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34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34화(934/935)
제934화. 오델루크 상단
금화를 묶음으로 두고 세던 남자가 때아닌 인기척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가이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배송해 주는 ‘오델루크 상단’의 상단주, 오델이었다.
똑똑.
“단주님.”
“뭐냐. 내가 얼씬하지 말라고 했잖아!”
주판 만질 때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방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그는 혹여나 싶은 마음에 책상 아래 숨겨 두었던 칼 손잡이를 스윽 붙잡았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이 밤에? 거래처인가?”
“아니요. 젊은 청년 둘인데, 이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런 미친것들.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냐?”
러거스펠에 정신 나간 놈들이 한둘인가? 돈 좀 빌려달라며 하루에도 수십 명의 주정뱅이, 약쟁이, 도박꾼들이 와서는 손을 싹싹 빌어 댔다.
한데, 지금 이름도 모를 인간 둘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돈 계산 하는 걸 방해한다고?
“저, 그게 심상치 않아 보여서요.”
“너 이 새끼, 딱 기다려.”
오델은 급하게 금화를 금고에 챙겨 넣었다. 부하 놈들 좀 두들겨 패고 다시 계산할 생각인 게다. 그가 막 금화를 밀어 넣으려는 순간, 부하가 덧붙였다.
“아레나 님이 보냈다는 말만 하던데요.”
“…누구? 아레나?”
아레나라 하면 마법부의 그 싸가지없는 장관이잖아? 오델이 멈칫거리더니 금화를 싹 정리하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얼굴이 퉁퉁 부은 부하의 모습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이어서 뒤에 함께 서 있는 두 젊은이. 로브를 쓴 소년이 앞장서 있고, 책가방을 멘 청년은 조금 긴장했는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상태였다.
“…뭐, 뭐야.”
부하 놈 꼬라지가 왜 이래? 부하는 촉촉해진 눈을 애써 감추었고, 이안은 그의 어깨에 슬쩍 손을 올리고서 자신을 소개했다.
“아레나 님의 소개로 왔다 하였음에도 도통 말이 통하지 않길래, 소란이 좀 있었소.”
“아…….”
이 멍청한 놈들! 마법사도 못 알아보고 대응을 엉망으로 했나 보다. 오델은 로브 속 소년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물었다.
“혹시 이안 하델 님이십니까?”
상당한 미소년에 백금발, 벽안. 게다가 숨길 수 없는 귀족의 자태까지. 아레나가 보낸 사람 중 이런 특징을 가진 이는 단 한 명뿐이다.
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맞노라고 인정했다.
“오, 나를 아는군. 역시 상단주일세.”
“아는 것이 곧 돈이지요. 부하 놈들의 무례에는 용서를 구합니다. 아레나 님이 보내셨다고요?”
이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델은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하면서도 의아하다는 듯 입술을 물어뜯었다. 마침 그의 방에는 혹시 모를 침입에 대비하여 인근에서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면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마석이 존재했다. 한데.
‘조용했단 말이지. 마법 없이 팼단 건가?’
저 소년이?
오델은 나중에 부하 놈들에게 자세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소파 제일 윗자리를 이안에게 내주었다.
“가서 차라도 내와라.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됐네. 바로 일어날 거라.”
“아아, 넵. 알겠습니다.”
오델이 썩 문 닫고 나가라 손짓하자, 부하들이 부리나케 사라졌다.
한스가 긴장해서 책가방을 끌어안고 있는 동안, 이안은 유유히 방 안을 둘러봤다.
“꽤 오래 있을 예정인가 보군?”
건물을 통째로 빌려서 이렇게 서재를 꾸민 걸 보니. 오델은 의례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가이아 전역을 떠돕니다. 한 곳 한 곳이 귀하여 가능한 많은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요.”
“마법부와 마석 거래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고 들었는데.”
“예, 한, 20년쯤 되었을까요? 제 아버지가 전 장관님 때부터 이어온 인연입니다.”
“그래? 깊은 인연인데, 내가 너무 무례했군,”
부하들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은 걸 말하는 게다. 오델은 손을 가로저으며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제가 부하 놈들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것이지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스윽.
이안은 가볍게 다리를 꼬았다.
