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3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35화(935/935)
제935화. 사람을 찾습니다
끼이익.
“돌려! 돌려! 계속 돌리라고!”
“으아아아! 미치겠네!”
붉은색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형형색색의 번쩍이는 조명 아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 불쾌한 냄새와 함께 궐련 연기가 가득했고, 곳곳에서는 악에 받친 비명과 고함 그리고 환호가 터졌다.
“이안. 이쪽으로.”
지난 몇 년 동안 바리엘 국경지대에서 겪었던 마물 지옥과는 또 다른 지옥이다. 그곳은 피와 눈물로 얼룩졌다면, 이곳은 탐욕과 욕망으로 뒤덮인 곳이다.
“뭐 해?”
“아.”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이안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한스가 그를 끌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뻔했다.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빨리빨리 좀 움직이라며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이안이 한스를 따라 움직이며 물었다.
“여기 규모가 얼마나 큰 거야?”
“지하 층수가 많아서 나도 확실히는 몰라. 사람 찾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지.”
밖에서 봤을 때도 크다고 여겼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오델이 말한 흑정단원의 인상착의가 상당히 특이해서 운만 좋으면 바로 찾겠다 싶었는데, 이거, 원.
“매일 출석해도 모자랄 판이네.”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스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누군가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한스가 러거스펠에 살 적, 인근 주점을 운영하던 사장이다. 그는 술 궤짝을 옆으로 치우며 한스를 돌아봤다. 처음에는 못 알아보는가 싶더니, 이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돌았다.
“이런, 한스 아니냐!”
“세상에, 오랜만이에요.”
“그래그래. 훤칠한 청년이 되었구나. 이거 못 알아보겠어. 나움은 잘 지내고?”
“형은 뭐,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아저씨는 잘 지내셨어요?”
“그럼. 보다시피 이 밤중에도 술 팔면서 잘살고 있지. 그런데 넌 여기 무슨 일이냐? 설마 놀러 온 건 아니겠지?”
나움이 마법사로 각성했을 때, 러거스펠은 발칵 뒤집혔다. 진작 잘해 줄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사람, 신기하다며 연신 한스의 집을 들락거리는 사람, 수중에 돈 한 푼 없는데 돈 빌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주점 사장은 그중 유일하게 축하한다며 음식을 싸 들고 온 사람이었다.
“놀러 온 거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형제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주점 주인은 걱정스럽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마법사 형으로 인해 괜히 나태해져 향락에 빠진 건 아닌가 싶은 게다. 한스는 조심스럽게 이안을 옆으로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황궁에서 나왔는데,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
“아, 그래?”
황궁이라 하면 마법부겠지! 한스가 연 있는 부서라고는 거기밖에 없지 않은가? 주점 주인은 눈치 빠르게 알아듣고서 바에 앉으라며 음료를 내주었다.
“누구를 찾는데? 내가 여기 죽치고 앉아서 밤마다 술 판 지가 벌써 3년째거든. 어지간한 놈들 얼굴은 한 번씩 다 봤지. 기억을 못 한다는 게 문제지만. 크하하핫!”
이안은 잔을 들며 꾸벅 인사했다. 빈손으로 다니는 것보다 뭐라도 들고 있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코 옆에 점이 크게 나 있고, 눈이 가늘게 찢어져 있으며 앞니가 없는 사내를 찾고 있습니다.”
“흐음. 뭔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주인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명만 들어서는 심각하게 못생겨서 인상적일 것 같은데, 확 떠오르는 인물은 없다. 그는 이안에게 제안했다.
“사람을 찾고 싶으면 벽보라도 붙여 보는 게 어때?”
“벽보요?”
“저기.”
이안은 주인장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벽 한쪽에 종이가 그득그득 붙어져 있었는데, 덧붙이고 또 덧붙여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돈 빌려줍니다, 돈 빌립니다, 같이 게임판 들어갈 사람 구합니다, 물건 찾습니다, 뭐 기타 등등. 쌍욕만 잔뜩 써 놓고 가는 놈들도 있지만 그래도 꽤 활성화돼 있거든.”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급전 필요한 놈들은 눈에 불을 켜고 샅샅이 살펴보거든. 저걸로만 통해서 돈 버는 놈들도 꽤 있고.”
뭐,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안이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장이 냅킨과 펜을 넘겨주었다. 이안은 펜을 잡고 잠시 고민하다가 한스에게 부탁했다.
