뭐 어쩌겠나?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그는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서 한스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