작은 몸짓이었음에도 오델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천재 마법사라는 소문을 들어서일까, 아니면 귀족이라는 걸 알아서일까. 아무리 그래도 온 세상 돌아다니며 별별 인간 다 만나 본 오델인데, 고작 이런 소년에게 위압감을 느낀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흑정단 단원을 보았다면서?”
“예예, 정확히는 본 것이 아니라, 의심되는 자를 보았다고 말씀드렸지요. 아레나 장관님께 다 전달해 드렸습니다만?”
“내가 조사 임무를 새로이 맡게 되었네. 하여 다시금 내용을 알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바쁜가?”
바쁘냐고? 바빠도 아니라고 해야지. 오델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하델 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바쁘신 마법사님 앞에 두고 시간이 없다 하면 말이 안 되지요.”
“그리 말해 주어 고맙네.”
한스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약간 뼈가 느껴지는데… 기분 탓인가? 아니, 그건 그렇고. 이안이 쟤, 왜 저렇게 자연스러워?
‘귀족은 다르다, 이건가.’
평소 자신이 아는 이안이 아니었다. 마법사로 전장에 나가 마물 처치에 공을 세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상상이 안 되었는데, 지금 보니까 업무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오델은 헛기침을 큼큼 하더니 아레나에게 했던 말을 다시금 시작했다.
“그러니까, 흑정단은 저희처럼 상단 일을 하는 놈들이 아니라 정보상 같은 놈들이었습니다.”
“아레나 님은 해결사 단체라고 하던데?”
“아, 그러니까, 그 정보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뭐 그런 방식을 애용하는 놈들이었죠.”
오델은 깨달았다.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째서 똥개 훈련 시키듯 아레나에게 했던 말을 다시금 반복하게 하는지.
‘비교해 보겠다는 거군.’
자신이 아레나에게 말했던 것이 사실인지, 거짓이라면 어느 부분이 꾸며진 것인지, 혹여나 놓쳐서 알리지 못한 정보가 있는지 등등.
이안은 눈치챘냐는 듯이 싱긋 웃으며 턱을 괴었다. 어서 계속해 보라며.
‘징글징글한 마법부 놈들.’
오델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마석 거래처로는 제일 큰 상대였지만, 어찌 보면 길거리 깡패보다 더한 놈들이지 않나. 바리엘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항상 값도 후려치고…….
“크흠. 저도 소문만 무성히 들었지, 그쪽 주인을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한 번은 흑정단에서 뭐 무기를 만들려는지 서쪽 근방에서 마석 거래 제안을 해 왔습니다.”
“당시 거래했던 마석은?”
“예, 하급 보로탈 두 궤짝과 중급-”
“소이퍼?”
“아아, 맞습니다. 소이퍼. 하하. 아무튼, 그거 세 궤짝을 팔았지요. 당시 부하들이 와서 대금을 치르고 가져갔는데, 그때 보았던 놈을 여기 중앙에서 본 것 같았습니다.”
“눈썰미가 상당하군.”
“말씀드렸다시피 정보가 곧 돈 아니겠습니까?”
으레 거상이란 물건을 판다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라 생각하는 오델이었다. 큰돈을 다루기 때문에 물건이 상하는 것보다 이상한 놈을 만나는 게 더 큰 위험이라는 계산이다. 하여,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썰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발달한 것이다.
“어디서 봤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박장이 있습니다.”
“도박장?”
“예, 해 지면 열고 해 뜨면 닫는 곳인데, 인근에서 제일 큰 곳이기도 합니다. 어지간히 정신 나간 놈들은 다 거기로 모이지요.”
이안이 한스를 돌아봤다. 혹시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입구가 붉은색 페인트인 거기요?”
“맞습니다.”
한스는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워낙 명성이 자자한 곳인지라 잘 알고 있었다. 한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들어가는 입구가 여러 개인 거로 기억하는데요.”
“예예. 온갖 도박판이 다 벌어지다 보니까, 들어가는 문에 따라서 가까운 경기장이 다릅니다.”
“어느 도박장이었지? 인상착의는?”
“코 옆에 점이 크게 나 있고, 눈이 이렇게 쭉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앞니가 없고요. 옷은 뭐, 거지같이 하고 다니지요. 인근 놈들 다 그렇듯이.”