“네가 써 줘.”
“나? 그러지, 뭐. 근데 왜?”
“내 글씨체는 너무 단정해서 이곳과 안 어울려.”
“…불러라.”
한스가 이를 꽉 깨물며 그리 이르자 주인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돌렸다. 끝도 없이 들어오는 주문에 술잔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달그락거렸다.
“돈 떼어먹은 사람 찾음. 남자. 코 옆에 점. 찢어진 눈. 앞니 없음. 정보를 알려 주는 사람에게는 후사하겠음. 문의는 주점으로. 은화 1닢.”
“2닢으로 해.”
“좋아, 2닢.”
한스는 냅킨에 글자를 슥슥 적더니 벽 한가운데 핀을 꽂았다. 이렇게 되면 돈에 눈먼 자들 전부 달라붙어 흑정단원을 찾을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뒤탈 없이.
“여기는 이렇게 하고. 일단 온 김에 둘러볼까?”
“시간 괜찮겠어? 벌써 많이 늦었는데.”
“하루 정도는 괜찮아.”
“그럼 나는 오른쪽으로 돌게. 한스 너는 왼쪽으로 돌아. 여기서 다시 만나자.”
“오케이. 조심해.”
한스는 로브를 벗지 말라고 당부하며 왼쪽으로 돌아 나섰다. 이안 역시 오른쪽으로 돌며 정신없이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헤쳤다. 수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수백 명을 살폈지만, 의심 가는 이는 없었다.
“한스, 어때?”
“못 봤어.”
“내려가 보자.”
내려갈수록 조금씩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위층은 술집이 있어서 그런가, 다들 반쯤 미쳐 있어도 왁자지껄한 느낌이었는데, 밑층은 더 위험하고 간절한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이안은 끊이지 않는 환희와 괴성 속에 인상을 찡그리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한스.”
“응?”
조심스레 고갯짓하는 이안. 카드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한스는 안경을 고쳐 쓰며 미간을 찌푸렸다. 코 옆에 난 점, 그리고 나름 쭉 찢어진 눈매.
“앞니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가 보자.”
이안은 남자가 자리한 테이블 빈자리에 앉았다. 한스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속삭였다.
“앉으면 게임해야 해.”
“하면 되지. 아까 칩 좀 바꿨어.”
“뭐? 언제?”
웬 낯설고 어려 보이는 이들이 속닥거리자, 도박판에 앉아 있던 자들이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그 시선을 눈치챈 한스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코 옆에 점이 있는 남자는 입을 꾹 다문 채 카드를 살펴보고 있었다.
‘궐련도 안 물고, 술도 없네.’
이안은 한스에게 시선으로 신호했다.
‘여기 술 좀 돌려 줘.’
한스는 걱정스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층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안은 마법사 아닌가? 여차하면 건물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도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하는 거지?
“게임 참가하시겠습니까?”
“네.”
아아. 그래, 이안이 돈 다 날려 먹을까 봐 걱정하는 거다.
아무리 부자라도 도박판에서는 다 똑같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한여름의 얼음처럼 녹아내리고, 사막의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리는 게 바로 도박판이다. 일명 ‘꾼’들에게 잘못 걸려서 집이고 가족이고 다 날려 먹은 이의 이야기를 한두 번 들었던가?
‘이안아, 조금만 기다려!’
제발 천천히 하고 있어라! 쟤가 게임 규칙은 아는지 몰라. 칩 한 개에 얼마인 줄은 알고나 있을까? 한스는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받으며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한편, 이안은 방금 받은 카드 패를 확인한 뒤 참가자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어린놈이 벌써 이런 델 올 줄 알아?”
“얼굴이 왜 낯설지? 쉽게 까먹을 얼굴은 아닌데.”
로브로 인해 그림자가 져 있었지만, 감출 만한 미색이 아니었다. 이안은 대꾸하지 않은 채 칩을 딜러 쪽으로 밀며 베팅에 응했다.
투욱.
“콜.”
“싸가지없기는. 나도 콜.”
“따라가야지. 크흠.”
다들 한두 마디씩 하는데, 문제의 남자는 입만 꾹 다문 채 게임에만 열중했다. 그러다 힐끗, 시선을 눈치챈 남자가 이안을 쳐다보자, 이안은 자연스럽게 딜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이안, 이안, 이안!’
한스가 두 손 가득 술잔을 들고서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하필이면 주점에 주문이 밀려서 술 받는 것이 늦어지고 말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체되었는데, 이안은 어찌 되었을까? 그 남자의 앞니는 확인했을까?
콰앙!
우당탕탕!
“이런 씨! 말도 안 돼!”
“저 새끼, 지금 수작 부린 거라고!”
“돈 돌려줘! 돌려달란 말이야!”
어디선가 들리는 고성. 도박꾼들은 또 일 터졌다는 듯 잠깐 흥미를 주다 말았고, 건물 직원들이 몰려들어 흥분한 자들을 진정시켰다.
“어이, 소란 피우지 마.”
“씨발, 눈이 있으면 좀 보라고! 이게 말이 되는지!”
헉. 이안이 있던 테이블 쪽이다. 한스는 술 절반 이상을 흘리면서 사람들 틈을 파고들었다. 유유히 앉아 있는 이안과 달리, 함께 앉아 있던 사내들이 벌떡 일어나 길길이 날뛰고 있다.
“이안-”
한스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칩들. 아까보다 세 배, 아니 다섯 배 정도는 늘어난 것 같다. 반면, 다른 참가자들 앞은 텅 비어 있다.
“어, 한스.”
“너, 너, 어떻게 된 거야?”
“보시다시피.”
다 따 버렸어. 이안이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사내가 손가락질을 해대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분명히 뭔가 속임수를 쓴 거라니까!”
“어이, 봤어?”
직원이 딜러에게 물었으나, 딜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이나 의심 가는 부분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안은 의자에 팔을 걸친 채로 코 옆에 점 난 사내를 쳐다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영 입을 열지 않는…….
“느으아아아아아!”
“……!”
갑자기 혼자 발광하듯 목청껏 소리 높여 울부짖는 사내.
느닷없는 돌발 행동에 이안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목적 달성을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스. 이 테이블에 한 잔씩 돌려.”
“어? 어어. 저기, 그, 속에 열나면 이거 좀 마시세요.”
한스는 술잔을 대충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는 이안 대신 칩을 챙겼다. 이안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살펴보더니, 한스에게 제안했다.
“한층 더 내려가 볼까? 밑층이 투기장이지?”
“아까 그 남자는?”
“앞니 제대로 있더라고.”
“아.”
이안은 보았다. 울부짖을 때 번듯하게 자리 잡은 남자의 앞니를. 그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 층에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근데 이안, 너 게임 할 줄 알았어?”
아니, 마법부에서는 대체 뭘 가르치는 거람?
안 그래도 황당해하는 한스에게, 더 황당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
“…그럼 어떻게 한 건데?”
“그냥 대충 눈치 보면서?”
눈치로 룰을 숙달하고 돈까지 땄다고? 한스의 말문이 턱 하고 막히는 순간이었다.
“야-!”
아까 이안에게 돈을 잃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안을 쫓아와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위협해 댔다.
“돈 내놓고 가! 이 사기꾼 새끼야!”
“어어, 왜 이러세요?”
한스가 놀라서 막아섰지만 반쯤 미치광이가 된 사내의 힘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도박장 직원은 귀찮은지 쳐다만 보고 있었고, 다른 이들 역시 괜한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경 안 쓴다는 게 맞겠지.
“내 돈-!”
“으앗!”
한스가 뒤로 밀리자, 이안이 자연스럽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마법을 쓸 수는 없으니 적당히 제압을…….
퍼억!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남자의 등을 발로 차 밀어 버렸다.
쿵, 쿵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계단 아래로 데굴데굴 떨어지는 남자. 그의 일행이 반사적으로 덤볐지만, 한 손에 의해 가볍게 제압당했다.
“십새끼들이. 돈 벌러 가야 하는데 재수 털리게. 안 비켜? 엉?”
초면의 남자가 짜증스럽게 욕설을 지껄였다. 여기저기 멍들고 찢긴 얼굴, 사나워 보이는 눈매, 그리고 말할 때 살짝 보이는 덧니. 게다가-
‘붉은 머리.’
“베릭, 경기장 올라가기 전에 힘쓰게?”
“몰라. 길을 안 비키잖아. 안 그래도 좁아 뒈지겠는데.”
퉤! 베릭이란 이름의 사내가 침을 뱉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저 멀리, 그를 위한 투기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
이안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지나갈 자리를 마련해 줬고, 베릭은 그런 이안을 빤히 쳐다보며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 맞물리는 순간이었다.