오델의 중얼거림에 한스가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여기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듣기 불편한 말이었던 게다.
한스의 기분을 눈치챈 이안이 오델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사람을 잘 구별하기는 하는데, 편견이 있는 자다. 마법사인 이안과 함께 온 자이니 러거스펠과는 관련이 없을 거라 여긴 게다. 이안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모르고?”
“아우, 예. 제가 그것까지는 모르지요. 아무튼 생김새가 특이한 놈이니 바로 알아챌 것입니다. 그놈 붙잡아서 흑정단에 대해 알아보십시오.”
“그러지. 도움 고맙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닙니다. 제가 평소 마법부에 신세 지고 있는 것이 얼마인데요.”
이안이 볼일 다 보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델 역시 벌떡 일어나 그를 배웅했다. 이안은 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뒤돌았다.
“그런데 말이지.”
“예?”
“상단의 규모가 꽤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예예, 뭐. 부끄럽습니다만 어디 가서 꿇릴 정도는 아니지요.”
“근데 왜 러거스펠에 거점을 잡았나?”
“……?!”
오델은 당황해서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나섰다.
“다음에 보자고. 그때도 좋은 값에, 좋은 물건 부탁하네.”
“아, 저기!”
끼이익!
이안이 문을 열고 나가자, 밖에 서 있던 부하들이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두 사람.
오델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을 부려 댔다.
“얌마!”
그러고서 눈 코 입이 터진 부하를 불러서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마법사면 알아서 기었어야지.”
“그, 그게 워낙 어린애들이어서 헛소리하는 줄 알았습니다. 신분증도 안 보여 주고, 이름도 안 알려 줘서요. 그래서 마법이라도 보여 달라고 했더니-”
“보여 주겠냐?! 어? 한밤중에 러거스펠 한가운데서?”
게다가 지금 보니까 은밀히 조사 나온 모양인데, 적당히 보고해서 상황 판단은 내가 하게끔 했어야지! 이런 등신들!
오델은 술을 콸콸 따라 마시며 불난 속을 가라앉혔다.
“이안 하델. 저거, 저거… 아레나보다 더한 놈이야.”
“예?”
“닥치고 꺼져.”
“…옙.”
오델의 짜증에 부하가 입을 쩝 다물며 물러났다. 방금 나간 두 사람은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모습을 감춘 뒤였다.
* * *
“이안, 아까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떤?”
“왜 러거스펠에 거점을 잡았냐는 말.”
“아아.”
이안은 다시 로브를 뒤집어쓰고는 한스를 따라나섰다. 골목길이 좁아지자 이리저리 치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안이 설명했다.
“가이아 전역을 떠도는 놈인데, 바리엘이 얼마나 큰 거래 상대겠어? 그중에서도 마법부는 마석 분야에서 큰손이지. 근데 황궁에 출입도 안 하고, 큰손들 있을 법한 중앙 한가운데가 아니라 러거스펠에 자리 잡았다는 건-”
이안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말소리를 조금씩 낮추며 설명했다.
“이쪽 뒷세력과 큰 거래가 있었다는 거지.”
불법적인 거래. 즉, 털면 먼지가 나올 수도 있는 거래라는 뜻이었다. 아니면 다른 문제로 중앙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신세거나. 소송 같은 문제로 말이다.
어쨌거나 확실한 건,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길 수밖에 없다는 뜻.
“그러니까, 조심하라는 작은 충고.”
나중에 마석 거래할 때 가격을 싸게 떼 오거나,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이는 한스에 대한 말실수 복수이기도 했다.
“오, 그렇군.”
한스는 하나 새로 배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갯짓으로 멀지 않은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야.”
“응.”
사람이 더 많아졌다. 러거스펠에서 밤을 새우는 인간들이 모두 모였나 보다. 그들은 술과 짜릿한 도박의 맛에 취해서는 한껏 떠들어 댔다.
“이야, 그놈. 진짜 악바리더라.”
“누구? 붉은 머리 놈?”
“어어, 막 처맞아도 끄떡을 안 하더구먼. 다음에는 그놈한테 걸까 봐.”
“그래도 안 돼. 걔는 맷집만 좋아.”
이안은 스쳐 지나가는 말소리를 귀담아들으며 도박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